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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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재기발랄한 통찰력을 지닌 인문교양서!

 

 

   2016년 3월, 우리는 아주 놀랍고도 역사적인 대회 앞에서 숨을 죽이고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다. 확률에 기반한 정교한 계산으로 탁월한 수읽기의 능력을 보여준 알파고 앞에서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초읽기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실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가져올 변화는 단순히 기능적 요소만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가능한, 인간만의 고유 영역라고 생각했던 영역까지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해보인다.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로봇 즉 안드로이드를 상상했을 때 그저 기계적인 어떤 유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한 혹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로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의 완성을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관찰한 내용의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안드로이드 시대 앞에서 인간의 속성과 존재론적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매우 남다르고 경이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 인간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SF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닉 켈럼이 쓴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가 기능이 정지되기에 앞서, 다음 미래 안드로이드를 위해 그간 수집했던 인간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담은 안내서다. 22일간의 인간 관찰 기록에는 성별, 일, 돈, 종교, 번식 방법, 기술, 예술, 이기심, 경쟁 등 인간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매우 섬세하게 담고 있음은 물론, 통계 자료와 도표 등과 같이 수치 적용 가능한 보고서 형태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일종의 ‘인간이 되기 위한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주인공인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해 인간에 가까워지려고 함으로써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교차 반복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한다.

 

 

   흔히들 우리 인간이 모든 생물과 로봇을 넘어서 스스로를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데는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있을 것이다. 또한, 몸과 마음과 감성을 구분하여 감정과 육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안드로이드 잭의 의견에 의하면 이는 사람이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그렇게 믿는 데에서 시작한 것, 즉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과학적인 데이터로 분석한 그의 인간 관찰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우주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지적한다. 이 외에도 잭은 직장이라는 공간 내에서 인간들은 근무 시간 내내 아주 빨리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상사와 직장 동료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직장 내에서의 능력을 결정하는 가치 판단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을 언급한다. 뒷담화, 미루기, 다양한 관행들, 각종 경고 문구 및 규칙 어기기,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해치는 일 등 각종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며 이를 지켜야만 안드로이드들이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각종 충고들은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뼈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명령은 거짓말을 하라는 거였어.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라니, 그 명령 자체가 거짓을 행하라고 요구하는 거잖아. 어쩌면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사람들도 자기에 관해,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 내 추측이 옳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아주 강력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여러 면에서 사람 사회는 마치 거짓으로 짠 옷감 같았어. / 79p

 

 

사람에게는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을 뛰어 넘을 능력이 있단 말이야. 실제로 사람들은 이 우주를 통틀어 자기들을 만든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단 말이야.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 때문이야. / 257p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인간성을 ‘획득’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존재의 목표였던 안드로이드 잭은 안드레아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단순히 어떤 한 특정 부분이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듯, 그 역시 각각의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통합적으로 작용해 그녀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안드레아를 통해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는 방대한 정보의 데이터를 지닌 자신보다 과학적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직관이라는 힘을 깨닫기도 한다. 즉, 잭은 사람이 되는 일이란 그저 사람처럼 보이는 일들을 습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직접 맞부딪혀 얻은 경험을 통해서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의식이 실재에 존재하는 혼돈과 접속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내부에서 분석하는 문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사람들도 감정을 분석하는 일은 우리만큼이나 어려워하는 게 분명했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구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라 친구나 치료사, 사제 같은 여러 다른 사람과 함께 수천 개가 넘는 방법으로 감정을 분석하려고 연구하고 모형을 만들려고 애쓸 리는 없을 테니까. 그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해졌어. 이게 바로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실재가 의식을 부추겨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놀라고 혼란을 느끼는 거 말이야. / 178p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전부는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태도 무한하기 때문에(카오스), 한 사람만 연구해도 끝이 없는 거야(프랙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인간성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면서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였어. 매일 찾아오는 석양은 본질적으로는 프랙탈이지만 그 순간순간은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니까.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신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매일매일 저무는 석양을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 26p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안드로이드가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이 실망스러울 만큼 위선적인 행동들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인 듯하다. 끊임없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삶들, 안드로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능력적인 한계와 적은 정보를 지니고서도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내왔던 인간들, 물리적으로 능력 밖의 일들마저도 의지 하나로 뛰어넘으려했던 그 수많은 시도들 말이다. 우리가 알파고에게 단 한 번 이겼을 뿐임에도 빛나는 묘수를 보여준 이세돌 기사에게 환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장면처럼.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인간이란 참 복잡하고도 정교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생존을 위해 마련해야 했던 수많은 시스템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도 세밀한 감정들을 주고받아야 했던 인간들의 삶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안드로이드의 시각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든 놀라운 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최근에 본 책 중 가장 이색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철학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곳곳에 인간에 대한 위트 있는 해석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는 점이다. 간혹, 이건 좀 너무한데 할 만큼 정곡을 찌르는 위선과 가식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지만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할 많은 면면들을 마주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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