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약 구매로 미리 결제해두었던 기욤 뮈소의 신작 <종이 여자>가 도착한 것은 12월이 허리춤에 걸려있던 어느날이었던 것 같다. 예약 구매자에게만 준다는 주간 플래너도 탐이 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책 표지에 그려진 아가씨의 모습이 묘하게 몽환적이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 '기욤 뮈소의 신작인데 뭐, 구매해도 나쁠 건 없지.'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게 된 <종이 여자>는 2주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거실 한편에서 인내심 있게 나를 기다려주었다. 생각보다 두툼했던 존재감 때문인지 아니면 연말의 들뜬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그렇게 <종이 여자>를 외면해왔던 것이다. 2011년의 새아침이 밝던 날 드디어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읽자!' 춥다는 핑계로 잠들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책의 첫 장을 펼쳐들었다. 이런, 난 도대체 지금까지 무얼 한 걸까? 왜! 도대체! 어째서 이 책을 방치했단 말인가. 
 
 
 베스트셀러 작가인 주인공 톰은 천사 같은 외모를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 오로르와 사랑에 빠진다. 헌데 영원하리라 믿었던 톰의 그 사랑은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톰의 잘못이 아닌 오로르의 이별 통보로 이어진 이 준비되지 않은 상실은 잘 나가던 작가였던 톰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고 그 후 톰은 작품을 쓸 생각도, 용기도 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친구인 밀로를 통해 자신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날, 그가 쓰고 있던 책 <천사 3부작>의 한 인물 빌리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톰 앞에 나타나게 된다.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믿을 리 없던 톰은 빌리를 미친 여자라 생각하고 옥신각신 싸우며 본의 아니게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게 된다. 오로르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함께 멕시코로 떠나는 톰과 빌리. 그들 앞에 펼쳐진 이야기들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찬 사랑이라는 기적이었다. 
 
 
 기욤 뮈소의 전작들은 대부분 상처를 가진 영혼들과 정신 분석학자 등 뭔가 상처받은 강아지 같은 영혼들의 집합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신간 <종이 여자>에서는 작가와 허구의 세계에서 왔다는 여인으로 새로운 변신을 도모했다. 책의 장수를 거듭해 갈수록 이것은 기욤 뮈소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인 톰은 기욤 뮈소 자신을, 톰이 사랑하게 된 빌리는 독자를 상징한다. 기욤 뮈소는 작가가 쓴 책이 서점에 풀리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의 것임을 언지하고 그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각자 머릿속에 상상한 공간 속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 빌리라고 표현했다. 즉, 이는 톰이 빌리에 대한 애정을 키워간 것처럼 기욤 뮈소도 그의 책을 사랑해주는 독자들을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있음을 고백한 수즙은 러브레터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목구멍부터 몸 속 깊은 곳까지 간지러운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아마도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따스함과 잔잔함에 몸이 반응했던 것 같다. 점점 깊은 사랑에 빠져가는 톰과 빌리를 보면서 자꾸만 꺼져가는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빌리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톰을 만났다. 손끝을 따라 전해졌던 그 공허함과 쓸쓸함이 그리고 톰이 빌리를 사랑했던 커다란 마음이 파르르 떨리며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기욤 뮈소만이 쓸 수 있는 사랑이야기. 아픔까지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진심어린 고백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작가였던가? 일랑일랑 피어오르는 견딜 수 없는 감동에 내 자신이 그의 책 <종이 여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말 나쁘다. 이런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 정말 밉다. 또 이렇게 울려버리다니.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무리 견고한 자물쇠로 닫아놓은 마음도 이 소설 앞에서는 눈 녹듯 녹아 버릴 것을 알기에 벌써부터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어떤 때보다도 커져만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요 근래 갑작스레 찾아온 슬럼프로 몸도 마음도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겁던 티타임도 손에 잡히지 않던 나나들.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공허한 상실감에 허덕이다 이대로 스스로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겨내기 힘든 두려움마저 나를 조여 왔다. 나를 믿자. 나마저도 나를 놓아버리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겨우겨우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마음으로 힘겹게 손에 붙잡고 있던 책이 바로 이 <춤추는 목욕탕>이다. 한 남자의 죽음. 한 여인의 남편이자 사위, 그리고 아들이었던 그의 죽음은 남겨진 세 여자에게 너무나 다르게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감정으로 다가와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멈출 수 없는 흐느낌으로 그들을 감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기에 나는 그들이 느꼈을 큰 고통을 그 공허함을 차마 이해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을 잃게 된 미령.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 "곧 따라갈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고 또 그리워하며 그의 부재를 실감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복사실의 이구아나를 통해, 자신을 밀어내려고만 애쓰는 시어머니를 통해 차츰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사위를 잃게 된 호순. 철심을 박고 3개월의 혼수상태 속에서 깨어난 미령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사위를 잃은 슬픔과 혼자 남은 딸에 대한 가여움에 그녀 역시 맘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돈인 복남과의 끝도 없는 티격태격함 끝에 차츰 서로를 이해해간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복남.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들의 뼛가루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고자 했던 모질고도 독한 여인. 때밀이라는 직업으로 항상 누군가의 몸을 밀어대야 하는 나날. 술술 벗겨내는 때처럼 자신의 아픔도 벗겨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남겨진 세 여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니 평탄 할 수가 없었다.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와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한끝 차이 아니던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때론 토닥여 주기도 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으르렁 거리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살기 힘든 세상을 느끼고 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잡고 싶었던 미령과 그런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던 시어머니.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친정엄마 호순까지. 그들의 평행선 같은 거리는 언제쯤 좁혀질 수 있을까. 아무런 생각과 느낌 없이 힘겹게 읽어간 소설의 끝에서 나는 결국 그들의 화합을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마음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뭔가 미흡하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이야기. 결국 사람이기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같이 아파했기에 서로를 아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 어쩌면 조금 훈훈하기까지도 한 그들의 이야기는 살기 힘들다 여러 번 되뇌고 있는 나에게 "너도 살아"라고 따끔한 일침을 놔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의 마음도 훌훌 벗겨내는 사람의 때처럼 간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밀고 또 밀어 아픈 생채기를 낼 때까지 내 마음을 밀어낼 수 있을 텐데. 피를 봐서 아프더라고 마음만은 편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제나 작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즐거울 리 없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로서는 온전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왜 항상 똑같은 모습인지 알 수가 없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붙들고 있던 책은 "괜찮다, 괜찮다"라 말하며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자꾸 중얼거리면 마법처럼 정말 괜찮아질까? 어쩐지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흠뻑 울고 나서 충분히 위로받은 듯 한 기분. 나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리틀 비>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열심히 꿀을 나르는 노랗고 작은 벌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홍차 브랜드 카렐의 노란 벌 캐릭터를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이래서 이미지의 형상화가 무섭다고 하는 것인가? 자그마한 꿀통에 열심히 꿀을 나르며 한 손으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귀여운 벌의 이미지. 하지만 왠지 모르게 표지에서 느껴지는 검은 아이의 우울한 표정과 범상치 않은 기운에 눌려 그만 그 귀여운 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책을 선택하기 전 언제나 살펴보는 띠지. 그 곳엔 익숙한 영화배우의 이름이 있었다. 바로 니콜 키드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인 그녀는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그녀를 자극했을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가 고른 영화라면 나에게도 분명 큰 감동을 주리라! 리틀 비와의 만남은 이렇게 소소한 개인적 취향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속에선 우리가 꼭 알아야할 두 명의 여자 주인공들이 나온다.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석유파동으로 가족을 잃고 홀로 고독을 벗 삼아 영국으로 흘러오게 된 리틀 비, 그리고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끔찍한 필연으로 리틀 비를 만나게 된 새라. 그 둘은 서로에게 잊어서는 안 될 은인이자 아픈 기억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돌이키기 싫은 기억 속의 주인공들이기도하다. 처음 수용소에 있던 리틀 비의 건조한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낯설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어떻게 수용소에서 나오게 된 거지? 그녀가 찾아가려는 앤드루라는 남자는 누구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속에서 나는 점점 리틀 비라는 깡마른 나이지리아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벽을 바라보는 일로 보내며 여왕과도 같은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던 불쌍한 아이. '그래, 리틀 비 어디가 되었든 우리 함께 가보자꾸나.' 일단 그녀의 친구가 되고자 마음을 먹으니 그녀의 발검음도 내가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리틀 비와 새라와의 극적인 재회에서 나는 그들에게 얽혀있는 사연을 알 수 없기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왜?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200페이지가 좀 안 되는 상당한 시간 후에야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그 사건의 한 복판에 놓이게 되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그 어떤 다른 생각도 없이 그들에게 집중했던 것 같다. 새라의 손가락과 바꾼 리틀 비의 생명. 버둥거리며 끌려가는 두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게 된 새라의 남편 앤드루. 그들의 지독한 인연은 2년이라는 세월의 바퀴를 돌아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재회는 참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해보였다. 새라에게 리틀 비는 소식은 궁금하긴 했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들 앞에 펼쳐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스토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헌데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다더니 이제 그들은 친구가 되고 앤드루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가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연민이 아닌 우정과 믿음을 쌓아가게 된다. 리틀 비와의 미래를 계획하던 새라, 새라의 아이 찰리를 진심으로 대하는 리틀 비. 그들의 앞길엔 앞으로 행복만 남을 것 같았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왠지 허탈하고 무언가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급하게 끝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리틀 비의 표정과 그녀가 보고 있는 것들 그리고 되뇌는 많은 것들이 나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리틀 비>는 결코 즐겁다거나 해맑은 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밝은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높은 산봉우리 몇 개를 건너는 듯 숨이 가쁘도록 오르다가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만큼 이야기의 기복이 심했으며 그 속에서 느끼는 기분 또한 변덕스럽게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서 만난 두 여자의 영화 같은 이야기? 혹은 나이와 인종을 떠나 무언가 가슴에 함께 품은 사연이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글쎄,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틀 비>가 남긴 여운은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새라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리틀 비를 구해주고 싶었고 끝까지 그녀 곁에 있었다. 리틀 비는 찰리를 통해 아픈 기억들을 보듬어주고 그것을 바라보던 새라는 자신의 상처까지도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에 괜스레 가슴이 찡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리틀 비의 정확한 행보는 알 수 없지만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아 더욱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디 새라와 리틀 비가 계획했던 것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그리고 그 따뜻한 인간미가 공허한 도시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허락되는 기적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01 위대한 화가 - 미술계 거장들에 대한 알기 쉬운 안내서
스티븐 파딩 지음, 박미훈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많은 취미를 갖고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책읽기이다. 때문에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들 덕분에 곤혹스럽기도 한데, "취미가 뭐에요?"라고 묻는 말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독서요."라고 말했을 때의 그 표정 때문이다. 마치 외계 생물체를 대하는 것 같은 표정, 내지는 "애 뭐지?"라고 묻고 싶은 듯 어색하게 웃는 얼굴들. 이제는 너무 자주 겪는 일이라 만성이 되었는지 그들의 표정을 보며 오히려 내가 웃음이 난다. 헌데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닐까? 책 읽는 것만큼이나 그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까막눈이다. 그림을 봐도 "우와~ 잘 그렸다. 멋지다!"만 연발할 뿐 이것이 어느 시대의 누구의 그림이고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들 덕분에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나의 얼굴을 미묘하게 어그러지곤 하는데 이런 내 표정을 보는 이도 독서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재밌어하는 나처럼 내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림 까막눈 탈출 프로젝트로 한 달에 한 권씩 미술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고 이 달에 읽게 된 책이 11월이라는 달 수 만큼이나 넉넉한 책 <501 위대한 화가>란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와~ 정말 두껍다."였다. 1500년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하다 생각되는 작가들을   시대별로 정리한 이 책은 501명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이 싣고 있다. 정리해야할 화가들도 그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너무나 많기에 꼭 알아야할 중요한 부분들만 정리해 놓았는데도 64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처음엔 그 무게에 압도되어 조심스럽게 목차만 살펴볼 뿐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할 수는 없었다. 알기 쉽게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목차를 보며 내가 아는 몇몇의 이름들을 찾아 골라 읽어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시작으로 "고흐"와 "고갱",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아는 이름들은 하나하나 골라서 다 읽어본 것 같다. 그리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차를 음미하듯 읽어간 것 같다. 책의 띠지엔 "미술계 거장들에 대한 알기 쉬운 안내서"라 적혀있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돌 때 우리가 한 권씩 챙겨가는 가이드북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이며 적어도 이것만은 알아두어야 한다는 그들의 당부처럼 이 책은 우리가 그 화가의 작품들을 대하며 알아야할 최소한의 사실들과 그 작품들을 담고 있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동시대 화가들의 관계와 작품성향들이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지면에 허락된 공간은 한정적이다 보니 미처 작품이 함께 실리지 못한 화가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 한 권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501명의 화가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지금까지 한 작가들의 일생과 미술관, 혹은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들만 읽다가 이렇게 시대별로 화가들을 정리해 읽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얻게 된 기분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처럼, 나침반을 잃어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은 한 척의 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의 미술에 대한 소소한 지식들은 이제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앞으론 어떠한 작품을 보고 알게 된 화가의 이름을 바로 이 책에서 찾아보면 되니 그림을 즐기기가 한결 더 수월해질 것 같다. 오랜 시간 좋은 친구가 되어줄 <501 위대한 작가>! 두꺼운 무게만큼이나 오래도록 내 곁에 남아 세월의 흔적과 추억들을 함께 해주길 바라며 따스한 손길로 책을 한 번 쓰다듬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웨이 -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롬 브래프먼 외 지음, 강유리 옮김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젠가 극도의 짜증 상태에서 안 좋은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인 적이 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못난이 짓은 결국 우려했던 결과를 초래했고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으로 후회의 한숨을 쉬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있었다. 그때의 나는 결국 왜 그랬던 것일까? 또 언젠가는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이성과의 첫 만남이후 두 번째 만남 때 그 호감이 비호감으로 급선회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지 않았던가. 갈대? 아니다! 비단 내가 여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심리적 전쟁의 조각들인 것이다. 스웨이라는 책의 저자 브래프먼 형제는 바로 이 눈에 띄지 않는 심리 전쟁에 주목하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그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파악해내고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자 롬과 사업자 오리의 재미난 심리 이야기! 과연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조금 맥이 빠질 수도 있겠지만, Yes!가 아닌 No!이다. 그들의 친절한 설명과 재미난 실화들은 우리의 알 수 없었던  신경의 마디마디들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긴 했지만 결국 궁극적인 실천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상황에선 반대로 생각하세요! 스스로 정한 틀에 머물지 마십시오! 라는 정도의 조언으로는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내기엔 역부족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 생각되는 것은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고 굉장히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그럼 브래프먼 형제가 알려준 인간 심리의 몇 가지 요소들은 알아보기로 하자.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청바지에 간편한 차림으로 350만 달러나 되는 바이올린과 함께 지하철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이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그저 갈 길을 재촉하기 바쁘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연주자가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인 양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다.> - 이는 우리가 음악으로써 그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 + 청바지 "등의 환경적 요인으로 그 위대한 연주자를 거리의 악사로 인식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눈으로 본 것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종의 경계와 틀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일정 사실을 미리 접했을 때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도 그 사실을 전제해두기 때문에 미리 알고 있던 것을 사실이라 인정하게 된다. 인간의 심리는 알수록 신비하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되는 인간의 극단적인 이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성과와 선행이라는 두 목표에 따라 각자 다른 부위가 반응하는 인간의 뇌. 정말 우리 인간의 심리는 도저히 완벽한 컨트롤을 할 수 없는 복잡한 개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초반에 상당히 흥미롭게 시작한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논문적 성향이 짙어지고 제시되는 예들도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책의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끌고 가기엔 조금 힘이 부쳤다. 초반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다. 뭐 누군가 나에게 "에이~ 그건 당신이 몸이 피곤했거나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100%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할테다! ^^ 띠지의 광고 중 "당신의 생각을 180도 뒤엎는 책"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의 일종의 심리적 오류나 자만을 깨닫고 반대로 행동한다면 생각의 180도 회전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긴 했다. 헌데 언제나 반대로 하려고 너무 의식하다보면 결국은 일이 꼬여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와있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본 터라 과연 이것이 옳은 방법일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속 시원히 뻥 뚫어보고 싶어 읽었던 책에서 오히려 여러 가지 의문점과 생각의 꼬리를 잡게 되어 뜬금없이 사람의 심리에 대한 고찰에 빠져있던 나. 그 대답은 결국 "마음 가는대로 합시다!"였다. 스웨이라는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내 심리 상태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이렇다 믿는 신념을 따라가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으니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행복할 테니 말이다. 브래프먼 형제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며 100% 공감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에 미안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