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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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지니아

글쓴이: 온다 리쿠 / 옮긴이: 권영주

펴낸 곳: 비채


 

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알게 된 지도 어느덧 15년째다. 꿈꾸는 듯한 몽환적인 문체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아련한 꽃.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꿈결을 헤매는 듯 둥둥 떠다니는 기분 좋은 몽롱함에 취해 현실과 소설 속 세계의 장벽이 무너져버린다. 2007년에 출간됐던 추리소설 『유지니아』가 14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왔을 때, 사건이 벌어졌던 그해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책장을 펼치자, 그때 그 사건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춤을 추듯 몸을 비튼 채 괴로워하다 죽어간 사람들. 공소시효를 앞둔 사건의 마지막 수사에 나선 듯, 내 심장은 범인을 찾아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명망 높은 의원 집안의 잔칫날. 우비를 입은 한 남자가 배달한 술과 주스를 의심 없이 마신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무차별 살인. 총 17명이 사망한 이 사건에서, 술을 조금 마셔 사경을 헤맨 끝에 살아난 그 집 가정부를 제외하고 다른 생존자는 딱 한 명. 그 집안의 아름다운 눈먼 딸, 히사코만이 그 모든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이야기는 특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과 관계된 다양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각자 지닌 패를 꺼내는 형식. 인터뷰 때론 독백 혹은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전개가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과연 그해 여름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당신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범인인지 알아?

...

그래, 알겠어.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만, 지금 난 처음 본 순간 그 사건의 범인을 알았어.

그는 천천히 소녀의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야

온다 리쿠, 『유지니아』 p176 중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 살아남은 가정부, 그 가정부의 딸, 범인으로 밝혀진 청년의 옆집에 살던 꼬마, 그해 여름 이야기를 <잊혀진 축제>란 제목의 책으로 엮은 작가이자 당시 사건 관련자, 그녀를 도와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청년 등등 수많은 인물이 한 사건을 가리킨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 엇나가는 그들의 진술이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맞춰 보아도 사건을 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할 때, 작가는 화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된 후 어떤 특징을 넌지시 제시하며 그제야 누군지 파악하게 되는 형식. 덕분에 이야기에 더 집중하며 빠져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계산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온다 리쿠의 필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책장을 덮은 후, 손끝에 저릿하게 남아 있는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 알다가도 모르겠는 이야기를 어떻게 가슴에 묻어야 할꼬. 온 가족을 비롯하여 총 17명이 목숨을 앗아간 그 끔찍한 사건 현장과 그로부터 20년 후를 그린 이야기이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독하게 잔인하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건만... 그 무서운 진실 이면에 한여름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느슨한 듯 술술 풀어낸 이야기가 실은 첫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촘촘하고 탄탄하게 짜인 하나의 완전한 피사체인 셈. 온다 리쿠만이 완성할 수 있는 그 몽환적인 미스터리의 마수에 알면서도 당하는 나는 무엇인가. 『유지니아』, 꼭 추천하고 싶은 일본 추리소설이다. 몇 번을 읽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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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하는 말 더 이해하는 말 - 삼키기 버거운 말은 거르기로 했다
조유미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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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또 오해하는 말, 더 이해하는 말

지은이: 조유미

펴낸 곳: 허밍버드


에세이 베스트셀러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의 조유미 작가가 또 한 번 가슴 깊이 와닿는 글을 선보인다. 오늘 에세이 추천의 주인공 《또 오해하는 말, 더 이해하는 말》은 관계의 중심인 '말'이 지닌 힘에 주목하며 현실적인 위로와 구체적인 마음의 길을 제시한다. 요즘 한창 관심이 있던 마음 비우기, 마음 내려놓기, 감정코칭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무념무상, 무소유의 상태를 논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더 단단히 키우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한다고 할까? 살아가며 여러 순간 느꼈던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며 그녀가 담백하게 건네는 해결책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희망'을 품고 있다.

 

 

 

 

 



 

 

 

내가 나를 믿어줄 때, 그때 내가 가장 강해진다.

 

 

이 책 《또 오해하는 말, 더 이해하는 말》과 함께했던 며칠 동안 재밌는 경험을 했다. 평소엔 목차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제목들이 마음을 사로잡아 그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그날그날 목차 제목에서 가장 읽고 싶은 글을 쏙쏙 골라 읽었는데, 내 기분 상태에 따라 그 순간에 와닿는 글의 깊이와 감동이 확연히 달랐다. 긍정적이고 따스한 위로가 켜켜이 쌓여갈수록 굴곡 많았던 비포장도로에서 잔잔한 물결이 이는 호수로 곱게 잦아드는 감정의 결. 첫날보다 둘째 날이 더 좋았고, 셋째 날, 마지막 날이 더 좋았다. 가장 먼저 마음을 두드린 글은 '혼잣말도 내가 듣는 말이다'. 별생각 없이 툭툭 내뱉던 혼잣말이 실은 혼자 잔뜩 가시를 세우고 나를 평가하는 '나'였다는 걸 이전엔 미처 몰랐다. '혼잣말을 귀로 들을 땐 가장 작은 소리이지만, 마음으로 들을 땐 가장 큰 소리이다. - p32'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짜증이 난다고, 세상 살기 참 쉽지 않다고... 내가 내뱉었던 부정적인 말을 가장 소중한 자신이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나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안 좋은 생각이 들 땐 절데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마음속으로 10까지 세어보자. 그리고 좋은 생각과 나를 칭찬하고 싶을 땐 자신을 토닥이며 큰 소리로 또렷하게 말해주자.

 

 

 

 



 

 

 

인간은 세월을 빌려서 행복을 누리다 가는 거지 영원히 쥐고 있는 건 없다.

 

 

학교에서는 성적 1등, 회사에서는 실적 1등. 우리는 얼마나 숫자에 목을 매달며 살고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 살 거라면 숫자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숫자의 노예가 되는 순간, 진짜 행복은 저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니까. '누구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잘하면 된다.'는 조언은 그간 잊고 있던 즐거움에 눈뜨게 한다. 즐겁게 그 일을 했던 순간을 오래도록 누리는 건 모두 우리 마음에 달렸다. 숫자로 평가하기엔 우리는 너무 귀한 존재란 걸 잊지 말자. 그리고 인생의 유한함을 기억하자. 우리는 세월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고,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든 결국 내려놓고 가야 한다. 절대 놓치지 싫어 안간힘을 쓰며 꽉 쥐고 있던 주먹을 가볍게 펼 수 있다면, 더는 오만해질 이유도, 실패했다고 실망할 이유도 없어진다. 말과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지치고, 자신이 실망스럽다면 이 책을 꺼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똑같은 고민을 지니고 사는 우리가 모두 바라는 건 결국 우리의 행복 아니겠는가. 그 행복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지 않음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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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말 - 새로운 번역과 원문을 통해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인생 철학 110가지
가와이 쇼이치로 지음, 박수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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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셰익스피어의 말

지은이: 가와이 쇼이치로

옮김이: 박수현

펴낸 곳: 예문아카이브 (예문사)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엄마는 이 책을 꼭 읽어 보라며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셰익스피어 5대 희극》을 사주셨다. 4개와 5개의 희곡을 각각 담은 이 책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이용 문고판이라 셰익스피어 원작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갓 10대에 들어선 내게 셰익스피어는 뭔가 독특하고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는데...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어머니를 잃은 햄릿의 처절한 고뇌는 너무 생소한 감정이었고 늙은 아버지 리어왕의 바위 하나 못 맞추고 쫓겨난 코델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극한을 오가는 감정과 거짓말 같은 삶의 굴곡은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하지만, 이젠 조금 깨달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엔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거의 모든 감정과, 어둠 속 등불처럼 옳은 방향을 알려줄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는 걸.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 중, 인생의 맛을 깊이 음미할 좋은 책 구절만 골라 건네는 인생 철학책 《셰익스피어의 말》. 이 책과 함께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

 

 

 

알찬 구성과 저자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철학책 《셰익스피어의 말》

 

 

이 책은 셰익스피어 희곡 총 40편과 《셰익스피어 소네트》 중에서 110가지 말을 골라 정성 가득한 해설을 더했다. '후회하지 않도록, 삶이 고민된다면, 인간관계로 고민한다면, 전환기를 맞이했다면, 성장하고 싶을 때, 공허함에 사로잡혔다면, 풍요로움에 대해 생각한다면, 연애로 고민이라면.' 저자는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될 고민의 순간을 정의하고, 그때 읽으면 도움이 될 셰익스피어의 좋은 책 구절을 꼽아 따스한 조언을 전한다. 책 말미에는 희곡 총 40편의 줄거리를 집필 순서대로 정리해두었다. 장르로 분류하자면 비극, 희극, 역사극, 문제극, 로맨스. 아직 원작을 읽지 못한 작품도 저자가 정리해둔 줄거리를 통해 일면식을 트면, 그 작품에서 셰익스피어가 전하고자 한 인생철학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주옥같은 문장이 가득하여 필사하기 좋은 책이다.

 

 

 

 


 

 

 

 

올곧아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헨리 8세』 제3막 제2장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시대의 차이는 느껴질지언정, 촌스럽거나 허무맹랑하진 않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심장을 뜨끔하게 하기도 하고, 저자가 이 문장을 왜 골랐는지 알쏭달쏭한 경우도 있다. 깊이 공감하든, 어색한 괴리감을 느끼든 확실한 건 모두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문장들이라는 점.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흘러.' 늘 시간에 쫓기는 나는 하루가 48시간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48시간이 된대도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저자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객관적인(크로노스) 것이지만 주관적인 시간(카이로스)은 다르다고 말한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사랑할 때, 흥분되어 두근거릴 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고. 카이로스가 충실한 삶을 살면 인생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고, 똑같은 시간을 보내도 알찬 시간을 보내면 짧은 인생도 더 길어진다. 셰익스피어와 저자는 알찬 인생의 답이 '사랑하는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 해답을 '몰입'에서 찾았다.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그 순간에 충실할 것! 그 순간 하나하나가 모여 내 인생을 더 뜻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셰익스피어의 좋은 책 구절을 통해 인생을 공부하는 철학책 추천. 필사하기 좋은 책이니 매일 한 문장씩 써보며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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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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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글쓴이: 정영욱

펴낸 곳: 부크럼


 

 

인생이 참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날들이 있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운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어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 그 순간. '위험, 건들지 마시오!'라는 신호를 보지 못하고 섣불리 위로하려 들었다간, 너와 내가 아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 이럴 때 가장 좋은 처방전은 뭘까? 내 경우엔 에세이를 읽는 거다. 세상 어디에도 내 편 하나 없는 것 같은 울적한 날, 위로는 고픈데 혼자 있고 싶은 순간, 그냥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딴생각하지 말고 에세이를 펴자. 짧은 글이 켜켜이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차분해지고, 나도 모르겠던 내 마음을 알아주니 울컥했다가, 이내 마음이 풀려 슬며시 미소 짓기도 하는 에세이를 읽는 시간. 오늘은 딱 그런 순간에 추천하고 싶은 특효약을 만났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를 쓴 정영욱 작가의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이분은 부업으로 작명소를 하시나? 어쩜 제목을 이렇게 잘 뽑아내는지 제목부터 반은 합격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위로책

 

 

혹 이런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위로하고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친구를 채근한 적은 없는지... 혹은 누군가 내게 건넨 섣부른 위로에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적은 없는지... 이 책은 그런 심정을 너무 잘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괴로웠는지 차마 내가 다 알겠냐마는 그래도 당신 참 힘들었겠다. 어떤 힘듦인지 따지기 전에 이 말부터 해주고 싶다. 괜찮다. 다 괜찮을 거다.' 세상에, 이렇게 위로하며 다가오는데 마음을 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눈물 핑 도는 따스한 위로에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그와 나눈 대화는 즐거웠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탈해서 다행이었던 하루. 때론 무책임하게 내일의 나에게 맡겨도 인생은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소심한 배짱. 진짜 복수는 누군가를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내가 잘되는 거란 사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으니 괜히 기운 빼지 말고 진짜 소중한 사람에게 잘하라는 말. 끝날 줄 모르고 오래도록 이어진 즐거운 대화에 마음속에 있던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정말 기승전결이 확실한 위로책!

 

 

 

 


 

 

 

세상 어디 들춰 봐도

너보다 소중하고 귀한 건 없다.

 

망가뜨리지 말고,

함부로 대하지 말 것.

에세이베스트셀러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중에서...

 

 

 

나의 가장 큰 적이자, 아군은 바로 나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 인간관계, 우정,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깊은 대화가 오갔지만, 사실 모든 해답을 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나 자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도 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나. 이 책은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일에 힘들고, 힘들어해도 해결하지 못할 일에 힘들면 그건 정말 내 탓이라 꾸짖는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그 힘든 순간엔, 작가가 전한 따스한 조언과 응원을 떠올려보자. 염려할 가치, 힘들 가치가 있는 일에만 신경 쓸 것. 포기할 일이라면 온 마음을 다해 놓아주고 후회할 일이라면 마음 아프게 아파하라. 잠시 흐릴지언정, 맑은 날은 반드시 찾아오니까. 책을 덮고 나니, 마음 잘 맞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하소연을 다 털어놓은 듯 후련하다. 슬그머니 미소지으며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마법 같은 위로를 나지막이 소리 내어 말해본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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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 조선을 뒤흔든 예언서, <귀경잡록>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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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글쓴이: 박해로

펴낸곳: 북오션


 

공포 스릴러 《신을 받으라》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후, '박해로'라는 이름은 믿고 읽어도 좋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그의 작품을 손에 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뭐랄까...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 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작가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솔직히 말하면, 소설 초반엔 집중하지 못하고 속았다는 기분에 알 수 없는 배신감까지 느꼈다.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으므로!) 한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가 쌓아 올린 견고한 세계는 하염없이 나를 빨아들였다. 누구도 간 적 없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이야기. 이 책의 장르를 뭐라 딱 규정하긴 어려울 듯하다. SF소설, 판타지소설, 호러, 스릴러. 이 중 어떤 장르를 붙여도 이 작품은 고개를 저으며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이 책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는 말한다. 자신의 장르는 '박해로'라고.

 

 

 

귀경잡록과 원린자

 

 

박해로 작가가 구축한 방대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경잡록》과 원린자 그리고 추종자의 존재를 꼭 집고 넘어가야 한다. 세종 20년, 건국 신화를 부정하고 백성을 미혹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된 《귀경잡록》. 이 책은 미래의 모습과 예언을 담은 책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의 창업자가 있으며 그 존재가 부리는 원린자들이 호시탐탐 세상을 노린다고 말한다. 이 원린자는 오늘날의 외계인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뱀 껍질의 선비'로 알려진 《귀경잡록》의 저자 탁정암은 인류를 위기에 눈 뜨게 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지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 이 책을 악용한다. 《귀경잡록》이 백성에겐 혁명의 증거로, 탐관오리들에겐 원린자에게 자기 죄를 뒤집어 씌을 근거로 사용되는 바람에 저자 탁정암은 혹독한 고문 끝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온 나라를 뒤져, 찢고 태운 《귀경잡록》은 끈덕지게 유포되고 후대로 전해져 유구한 천수를 누린다. 이 희대의 금서이자 불멸의 책인 《귀경잡록》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을 담은 시리즈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다. 총 100편 완성이 목표라는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귀추가 주목된다!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와 <암행어사>

 

 

이번 책에선 두 편의 연작소설이 이어진다. 《귀경잡록》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펼쳐지는 두 이야기는 눈에 띄는 접점은 없지만, 언제 어느 순간 연결될지 모르니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앞서 출간된 귀경잡록 시리즈에서도 간간이 지난 이야기가 연결된 적이 있다고 하니, 시리즈가 더 진행되면 나중에 접점을 찾는 재미가 쏠쏠할 듯. 표제를 차지한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에서는 불시에 이상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신분과 재산에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괴이한 실종 사건은 훗날 그들이 존비 대군이 되어 나타나며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귀하거나 비천하거나 죽어서는 똑같은 물괴'란 뜻의 존비는 우리 시대의 매니아층이 열광하는 좀비와 같은 존재다. 영화 속에서 느릿느릿 쓰러질 듯 걷던 좀비들이 어느 순간 뛰기 시작했을 때의 공포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존비들은 그보다 더 강력하고 기상천외하다. <암행어사>에서는 '귀경잡록'을 해독하고 세상이 불허하는 지식을 추구하는 15명의 양반 사대부 집단 '토린결'이 등장한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늘 얼굴에 탈을 쓰고 모였지만, 다툼이 벌어지며 두 사람의 얼굴이 공개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얼마 후, 사또와 암행어사로 마주한 두 사람은 뜻밖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쾌락과 탐욕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 빠진 인간의 처절한 말로에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던 이야기.

 

 

 

 


 

 

 

"영원히 죽지 않는 자가

살육의 새벽을 피로 물들인다!"

- 박해로,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신선한 충격와 흥미진진한 전개!

 

 

어느 시대에나 종말론과 공포의 대상은 존재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조선시대의 물괴, 즉 존비는 K-좀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영화 <부산행>과 전 세계를 열광하게 한 드라마 <킹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박해로 작가의 세계관에 존재하는 존비는 일종의 모방품이 아닌 오리지널의 느낌을 풍긴다. 그들이 어떤 사특한 힘에 의해 조종되고 타락하는지, 책에서 넌지시 알려주는 사실만으론 아직 이 세계관을 완성할 순 없다. 작가는 분명 자신이 지닌 수많은 패를 하나씩만 보여줄 것이다. 100편 완성이 목표인 시리즈니, 적어도 100개 이상의 패를 쥐고 있을 테고 따라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다. 당혹스러웠던 첫 만남이 탐독으로 이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경잡록' 시리즈, 이게 바로 '박해로'라는 장르 그 자체다. 그는 어떻게든 마블 시리즈 만큼이나 방대한 세계관을 완성해낼 거다. 애독자로서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놓치지 않고 함께할 예정. 100편 완성 갑시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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