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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ㅣ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리틀 비>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열심히 꿀을 나르는 노랗고 작은 벌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홍차 브랜드 카렐의 노란 벌 캐릭터를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이래서 이미지의 형상화가 무섭다고 하는 것인가? 자그마한 꿀통에 열심히 꿀을 나르며 한 손으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귀여운 벌의 이미지. 하지만 왠지 모르게 표지에서 느껴지는 검은 아이의 우울한 표정과 범상치 않은 기운에 눌려 그만 그 귀여운 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책을 선택하기 전 언제나 살펴보는 띠지. 그 곳엔 익숙한 영화배우의 이름이 있었다. 바로 니콜 키드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인 그녀는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그녀를 자극했을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가 고른 영화라면 나에게도 분명 큰 감동을 주리라! 리틀 비와의 만남은 이렇게 소소한 개인적 취향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속에선 우리가 꼭 알아야할 두 명의 여자 주인공들이 나온다.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석유파동으로 가족을 잃고 홀로 고독을 벗 삼아 영국으로 흘러오게 된 리틀 비, 그리고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끔찍한 필연으로 리틀 비를 만나게 된 새라. 그 둘은 서로에게 잊어서는 안 될 은인이자 아픈 기억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돌이키기 싫은 기억 속의 주인공들이기도하다. 처음 수용소에 있던 리틀 비의 건조한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낯설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어떻게 수용소에서 나오게 된 거지? 그녀가 찾아가려는 앤드루라는 남자는 누구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속에서 나는 점점 리틀 비라는 깡마른 나이지리아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벽을 바라보는 일로 보내며 여왕과도 같은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던 불쌍한 아이. '그래, 리틀 비 어디가 되었든 우리 함께 가보자꾸나.' 일단 그녀의 친구가 되고자 마음을 먹으니 그녀의 발검음도 내가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리틀 비와 새라와의 극적인 재회에서 나는 그들에게 얽혀있는 사연을 알 수 없기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왜?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200페이지가 좀 안 되는 상당한 시간 후에야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그 사건의 한 복판에 놓이게 되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그 어떤 다른 생각도 없이 그들에게 집중했던 것 같다. 새라의 손가락과 바꾼 리틀 비의 생명. 버둥거리며 끌려가는 두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게 된 새라의 남편 앤드루. 그들의 지독한 인연은 2년이라는 세월의 바퀴를 돌아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재회는 참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해보였다. 새라에게 리틀 비는 소식은 궁금하긴 했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들 앞에 펼쳐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스토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헌데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다더니 이제 그들은 친구가 되고 앤드루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가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연민이 아닌 우정과 믿음을 쌓아가게 된다. 리틀 비와의 미래를 계획하던 새라, 새라의 아이 찰리를 진심으로 대하는 리틀 비. 그들의 앞길엔 앞으로 행복만 남을 것 같았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 왠지 허탈하고 무언가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급하게 끝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리틀 비의 표정과 그녀가 보고 있는 것들 그리고 되뇌는 많은 것들이 나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리틀 비>는 결코 즐겁다거나 해맑은 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밝은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높은 산봉우리 몇 개를 건너는 듯 숨이 가쁘도록 오르다가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만큼 이야기의 기복이 심했으며 그 속에서 느끼는 기분 또한 변덕스럽게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서 만난 두 여자의 영화 같은 이야기? 혹은 나이와 인종을 떠나 무언가 가슴에 함께 품은 사연이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글쎄,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틀 비>가 남긴 여운은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새라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리틀 비를 구해주고 싶었고 끝까지 그녀 곁에 있었다. 리틀 비는 찰리를 통해 아픈 기억들을 보듬어주고 그것을 바라보던 새라는 자신의 상처까지도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에 괜스레 가슴이 찡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리틀 비의 정확한 행보는 알 수 없지만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아 더욱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디 새라와 리틀 비가 계획했던 것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그리고 그 따뜻한 인간미가 공허한 도시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허락되는 기적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