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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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글쓴이: 조선희
펴낸 곳: 네오픽션 / 자음과모음

 

- 찾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그것을 보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그것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의 피가 증발한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내게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내 얼굴을 한 그것이 물었다.
- 내가 누구야?
p22

 

 

 굵직한 토종 스릴러 소설을 만났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출간된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5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거머쥔 이 작품은 가공할 흡입력으로 독자를 휘어잡는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좀 더 살펴보자.

 사건의 시작은 주인공인 '나'(박태이)가 고등학생이었던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복수를 꿈꾸던 '태이'는 소망을 이뤄준다는 위험하지만 달콤한 놀이를 알게 되고 함께할 친구를 모은다. 그 놀이의 머리인 김이알이 하는 말에 따르면 태이를 포함하여 총 일곱 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태이는 급하게 종목, 국수, 명진, 용주, 연서와 열리 이렇게 여섯 친구를 끌어들인다. 아이들은 밤마다 석수 김이알의 작업장에 모여 신비로운 생명체를 마주하는데, 그건 바로 나무 그루터기에 앞 코가 뾰족한 세 발이 달린 소리나무다. 소리나무가 울리는 순간 '그것'이 나타난다는 소리에 아무것도 모른 채 소리나무와의 교감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 늘 여덟이었던 작업장에 마침내 아홉 번째 소리나무가 나타난 순간 '그것'들의 끈질긴 추격이 시작된다. '내가 누구야?'라며 던지는 질문. 잘못 대답하면 자신을 잃고 '그것'에 빨려들게 되니 무조건 조심할 것. '그것'을 불러낸 태이는 복수에 성공하지만 우려했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친구 연서의 실종.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태이의 할아버지는 태이는 물론 놀이에 가담했던 아이들을 하나둘 마을 밖 먼 곳으로 피신시키기 시작하는데... 그 사건으로부터 15년 후, 놀이에서 벗어날 해답을 찾아냈다는 이유로 갑자기 실종된 국수!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날 수 없다. 과연 '그것'의 존재는 무엇이고 태이를 비롯한 남은 친구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15년 전에 사라진 연서의 행방은?

 총 368페이지의 장편소설인 이 책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일단 발을 들이면 결말을 보지 않고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손가락 끝을 간질이던 잎사귀가 어느새 가는 줄기가 되어 팔을 타고 오르고 굵은 가지가 되어 온몸을 칭칭 감아버릴 지경이 되어도 책을 놓을 수 없다. 끝없이 조여드는 나뭇가지에 잠식당해 끝내는 눈만 빼꼼 내민 채로 급하게 재촉하여 힘겹게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지독한 올가미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조금만 읽다 잠들 요량으로 편 책이건만 이런 낭패가 있나. 멀어져가는 '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겁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을 땐 이미 새벽이 밝아 있었다.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여 흠뻑 홀려버리는 이 소설. 분명 허구일 텐데 지금도 어디선가 이 놀이가 벌어지진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혹시 전설에 존재하는 진짜 놀이는 아닐까? 작가는 직접 경험한 일을 은근슬쩍 책으로 고백한 건 아닐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가파르게 넘나들며 이게 정말 소설인지 뉴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에 제대로 휘둘렸다. 뾰족한 세 개의 발을 가진 '그것'이 얼굴을 들이밀며 '내가 누구야?'라고 물어볼 것 같아서 목덜미를 쭈뼛하는 한기에도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가 없더라. 귀신을 상대하는 공포와는 또 다른 오싹함을 선사하는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잠을 포기하고 하룻밤을 꼬박 들여 읽었지만 굵직한 토종 스릴러를 만난 기쁨이 더 크기에 후회는 없다. 조선희 작가, 다음엔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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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쓸할 때 -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조안빈 그림, 오하나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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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쓸쓸할 때 (가네코 미스즈 시화집)
옮긴이: 오하나
그린이: 조안빈
펴낸 곳: 창비

 

이웃집 살구
꽃은 죄다 보였습니다.
비 오는 날도, 달밤도, 있었습니다.

떨어지면 팔랑팔랑 담장 넘어서
목욕물 위에도 떴습니다.

잎 그늘 쪼그만 열매일 적엔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익어서 새빨갛게 될 무렵은
언제나 올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건
살구 두 알이었습니다. ♬♬

 

 

  아이처럼 순수하고 톡 건들면 은은한 들꽃 향기가 풍길 것 같은 시집을 만났다. 1923년, 스무 살 가네코 미스즈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젊은 동요 시인 중 거성'으로 손꼽히며 193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0편의 시를 남겼다. 여기까지가 책날개에서 알 수 있는 시인의 삶이었다.

 한국어로 번역하고 예쁜 그림 옷을 입혀 출간한 시화집. 젊은 시인 가네코는 언덕 위에서 우연히 보게 된 별똥별처럼 내 가슴에 반짝 들어왔다. 동요로도 불린다는 그녀의 시는 아이가 콩콩 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가듯 행과 연에 리듬이 실려 있다. 한없이 아늑하고 맑디맑은 고운 시어를 연둣빛 풀꽃이 피어나는 벌판, 높고 푸른 하늘이란 종이에 오종종하게 늘어놓은 시인, 가네코. 그녀가 담담하게 전하는 시에서 때로는 누가 내 심장을 움켜쥔 듯 묵직한 욱신거림과 이른 새벽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고즈넉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문장을 과하게 꾸미려는 욕심 없이 그저 소박하고 편안하여 한참을 다시 보고 낮은 목소리로 읽어보게 되는 그런 시. 그렇게 가네코의 시는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시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마음이 예뻐서 가네코 시인은 곱디고운 인생을 살았을 것만 같았는데 '옮긴이의 말'에서 슬프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부가 강요한 정략결혼, 방탕한 남편과의 불화, 생활고, 건강 악화, 남편의 창작 활동과 편지 쓰기 금지 등... 젊은 나이에 온갖 불행과 고초를 겪던 가네코는 결국 향년 2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

  행복하게 시집을 다 읽고 나서 시인의 아픈 인생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시를 남겼건만 정작 당신 속은 남모를 고통으로 문드러졌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하염없이 슬프고 서러웠다. 가네코의 삶을 마주한 후 다시 읽어본 시집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행복은 더 크게 슬픔은 더 깊게, 잔잔하게 흐르던 모든 감성이 더욱 진하게 배어 나오더라. 어쩌면 모르고 살았을 우리 두 사람은 『내가 쓸쓸할 때』라는 시화집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손을 마주 잡았다. 가네코에게 부디 평온한 천국에서 이제는 편히 쉬기를.... 88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당신의 시는 사랑받고 있노라고 그러니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도 된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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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라카스의 날 쿠네쿠네 씨와 친구들 1
히카스 도모미 지음, 고향옥 옮김 / 길벗스쿨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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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쿠네쿠네 씨와 친구들
『오늘은 마라카스의 날』, 『후와후와 씨와 뜨개 모자』, 『오늘은 파티의 날』
글쓴이: 히카쓰 도모미
옮긴이: 고향옥
펴낸 곳: 길벗스쿨

 

 

 

 

『오늘은 마라카스의 날』
주인공 쿠네쿠네 씨, 후와후와 씨와 파마 씨는
'마라카스 모임'을 만들어 이따금 발표회를 엽니다.
발표회에서 선보이려 열심히 안무 연습을 하고
간식과 무대를 준비한 쿠네쿠네 씨.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쿠네쿠네 씨의 차례가 됐지만...
콰당!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죠.
슬퍼하는 쿠네쿠네 씨를 위로해주는 두 사람.
쿠네쿠네 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여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합니다!

 

 

 

『후와후와 씨와 뜨개 모자』
털실을 아주 좋아하고 뜨개질을 잘하는 후와후와 씨는
털실가게에서 일하며 뜨개질도 가르칩니다.
솜씨 좋은 후와후와 씨는 손님이 어떤 주문을 해도 척척 만들어내죠!
그런데, 아뿔싸!
손님이 주문한 모자가 맞지 않아요.
놀란 후와후와 씨는 수업도 잊은 채 울먹이며 모자를 고칩니다.
쿠네쿠네 씨와 부티크시마 씨는 조용히 후와후와 씨 곁을 지키죠.
마침내 모자를 다 고쳤고 이번엔 우와! 딱 맞네요.
후와후와 씨는 이제야 한시름 놓았답니다.

 

 

 

 

『오늘은 파티의 날』
쿠네쿠네 씨는 빵 가게 주인입니다.
어느 날, 부티크시마 씨가 자기 가게를 연 지 7주년이라며 파티에 초대해요.
쿠네쿠네 씨는 기쁜 마음으로 초대를 받아들이며
빵을 구워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드디어 파티날 아침, 쿠네쿠네 씨는 빵을 구워 예쁘게 포장하고
좋아하는 초록색 스카프를 하고 집을 나서요.
그런데 가는 길이 순탄치가 않습니다.
카레 가게에서 허리를 다친 칸 씨를 돕고 공원에서 쓰러질뻔한 동상을 잡아주고
늦을까 봐 얼른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죠.
마중 나온 후와후와 씨와 함께 무사히 도착한 부티크시마 씨의 가게.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전체적인 감상
 동화책이 이렇게나 따스하고 감동적이라니! 쿠네쿠네 씨와 이웃 사이에는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흐릅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죠. 뒤에서 속닥속닥 험담하며 괴롭히는 사람도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없이 쿠네쿠네 씨 마을은 늘 행복합니다. 누군가 울면 옆에서 조용히 토닥여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외면하지 않고, 기쁜 일은 다 같이 축하하는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짓게 되는 이야기. 잔잔하지만 깊고 진한 감동으로,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의 착한 마음을 톡톡 건드려 깨워서 자꾸 착해지고 싶게 만들어요. 이런 예쁜 동화책을 우리 아이가 읽으면 저와 같은 마음이겠죠? 쿠네쿠네 씨와 친구들 시리즈는 낱권으로 사도 괜찮지만, 꼭 3권 세트로 사시길 추천합니다!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등장인물이 연결되어 함께 보면 더 재밌어요. 창밖에 타닥타닥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촉촉하게 마음을 적셔준 따스한 동화책. 쿠네쿠네 씨와 친구들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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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탐라 공주 푸른숲 역사 동화 12
김기정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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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맨발의 탐라 공주
글쓴이: 김기정
그린이: 백대승
펴낸 곳: 푸른숲주니어

 

 

 양 갈래로 질끈 동여맨 머리, 옷이라고 하기 힘든 거적때기, 흔한 짚신조차 신지 않은 맨발. 산에 사는 꼬마 산적인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 아이는 탐라국의 공주 귀또다. 제주의 옛 역사인 탐라국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자세히 고증할 순 없지만, 일부 확인된 이야기를 토대로 허구를 더해 쓴 책이 바로 이 『맨발의 탐라 공주』다. 그 시절 제주살이가 어땠는지 혹은 그냥 흔한 공주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동화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발의 탐라 공주』는 탐라국의 입장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특별하기에 초등학생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그럼, 귀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우뚝 서는지 살펴보자.

 

  

 

 

 본섬인 탐라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해적 요새가 있다. 바로 이 섬에 귀또라는 아이가 사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새 식구들은 귀또를 공주라고 부른다. 해적들은 탐라국에 있는 고방개를 욕하며 그쪽 병사에게 돌은 던지곤 하는데, 귀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같이 욕하고 따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들이 바다에서 사내아이를 건져 올리고 귀또는 처음으로 또래를 만나게 된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우사기. 귀또와 우사기는 금세 친해진다. 폭풍이 한차례 몰아친 후, 테우(작은 뗏목)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귀또는 본섬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탐라국의 공주임을 알게 되는데... 왕이 없는 상태로 신라의 간섭을 받는 탐라국. 어째 돌아가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신라와 함께 한반도에서 활개 치는 당나라 군인이 어떤 사내아이를 찾겠다고 이 잡듯 쑤시고 다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우사기. 우사기는 바로 신라와 당나라가 멸망시킨 고구려의 왕자였다. 과연 귀또와 우사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면초가인 탐라국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역사는 언제나 승리한 자의 이야기만을 기억하고 기록하여 후대에 알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양쪽 이야기는 다 들어봐야 하는 법! 모든 정황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역사를 알 수 있을 거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음을, 누군가는 웃었다면 누군가는 울었고, 전쟁의 피바람 속에서 가족을 잃은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 일임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준다. 늘 1등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2등 혹은 3등으로 밀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처럼, 그 오랜 옛날에는 전쟁에서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국가가 있었다. 『맨발의 탐라 공주』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탐라국과 나라를 잃고 피눈물을 삼킨 고구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젠 이긴 자의 역사가 아닌 억울하게 졌지만 죽도록 나라를 지키고 싶었던 2등, 3등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꼭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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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 재즈라이프 전진용의 맛있는 재즈 이야기
전진용 지음 / 다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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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 재즈
지은이: 전진용
펴낸 곳: 다연

 

 Jazz! 재즈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를까? 구성진 가락에 감성을 쏟아내는 풍만한 흑인 디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악기를 경쾌하게 연주하는 남성과 '재즈 클럽'이라고 반짝이는 네온사인. 수없이 많은 장면이 떠오르지만 일단 재즈의 원조인 흑인 가수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다음은 빗소리. 비가 오는 날이면 여느 때처럼 커피를 진하게 내려 유튜브에서 골라보는 음악. 빗소리, 그윽한 커피 향에 재즈 선율까지 이 완벽한 3박자가 갖춰지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롯이 혼자인 양 흠뻑 취할 수 있다. 난 이 순간을 감히 '행복'이라 하겠다. 그런데 듣고 즐길 줄만 알았지 재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현듯 솟아오르는 아쉬움. 재즈란 무엇일까? 알고 싶었다. 그 간절한 갈증으로 소중한 인연을 맺은 책이 바로 다연 출판사의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 재즈』다.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 재즈』가 나에게 반갑게 건넨 인사. '어서 와, 재즈는 처음이지?'. 그렇다. 이 책은 책 한 권으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재즈의 역사나 화려한 지식을 자랑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재즈를 잘 모르지만,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초보자를 위해 만들어진 책. 저자는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거리감을 좁히고자 한식과 재즈를 접목하여 설명해준다. 그 한상차림이 상당히 명쾌하고 재밌어서 공유하고 싶다.


 

 재즈 한상차림
밥: 드럼 연주      리듬
국: 베이스 연주  베이스 라인과 그 리듬
김치: 주 테마 멜로디 연주
반찬A: 각 악기의 솔로  돌아가며 맛 자랑. 연주자들이 개성과 실력을 선보이는 즉흥연주
반찬B: 각 악기의 콤핑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솔로 연주를 하고 다른 연주자가 보조 연주로 서포트

 

 

 어떤가? 밥상으로 놓고 보니 급 친숙해진 재즈! 잘 모른다고 겁먹지 말고 일단 재밌게 즐기라는 저자의 응원에 자신감이 살짝 샘솟았다. 그래, 중요한 건 즐기는 거야! 재즈라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간단한 전달사항을 들은 후, 우리의 재즈기는 드디어 이륙한다. 이제 모두가 기다리는 기내식 시간. 뚝배기 요리가 생각나는 구수한 뉴올리언스재즈, 달콤한 스윙재즈, 매운 비밥, 시원한 쿨재즈, 매콤한 하드밥, 프리재즈와 보사노바, 비비거나 녹이는 퓨전재즈와 컨템퍼러리재즈까지 기내식 메뉴는 상당히 다채롭다. 먹고 싶은 요리를 골라 먹어도 되지만, 하나씩 음미하며 코스로 즐기기를 추천한다! 맛있는 기내식과 함께 만나는 27인의 재즈 레전드 이야기는 일요일 아침 장수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 처럼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세상에, 무슨 재즈 가수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담? 가장 기억에 남고 짠했던 한 사람을 고르라면 빌리 홀리데이를 꼽겠다. 가난과 성폭행으로 얼룩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가수로서 성공했지만 잘못된 사랑을 하고 마약에 손을 대며 인생을 망친 디바. 사생아, 흑인, 여자라는 3종 차별 속에서 온갖 고통을 감내한 빌리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많은 이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고 한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재즈 산증인들이 전해주는 이 음악에는 매서운 한, 사랑, 고통, 환희, 외로움, 처절함, 우울, 쾌락 등등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풍성한 사진 자료와 저자가 추천하는 재즈 거장의 명연주곡 그리고 마인드맵 요약정리까지 이 책은 부족함이 없다. 재즈가 이렇게 쉽고 재밌는 거였나?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 재즈 덕분에 이제는 재즈와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을 듯! 재즈기의 멋진 비행이 끝나고 나면 무사히 착륙한 독자를 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재즈 용어 정리와 시대별 재즈 관련 영화 리스트, 뮤지션 계보 도식화 등등, 이 친절한 책은 혹시라도 독자가 뒤처질세라 누구도 낙오되지 않게끔 끝까지 꼼꼼하게 챙겨준다. 어디 가서 재즈 좀 안다고 자랑하고 싶다면, 재즈를 알고 듣고 싶다면, 이미 좀 알고 있더라도 더 알고 싶다면, 그냥 재밌을 것 같아 읽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어서 이 매력적인 『온몸으로 느끼는 오감 재즈를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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