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단노 미유키 지음, 박제이 옮김 / 지식여행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에서부터 솔직함이 묻어난다. <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먹고살기 위해 일은 하지만,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눈물로 참아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에잇, 도저히 못 해 먹겠다!'라고 사표를 던지는 일이 과연 가능하긴 할까? 물론 못할 건 없지만, 그만둔 후에 바로 닥칠 쪼들림을 생각하면 손에 쥐고 있던 사표는 다시 조용히 가방에 넣어둘 것 같다. 사표를 냈다는 이 책의 작가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의 작가, 단노 미유키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계약이 만료되어 2014년 8월부터 2015년 1월 초까지 약 5개월가량 1차 백수 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취직된 잡지사에서 2015년 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겨우 1년을 채운 후, 2016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다시 백수 생활에 돌입한다. 책이 출간된 현시점에는 프리랜서로 편집 업무와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심리 에세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작가의 백수 일기이자 사원 일기다. 백수와 사원을 오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날의 감정을 솔직히 담았으며 수입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미묘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백수 시절엔 갑작스러운 작은 지출에도 긴장하기 일쑤지만, 직장인일 땐 바에서 한 잔에 2000엔이나 하는 술을 즐기는 등, 수입 여부에 따른 인생의 소소한 변화를 담담히 풀어낸 작가의 일기는 상당히 공감이 갔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인 나는 일이 없으면 딱 하루만 즐겁고 다음 날부터는 어쩐지 기운이 쭉 빠지는데, 작가의 백수 생활은 생각보다 즐거워 보여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하는 술자리,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여 삼삼오오 나서는 꽃 나들이, 잘 아는 밴드 공연 관람, 고향 집 방문 등등, 작가의 백수 생활은 우울하거나 기운 빠질 새가 없다. 물론,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에서는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니 흐뭇하다. 여느 책과 달리 작가의 일기를 그대로 실은 글이라 상당히 특이했고, 읽다 보니 글에 동화하여 작가의 삶을 그대로 체험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더라는... 하하! 책의 앞 뒷장을 가득 채운 예쁜 핑크 꽃처럼 작가의 인생이 늘 꽃길만 걷기를 바라며, 이 책을 사표만 만지작거리며 오늘도 고민하는 분, 본의 아니게 잠시 쉬게 된 분, 스트레스나 말 못 할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신 분께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받자마자 눈에 띈 띠지의 강렬한 문구. 뭔가 굉장히 전투적인 느낌이라 호응보다는 약간의 거부감이 앞섰다. 이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글은 아닐지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미 읽은 독자들의 평이 상당히 좋았고 아직 읽지 못한 관심 도서인 <섬에 있는 서점>을 쓴 작가의 신작이기에 기대가 컸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읽기 시작한 <비바, 제인>. 결론은 너무너무 좋았다. 어찌 보면 무겁고 풀어내기 힘든 주제를 추의 균형을 잘 잡아 거부감 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놀랐던 시간. 여성, 특히 기혼자에게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주제는 묘한 동질감을 끌어내며 주인공과 주변 사람을 응원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다섯 개의 챕터로 이뤄진 <비바, 제인>. 레이철, 제인, 루비, 엠베스, 아비바. 이렇게 다섯 여인이 등장하는데 각자 화자가 되어 풀어내는 다섯 이야기가 다른 물줄기처럼 흘러가다 결국 한곳에 모여 큰 강을 이룬다. 일단 소설의 첫 장을 여는 레이철의 이야기부터 살짝 엿보자. 레이철은 의사 남편과 대학생이 된(이야기 시작 시점에서...) 딸을 둔 중년 여성이다. 교직에 오래 몸담고 있던 그녀는 교장으로 승진하여 이제 안락한 노후 생활만 남은 듯,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건 폭풍의 전조였을까? 하나뿐인 외동딸, 아비바가 중년의 하원 의원 레빈과 불륜 관계에 빠져들고 레이철은 그런 딸을 구해내려 발버둥 친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은 그 하원 의원 레빈이라는 놈은 예전에 같은 건물에 살았던 이웃! 결국, 레이철은 딸을 위해 레빈의 부인인 엠베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하고 사건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레빈 의원과 아비바의 불륜 관계가 들통나고 세상은 레빈이 아닌 아비바에게 마녀 혹은 창녀라는 낙인을 찍어 죽도록 열을 올리며 지겹게도 아비바의 목을 죈다. 과연 아비바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하원 의원인 레빈과 선거 캠프 인턴이있던 아비바의 스캔들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여러 성 추문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책에서도 언급한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건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떠들썩한 여러 정치인과 여인의 공방전까지 굳이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들. <비바, 제인>이 이런 한낱 가십을 파헤치고 수다쟁이의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면 아마 졸작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아비바가 오로지 가해자로만 낙인찍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려 해도 좌절해야만 했던 2차 가해에 관해 이야기한다.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아비바에게 '잊힐 권리'란 그림의 떡. 모두 아비바를 손가락질하며 수군댄다. 한편, 부인인 엠베스의 용서를 받고 국민 앞에서 사과한 레빈은 10선 의원으로 거듭나며 승승장구하는데,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왜 사람들은 '저 여자가 먼저 유혹했어요'라는 말에 남자에게는 면죄부를 여자에게는 가시관을 씌우는지 모르겠다. 물론, 가정이 있는 남성과 관계를 맺은 아비바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분명 그 부분은 아비바의 잘못이지만, 그녀는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였고 이젠 그런 관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런 아비바에게 돌을 던질 자는 과연 누구인가? "Everyone has a skeleton in the closet.", 누구나 옷장 속에 해골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즉,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불륜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레빈이나, 바보 같은 선택으로 그런 실수를 저지른 아비바보다 이러쿵저러쿵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우리, 제삼자들이 더 추악한 가해자일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엠베스이니 모두 쉿 입 다물 것! 그리고 아비바도 이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이제 그만 불필요한 관심은 거두고 그 사람도 살게 해주자.

 <비바, 제인>은 자칫 지나친 페미니즘으로 상대하거나 마녀사냥이 될 수 있는 이런 주제를 재밌고 흥미진진한 소설로 풀어내어,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무심한 모든 이에게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권고하는 작품이다. 여러 여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그들의 인생과 하나로 연결되는 사건 이야기는 독자가 잠시 딴생각할 겨를 없이 책에 푹 빠져들게 만들어 십여 년에 걸친 사건 전후를 순식간에 넘나들게 한다. 가독성이 좋아 금세 읽을 수 있는데, 원문이 좋은 건지 번역을 잘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궁금하다. 아마 원문과 번역 모두 훌륭한 게 아닐까 싶은! <비바, 제인>은 원서로 읽어 봐도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비바, 제인> 원서와 작가의 전작 <섬에 있는 서점>을 잊지 말고 꼭 챙겨 읽자. 깊어가는 가을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거나 요즘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못난 추문이 지겨운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
로베르토 비조키 지음, 임동현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고급스러운 자줏빛 표지와 멋지게 차려입은 귀족 남성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라는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 귀족 남성의 신분은 '치치스베오'다.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이라는 문구'에 마음을 뺏겨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불타는 열정으로 544페이지의 두꺼운 벽돌책을 완독! 쉽진 않았지만 즐거웠던 치치스베오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맥주 한잔으로 자축까지 했다는... 자, 그럼 치치스베오의 세계로 다시 빠져보자.

 

 

 

'치치스베오는 누구였는가?'
 치치스베오는 귀부인의 거의 모든 활동을 챙기고 돕는 시종기사였다. 18세기, 프랑스에 의해 이탈리아까지 퍼진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전까지 사회생활 없이 집안에만 귀속됐던 여성의 자유가 허락된다. 여성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고 환심을 사려는 태도인 '갈랑트리'가 성행하며 결혼한 여인에게 남편이 아닌 이성을 대동하는 일이 합법적으로 허용되며 치치스베오라는 신분이 탄생했는데, 치치스베오는 귀족 학교를 갓 졸업한 애송이 귀족 청년이 맡는 경우가 많았으나 나이 제한이 없어 중년의 치치스베오도 있었다고 한다.


'귀족 청년과 귀부인 그리고 남편에게 치치스베오란 어떤 의미였을까?'
 치치스베오는 귀족 청년(주로 차남)이 귀족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거치는 일종의 인턴 과정이었다. 따라서 치치스베오가 된 청년은 이미 귀족 사회에 익숙한 귀부인을 수행하며 그에 맞는 예법과 지식을 습득하고 일정한 비용도 지급받았다. 귀부인은 차를 마시거나 카드놀이 등의 사교 행사에 절대 홀로 참석할 수 없었는데, 남편이 늘 함께 대동할 순 없는 노릇이니 치치스베오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남편은 치치스베오를 아내의 보호자로 여겼으나 때론 질투와 의심으로 인해 불화가 일기도 한다. 치치스베오는 반드시 미혼 청년만 가능했던 것이 아니어서 남편 역시 다른 귀부인의 치치스베오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녀가 오랜 시간 붙어 있는데 불륜의 위험은 없었을까?'
시종기사 선택은 주로 가문 사이의 합의로 이루어져서 어느 정도의 믿음이 깔린 관계였다. 이는 성관계가 배제된 관습이었는데, 귀족이 스스로 통제를 잘했다기보다는 치치스베오가 성관계를 통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상상하는 그런 불륜 행위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꾸 보면 당연히 정들고 마음을 열게 되는 법! 깊은 관계를 즐기는 치치스베오와 귀부인은 분명 있었으며 이로 인해 귀부인이 출산한 아이가 그 집안의 혈통이 맞는지 의심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치치스베오는 왜 사라졌을까?'
 18세기, 성적으로 방종한 시기를 지나 19세기에 '수줍은 미덕'을 강조하는 시대 변화에 따라 가정과 여인의 정절을 중요시하는 물결이 일며 새로운 성도덕과 가족 윤리가 확산하여 불화를 조장할 수 있는 치치스베오라는 존재는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를 읽으며 사실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귀부인과 귀족 청년의 불타는 사랑 이야기도 슬그머니 기대했지만, 작가의 의지는 확고했다. 성직자도 치치스베오였다는 부분에서 이런 구절이 등장하는데...

'분명한 것은 결혼한 여성이든 그렇지 않은 여성이든 성직자와 맺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이 책에서 다룰 관심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p147)'

 이 얼마나 확고한 태도인가! 작가는 '치치스베오'라는 존재를 철저하게 학술적으로 분석하는데, 그 의도와 방향이 목차에서도 잘 나타난다.

◈ 목차 ◈ 
1. 치치스베오는 누구였는가?
2. 계몽주의 세계 안에서
3. 18세기 사회 안에서
4. 치치스베오의 지정학
5. 에로티카 (전혀 에로틱하지 않음 ㅜㅜ)
6. 금지된 치치스베오

 혹시나 '에로티카'라는 제목에 혹했다면 부디 실망하시지 말기를, 담담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대략적인 상황만 설명되니 귀부인과 치치스베오의 뜨거운 관계는 오롯이 독자가 상상으로 떠올릴 몫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치치스베오라는 미지의 존재를 알아가는 즐거움! 사회적 배경과 사상에 부합하여 치치스베오라는 신분이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었는지 귀한 역사의 한 줄기를 훑어볼 수 있고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더 나아가 전반적인 유럽의 사상과 분위기가 변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각종 사례와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시절을 고증하고 관련 그림 자료도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이 두 배! 다만 주석이 원문에 충실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그림 자료가 앞부분에 집합되어 찾아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결혼한 여인에게 어떻게 합법적으로 다른 이성의 접근이 허용되었는지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이게 과연 이성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자든 남자든 각자 서로만 바라봐야 탈이 없는 법이거늘 각자 다른, 그것도 어쩌면 매력적인 이성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면 일이 터지지 십상! 그러니 현대판 치치스베오가 나타난다면 나는 결사반대다. (물론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는 소설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분명 상당한 가치와 나름의 흥미가 있으니 인문학 혹은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두꺼운 벽돌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도 상당하니 꼭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18세기와 19세기의 성도덕 관념을 대비하는 귀족 노부인과 손녀의 대화가 담긴 모파상의 <옛 시절> 인용구를 끝으로 치치스베오와 아쉬운 이별을 고해본다.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440과 441페이지에 실린 내용으로 성도덕 관념의 시대적 변화를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 - 미국의 개 친구들을 찾아 떠난 모험 이야기
김새별 지음 / 이봄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명견 래시>와 <파트라슈의 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나중에 개를 꼭 키우자고 다짐했었다. 한데, 안타깝게도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엄마가 개 알레르기가 심하셔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지금은 신랑이 개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래저래 개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지금도 TV 채널을 돌리다 동물농장이 나오면 한참 푹 빠져 시청하고 길에서 귀여운 강아지나 멋진 개를 만나면 눈을 반짝이며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개를 좋아하다 보니 이번에 읽은 <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는 내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영리한 개구쟁이 코난과 그런 코난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진심으로 사랑하는 쌍둥이네 이야기. 이 책에는 쌍둥이네가 코난과 함께 미국 보스턴에서 1년간 생활하며 겪은 행복하고 따스한 추억이 담겨 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소중한 추억,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살펴보자.



 무게가 35kg이나 나가는 대형견, 코난을 미국으로 무사히 데려가는 것부터가 첫 난관이었다. 다이어트로 체중을 일부 줄였지만 위탁 수화물로는 불가, 코난은 어쩔 수 없이 화물칸에 타야 할 처지가 되었다. 혹시라도 코난이 겁먹을까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쌍둥이네 모습에 나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였다는... 다행스럽게도 코난은 무사히 미국 땅을 밟고 견생 최고의 1년이 될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가기 시작한다. 목줄을 풀고 달릴 수 있는 개 공원과 드넓은 해변.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그런 상황이 미국에서는 가능했다. 물론, 정해진 구역에서 규칙에 맞게 즐겨야 했지만, 그 정도면 최고다. 코난은 호수, 바다를 가리지 않고 첨벙 빠져들어 한참 수영을 즐기고 가족과 캠핑도 가보고 다른 골든 리트리버 100여 마리와 함께하는 정모에도 참석한다. 세상에, 이토록 행복한 견생이 또 있을까? 코난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코난에게 푹 빠져들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옆집 이웃 같았다. 겁먹은 코난, 질주하는 코난, 밥 먹는 코난, 헤엄치는 코난, 긴장한 코난, 행복한 코난 등등, 쌍둥이네가 느꼈을 그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어느새 코난네 식구가 되어 함께 미국을 누비고 있었다. 



 <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는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다. 반려견을 외국으로 데려가는 방법, 현지에서 주의할 점과 알아두면 좋을 각종 정보까지 사랑하는 반려견과 외국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큰 도움이 될 많은 이야기가 세세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연 코난이지만, 코난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따스한 정과 반려견을 향한 사랑부터 강아지 공장과 안락사 등의 가슴 아파 외면하고픈 사회적 문제까지 깊이 있게 전한다. 이 책을 쓴 쌍둥이네 엄마의 직업이 다큐멘터리 전문 MBC PD라는 게 실감 날 만큼, <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는 한 편의 다큐이자 감동적인 영화다. 코난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내 옆에도 쓰다듬고 안아줄 수 있는 반려견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한 상상에 빠졌던 시간. 코난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쌍둥이의 예쁜 마음에 가슴이 따스해지고, 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멋진 추억을 쌓은 작가의 진취력에 감탄하며, 그 행복한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뿌듯하고 즐거웠다. 작가님, 코난과의 멋진 나날을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참 행복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쳐다보지 마 스토리콜렉터 67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호주 제1의 범죄소설가, 마이클 로보텀의 귀환! 스릴러의 거장이란 타이틀과 쏙 빨려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는 호평 덕분에 기대, 또 기대됐던 작가 마이클 로보텀의 신작 <나를 쳐다보지 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이끄는 여덟 번째 이야기이자, 나와 작가의 첫 만남을 성사시킨 책이다. 첫인상이 남긴 순간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는데 마이클 로보텀이 남긴 첫인상은 대호감. 아직 읽지 못한 전작으로의 역주행을 부추기는 흡입력에 푹 빠져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한 집에서 살해당한 모녀. 한데, 사체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다. 자그마치 36번, 그것도 은밀한 부위를 난자당한 채 잔인하게 살해당한 엄마 엘리자베스와 달리, 딸인 하퍼는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단아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퍼의 사인은 질식사. 전혀 다른 두 사체의 상태와 더불어 알 수 없는 기이한 상징이 살인 현장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조 올로클린이 범죄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별거 중이라 떨어져 사는 부인, 두 딸과 함께 여름을 보내게 된 조에게 사건 프로파일링 요청은 달갑지 않았지만 자기 이름을 들먹이며 돌아다니는 사기꾼 소식을 듣고 경찰에 협조하게 된다. 과연 조는 가족과 화해하고 잔인한 살인마 검거하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나를 쳐다보지 마>는 총 536페이지로 일명 '벽돌책'이다. 상당한 두께에 이 책을 온전히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역시 모두가 보장하는 작가답게 술술 읽히고 세밀한 묘사 덕분에 마치 사건 현장에 있는 듯 책을 붙든 손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조가 사건 현장 재현을 위해 사용한 3차원 스캔 이미지를 따라, 잔혹하게 살해된 엘리자베스의 시체가 있는 1층 거실에서 2층의 하퍼 방까지 조의 시선을 통해 현장을 조사하며 범인을 밝히고자 눈에 불을 켰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 일단 다 의심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이놈, 저놈 의심해봤지만, 용의자가 많기도 많거니와 누가 범인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대체 사건은 언제 해결될 것인지 400여 페이지를 달려 조바심이 들 때쯤 작가는 지금까지 따라오느라 수고했다며 격려라도 해주듯이 미칠듯한 고공비행을 시작한다. 이 순간에 도달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한 장만 더, 한 장만 더를 외치며 사공이 힘차게 노를 젓듯 속도를 내게 된다. '마지막 100페이지에 도달하면 결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 스티븐 킹의 추천사는 사실임!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조와 살인마의 시선을 교차하며 사건을 쫓을 수 있다는 것인데, 글씨체가 달라 화자가 누구인지 바로 구분할 수 있다. 익숙해지니 살인마의 글씨체가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 채로 '그래서 넌 대체 누군데?'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범인을 쫓았다는... 스릴러 소설이라 내용을 많이 적을 수 없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꿀꺽 삼켜야 하기에 지금, 이 순간 대나무 숲으로 달려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건 직접 읽어 봐야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긴장감이기에 오래도록 진행되는 전주에 지치지 말고 후렴까지 무사히 도착하여 절정을 만끽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다들 긴장하시고, 마이클 로보텀을 만날 준비 되셨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