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우노메 인형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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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즈우노메 인형

지은이: 사와무라 이치

옮긴이: 이선희

펴낸 곳: 아르테



넷플릭스라는 신세계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까마득한 나의 학창 시절. (그렇다고 엄청나게 늙지는 않았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그 시절엔 비가 오는 날이면 하굣길에 무서운 공포 영화를 빌려오곤 했다. 그렇다, 이제는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 준비물은 간단하다. 바스락거리는 얇은 이불과 따뜻한 코코아.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벗 삼아 어스름한 거실에서 홀로 공포 영화를 튼다. 무서운 장면이 등장하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이제는 귀신이 갔겠지'라고 생각하며 손가락 사이로 빼꼼 눈을 떴다가 또 비명! 어려서였을까? 그 시절엔 정말 겁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란 걸 실감했고, 덩달아 줄어든 담력에 더는 공포 영화를 볼 수 없게 돼버린 슬픈 현실 (마지막에 본 공포 영화가 무려 3년이나 꿈에 나왔었다는...) 공포 영화를 멀리한 덕분에 무서운 상상은 일부러 해도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뇌가 깨끗해진(?) 상태였건만, 또 3년짜리 무서운 공포를 맛보고 말았다. 여름도 다 지난 가을에 이게 웬 날벼락인가. 독서의 계절인 가을, 잊지 못할 공포를 선사한 『즈우노메 인형』. 서서히 조여오는 그 두려운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기이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사 편집부 직원인 후지마. 유미즈라는 작가가 마감을 앞두고 갑자기 잠적하자 후지마는 동갑내기 아르바이트생 이와다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다.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유미즈의 집. 비상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유미즈의 시신. 부릅뜬 눈은 새까맣게 보였다. 유미즈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지마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시신에 눈알이 사라졌다는 걸... 그로부터 며칠 후, 이와다는 그 집에서 몰래 챙긴 육필 원고의 스캔본을 후지마에게 건낸다. 석연치 않은 유미즈의 죽음이 이 원고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에 원고를 읽기 시작한 후지마. 왕따를 당하는 여중생 리호가 쓴 평범한 이야기인 듯한 원고에는 '즈우노메 인형'에 관한 도시 전설이 담겨 있다. 원고를 먼저 읽은 이와다는 무엇 때문인지 공포에 휩싸여 후지마에게 원고를 끝까지 읽으라고 독촉하다가 기이한 죽음을 맞이하고 이제 다음 타깃은 후지마! 붉은 실로 얼굴을 칭칭 감은 검은색 예복 차림의 단발머리 인형이 조금씩 다가오는데... 일단 저주에 걸리면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영능력자인 마코토의 도움으로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였음을 확인한 후지마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저주를 풀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과연 이들은 저주의 근원을 찾아 처리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줄거리를 떠올리며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등골이 서늘하다. 빗소리와 함께 퍼지는 음산한 분위기. 뭔가 탄듯한 불쾌한 냄새. 서서히 조여드는 죽음의 그림자.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액자식 구성이라 몰입감이 상당하다. 후지마의 이야기와 원고 속 이야기를 오가다 보면, 이 모든 게 허구임에도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어낸 이야기라 믿었던 저주받은 원고가 마침내 후지마의 시점에서 현실과 연결될 때 터져 나오는 탄식.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하나씩 열심히 맞춰가지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미칠듯한 공포와 긴장감이 모든 걸 압도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즈우노메 인형이 어디선가 날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바들바들 떨며 몇 번이나 주변을 둘러봤는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더럽게 무서운 책이었다. 밤에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뿐만 아니라, 환한 대낮에도 자꾸 떠올라 손끝까지 오톨도톨 소름이 돋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에 쥐약인 내게는 정말 핵폭탄급이었다고나 할까... 이 책 때문에 또 몇 년을 고생할는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이 소설이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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