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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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끝까지 쓰는 용기

글: 정여울 / 그림: 이내

펴낸 곳: 김영사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언제나 반갑다.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외삼촌 손에 들려 있던 과자 종합 선물 세트,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여있던 선물, 장갑 낀 손이 얼얼할 정도로 차디찬 눈을 한 움큼 집어 빙수처럼 꿀꺽했던 순간. 이제는 빛바랜 사진첩의 한 장면이 된 행복한 추억들. 그 순간의 소박한 기쁨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일지 모른다. 어른이 될수록 점점 재밌는 것도 신기한 것도 사라져 세월이 빨리 흘러간다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만으로 천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기서 꿀팁 하나! 당연한 말이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많을수록 행복한 순간을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하는 작가는 많아진다. 평소엔 말이 별로 없는 내가 이렇게나 설레며 병아리처럼 조잘거린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 정여울 덕분이다. 가벼운 우울감마저 돌이켜보면 아름다웠던 가슴 시린 청춘과 어느 순간 마흔이란 나이에 닿아 한 뼘 더 성장하고 때로는 빈센트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를 진하게 탐닉하며 내 가슴을 톡톡 두드렸던 그녀가 이번엔 작가로서의 삶과 글쓰기에 관해 수줍게 고백한다.

 

 

 

 들어가는 글부터 진하다. '글을 쓰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에게 푹 빠져보세요.' 모든 걱정을 떨쳐내고 지금 쓰는 바로 그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글임을 믿으란다. 글을 쓰는 순간만은 온전히 자신과 사랑에 빠질 것. 어찌 보며 어렵고 어찌 보면 참 쉬운 글쓰기엔 역시 약간의 자뻑과 풍부한 감성이 필요한 듯하다. 일단 한 줄이라도 완성하면 글쓰기는 시작된다. 끝을 내지 못해 실망하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오늘 남긴 미완성의 메모는 언젠가 또 다른 짝을 만나 하나로 완성될 테니까. 글쓰기는 끝내 기쁨은 선사하지만, 중간에 고통과 슬픔의 사막을 숨겨놓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의 3S는? Story(스토리) + Sensitive(센시티브) + Stock (스톡). 어휘력은 많은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딱 맞게 단어를 배치하는 힘이다. 어휘력을 늘리려면 언어를 뛰어넘어 사유해야 한다. 정여울 작가가 서평을 쓰는 팁은? 책을 읽고 나서 기존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관해 쓴다. 그리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그건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덮어두기로...

 

 

 

 


 

 

 

 

내 안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더 눈부신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글쓰기야말로 지금 우리가 당장 이룰 수 있는 오랜 꿈의 실현법입니다.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p123중에서...

 

 

 

 '책 때문에 피곤하면서도 또 책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글귀에 웃음이 터졌다. 책 때문에 피곤한 이유가 살짝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책 때문에 피곤한 사람이니까. 허덕이면서도 절대 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 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분명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정여울 작가의 여느 책들처럼 오직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진 않는다. 워낙 글쓰기 스펙트럼이 광범위한 작가이기도 하거니와 관심 있는 분야도 많은 그녀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퐁퐁 솟는 아이디어로 언제나 독자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글쎄. 그 대답은 당신에게 달렸다. 그 대답을 가슴에 품고 있던 나는... 글을 끝맺을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첫 문장은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용기를 내어본다. 나만의 글을 쓴다는 막연한 동경과 두려움 사이에서 머뭇거렸지만, 좋아하는 정여울 작가의 따스한 응원을 발판 삼아 슬그머니 도약을 꿈꾼다. 누군가를 마침내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게 바로 정여울 작가의 보석 같은 능력이다. 뼈를 깎는 고통에 비유할 정도로 때론 고생스러운 글쓰기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이기적으로 그녀의 다음 신간을 얼른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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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 황교익의 일과 인생을 건너가는 법
황교익 지음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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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글쓴이: 황교익

펴낸 곳: 김영사

 

 

 <수요미식회>와 <알쓸신잡>으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황교익 칼럼니스트. 방송에서 그를 처음 봤던 순간이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저 사람은 누구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그의 모습에 음식에 관해 잘 아는 방송인인가 보다 오해 아닌 오해를 했었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이렇게 무섭다. 그저 맛집 평론가 정도로 생각했던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책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 오해는 영원히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 제목만 보고는 황교익 = 음식, 이라는 공식 때문에 음식을 주제로 한 팔도 식도락이 펼쳐지지 않을까 잠시 상상했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그의 인생 철학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었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그이기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정확히는 어떻게 맛칼럼니스트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근데 웬걸, 글을 어찌나 맛깔나게 쓰시는지 펼친 순간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내달렸다. 몽돌해수욕장에 있는 둥근 돌처럼 둥글둥글 막힘없이 흘러가는 이야기. 예상외로 정말 재밌었다.

 

 

 

 '어떻게 먹고 살까'라는 세속적 걱정만으로 벅차다는 그는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집안이 잠시 유복했지만 가난을 면치 못했던 학창 시절,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당시 거리에 즐비했던 거지, 후에 노숙자로 이어지는 전개가 상당히 매끄러워 안성맞춤으로 짜 넣은 듯 쏙 빠져든다. 돈이 없어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단절된 자가 거지라고 하니,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매사 옳은 선택을 하자. 보통의 머리로 먹고사는 법을 설파하는 부분에서는 시크함을 넘어서 이 정도면 득도의 경지가 아닌가 싶을 만큼 시원시원하다. 수재와 경쟁하지 마라. 피곤하기만 할 뿐 이길 수가 없다. 보통의 머리를 달고 사는 사람 속에서 조금만 잘하면 된다. 1등만이 살길인 양 늘 아등바등하는 현대인에겐 정말 파격적인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넓게 보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으니 겁내지 말고 그 길로 갈 것.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정답이라니. 툭툭 던지는 단정적인 한 마디들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자꾸 고개를 끄덕끄덕. 자신의 구질구질한 생존기라고 하더니, 구질구질하기는커녕 흥미롭고 더 나아가 짜릿하기까지 하다.

 

 

 

 미술 기자 채용에서 최종 탈락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농민 신문사에서 12년을 일하기까지, 그는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다. 국어 문법 교과서 1년이면 평생 글쓰기의 기본을 다질 수 있다는데 과연 그걸 실천할 사람이 있을까? (가능하다면 내가 해보고 싶다.) 일본 서점에 즐비하게 깔린 음식책을 보며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알아본 그는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지혜로운 개척자였음이 틀림없다. 어떤 위치에 있든 그 순간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정치 성향이 어떻든, 그 사람의 소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아닌지를 떠나 그냥 그의 인생만 놓고 보면 인생을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라며 또 다른 길에 눈을 뜨게 된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따끔한 충고와 자신이 경험한 괜찮은 생존술을 뚝 던져주는 인생 선배이자 사수.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문장에 반해 대체 이 글의 매력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마지막 마침표를 만나고 나서야 이게 그가 말한 '몰입'임을 깨달았다. 오늘도 고생한 이 시대의 청춘과 중년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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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틴더 유 트리플 7
정대건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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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이 틴더 유

《트리플 시리즈 7》

글쓴이: 정대건

펴낸 곳: 자음과모음

 

 

 첫정이라는 건 상당히 무섭다. 뭐든지 처음 시작한 일은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처음 맺은 인연은 어떻게든 잘 이어가고 싶다. 내겐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가 그렇다. 지난 2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차곡차곡 독자와 신뢰를 쌓으며 성장하는 트리플 시리즈. 3개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책. 통통 리드미컬하게 책장을 넘기며 책 속에 빠져 들면 적어도 한 시간은 누군가의 인생에 푹 빠져드는데, 잠시 현실을 잊고 오롯이 새로움에 취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다. 트리플 시리즈의 일곱 번째 주인공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GV 빌런 고태경』으로 화제를 모았던 정대건 작가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일부를 잘 녹여낸 『아이 틴더 유』. 담백하면서도 쌉싸름하고, 쓸쓸하면서도 이런 게 인생이지 싶은 참 묘한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책이다.

 

 

 

'틴더'라는 데이트 앱으로 만난 호와 솔. 어쩌면...이란 희망을 품고 진지한 관계를 꿈꾸는 순진한 남자 호. 진지한 만남보다는 자유롭고 가벼운 관계를 원하는 솔. 말이 제법 잘 통했던 두 사람은 처음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동침한다. 그들에게 다음이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런 관계로 이어진 두 사람은 동네 친구로 제법 가깝게 지내다가 자연스레 멀어진다. 대체 불가능한 스페어에서 그저 알던 사람이 됐다고 할까? 돌이켜보면,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인연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지. 10년 전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았지만, 안타깝게 그걸로 끝이었던 승주는 독립영화 기획전에 초청받아 어머니와 뜻밖의 1박 2일 부산 여행길에 오른다. 마침 부산에서 지내고 있던 전부인 민주와의 만남과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만감이 교차하는데... 새싹처럼 움텄다가 푸른 여름을 지나, 어느 가을 바짝 말라 부서지는 낙엽처럼 예고 없이 시들어 버린 사랑. 다소 일방적이었던 그 이별도, 악감정 없이 편하게 서로를 마주하는 그 담담함도 내겐 뭔가 새로웠다. 불쑥 연락해 만날 약속을 잡고 여행까지 가는 애매한 남녀, 서아와 영선.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떠나,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이 참 순탄치 않음을 느끼게 한 그들이었다.

 

 

 


 

 

 

정대건 작가가 『아이 틴더 유』에 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쓸쓸하다. 그린 라이트인가 싶었다가 일방통행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갑자기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상대가 떠나기도 한다. 뭐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한데 이런 상황들이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다.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야기. 그럼에도 정대건 작가가 숨을 불어넣은 인물들이 특별한 건, 그들만이 내뿜는 특유의 담담함 덕분이다. 담담함에서 좀 더 발전하여 때론 담백하기까지 한 이들의 관계는 울며 가랑이를 붙잡는 사람도 데이트 폭력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범죄자도 없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한 순간도 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털어낼 수 있는 '괜찮음'. 그 덕분에 청춘들은 쓸쓸함을 넘어 괜찮은 오늘을 살아간다. 내일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 해도, 그 역시 괜찮다. 그들은 또 담담하고 담백하게 내일을 살아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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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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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패싱

글쓴이: 넬라 라슨

옮긴이: 서숙

펴낸 곳: 민음사

 

 

 

 내가 갖지 못한 것에 관한 욕망, 혹은 거짓말 한 번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특권을 갈망한 적 있는가? 옳지 않지만,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매력적인 그 욕망의 속삭임에 굴복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만났다. 『패싱_passing』. 조금 낯선 이 제목은 흑인이 백인 행세를 하는 일종의 사기 행각을 뜻한다. 1891년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넬라 라슨은 두 권의 소설을 연이어 출간하며 두각을 드러냈지만 안타까운 개인 사정으로 다음 작품을 출간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 책 『패싱』은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책이 출간된 1920년대는 패싱 인구가 급증했던 시기로, 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흑인이 백인 문화를 접하며 선망의 눈길로 도약을 꿈꾸던 시기였다. 수많은 흑인 중, 백인과의 혼혈로 하얗게 태어난 흑인들은 백인 같은 삶이 아닌, 백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하얀색에 관한 일그러진 욕망과 그 욕망이 초래하는 끔찍한 비극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주인공 아이린에게 날아든 편지로 슬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발신자는 고향 친구였던 클레어. 아버지를 잃고 마을을 떠난 클레어를 우연히 마주친 건 2년 전, 시카고에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방문하게 된 클레어의 집에서 아이린은 소름 끼치는 사실을 접한다. 클레어가 백인 행세를 하며 결혼한 남성 존은 흑인을 혐오하는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자신의 아내는 물론 방문한 친구들이 모두 흑인의 핏줄이란 걸 모른 채, 존은 요즘 아내가 얼굴이 까맣게 탔다며 천연덕스럽게 '검둥이'라 놀린다. 흑인이 'Black'이란 단어를 얼마나 치욕스럽게 여기는지 우리는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다. 황인인 우리가 'Yellow'라는 소리에 발끈하는 정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골이 깊디깊은데...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멀리하고 싶었던 클레어가 다시 아이린의 인생에 끼어든다. 아이린이 주관하여 할렘가에서 벌어지는 흑인 파티에 발을 들이고, 자신의 출신이 들킬 위험을 무릎 쓰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긴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여러 남성의 시선을 끈 클레어. 아이린은 문득 자신의 남편 브라이언의 미심쩍은 시선을 알아챈다. 클레어로 인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이 된 상황에서 아이린은 고통스럽게 절규하는데... 과연 그 결말은?

 

 

 


 

 

 

"너희는 내가 원했지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가진 것과 그 이상을 손에 넣기로 결심했지.

내가 느꼈던 것을 너 이해하겠니, 이해할 수 있니?"

『패싱』 p51 중에서...

 

 

 

 이야기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패싱(백인 행세)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하얀색과 검은색 껍데기 중 무엇이든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고를까? 상당한 특권을 지니게 해줄 하얀색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껍데기가 내면의 정체성까지 바꿔줄 수는 없는 법. 감쪽같이 백인으로 살아가던 클레어의 영혼은 옛 친구들과 흑인 사회에 발을 들이며 뜨겁게 불타오른다.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그녀는 자신을 되찾고 싶다. 클레어의 그 욕망이 아이린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이 과정에서 인종 문제가 아닌 한 여성이 겪는 질투와 공포, 끝없는 고민과 보호 본능이 추악하게 일그러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이 사실을 간과했던 클레어의 최후는 가슴이 저릿했다. 그 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아이린의 모습도 그저 소설 속 인물이라고 냉정하게 대하기엔 너무 큰 연민을 자아내기에... 이런, 누가 그녀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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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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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 다섯 마리의 밤

글쓴이: 채영신

펴낸 곳: 은행나무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대."

『개 다섯 마리의 밤』 p209 중에서...

 

 

 

 중반부를 한참 지나 후반부에 돌입할 무렵, 작가는 그제야 '개 다섯 마리의 밤'이란 제목의 의미를 알려준다.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아야 버틸 수 있는 춥디추운 겨울밤. 알비노인 아들 세민을 둔 혜정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어른스러웠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열두 살 세민이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둘도 없는 자매처럼 지내다가 혜정과 세민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 안빈 엄마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광기라고 하기엔 너무 적막해서 더 가슴 아픈 그들의 이야기. 결국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그 안타까운 사연 속에 풍덩 빠져버린 나는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혜정과 세민, 안빈 엄마와 안빈, 특정 종교에 속한 요한과 에스더. 이 세 개의 톱니바퀴가 쉴 새 없이 맞물리며 각자의 인생을 짓이긴다. 기름칠이라도 한 듯 유연하게 흘러가다가 이내 불똥과 파편을 튀기며 무섭게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 아동복 매장의 점원과 손님으로 만난 안빈 엄마와 혜정. 그들이 쌓은 지난 몇 년간의 우정은 어쩌다 그 지경이 됐을까? 혜정이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며 안빈 엄마의 고요했던 일상은 바지직 금이 가버렸다. 잘생긴 모범생이었던 안빈은 세민에게 밀려 열등감 덩어리로 전락하고, 설상가상으로 바람기 많은 안빈 아빠는 혜정에게 추파를 던진다. 내 자식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내 남편이 한눈을 파는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공부든 뭐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민은 실은 꺼져가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남기고 싶어서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걸까? 언니를 위해 끔찍하게 희생당한 세월의 보상금으로 세민만을 품고 지냈던 혜정. 그런 혜정에게 처음 마음을 열었던 안빈 엄마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큰 존재였을 거다. 애정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살의로 사무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따금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또래 자식을 둔 엄마들의 감정싸움, 기 싸움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그 깊은 이면엔 누군가를 향한 실망과 원망 그리고 애증이 도사리고 있다. 혜정, 세민, 안빈, 안빈 엄마, 에스더. 시시각각 화자가 달라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간혹 삐꺽거리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고 독자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특정 종교 집단과 세민은 어떻게 엮일 것인지, 그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혜정과 안빈 엄마의 안타까운 대치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이지. 결말이라는 두 글자를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게 하는 소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과연 누가 악인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행복한 이 없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이야기. 눈을 돌려버리고 싶은 이 쓰디쓴 한 편의 드라마를 덮지 못한 채 끝까지 내달린 건... 그들의 고통에 비친 너와 나, 우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고통의 끝에 있을 구원을 미친 듯이 갈망하는 그 모습마저도... 우리의 그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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