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익조
엄경희 지음 / 이가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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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웠던 세월만큼 내가 줄 것이다.
세상을 다 뒤져 보이지 않게 숨은 기쁨들을 모두 찾아내....
한시도 그 얼굴에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그 몸에 굳게 갇힌 너를 불러내 나를 의지해 편히 쉬게 할 것이다.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너를 내 앞에 모두 보이게 할 것이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할 것이다.
너는 내 하루를 물처럼 돌처럼 흐르게 하는구나.
너를 앞에 둔 그 하루는 폭포처럼 쏟아져 흘렀거늘....
이리 기다리는 시간은 돌이 되어 멈추었구나.


종현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지필묵을 펼쳐놓고 앉았다.
한참을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하던 손끝이 갑자기 먹을 찍어
혼을 빼놓은 사람처럼 새 한 마리를 그려 놓았다.
비익조....


눈도, 다리도, 날개도 모두 하나뿐인 되다 만 새....
하나인 눈으로 세상을 보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하고....
하나인 다리로 걷지 못하니 그리운 곳 있어도 가지 못하고....
하나인 날개로 날지 못하니 새로 났어도 창공을 기억하지 못한다.
남을 쌍을 만나 하나가 되지 못하면 평생을 서러움만 키우다 한이 되리라.-338~339쪽

종현이 자신이 그려 놓은 그것을 한참 동안 넋을 놓은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는 기이한 새 한 마리가 그렇게 날아들어 그 밤 연유 없이 종현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움이라 했느냐?
평생을 아프게 품어도 서럽지 않을 그리움이라 했느냐?
그리움에 목이 타 심장을 녹이면 어찌하겠느냐!
그 심장이 녹아 몸을 죽이면 어찌 하겠느냐!-340쪽

무엇을 보아 이리도 아프겠느냐!
무엇을 품어 이리도 서럽겠느냐!


망부석인 양 그 자리에 굳어 떠날 줄을 모르는 발걸음이 흐르는 시간을 그렇게 붙잡고 있었다. 한스러운 슬픔이 손끝에 모여 싸리문을 움켜진 손에 핏물이 배여도 한 점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온 영혼이 그를 향해 있었다.


또다시 처음처럼 이곳에 섰다.
부르고 싶구나!
그 이름을 불러 나를 보게 하고 싶구나!
내 원망이 깊어 하늘이 너를 오래 주지 않을 모양이다.
많은 날을 함께 하지 못했어도 이미 너는 내 사람이다.
가진 것 없는 가슴 한 쪽 나누었으나 이미 우리는 서로의 세상이다.
그 맑은 심성에 한스러움이 고여 남은 날이 서러우면 어찌 하느냐.
버리고 살아라.
그리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알았던 기억 한 점도 남겨두지 말고 버리고 살아라.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치 마라.
이리 떠나는 나를 용서치 마라.
너를 은혜 한 나를 용서치 마라.-345~346쪽

"이 속에 한 사람이 있사옵니다. 신분은 미천하나 그 재능과 학식이 그리 두기 아까운 사람이옵니다. 그에게 과장에 나설 수 있는 신분을 주시옵소서."
"그것이면 되느냐? 다른 것은 없느냐?"
"없사옵니다."
"너를 이리 보내는 나를 원망치 마라."
"다시 태어나도 마마를 어버이로 모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정녕 그 길을 택하겠느냐?"
"먼저 가 기다릴 사람이 있사옵니다. 오래도록 준비해 한 점 소홀함 없이 맞을 사람이 있사옵니다."


제게는 그 사람이 제 세상이었습니다.
한세상 가지고자 탐내는 그것보다 그 한 사람을 얻는 일이 더 간절했습니다.
허나 그것 또한 부러 되지 않을 욕심이었습니다.
평생을 쏟아낸 원망이 하늘에 닿아 저를 용서치 않으려 합니다.
하늘이 그 세상을 허락지 않아 남은 생을 함께 하지는 못하나...
그 하나만은 제 것으로 가져갈 것입니다.-354쪽

"...어머님과...형님들의 목숨 줄이 내게 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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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5-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너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 지면서 울었다...
눈물은 계속 나오고...
눈물로 이 책을 담았다...
눈물로 이 두사람을 떠나 보냈다...

숲노래 2013-05-2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로 담은 책 언제까지나
좋은 마음으로 아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