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목욕탕
김지현 지음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요 근래 갑작스레 찾아온 슬럼프로 몸도 마음도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겁던 티타임도 손에 잡히지 않던 나나들.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공허한 상실감에 허덕이다 이대로 스스로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겨내기 힘든 두려움마저 나를 조여 왔다. 나를 믿자. 나마저도 나를 놓아버리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겨우겨우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마음으로 힘겹게 손에 붙잡고 있던 책이 바로 이 <춤추는 목욕탕>이다. 한 남자의 죽음. 한 여인의 남편이자 사위, 그리고 아들이었던 그의 죽음은 남겨진 세 여자에게 너무나 다르게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감정으로 다가와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멈출 수 없는 흐느낌으로 그들을 감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기에 나는 그들이 느꼈을 큰 고통을 그 공허함을 차마 이해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을 잃게 된 미령.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 "곧 따라갈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고 또 그리워하며 그의 부재를 실감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복사실의 이구아나를 통해, 자신을 밀어내려고만 애쓰는 시어머니를 통해 차츰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사위를 잃게 된 호순. 철심을 박고 3개월의 혼수상태 속에서 깨어난 미령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사위를 잃은 슬픔과 혼자 남은 딸에 대한 가여움에 그녀 역시 맘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돈인 복남과의 끝도 없는 티격태격함 끝에 차츰 서로를 이해해간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복남.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들의 뼛가루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고자 했던 모질고도 독한 여인. 때밀이라는 직업으로 항상 누군가의 몸을 밀어대야 하는 나날. 술술 벗겨내는 때처럼 자신의 아픔도 벗겨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남겨진 세 여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니 평탄 할 수가 없었다.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와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한끝 차이 아니던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때론 토닥여 주기도 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으르렁 거리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살기 힘든 세상을 느끼고 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잡고 싶었던 미령과 그런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던 시어머니.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친정엄마 호순까지. 그들의 평행선 같은 거리는 언제쯤 좁혀질 수 있을까. 아무런 생각과 느낌 없이 힘겹게 읽어간 소설의 끝에서 나는 결국 그들의 화합을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마음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뭔가 미흡하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이야기. 결국 사람이기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같이 아파했기에 서로를 아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 어쩌면 조금 훈훈하기까지도 한 그들의 이야기는 살기 힘들다 여러 번 되뇌고 있는 나에게 "너도 살아"라고 따끔한 일침을 놔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의 마음도 훌훌 벗겨내는 사람의 때처럼 간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밀고 또 밀어 아픈 생채기를 낼 때까지 내 마음을 밀어낼 수 있을 텐데. 피를 봐서 아프더라고 마음만은 편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제나 작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즐거울 리 없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로서는 온전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왜 항상 똑같은 모습인지 알 수가 없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붙들고 있던 책은 "괜찮다, 괜찮다"라 말하며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자꾸 중얼거리면 마법처럼 정말 괜찮아질까? 어쩐지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흠뻑 울고 나서 충분히 위로받은 듯 한 기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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