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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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 진실의 흑역사

지은이: 톰 필립스

옮긴이: 홍한결

펴낸 곳: 윌북




새빨간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거짓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는 태어나서 거짓말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이 말이 아닐지!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White lie'라고 불리는 소의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도 있다지만, 그래도 거짓은 거짓인 법. 대체 이 거짓말의 기원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던 한 남자가 상당히 흥미로운 조사를 펼치며 책을 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인류학과 사학, 과학철학을 전공했다는 톰 필립스. 현재는 영국 비영리 팩트체킹 기관 '풀팩트'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덕업일치! 근데 이를 어쩌나. 모두 예상했듯이 인류란 날 때부터 툭하면 거짓말을 하고, 속고, 혹 거짓임을 눈치채도 귀찮아서 묵인해왔다. 과연 거짓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톰은 인간이 망쳐온 진실의 흑역사를 집요하고 파고든다. 그가 늘어놓는 언론의 황당한 만행과 이건 '멍멍 개소리'구나 싶은 웃픈 과거의 사건들이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이 책, 신박하다!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위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돈과 명예, 그것도 아니라면 천성이 사기꾼인 거라는데... 누군가의 농간에 다 같이 속아 넘어간 경험이 있는 나는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자마자 가슴이 욱신거리며 그 아줌마를 떠올렸다. 희대의 사기꾼인 그녀. 하여튼 뭐 살면서 안 속아본 사람이 있겠는가. 거짓말의 기원을 찾아 떠난 역사 탐험 중, 신문이라는 대중매체가 생겨난 초창기의 엉망진창 보도는 실소를 터트릴 만큼 황당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날조, 17세기에 신문과 커피하우스가 왕권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며 견제 대상이었다는 사실. 1830년대 뉴욕에서 《선》지가 유포한 달나라의 신비는 정말 압권이다. 양서류가 공처럼 굴러다니고 염소처럼 생긴 파란색 유니콘이 있으며 구릿빛 털을 가진 박쥐 인간이 은밀한 유희, 즉 섹스를 즐기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나? 놀랍게도 당시 사람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진짜라고 믿었고, 소위 '자발적 기만'으로 그 거짓을 진실로 확고히 하는데 앞장선 멀끔한 신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고, 지금이라면 진짜 수갑 철컹철컹할 사기꾼들!









게이츠와 잡스가 오늘날 전 세계의 경영대학원 수업 자료에 꼭 등장하는 이유는 '우긴' 다음에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직감적으로 결단을 내렸는데, 실제로 해낸 것! 작가는 이 사례를 통해 '모든 건 결과론적이다'라는 요지를 전한다. 역사에서 '우긴 사람'으로 남을지, '되게 한 사람'으로 남을지는 해보고 나서 나중에야 알 수 있다니... 정말 맞는 말이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이야기에 속았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했던 지난 거짓말의 역사를 살펴보며, 문득 지금 세상도 그다지 별다르지 않다는 씁쓸한 진실에 도달했던 시간. 황당한 망상이나 남을 해하려는 의도의 거짓말은 죽어도 하지 않겠지만, 원대한 꿈을 품고 '우긴 사람'이 아니라 '되게 한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마음에 새겨본다. 같은 문화권의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책인 듯. 한국판 진실의 흑역사가 나오면 우리에겐 안성맞춤이리라! 하여튼 우리 모두 거짓말하지 말고 착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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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일상에 도착했다 - 일상의 든든한 힘이 되는 여행의 순간들
김송은 지음 / 컴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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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침내 일상에 도착했다

지은이: 김송은

펴낸 곳: 컴인 / 한스미디어




하루하루 반복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학교 - 집, 혹은 회사 - 집, 혹은 엄마를 슈퍼우먼으로 만드는 독박 육아.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내일 떠오를 태양에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다면 그땐 어디로든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 놓고 떠날 수 없는 우리의 현실! 그렇다면 모래밭 같은 헛헛한 마음을 여행 에세이로 촉촉하게 채워보는 건 어떨까? 한스미디어 출판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컴인'에서 출간한 신작 『마침내 일상에 도착했다』. 중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김송은 작가가 2013년에서 2019년까지 드나들었던 여덟 곳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평범했던 일상의 한 자락을 조금은 특별하게 채워보았다. 일상에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여행의 순간들. 몰래 훔쳐보며 공유한 그녀의 소중한 추억은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때론 뭉클하다.





낯선 지명과 풍경, 내게는 언어마저 낯선 그곳에서 그녀는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 싶어 고생하며 간 머나먼 산에서 뜻밖에 별다른 것 없는 일상을 마주하기도 하고 수허구전이란 곳에서는 기념품 하나 사지 않고 버티다가 후회하기도 한다. 그 대목에서 홍콩 여행 때, TWG 홍차 티룸에서 차 한 잔을 즐기지 못하고 잎차만 사서 돌아왔던 내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인생에서 '다음'이란 카드는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는다. 무조건 그 순간을 즐기자! 사랑했던 이와 헤어진 후, 괜찮은 줄 알았지만 티베트 메이리쉐산에서 눈물이 펑펑 터져버렸다는 추억 한 조각에 내 마음도 욱신. 그렇게 하염없이 울고난 그녀는 조금 후련해졌을까? 광저우에 있는 '재앙을 막아주는 나무' 시예롱, 그녀가 멋진 차를 대접받은 샤먼, 1g에 130만 원 정도 한다는 다홍파오, 인심이 후하여 무지막지하게 푸짐한 양의 음식을 준다는 시안 등등,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은 부러운 추억이 한가득하다. 특히 '차'에 관심이 많은 내게 중국차에 관한 이야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단 이것저것 마셔보며 자기한테 맞는 차를 찾고, 그 차가 어떤 환경에서 나고,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어떤 차가 귀한 건지 알아가는 것으로 접근하라는 차 전문가의 조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떠날 생각에 자꾸만 속이 상했다.

언제 떠나면 좋을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충분하다'는 건 모든 것을 다 해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단어라는 걸 그때 알았다." - p157





그녀가 떠났던 이야기이자, 그녀를 돌아오게 한 이야기. 꿈이 있는 인간은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앞으로 다가올 나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오늘은 지난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있기에 유지되고 버틸 수 있음을 기억하자.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밤하늘에 총총하게 박힌 별, 숨을 헐떡이며 오른 산, 끝도 없이 헤매다 도착한 낯선 곳, 언제든 생각날 것 같은 맛있는 음식, 마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그 그윽한 향기가 몸에서 배어났던 차 한 잔, 낯선 이방인에게 선뜻 베푼 그곳 사람들의 따스한 친절... 이 모든 소박한 행복이 모여 완성한 몰랑몰랑한 추억 솜사탕은 언제는 달콤하게 일상에 녹아들어 행복을 채우고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할 원동력이 되어 준다. 그녀의 추억을 빌려 채운 나의 소박한 일상을 이젠 나의 추억으로 다시 한번 채워 넣고 싶다. 이왕이면 그녀와 같은 곳에서, 책에서 만난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사랑하는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행복한 상상을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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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처럼 쓴다 - SF·판타지·공포·서스펜스
낸시 크레스 지음, 로리 램슨 엮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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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넷플릭스처럼 쓴다

지은이: 낸시 크레스 외

엮은이: 로리 램슨

옮긴이: 지여울

펴낸 곳: 다른 출판사





'왕좌의 게임', '기묘한 이야기', '해리포터 시리즈' 등등, 시청자 혹은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작품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질까?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품은 사람은 많지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소위 '띵작'의 기회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가만히 살펴보면 글도 연출도 잘하는 사람만 계속 승승장구하는 듯한 구조. 이것은 재능에서의 빈익빈 부익부인가? 아니면 노하우의 차이인가? 글이 잘 안 풀릴 때면 멍하니 하늘을 보며 이렇게 외치곤 했다. '제발 누가 어떻게 하면 꾸준히 재밌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뭐든 진정 원하면 이뤄진다고 하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동아줄처럼 내 품에 안긴 이 책에서 간절히 바라던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은 듯하다. 다른 출판사의 신간 『넷플릭스처럼 쓴다』. 제목에서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가? '쓴다'라는 말도 설레지만, 무려 '넷플릭스처럼'이란다. 번역가는 죽어나지만, 시청자는 즐거운 그 넷플릭스 속 여러 작품처럼 재밌는 작품을 완성하는 방법. 잘나가는 작가 한 사람의 노하우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작가가 자신의 비법을 전수한다. 이 족집게 과외 선생님들의 이름은 부록으로 따로 정리되어 있을 정도이니 꼭 확인해보시길!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마블에서 제작한 영화에 빠졌을 때였다. 영웅 시리즈를 사랑하는 신랑은 이쪽 세계관이 이러쿵저러쿵 신나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때서야 모든 대작에는 하나의 완전한, 혹은 완전하게 채워갈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의 첫 시작은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법이다. 자신 없는 내용은 쓰지 말고, 배경지식을 위한 자료 조사를 게을리하지 말 것. 너무 자세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삼천포로 빠뜨리지 말고 시작부터 긴장감을 조성하여 분위기를 휘어잡아야 한다고 한다. 세계관 구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면 이번엔 독창적인 착상 차례다. 어떻게 독창적인 착상을 얻을 것인가! 일상, 낱말, 꿈 등등 생활 곳곳의 모든 경우의 수를 활용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인물! 혹 작품이 조금 늘어지더라고, 선하든 악하든 매력적인 인물이 있다면 죽어가던 이야기도 소생할 수 있다. 인물 사이의 내밀한 관계는 물론 주인공이 지닌 타당한 과거의 사연 등을 적극 활용하여 우리의 마음을 끄는 인물을 직접 만들어보자. 분위기 조성도 필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법과 적절한 묘사로 생동감을 살리고 전형적인 결말을 피하는 법 등등, 글쓰기에 꼭 필요한 비법들이 가득하다. 이렇게까지 탈탈 털어서 다 알려줘도 되는 건가? 하긴, 알려줘도 못 따라 하는 사람이 태반이니... 쩝! (반성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소설 속 세계로 감각적 체험을 확장하라.

인물은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소설 속 세계를 걷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는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거나 동경할 정도로 멋있는 인물에게 끌리는 듯하다. 아무리 초현실적 세계에서 등장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 인물에게 인간미가 없다면 매력을 끌어낼 수 없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둘러보며 주변 인물들의 매력과 재밌는 주제 등을 글감으로 삼아 조금씩 글을 써보자. 작품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완성해낼지에 관한 노하우도 재밌었지만, 사실 내 눈을 가장 반짝이게 한 건 '글이 막힐 때' 가동하는 작가들의 대처법이었다. 작업 환경, 글쓰기 도구, 일과 변화, 환경 조성 혹은 휴식 등 생활에 변화를 주고 좋아하는 음악을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랜덤 재생하여 그 노래 제목을 소제목으로 정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고. 무엇보다 매일매일 창작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며 글을 써야 한다는 당부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매일의 목표치를 정하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할당량을 채울 것! 꾸준함이 가장 무서운 무기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를 게을리하던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 중에 Top 5 안에 넣고 싶을 정도로 명쾌하고 실용적이었던 『넷플릭스처럼 쓴다』. 곁에 두고 자주 펴보며 좋은 기운을 듬뿍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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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셀 - 죽음을 이기는 첫 이름
아즈라 라자 지음, 진영인 옮김, 남궁인 감수 / 윌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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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퍼스트 셀

글쓴이: 아즈라 라자

옮긴이: 진영인

감수: 남궁인

펴낸 곳: 윌북



참 안타까운 소식이 많은 요즘이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끄는데 공헌한 큰 별이 지고,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여성 희극인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삶이란 대체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아직 젊지만, 마냥 젊다고만은 할 수 없는 과도기적 나이에 돌입한 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예전처럼 자신 있게 내뱉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하나둘 먼저 하늘에 터를 잡으러 떠나고,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내던지는 듯한 남겨진 자의 고통에 몸부림쳤던 나날.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은 언제나 참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번에 만난 책 『퍼스트 셀』의 저자 역시 이런 이별의 고통을 겪었다. 암이라는 질병에 평생을 바친 종양 전문의 아즈라 라자, 그녀는 암이라는 적에게 더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신약 혹은 새로운 치료법 개발? 아니, 그녀는 암이라는 병을 처음 키워내는 '퍼스트 셀'을 소멸시킬 방법에 집중한다.





오마르, 퍼, 레이디 N, 키티 C, JC, 앤드루, 하비. 저자인 아즈라 라자가 가슴 깊은 곳에 묻고 떠나보낸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본다. 특히 하버는 2002년 5월에 떠나보낸 그녀의 남편이기에 이름만 봐도 괜스레 나까지 코끝이 찡해지는데... 그녀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 환자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아 각자의 사연과 암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로 온갖 치료와 신약에 희망을 걸지만, 참 지독하고 무서운 병이라 인간의 몸을 갉아 먹고 끝내 생명을 앗아가는 암. 그런 암의 성질을 띠게 된 세포를 개시 단계에서 찾아내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35년간 연구를 이어온 그녀의 의지가 문장 곳곳에 서려 있다. 약 45번의 분열을 거쳐 '노화' 혹은 '자살'이라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는 인간의 세포. 암 환자에게 유일한 전쟁은 자신의 신체 기관과 치르는 것이며 본인이 전쟁터가 되는 것이기에 그들의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 책에서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고통스럽게 생명을 2개월 연장하는 신약 개발이 아니라, 암의 기원을 찾는 데 더 많은 연구비를 쓰자고!










에세이와 의학 전문 지식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이 책은 좀 어려운 편이다. 의학 전공이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저자의 배려가 돋보이지만, 암 연구와 치료라는 세계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저자가 온 마음을 다해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미래를 간절히 바라며 믿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고 싶었던 이들을 추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에서 첫 번째 암 세포인 퍼스트 셀을 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신이 맡은 이들에게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퍼스트 셀'을 찾아 인간이 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 연구의 중심에 선 아즈라 라자 박사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며, 더는 암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게 될 그 벅찬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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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우노메 인형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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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즈우노메 인형

지은이: 사와무라 이치

옮긴이: 이선희

펴낸 곳: 아르테



넷플릭스라는 신세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까마득한 나의 학창 시절. (그렇다고 엄청나게 늙지는 않았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그 시절엔 비가 오는 날이면 하굣길에 무서운 공포 영화를 빌려오곤 했다. 그렇다, 이제는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 준비물은 간단하다. 바스락거리는 얇은 이불과 따뜻한 코코아.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벗 삼아 어스름한 거실에서 홀로 공포 영화를 튼다. 무서운 장면이 등장하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이제는 귀신이 갔겠지'라고 생각하며 손가락 사이로 빼꼼 눈을 떴다가 또 비명! 어려서였을까? 그 시절엔 정말 겁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란 걸 실감했고, 덩달아 줄어든 담력에 더는 공포 영화를 볼 수 없게 돼버린 슬픈 현실 (마지막에 본 공포 영화가 무려 3년이나 꿈에 나왔었다는...) 공포 영화를 멀리한 덕분에 무서운 상상은 일부러 해도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뇌가 깨끗해진(?) 상태였건만, 또 3년짜리 무서운 공포를 맛보고 말았다. 여름도 다 지난 가을에 이게 웬 날벼락인가. 독서의 계절인 가을, 잊지 못할 공포를 선사한 『즈우노메 인형』. 서서히 조여오는 그 두려운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기이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사 편집부 직원인 후지마. 유미즈라는 작가가 마감을 앞두고 갑자기 잠적하자 후지마는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 이와다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다.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유미즈의 집. 비상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유미즈의 시신. 부릅뜬 눈은 새까맣게 보였다. 유미즈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지마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시신에 눈알이 사라졌다는 걸... 그로부터 며칠 후, 이와다는 그 집에서 몰래 챙긴 육필 원고의 스캔본을 후지마에게 건낸다. 석연치 않은 유미즈의 죽음이 이 원고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에 원고를 읽기 시작한 후지마. 왕따를 당하는 여중생 리호가 쓴 평범한 이야기인 듯한 원고에는 '즈우노메 인형'에 관한 도시 전설이 담겨 있다. 원고를 먼저 읽은 이와다는 무엇 때문인지 공포에 휩싸여 후지마에게 원고를 끝까지 읽으라고 독촉하다가 기이한 죽음을 맞이하고 이제 다음 타깃은 후지마! 붉은 실로 얼굴을 칭칭 감은 검은색 예복 차림의 단발머리 인형이 조금씩 다가오는데... 일단 저주에 걸리면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영능력자인 마코토의 도움으로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였음을 확인한 후지마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저주를 풀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과연 이들은 저주의 근원을 찾아 처리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줄거리를 떠올리며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등골이 서늘하다. 빗소리와 함께 퍼지는 음산한 분위기. 뭔가 탄듯한 불쾌한 냄새. 서서히 조여드는 죽음의 그림자.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액자식 구성이라 몰입감이 상당하다. 후지마의 이야기와 원고 속 이야기를 오가다 보면, 이 모든 게 허구임에도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어낸 이야기라 믿었던 저주받은 원고가 마침내 후지마의 시점에서 현실과 연결될 때 터져 나오는 탄식.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하나씩 열심히 맞춰가지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미칠듯한 공포와 긴장감이 모든 걸 압도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즈우노메 인형이 어디선가 날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바들바들 떨며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봤는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더럽게 무서운 책이었다. 밤에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뿐만 아니라, 환한 대낮에도 자꾸 떠올라 손끝까지 오톨도톨 소름이 돋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에 쥐약인 내게는 정말 핵폭탄급이었다고나 할까... 이 책 때문에 또 몇 년을 고생할는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이 소설이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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