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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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이상, 뒤틀린 열정의 초상을 담은 20세기 최고의 고전!

젊은 날의 욕망, 맹목적인 사랑의 현신 개츠비의 ‘위대함’이 살아 숨 쉬다!

 

 

   인간의 삶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쫓는 기나긴 여정이다. 돈과 사랑, 성취와 신념, 자유와 용기 등 저마다의 기준에서 가장 빛나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는 단연, 오늘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목록 중 가장 윗부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가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이름처럼 위대한 작가의 분신으로 남아 오늘날 더욱더 많이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를 수식하는 ‘위대함’이라는 이 엄숙하고 경이로운 단어 앞에는 늘 의문이 붙는다. 왜 ‘위대한’ 개츠비인가.

 

 

 

세속적인 가치 너머로 빛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

 

 

   개츠비는 바다 너머에서 작게 빛나는 녹색 불빛 하나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채권맨으로 동부 뉴욕의 웨스트 에그로 온 닉 캐러웨이는 호화스러운 저택에 사는 이웃 개츠비의 그런 모습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다. 닉이 사촌 데이지와 그녀의 부유한 남편 톰 뷰캐넌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이었다. 그해 여름, 개츠비의 저택에서는 연일 화려한 파티가 열렸고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까닭에 닉은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공식적인 초대장을 보내온 개츠비로부터 초대된 닉은 그와 마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둥, 전쟁 중 독일 스파이였다는 둥, 실체를 알 수 없는 개츠비를 둘러싼 초대객들의 무수한 소문으로 인해 닉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그러던 가운데 닉은 자신과 남녀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골프 선수 베이커를 통해 개츠비는 8년 전에 그의 사촌인 데이지의 연인이었고, 절박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닉은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열렬한 그리움을 알게 되면서 그녀와 재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개츠비가 이뤄온 부와 성공이 오직 그녀를 얻기 위한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다시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마치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의 가치에 대한 옅은 의심이 일어난 것 같았다. 거의 오 년이었다! 심지어 그날 오후 데이지가 그의 꿈의 일부를 혼란스럽게 했다 해도 틀림없이 그것은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이 가진 거대한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창조적 열정을 가지고 그 자신을 환상 속에 던졌고, 계속해서 더해갔으며, 그의 길 위에 표류된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아무리 많은 불길과 새로움으로도 한 남자가 자신의 유령 같은 마음에 축적하려는 것에 도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 158p

 

 

 

   애석하게도 개츠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한 데이지는 돈처럼 즉시 쓰여질 수 있는 힘을 보다 더 믿는 속물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톰이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정부를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유한 재산에 머물러있는 쪽을 택해 왔다. 한때의 연인이자 백만장자가 되어 돌아온 개츠비의 등장은 그녀로 하여금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렇듯 부와 성공이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개츠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배경을 사랑하든, 그를 사랑하였든 이미 인생을 걸고 그녀에게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개츠비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어느 여름 오후에 개츠비와 닉, 베이커, 톰과 데이지는 함께 시내로 나갔다가 비운의 사고를 겪게 되고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위험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고 만다.

 

 

 

   무능하고 실패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이름을 바꿔 살아온 그의 인생 여정이 쓸쓸하게 막을 내리는 과정은 이 위선적이고 비정한 현실에 대한 씁쓸한 여운을 안겨준다. 닉이 개츠비에게 “자넨 그 모든 빌어먹을 작자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가치 있네.” 라고 말하며 경의를 표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왜 개츠비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자본주의 욕망 앞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의 열망을 쫓는 개츠비를 통해 인간 본연의 위대함을 형상화하여 20세기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돈이 목적이 되어버린 물질 만능의 시대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들에게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

 

 

 

불친절하지만 가장 실제적인 문장의 가치를 빛낸 번역서

 

 

   사실 이 작품의 완성도는 이러한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문체로 문학적 가치와 질을 높이는 아름다운 문장에 있다. 닉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한 문장들은 문학적 가치를 한층 높인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한 작업은 역시 번역자에게 있을 것인데, 따로 역자 노트를 마련하면서까지 이에 많은 공을 들인 듯한 이 책은 보다 직역에 힘을 기울여 실제적인 문장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의 완성도를 언급하지만 유독 이 부분에 강조를 아끼지 않는 것에, 나는 이례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소장하고 있던 다른 출판사의 <위대한 개츠비>와 함께 두고 읽는 수고를 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번역자의 친절함이 가미된 의역이 문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사실이나, 불친절하기는 하지만 이정서의 번역으로 탄생된 문장이 보다 강렬하고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고 느꼈다. 특히,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묘사한 문장과 마지막 장면은 다른 번역서들보다 완곡하지만 감동적이다.

 

 

 

그의 가슴은 데이지의 흰 얼굴이 그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점점 더 빠르게 고동쳤다. 그가 이 아가씨에게 키스하고, 그의 순전한 비전을 그녀의 변하기 쉬운 숨결에 영원히 합치시켰을 때, 그의 마음이 결코 신의 생각처럼 다시 즐겁게 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별이 연주하는 음차를 한순간이라도 더 듣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 그녀는 꽃처럼 그에게 피어났고 생은 완벽했다. / 182p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그 풋풋한 불빛을,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때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고……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 289p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문득, 우리가 위대하다고 표현하면서까지 데이지를 사랑한 개츠비 역시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려져 있을 뿐, 상류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현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바다 너머에서 작게 빛나는 녹색 불빛 하나를 쫓던 개츠비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슴 속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녹색 불빛 하나를 내내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다만 기꺼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개츠비처럼 그 과정 속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기를, 그리고 그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래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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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나트랑 셀프 트래블 - 호이안.후에,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33
한동철.이은영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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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대표 휴양 도시 ‘다낭’ 맞춤 여행 가이드북!

이 책 한 권이면 든든하다, 여행 준비 끝!

 

 

  두 돌이 된 아들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베트남의 ‘다낭’이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보니 휴양을 목적으로 하되, 비행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어야 했는데 다낭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을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후기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으로 다낭을 찾는 흔적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가장 주목받는 휴양 도시이자 대세라고 불린다는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러던 찰나에 다낭을 포함하여 나트랑과 호이안, 후에에 이르는 인근 지역에만 집중한 가이드북이 출간되어 흥미를 끌었다. 베트남 전체를 아우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지역에 딱 맞는 맞춤형 가이드북이다 보니, 두께나 무게도 가벼워 이곳을 찾으려는 여행자들에게는 군더더기 없이 만족스러운 안내서가 될 것 같다.

 

 

 

 

최근 가장 완벽한 휴양지로 부상하고 있는 다낭

 

 

   <다낭 ‧ 나트랑 셀프트래블>은 재미있게도 부부가 함께 쓴 여행 가이드북이다. 2017년 2월까지의 취재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보다 최신 정보가 수록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를 동시에 준다. 책은 베트남 중에서 다낭, 호이안, 후에, 나트랑을 중점적으로 하여 알짜배기 정보들만 쏙쏙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 바다, 강과 아름다운 유적 외에도 신나는 테마 파크과 진흙 온천과 같은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곳만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낭은 최근 가장 완벽한 휴양지로 부상하고 있어 짧은 휴가기간을 활용해야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5시간가량의 짧은 비행시간에 바로 해변에서 10분 거리인 다낭 공항에 도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다낭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미 공군과 해군 기지가 설치되었으며, 현재까지 베트남 중부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넓고 넓은 한적한 해변이 멋진 다낭은 아름다운 자연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책에 수록된 다양한 추천 여행코스를 살펴보면 베트남의 자연문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에 도움이 될 듯하다. 책에는 여행 준비 방법과 떠나기 전에 들러보면 좋은 유용한 사이트, 각종 유사시에 필요한 기관의 연락처, 주요 베트남어 등과 같은 필수 정보에서부터, 짝퉁 택시나 흥정과 같이 주의해야 할 각가지 사항들 또한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다낭은 매력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인 것 같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6대 해변인 미케 해변과, 레이디 붓다라 불리는 하얗고 거대한 해수관 음상이 인상적인 영응사, 다양한 볼거리가 모여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는 오행산(수산 2번 입구의 엘리베이터만 봐도 입이 벌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잡지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선정했다는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하이반 패스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고도 차이와 가장 긴 싱글 로프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나힐 케이블카 역시 꼭 한 번 가보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단, 여기에서는 레스토랑 거리의 음식 가격이 비싸고 음식 맛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니, 무조건 좋다고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인 팁을 전하려는 저자의 배려(?)가 고맙다. 이 외에도 쇼핑점, 부드러운 마사지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마시지숍, 식당, 바는 물론 어마어마한 스펙을 자랑하는 다낭 최고의 5성급 리조트와 3성급에 이르는 호텔까지 다양하고도 유용한 정보가 실려 있으니 선택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다낭 보다 더 매력적인 인근의 관광지

 

 

   사실 다낭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여행지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인근에 베트남 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어서 더욱 이목을 끈다. 전형적인 베트남 시골 풍경이 살아 있는 곳으로, 들과 바다를 누비며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체험하는 에코투어로 인기가 있는 호이안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견되는 후에 역시 궁과 왕릉, 사원과 같은 유적지를 많이 볼 수 있을뿐더러, 베트남 전쟁의 흔적까지 엿볼 수 있으니 베트남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머물고자 한다면 리조트와 호텔 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부대시설까지 책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외에도 휴양지의 정석이라고 불린다는 나트랑은 인천에서 출발하는 직항편까지 있다고 하니 베트남 여행자들에게는 선택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간 베트남 하면 호치민이나 하노이를 떠올리기 쉬웠지만, 이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베트남의 다른 도시와 매력들을 많이 발견했다. 직접 발품 팔아 현지의 숙소와 식당 등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전달한 두 저자 덕분에 일정과 가볼 곳을 선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표지처럼 넓은 백사장을 느긋하게 거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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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내 유년의 빛
베이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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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최초의 동력은 바로 유년의 기억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좇아 베이징을 재건하다!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기억이라는 저장소는 뜻밖에도 바로 이전의 과거가 아니라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는 듯하다. 나의 최초의 동력을 이끌었던 곳, 이른바 유년시절의 고향 말이다. 태어나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았던 나의 고향은 2군 사령부를 마주보고 있는 2층 양옥집이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항상 보초를 서고 있는 군부대라는 위압감 앞에서 개발은 더뎠고, 그래서 조용했던 동네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밖이나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어울려서 노는 것이 당연했던 때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그나마 동네를 훈훈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네를 벗어나 살아서 이따금 그곳을 찾아갈 때면, 이렇게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을 만큼 한산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적막하게 느껴진다. ‘내게는 완전히 낯선 도시였다. 자신의 고향에서 이방인이 된 셈이었다’는 표현을 서두에 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의 저자 베이다오 역시 오랜 이국 생활에서 돌아온 베이징을 보는 순간 아마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고목이 봄을 맞고 사라진 냄새와 소리 그리고 빛이 돌아오게 하여 나의 베이징을 재건하고 싶었다던 그의 선언이 나의 옛 추억과 풍경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시대 속에 담긴 유년의 일상   

 

 

   1992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중국의 대표 시인 베이다오의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베이징을 글로써 재건한 자전에세이다. 이 책과 하나의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상하이, 여자의 향기>가 상하이를 한 편의 풍경화처럼 묘사한다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저자의 삶을 동력으로 하여 격변의 시대를 누빈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민낯에 보다 더 밀착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오쩌둥이 3년 동안 미국을 제압한다는 명목으로 농업을 희생하여 공업을 발전시키려던 정책이 실패하면서 전국적으로 식량부족과 기아현상을 일으킨 3년 곤란시기, 광기어린 축제와도 같았던 문화대혁명, 사회주의 교육 운동과 무력을 이용한 교화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때를 살아야 했던 당시 중국인들의 곤란한 삶이 피로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 속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저자의 일상은 마치 일기를 들춰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낭만을 잃지 않는 아버지 덕분에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추억들이나 ‘세 검객’이라 불릴 정도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친구들과의 일화며, 가난해도 노천 농산물 시장에서 사달라고 졸라 기르게 된 토끼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전전했던 사연들은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책에 간간이 실려 있는 흑백사진은 당시의 풍경을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비록 순수했던 유년의 기억에 시대와 사상의 온상이 겹쳐져 서글프고 처연한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따스한 빛과 정서를 잃지 않는다.

 

 

나는 또 남자아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놀이들을 발견했다. 예컨대 ‘팽이치기’다. 이는 ‘매국노 때리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일본과 전쟁을 하던 시기에 생겨난 놀이라서 그런 것 같다. 팽이는 대부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곡괭이 손잡이를 톱으로 자른 다음, 칼로 원추형으로 깎아 뾰족한 부분에 자전거 베어링을 박아 넣고 넓적한 부분에는 다양한 색깔로 원을 여러 개 그려 넣었다. 그런 다음 빨랫줄을 대나무 막대에 묶어 채찍을 만들었다. 팽이는 정말로 매국노나 소인배처럼 고약했다. 채찍으로 세게 후려칠수록 더 말을 잘 들었고, 후려치지 않으면 이리저리 비틀거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베이징 남자들이 “이 멍청이, 매를 버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 62p

 

 

내 기억 속의 두 번째 레코드판은 차이콥스키 「이탈리아 기상곡」으로, 컬럼비아사에서 제작된 78회전 검은색 에보나이트 레코드판이었다. 70년대 초반, 나와 차오이판, 캉청 등이 자주 우리 집에 모이곤 했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등으로 찬바람에 저항하는 듯한 분위기의 모임이었다.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이 살롱에는 남몰래 금단의 열매를 맛보는 희열이 있었고, 여인들이 가져다주는 낭만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작가인 동시에 독자이자 평론가였다. 당시 우리가 썼던 초기 작품들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된 음악이 스며들어 있었다. / 82p

 

 

 

 

 

비틀린 축제와 광기, 문화대혁명

 

 

폭력은 찌는 듯한 더위를 따라 더욱 고조되었다. 도처에서 끊임없이 비판투쟁과 조리돌림, 가택수색, 재산 몰수, 구타가 벌어졌다. 베이징 시내 전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모든 사람을 전율케 하는 그 악명 높은 ‘붉은 8월’이었다. / 237p

 

 

   1960년대를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있어 ‘문화대혁명’은 자신들의 일상을 뿌리 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이후부터 민주화 운동에 이르는 격변의 시기가 있었듯 중국인들에게도 문화대혁명은 개인과 집단을 송두리째 쥐고 흔든 광란의 시기였던 게 분명한 듯하다.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베이징 제4중학에 입학하게 된 저자 역시 시류에 휘말리거나 혹은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수업은 줄줄이 폐지되고, 학교 내에서도 출신 문제 때문에 각종 파벌에 따른 분화가 심해진 관계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시대였다. 이후 40년간 ‘평민’과 ‘귀족’의 경계가 역사의 상흔이 되어 아물지 않고 있다 하니, 중국인들에게 이 격변의 시기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클지 충분히 가늠된다.

 

 

교장과 교사들의 권위와 위엄, 지위가 하룻밤 사이에 땅에 덜어지리라고는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먼저 대자보가 천지를 뒤덮었고 비판투쟁대회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절정은 1966년 8월 4일 일요일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학교 임원과 교사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죄명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채 조리돌림을 당한 다음 운동장으로 끌려나왔다. 그들은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욕지거리와 주먹질, 발길질 사이로 치욕스럽게 비틀거리면서도 지나가야 했다. / 242p

 

 

 

 

 

 

   비록 나라도 다르고 같은 시절을 공유한 적도 없지만, 책은 진하고도 애잔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마도 어려운 시절에 함께 배곯아가며 상처를 보듬었던 가족애와 친구로부터의 우정이 시절을 막론하고 모두로 하여금 비틀거리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께서 저를 불러 아들이 되게 하셨기에 저는 당신을 따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는 글귀는 그래서 더 사무친다. 또한 상큼한 민트색 표지 아래에 천진난만 하게 뛰노는 소년은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오랫동안 책의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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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자의 향기
왕안이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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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문밖으로 확장되어 펼쳐지는 도시의 내밀한 흔적들!

시대의 흔적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하이를 추억하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단 한 번도 더듬어보지 않는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상하이, 여자의 향기> 저자인 왕안이는 자신의 소설 첫머리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딛고 있는 이 터전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자 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낯선 일이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일상이 진득하게 밀착되어 있는 탓에 자칫 사적인 경험과 언어들로 전락할 수 있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라 불리는 만큼 책의 저자 역시 이에 대한 고충을 먼저 토로한다. 그래서 도록이나 연감 등과 같은 객관적인 자료들이나 고서를 살펴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하이라는 도시가 멀게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상에 녹아든 기민한 감각으로, 상하이의 다양한 풍광들을 묘사하고 저자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한 편의 ‘상하이 수채화’ 같은 낭만을 선사한다.

 

 

 

 

 

 

 

 

거리의 풍경은 삶의 결심이자 활짝 열린 얼굴이다     

 

 

   ‘동양의 파리’, ‘중국의 뉴욕’이라 불리는 모던의 도시, 상하이. 그곳에서는 생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얼굴들, 빛과 소리, 냄새로 표정을 바꾸는 거리의 모습들, 날 것과 감춰진 것들이 때로는 느리게 혹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기억을 들추고 현재를 읽어내어 다양한 변화를 품고 있는 상하이 도시만의 매력과 가치들을 매우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특히나 ‘감성’이 가장 먼저 포착하는 인상이 얼굴형이라는 그녀의 표현처럼, 거리에 관한 풍경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민들의 모습에서 이 도시의 운치와 깊이가 느껴진다. 작은 구멍가게 여주인이 어울림직한 여자, 책대여점 주인, 나막신 신고 따각따각 소리 내어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 청빈하고 절약하여 얼굴이 싱겁고 담담해 보이는 부녀자의 모습까지, 거리의 표식 같은 존재가 된 이들의 모습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다. 억양이 다소 거친 편이고 실용정신이 강하며, 진한 맛을 좋아가고, 거칠고 저속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순수함과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네들의 일상을 밀착력 있게 그려내는 점 또한 독자와 상하이와의 거리를 한층 좁혀준다. 뿐만 아니라, 외국문물이 많이 들어와 세상은 변화했으나 뜻밖에도 자신들이 아직 바람직하고 좋은 환경을 건설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며 점차 낭만적인 색채가 사라져가고, 역사관이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등 점차 변질되어가는 도시의 오랜 느낌을 간직하고픈 작가의 바램 또한 읽을 수 있다.

 

 

이 도시의 성질은 매우 조급하지만 호방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것들은 그냥 지나가버린다. 이 도시는 내면에 끈질긴 동력을 갖추고 있어 적지 않은 관문과 요새를 뚫고서 마침내 평형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에는 또다시 끈질기게 기울어져 간다. 이 도시가 불안하게 요동치는 것은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욕망에 관해 얘기하다 보면 우리는 이 도시에 소리가 멈출 수 없다는 알게 될 것이다. 거리의 한구석에서도 커다란 동작은 멈추지 않는다. 전차가 지잉 하고 울리는 소리처럼 욕망이 머리를 들기 때문이다. / 34p

 

 

물을 나르는 물통도 전부 물을 흘린다. 물통에서 흘린 물이 덜컹거리는 물 배달용 수레를 적시면서 뜨거운 김에 휘감긴다. 계압혈탕을 파는 노점상들이 거리에서 닭과 오리의 털을 뽑고 있고, 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따라 하수구로 흘러든다. 그러다보니 하수구가 막히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하수구를 뚫는 인부가 어디선가 긴 대나무 막대를 들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이곳에 펼쳐지는 풍정은 늘 이렇게 질펀하고 깔끔하지 못하다. 몹시 거칠면서도 선정적이다. / 51p

 

 

 

 

 

여자와 도시, 그리고 여자의 향기

 

 

   저자는 상하이에 대해 글을 쓰자면 가장 대표적인 주제가 바로 ‘여성’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신분의 축적에서 상하이 여성들은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로, 혁명가가 많고 그 중에서도 중년 여성이 특별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녀들은 행동하는 거인들로, 운명의 결정에 직면하여 단호하고 과단성 있는 태도와 주도면밀한 행동을 보여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견고한 기개가 있는 상하이의 여성들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의 강인함을 가지고, 득실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지혜를 갖추었다.

 

 

   이는 여성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은 큰 시대와 큰 운동, 큰 불행과 큰 승리를 묘사하면서 자신의 작지만 겹겹이 착종된 복잡한 감정들을 함께 표출할 줄 알았다. 아마도 중국의 여인들이 다른 나라의 여인들보다 더 오랫동안 좁은 천지 안에 갇혀 살아온 반면, 중국의 남자들은 정치와 도덕에 대해 좀 더 큰 인생의 이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여성 작가들에게는 특히 ‘자아’가 가장 중요한 창작 요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자아의식은 표면적으로만 드러날 뿐, 철저히 자각되지 못하고 깊이가 결여된 채 발산되었음으로 같은 여성 작가로서 자아의 진실성에 대한 성찰과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외에도 남성 속에서의 여성, 사회 속에서의 여성으로서 이성적으로 여성 스스로를 성찰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신의 이미지를 몹시 아끼는 편인 데 비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수치를 모르는 용감함을 갖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자아를 더 잘 느끼고 살필 수 있는 만큼 자아를 더 아끼고 중시한다. 여인들은 인생의 이상을 직조해나가듯이 정성껏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빚어낸다. 그 결과 여인들은 뜻밖에도 암암리에 남을 속이고 자신마저 속이고 만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자아가 바로 자신의 자아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사실은 진정한 자아가 아닌데도 말이다. / 167p

 

 

상하이 여인들은 퇴폐적인 극을 연기하지 못한다. 게다가 상하이는 항상 사람들에게 사치와 낭비의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하이 사람들의 몸과 기질 속에 강철처럼 단단한 근육과 뼈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의 그런 몸과 기질이 아니었다면 이 콘크리트 천하가 무엇에 의지하여 버틸 수 있었겠는가. 상하이라는 이 단단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곧고 강직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영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얼마간이라도 이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도시의 여자들이 강인하게 자신들의 존재와 현실을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178p

 

 

   이른바 문화대혁명이라 하여, 문예 비판에서 시작하여 정상적인 교육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많은 엘리트들이 박해를 당한 때가 있었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작든 크든 그들의 삶에 모든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유년 시절에 이 시기를 겪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간순간들을 써나가며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고, 충실하게 사상을 개방할 수 있게 해준 이 시대에 감사함을 느낀다. 덕분에 아주 힘든 곤경 속에서도 계속 학습하고 인식하며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점점 시장에 영합하고, 화려하지만 공허하고 졸렬한 외피를 덧씌우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목소리를 주저하지 않는다. 거칠지만 여리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절제할 줄 아는 상하이만의 정신을 찾고 싶은 건 그녀 뿐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시장은 최고의 효율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졸렬하고 용속한 취미에 영합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시장에 영합하여 현실을 회피하는 화려하고 공허한 글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소박하고 표일하며 총명하고 영리한’ 작가들의 재빠른 글쓰기가 이 도시를 가득 메꾸면서 도시 전체에 경박하고 화려한 외피를 씌우고 있다. 이제 또다시 1930년대의 ‘모던 상하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화려하고 염미한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서 선생의 그림자를 찾게 된다. 그 둔중하고 거대한 그림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있었기 때문에 ‘30년대’는 모던과 향락과 풍류의 시대로 밤마다 음악과 노랫소리가 그치지 않았지만, 동시에 강철의 대오가 있어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버틸 수 있었다. / 133p

 

 

   이처럼 <상하이, 여자의 향기>를 읽으며 시대의 모든 흔적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하이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마치 수채화처럼, 풍경화처럼 시적이고 섬세한 문장들이 더욱 매력적인 에세이였다. 함께 출간된 다른 남성 작가가 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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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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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재기발랄한 통찰력을 지닌 인문교양서!

 

 

   2016년 3월, 우리는 아주 놀랍고도 역사적인 대회 앞에서 숨을 죽이고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다. 확률에 기반한 정교한 계산으로 탁월한 수읽기의 능력을 보여준 알파고 앞에서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초읽기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실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가져올 변화는 단순히 기능적 요소만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가능한, 인간만의 고유 영역라고 생각했던 영역까지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해보인다.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로봇 즉 안드로이드를 상상했을 때 그저 기계적인 어떤 유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한 혹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로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의 완성을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관찰한 내용의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안드로이드 시대 앞에서 인간의 속성과 존재론적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매우 남다르고 경이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 인간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SF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닉 켈럼이 쓴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가 기능이 정지되기에 앞서, 다음 미래 안드로이드를 위해 그간 수집했던 인간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담은 안내서다. 22일간의 인간 관찰 기록에는 성별, 일, 돈, 종교, 번식 방법, 기술, 예술, 이기심, 경쟁 등 인간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매우 섬세하게 담고 있음은 물론, 통계 자료와 도표 등과 같이 수치 적용 가능한 보고서 형태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일종의 ‘인간이 되기 위한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주인공인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해 인간에 가까워지려고 함으로써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교차 반복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한다.

 

 

   흔히들 우리 인간이 모든 생물과 로봇을 넘어서 스스로를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데는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있을 것이다. 또한, 몸과 마음과 감성을 구분하여 감정과 육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안드로이드 잭의 의견에 의하면 이는 사람이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그렇게 믿는 데에서 시작한 것, 즉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과학적인 데이터로 분석한 그의 인간 관찰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우주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지적한다. 이 외에도 잭은 직장이라는 공간 내에서 인간들은 근무 시간 내내 아주 빨리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상사와 직장 동료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직장 내에서의 능력을 결정하는 가치 판단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을 언급한다. 뒷담화, 미루기, 다양한 관행들, 각종 경고 문구 및 규칙 어기기,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해치는 일 등 각종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며 이를 지켜야만 안드로이드들이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각종 충고들은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뼈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명령은 거짓말을 하라는 거였어.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라니, 그 명령 자체가 거짓을 행하라고 요구하는 거잖아. 어쩌면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사람들도 자기에 관해,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 내 추측이 옳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아주 강력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여러 면에서 사람 사회는 마치 거짓으로 짠 옷감 같았어. / 79p

 

 

사람에게는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을 뛰어 넘을 능력이 있단 말이야. 실제로 사람들은 이 우주를 통틀어 자기들을 만든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단 말이야.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 때문이야. / 257p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인간성을 ‘획득’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존재의 목표였던 안드로이드 잭은 안드레아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단순히 어떤 한 특정 부분이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듯, 그 역시 각각의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통합적으로 작용해 그녀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안드레아를 통해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는 방대한 정보의 데이터를 지닌 자신보다 과학적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직관이라는 힘을 깨닫기도 한다. 즉, 잭은 사람이 되는 일이란 그저 사람처럼 보이는 일들을 습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직접 맞부딪혀 얻은 경험을 통해서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의식이 실재에 존재하는 혼돈과 접속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내부에서 분석하는 문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사람들도 감정을 분석하는 일은 우리만큼이나 어려워하는 게 분명했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구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라 친구나 치료사, 사제 같은 여러 다른 사람과 함께 수천 개가 넘는 방법으로 감정을 분석하려고 연구하고 모형을 만들려고 애쓸 리는 없을 테니까. 그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해졌어. 이게 바로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실재가 의식을 부추겨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놀라고 혼란을 느끼는 거 말이야. / 178p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전부는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태도 무한하기 때문에(카오스), 한 사람만 연구해도 끝이 없는 거야(프랙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인간성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면서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였어. 매일 찾아오는 석양은 본질적으로는 프랙탈이지만 그 순간순간은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니까.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신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매일매일 저무는 석양을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 26p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안드로이드가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이 실망스러울 만큼 위선적인 행동들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인 듯하다. 끊임없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삶들, 안드로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능력적인 한계와 적은 정보를 지니고서도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내왔던 인간들, 물리적으로 능력 밖의 일들마저도 의지 하나로 뛰어넘으려했던 그 수많은 시도들 말이다. 우리가 알파고에게 단 한 번 이겼을 뿐임에도 빛나는 묘수를 보여준 이세돌 기사에게 환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장면처럼.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인간이란 참 복잡하고도 정교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생존을 위해 마련해야 했던 수많은 시스템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도 세밀한 감정들을 주고받아야 했던 인간들의 삶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안드로이드의 시각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든 놀라운 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최근에 본 책 중 가장 이색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철학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곳곳에 인간에 대한 위트 있는 해석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는 점이다. 간혹, 이건 좀 너무한데 할 만큼 정곡을 찌르는 위선과 가식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지만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할 많은 면면들을 마주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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