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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평점 :

제목: 개 다섯 마리의 밤
글쓴이: 채영신
펴낸 곳: 은행나무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대."
『개 다섯 마리의 밤』 p209 중에서...
중반부를 한참 지나 후반부에 돌입할 무렵, 작가는 그제야 '개 다섯 마리의 밤'이란 제목의 의미를 알려준다.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아야 버틸 수 있는 춥디추운 겨울밤. 알비노인 아들 세민을 둔 혜정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어른스러웠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열두 살 세민이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둘도 없는 자매처럼 지내다가 혜정과 세민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 안빈 엄마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광기라고 하기엔 너무 적막해서 더 가슴 아픈 그들의 이야기. 결국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그 안타까운 사연 속에 풍덩 빠져버린 나는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혜정과 세민, 안빈 엄마와 안빈, 특정 종교에 속한 요한과 에스더. 이 세 개의 톱니바퀴가 쉴 새 없이 맞물리며 각자의 인생을 짓이긴다. 기름칠이라도 한 듯 유연하게 흘러가다가 이내 불똥과 파편을 튀기며 무섭게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 아동복 매장의 점원과 손님으로 만난 안빈 엄마와 혜정. 그들이 쌓은 지난 몇 년간의 우정은 어쩌다 그 지경이 됐을까? 혜정이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며 안빈 엄마의 고요했던 일상은 바지직 금이 가버렸다. 잘생긴 모범생이었던 안빈은 세민에게 밀려 열등감 덩어리로 전락하고, 설상가상으로 바람기 많은 안빈 아빠는 혜정에게 추파를 던진다. 내 자식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내 남편이 한눈을 파는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공부든 뭐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민은 실은 꺼져가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남기고 싶어서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걸까? 언니를 위해 끔찍하게 희생당한 세월의 보상금으로 세민만을 품고 지냈던 혜정. 그런 혜정에게 처음 마음을 열었던 안빈 엄마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큰 존재였을 거다. 애정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살의로 사무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따금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또래 자식을 둔 엄마들의 감정싸움, 기 싸움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그 깊은 이면엔 누군가를 향한 실망과 원망 그리고 애증이 도사리고 있다. 혜정, 세민, 안빈, 안빈 엄마, 에스더. 시시각각 화자가 달라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간혹 삐꺽거리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고 독자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특정 종교 집단과 세민은 어떻게 엮일 것인지, 그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혜정과 안빈 엄마의 안타까운 대치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이지. 결말이라는 두 글자를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게 하는 소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과연 누가 악인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행복한 이 없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이야기. 눈을 돌려버리고 싶은 이 쓰디쓴 한 편의 드라마를 덮지 못한 채 끝까지 내달린 건... 그들의 고통에 비친 너와 나, 우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고통의 끝에 있을 구원을 미친 듯이 갈망하는 그 모습마저도... 우리의 그것이기에...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몰입하며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