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양이 - 사계절 게으르게 행복하게
미스캣 지음, 허유영 옮김 / 학고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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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낙원

 

 

귀신 나오는 집이라 부르는 버려진 집.

우리에게는 환상의 낙원이자

아늑한 보금자리.

 

 

깨진 창문은 돌격놀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놀이터.

무너진 지붕 귀퉁이는

따사로운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눈부신 천창.

 

 

딩딩통통 딩딩통통

봄비가 내리는 날에는

놀러 나갈 수 없지만,

 

 

이 작은 보금자리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길 수도 있고

차를 홀짝이며 노닥거릴 수도 있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를

관찰할 수고 있으니까 괜찮아.

 

 

아무도 우릴 방해하지 않아.

이곳은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귀신 나오는 집이니까.

 

-12~13페이지

묘욕탕猫浴湯

 

 

우리는 타고난 목욕 전문가.

핑크색 작은 혀를 날름거리면

금세 온몸이 말끔해지지.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묘욕탕에 가서

겨우내 눌리고 엉켜버린 털을

잘 빗어 감아야 돼.

 

 

 

그거 알아? 묘욕탕은 봄에만 영업을 해.

성묘산 聖猫山에서 그해 초봄.

처음 녹아 흘러내린 물을 직접 길어 온대.

 

 

이 물로 목욕하면

신기하게도 고양이 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러.

털이 물을 먹어 축 늘어지지 않고

더 가볍고 보송보송하게 볼륨감이 살아나지.

 

 

묘욕탕에 다녀온 고양이들은 달라 보여.

털이 찰랑거릴 때마다 향기가 폴폴 풍기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화사하게 빛이 나.

그래서 묘욕탕은 언제나

일 년 전부터 예약이 꽉 차 있어.

 

-14~15페이지

삶의 나무

 

 

 

모든 고양이의 인생, 아니 묘생猫生 속에는

아름드리나무가 한 그릇씩 서 있어.

할아버지 고양이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그 나무로부터 시작돼.

 

 

할아버지 고양이가 젊었을 적

나무는 할아버지의 모든 청춘과 열정을

너그러이 보듬어주었어.

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나무에서 짓궂은 장난을 쳤으며

나무 위에서 새 친구를 사귀고

나무 위에서 불타는 연애를 했지.

 

 

더는 나무를 기어오르지 않는

늙은 고양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무 그늘 밑은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장소야.

 

-20~21페이지

코골이 대합창

 

 

벚꽃이 고양이와 무슨 상관있을까.

아기 고양이들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아도

그저 심드렁.

하지만 벚꽃이 피었다는 건

햇볕이 따뜻해졌다는 뜻.

햇볕이 따뜻해지면

아기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봄날을 즐기러 나온 고양이들이

벌써 나무 밑에 북적북적.

저마다 낭만과 풍류시인이 되어

실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까딱까딱.

 

 

그런데 시인들이 시를 지을 생각을 안 하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

시를 짓는 데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벚나무 위에도 벚나무 밑에도

제각각 자리를 잡고

쿨쿨 드르렁드르렁 쿨쿨 드르렁드르렁

고양이들의 코골이 대합창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봄의 노래.

 

-24~25페이지

생선 메밀국수

 

 

엄마 고양이가 국수를 만들기로 한 날이면

큰 고양이 작은 고양이 할 것 없이

밖에 놀러 나가지 않고 집에서 얌전히 기다려야 해.

이견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생선 메밀국수니까.

 

 

어린 고양이들에게 메밀국수는 아주 매력적이야.

먹을 때는 음식이지만

먹다 흘리면 장난감이 되거든.

 

 

생선 메밀국수는 냄새도 기가 막혀서

오늘 어느 집에서 국수를 먹는지

온 동네 이웃들이 다 알게 돼.

냄새를 맡고 찾아온 이웃의 꼬마 고양이들이

몰래 문에 구멍을 뚫고 훔쳐봐.

 

 

허겁지겁 먹다가 면발을 흘리지는 않는지

혹시 홀린 면발을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는지

또릿또릿 눈을 잠시도 떼지 않고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창밖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32~33페이지

샤베트 가게

 

 

고양이 예절학교에서는

고양이는 개처럼 혀를 바깥으로 내놓고 있으면

안 된다고 엄격하게 가르쳐.

 

 

하지만 여름은

고양이들이 제일 견디기 힘든 계절.

특히 털을 깎고 나면

모두들 혀를 시원하게

식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

 

 

샤베트 가게에서 파는

각양각색의 샤베트.

그중 인기가 No.1은 바다 맛이 나는 블루 샤베트.

블루 샤베트는 언제나

아침 일찍 다 팔려서 사기 힘들어.

녹차 샤베트도 인기가 많아.

 

 

바퀴벌레 맛이나 도마뱀붙이 맛이 나는

괴상한 샤베트도

특이한 맛을 찾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있어.

 

 

콜라겐이 풍부하다는 도마뱀붙이 맛 샤베트는

피부에 관심이 많은 아가씨 고양이들에게

인기 최고.

 

-36~37페이지

야옹 찻집

 

 

 

봄에 벚꽃이 있다면 여름에는 연꽃.

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보다 중요한 건

맛 좋은 차가 있는 찻집과 흥미진진한 수다.

 

 

연꽃 세트 1번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조각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어.

아무개 고양이가 배 위에서 읊조리기를

"연잎이 밭을 이루고 물고기들이

그 사이에서 노니는구나.

발톱이 근질근질해도

불쑥 앞발을 휘두르진 마시게.

배가 휘청 뒤집힌다네."

여름의 양옹 찻집엔 늘 빈자리가 없어.

24시간 영업을 하는데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예약이 꽉 차 있어.

 

 

제일 인기 많은 시간은 늦은 밤.

달빛 비친 연꽃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양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반딧불도 찾아오기 때문이야.

'반딧불 잡지 마세요'라는

주인장의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반딧불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고양이들이 꼭 있더라고.

 

-38~39페이지

어두컴컴한 도서관

 

 

 

고양이 도서관에 가본 적 있나?

희미한 등불 몇 개 외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서가뿐.

하루 종일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

 

 

고양이는 책을 읽을 때 불을 켜지 않아도 돼.

캄캄할수록

눈동자가 둥글고 환해지기 때문이야.

 

 

여름엔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찾아오는 고양이들이 많지.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미로처럼 어두운 공간은

숨바꼭질하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아.

 

 

미녀를 찾으러 온 수고양이도 있어.

몇 시간 동안이나 책을 펼쳐놓고 있지만

책장은 한 장도 넘어가지 않고

응큼한 눈빛만 이리저리.

 

 

도서관 사서는 하루에 딱 한 번만 돌아다녀.

나머지 시간은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쿨쿨 자야 하니까.

 

-40~41페이지

나무 위 오두막

 

 

온종일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들도 있어.

먹을 때도 잘 때도, 놀 때도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아.

근심 걱정 하나 없이 나무 위에서 빈둥빈둥.

 

 

그러자 눈치 빠른 고양이 건축가가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지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다는 광고.

그중에서도 고양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구는

'지상 5미터에 위치해 개들이 제아무리 까치발을

세우고 앞발을 휘둘러도 닿을 수 없다'는 것.

 

 

오두막의 구조도 여러 가지야.

큐피드 아파트는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아서

싱글족 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한 부모 가족을 위한 맞춤형 주택은 보안이 철저해서

치근덕거리는 수고양이들에게 방해받지 않는대.

 

 

오두막에 쓰일 나무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택돼.

나무껍질이 잘 흠집이 나지 않아야 하고(통행의 용이성)

잎사귀가 좋아야 하지(어시장 근접성)

오두막은 석 달에 한 번씩 새로 분양하는데

그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장난 아니야.

 

-46~47페이지

숲 속에서 술래잡기

 

 

 

낙엽이 고양이 키보다 더 두껍게 쌓이면

술래잡기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

우리는 타고난 장난꾸러기지만

아무도 술래가 되길 바라지 않아.

폭신한 낙엽 속에 숨는 게 훨씬 재미있으니까.

 

 

술래가 열을 세고 나머지 고양이들이 다 숨고 나면

숲에는 낙엽 팔락거리는 소리만.

이따금 밤송이가 떨어져

운 나쁜 고양이의 머리를 콩 맞히기도 하는데

화들짝 놀라 캬아옹! 비명을 지르면

하는 수 없이 술래.

 

 

다른 고양이들 열에 여덟은

낙엽 속에서 잠들어버리고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는

참 따분한 놀이.

내년에 누가 또 술래집기하려고 할까? 싶었는데

"저요!" "저요!"

여기저기서 앞발을 번쩍.

 

-54~55페이지

모래찜질

 

 

아직 온천의 계절이 되지 않았지만

추위를 타는 아기 고양이들은

서둘러 따뜻한 곳을 찾지.

 

 

어둑어둑해지는 늦가을 저녁 무렵

아기 고양이들이 달걀 한 바구니를 들고

줄지어 모래밭으로.

오해하진 마시라.

볼일 보러 가는 건 아니니까.

각질 제거에 탁월한 모래찜질을

체험하러 가는 거야.

 

 

바닷가 작은 어촌에서 직접 실어온 모래를

지열로 뜨끈하게 데우면

바다 냄새 밴 따뜻한 수증기가

온몸의 모공 속으로 스며들어가.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달걀을 모래 속에 파묻어 익히면 맛이 일품.

모래 속에서 구운 달걀은

모래찜질을 즐기러 온 고양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야.

 

-64~6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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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02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냥이들의 낙원이었네요 ~~~ㄷㄷㄷㄷ부러운 곳입니다.~

후애(厚愛) 2016-08-02 17:35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을 보면서 역시 냥이들은 게으르구나..
냥이들은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구나...
냥이들이 참 부럽다... 이런 생각들을 좀 했었어요. ㅎㅎㅎ
맛있는 저녁 드시고 시원한 오후 되세요.^^

카스피 2016-08-0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속의 고양이들은 넘 행복해 보이네요.그나저다 제가 가끔보는 동네 길고양이는 무더위에 축 쳐져서 드러눈워있는것이 넘 안되보이더군요ㅜ.ㅜ

후애(厚愛) 2016-08-04 10:21   좋아요 0 | URL
네 너무 행복해 보여서 부러웠어요. ㅎㅎ
저도 가끔씩 나가다 보면 길고양를 보게 되는데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걸 보면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생겨요..ㅠㅠ
카스피님 시원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