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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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지니아

글쓴이: 온다 리쿠 / 옮긴이: 권영주

펴낸 곳: 비채


 

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알게 된 지도 어느덧 15년째다. 꿈꾸는 듯한 몽환적인 문체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아련한 꽃.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꿈결을 헤매는 듯 둥둥 떠다니는 기분 좋은 몽롱함에 취해 현실과 소설 속 세계의 장벽이 무너져버린다. 2007년에 출간됐던 추리소설 『유지니아』가 14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왔을 때, 사건이 벌어졌던 그해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책장을 펼치자, 그때 그 사건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춤을 추듯 몸을 비튼 채 괴로워하다 죽어간 사람들. 공소시효를 앞둔 사건의 마지막 수사에 나선 듯, 내 심장은 범인을 찾아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명망 높은 의원 집안의 잔칫날. 우비를 입은 한 남자가 배달한 술과 주스를 의심 없이 마신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무차별 살인. 총 17명이 사망한 이 사건에서, 술을 조금 마셔 사경을 헤맨 끝에 살아난 그 집 가정부를 제외하고 다른 생존자는 딱 한 명. 그 집안의 아름다운 눈먼 딸, 히사코만이 그 모든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이야기는 특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과 관계된 다양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각자 지닌 패를 꺼내는 형식. 인터뷰 때론 독백 혹은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전개가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과연 그해 여름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당신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범인인지 알아?

...

그래, 알겠어.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만, 지금 난 처음 본 순간 그 사건의 범인을 알았어.

그는 천천히 소녀의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야

온다 리쿠, 『유지니아』 p176 중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 살아남은 가정부, 그 가정부의 딸, 범인으로 밝혀진 청년의 옆집에 살던 꼬마, 그해 여름 이야기를 <잊혀진 축제>란 제목의 책으로 엮은 작가이자 당시 사건 관련자, 그녀를 도와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청년 등등 수많은 인물이 한 사건을 가리킨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 엇나가는 그들의 진술이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맞춰 보아도 사건을 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할 때, 작가는 화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된 후 어떤 특징을 넌지시 제시하며 그제야 누군지 파악하게 되는 형식. 덕분에 이야기에 더 집중하며 빠져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계산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온다 리쿠의 필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책장을 덮은 후, 손끝에 저릿하게 남아 있는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 알다가도 모르겠는 이야기를 어떻게 가슴에 묻어야 할꼬. 온 가족을 비롯하여 총 17명이 목숨을 앗아간 그 끔찍한 사건 현장과 그로부터 20년 후를 그린 이야기이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독하게 잔인하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건만... 그 무서운 진실 이면에 한여름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느슨한 듯 술술 풀어낸 이야기가 실은 첫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촘촘하고 탄탄하게 짜인 하나의 완전한 피사체인 셈. 온다 리쿠만이 완성할 수 있는 그 몽환적인 미스터리의 마수에 알면서도 당하는 나는 무엇인가. 『유지니아』, 꼭 추천하고 싶은 일본 추리소설이다. 몇 번을 읽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에!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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