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 1 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 1
최재훈 지음, 안병현 그림, 옥효진 감수 / 샌드박스스토리 키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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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먼저 기대하고 읽는 경제 학습 만화!

구체적인 설정과 몰입도를 높이는 모의 경험들로 이해가 쏙쏙 되는 우리 아이 첫 경제 학습책!

 

 

 

  애청하는 tvN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 126, ‘이게 가능하다고?’ 특집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케 한 이들이 출연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그 중 가장 관심 있게 본 이가 바로 초등학교 교사 옥효진 선생님이었다그는 교실 안의 작은 국가 ..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으로교실 내에서 특별한 금융 교육을 실천하는 것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학생들이 취직을 하고 월급을 받으며 세금도 내는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경험해보면서 여러 가지 경제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한 선생님의 놀라운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시청했다교실이라는 공간을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시킨 선생님의 이 특별한 발상 덕분에 그 안에서 자유로운 경제 교육을 실천해가는 아이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에는 물건을 사거나 통장을 개설하고 저축을 하는 게 내가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었다경제가 무엇인지세금이 무엇인지왜 저축을 하면 이자가 생기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그런 이유 때문에 여전히 경제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탓할 수는 없겠지만 문득부모의 기본적인 소양 부족은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리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지만 아이를 앉혀 놓고 소득이니 세금이니 투자니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막막하던 찰나에샌드박스스토리 키즈에서 출간된 옥효진 선생님의 학습 만화 세금 내는 아이들의 생생 경제 교실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경제 활동

 

 

 

  세내아 초등학교 5학년 5.

  오하니는 개학 첫날부터 엄청 이상한 반… 아니 엄청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 반은 이제부터 하나의 나라예요나라니까 법도 있고우리 반에서만 쓰는 화폐도 있어요우리나라 화폐는 미소라고 부르기로 해요.”

  담임선생님은 오늘부터 선생님이 아닌 대통령이라 불러 달라고 한다.

  심지어 나라 이름을 삼..(삼삼오오 모인 다양한 개성의 수다쟁이들)라 정하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삼다수 나라 친구들은 교실에서 직업 활동을 하거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

  국세청장급식 도우미청소부통계청장기상청장공무원은행원기자 등.

  처음에는 이 모든 게 황당하고 이상하다고만 여겼던 하니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저마다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점차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받는 첫 월급날!

  월급 명세서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월급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실수령액이 적은 것을 보고 아이들은 당황한다.

  이것이 바로 월급의 비밀!

  월급의 일부는 반드시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자리 임대료와 전기 요금건강 보험료(보건실 이용비), 급식비 등 각종 공과금이 월급해서 제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사실까지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월급은 어떻게 써야할까?

  삼다수 친구들은 플렉스형자린고비형소비할 목표를 정해놓고 모으는 등산가형 등 다들 자기만의 소비 스타일에 맞춰 월급을 사용한다.

  이때 하니는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는 자리선택권을 구매하기 위해 저축을 하기로 결정하고!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소비하고 돈을 모을 수 있는지다양한 저축 상품을 소개받고 모의 투자왕 선발 대회를 통해 저축과 전혀 다른 방식의 돈 버는 법도 알게 된다.

  또 친구와 슈퍼를 열어 사업을 하고 경영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처음에는 교실에서 경제활동을 배운다는 것에 반신반의했고

  어떻게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 상당히 궁금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설정과 몰입도를 높이는 모의 경험들이 이를 가능케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슈퍼를 열어 장사를 하려는 친구들에게는 사업자 등록증까지 발급해주고투자 상품을 선생님의 몸무게로 정하여 매일 선생님의 몸무게 변화에 따라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등 사실적이고 재미있는 설정들이 아이들의 호응을 얻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책에는 각종 경제 상식이 수록되어 있어 기본적인 지식을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경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경제 용어 빙고 게임판이 부록으로 들어 있어 책을 읽고 나서 아이와 놀이도 해볼 수 있으니 유용하다.

 

 

엄마가 먼저 기대하며 읽게 되는 책이라는 점!

어려운 경제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준다는 점!

발랄하면서 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체까지!

 

 

  우리 아이의 첫 경제 학습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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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
하야미 카즈마사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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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책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구원 같은 책!

비록 바보 같을지라도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어라이건 찐인데?”

  나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인 다나하라 교코처럼 서점 직원으로 다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일찍이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어수룩한 작가에서 문예창작 전공자로이어 출판사 편집자에서 대학교 앞 서점과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대형 서점에 근무하기까지나의 이력은 어쩌다보니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계속되고 있다어쩐지돌잡이 할 때 연필과 공책을 쥐었다던 부모님의 말씀을 대충 흘려 들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어쨌거나 출산을 하기 전까지 내가 정식으로 직장에서 근무한 경력은 서점이 마지막이었기에이 책을 각별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 책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래이게 진짜 서점 이야기지.’를 연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점을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 작품들을 읽어보았지만이 책만큼 서점 내부에서 바라본 출판 업계의 사정을 이토록 제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 또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으니까덕분에 책에 나오는 일화와 유사한무척이나 유사한 나의 경험담이 마구 떠올라서 단숨에 푹 빠져 들고 말았다.

 

 

 

나도 책에 구원받은 적이 있어.”

 

 

 

  소설 속 주인공 다나하라 교코는 무사시노서점 기치조지본점의 문예 파트에서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이다오늘도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점장님을 더는 못 봐주겠으니 그만 둘래요!’ 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그도 그럴 것이 점장인 야마모토 다케루는 무능력자이나 남의 속 뒤집기는 백점 만점인 데다아침마다 조회에 유난히 열을 올리며 의욕 없는 직원에게 서비스 정신을 심어주는 유능한 리더의 77가지 마음가짐!》 따위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기 일쑤다업계 최대 출판사의 영업 담당자는 태도가 오만하기 이를 데 없고남자 직원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여자라고 깔보거나 무리하게 책을 가져다놓으라 요구하는 등 소위 진상 고객은 서점이라 해서 없을 리 없다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는 고야나기 씨가 있어 오늘도 그 모든 불합리를 견뎌낼 뿐이다그런데 아뿔싸그토록 동경하던 그녀가 서점을 그만둔다니이제 어쩌지?

 

 

 

  고야나기 씨가 그만두자 덩달아 의욕을 잃은 다니하라조만간 서점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카페에서 우연히 아르바이트생인 이소다 씨와 마주치고 그녀로부터 의외의 말을 듣게 된다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서점 직원인 다니하라의 추천글을 보고 읽게 된 한 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이소다의 말 덕분에 다니하라는 서점 직원은 이야기와 독자를 이어주는 훌륭한 직업이라는 것을서점 직원으로서의 사명감을 다시금 숙고하게 된다물론 이후에도 어처구니없는 일은 여지없이 발생하고바보 같은 점장님은 계속 바보 같은 짓을 벌이지만 좋아하는 책에 둘러싸여좋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받아 애정 어린 고객에게 고이 전달하는 일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다르지 않아요그렇다면 서점 직원 한 사람이 그만두면 손님이 만날 수 있는 작품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잖아요실제로 제가 그랬고요다니하라 씨가 서점에서 일했기 때문에 저는 공전의 에덴과 만날 수 있었어요계속 살아갈 수 있었어요그건 도미타 아카쓰키 씨가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봐요그 소설가가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있는 것처럼 그 서점 직원밖에 장점을 전달하지 못하는 작품이 있을지도 모르고원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 54p

 

 

 



 

 

 

 

  이 외에도 재능 있고 오만하지만 겸허함을 되찾아가는 젊은 소설가의 고뇌독불장군이라 모두가 두려워하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서점 경영자의 애수걸리버 출판사의 영업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신입 사원의 분투에 이르기까지결코 반짝반짝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출판 업계의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게 펼쳐진다그 속에서 드러나는 출판 업계의 현실과 애환은 작가가 이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테면 유명 작가의 신간 소식이 뜨면 서점은 미리 재고 확보에 열을 올리지만 때로는 잘 팔리는 지점에 재고가 더 많이 몰리고(팔고 싶어도 우리 서점에는 안 보내 주고), 내가 좋다고 느껴서 열심히 추천하는 책은 좀처럼 팔리지 않는 반면 베스트셀러는 진열만 해놔도 잘 팔리는 데서 오는 서점 직원으로서의 한계는 물론(놔두면 팔려나가는 책을 위해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분명 전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데도 매출을 위해서는 손님께 열심히 권해야 하는 실정은 서점 직원이라면 느낄 수 있는 여러 고충 중에 하나다책 매대를 줄이고 잡화 코너의 비중을 높일 때는 언제고 책 매출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까지도서점에 오는 손님은 모두 고상할 것 같지만 진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책 도둑을 잡기 위해 치맛단이 뜯겨라 뛰는 일도 부지기수라는 건 내 개인적인 깨달음이기도 하다대형 출판사는 홍보물 한 장조차 보내주지 않아도 작가의 유명세와 광고에 힘입어 잘 팔리는데중소형 출판사는 마케터가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원에게 홍보하고 은근슬쩍 자기네 책을 매대 위에 올려놓는 꾀를 부려도 팔리지 않는 현실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이 나왔네.”

안다. ‘드디어 남자가……라는 뜻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서점은 일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누가 사과나 듣자고 이러는 줄 알아?”

책은 반드시 오늘 안에 마련해 놓겠습니다혹시나 고객님이 허락해주신다면 댁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 29p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니하라 씨에게는 저번에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라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보내온 도미타 선생님의 두 번째 작품 원고를 읽고 나는 더욱 실망했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여전히 문장은 세련됐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감각도 똑같았다.

하지만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물론 데뷔작보다 그다음 작품이 떨어지는 경우는 자주 있고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모조리 끌어 담아 쓴 데뷔작을 그 다음 작품으로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87p

 

 

저도 다니하라 씨의 불안이나 초조함은 이해한다고 생각해요서점 직원의 열악한 대우가 당연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건 확실해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니하라 씨는 지금 서점을 그만두면 안 돼요다니하라 씨는 서점에 남아 이 업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움직여야 해요그게 미래의 서점이라는 곳을나아가 출판계 전체를 위한 일이니까요.” / 233p

 

 

 



 

 

 

 

  “우리가 하는 일은 작가님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아닙니다어깨동무를 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불황인 출판 업계의 거친 파도와 맞서는 것입니다선생님의 기분만 맞춰드린다거나 반대로 화가 나서 돌아가시게 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해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우리가 힘을 쏟아야 할 부분은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게 아닐까요?” 평소에는 늘 바보 같은 점장이지만좋은 책을 쓰고 만들고 전달하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종종 알력다툼을 벌이곤 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장면이 있다불황이다 뭐다 하지만 여전히 책이 주는 따스함을낭만을구원을 믿는 이들이 있기에 나 역시 책이 머무는 자리는 늘 아름답기를 꿈꾼다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촉구하는 책 속의 글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을 좋아하고책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구원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출판 업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유쾌한 미스터리와 흥미로운 이야기 요소까지 갖춘 작품이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비록 바보 같을지라도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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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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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큰 어른이 남기고 울림의 언어들!

당신의 미래를 이끌어갈 키워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제목의 동요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어릴 적말놀이를 하듯 참 열심히 불러댔던 노래다작곡가가 누구인지작사가는 누구인지언제부터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인지원숭이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으로 마무리되는 이 난데없는 노래를 우리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언어 DNA’라는 게 아닐까 싶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신 언어를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라 쓰고 다시 나와 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언어 유전자(이어령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거죠이 생물학적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긴 말과 글 속에도우리가 사용하고 있는아침저녁으로 쓰고 있는 말과 글 속에도 똑같이 문화 유전자가 숨어 있습니다.’ 언어 즉 문화 유전자란 것은 내가 없는 세상우리가 없는 세상에도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해간다는 것이다그리고 바로 이 노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야말로 자신이 경험한 100년의 시간이 남겨놓은 시대의 기록이자 자취라 하며 이 책을 쓰게 된 소회를 풀어나간다원숭이사과바나나기차비행기이 다섯 가지 키워드의 마지막인 백두산에 오르기까지 우리가 가지고 살아왔던 게 무엇이고우리가 없는 세상 저 먼 미래에는 이러한 키워드들이 어떻게 바뀌고 거기에서 어떤 문화 유전자들이 이어져갈 것인가를 짚어보며백두산에 이어 새 시대의 중요 키워드가 될 만한 유산을 남겨놓고자 한다.

 

 

 

오늘 나는 그 이야기를 하렵니다우리 DNA의 네 가지 화학 기본 물질처럼 언어로 내 평생을우리가 겪은 이 시대를 나타낼 수 있는 소위 키워드, DNA 같은 말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내가 읽은 그 많은 책내가 들은 그 많은 노래그 모든 것을 찾아보고 그 안에서 몇 개의 단어를 추려봐라그것도 나 혼자 경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를 기준으로 할 때 80 평생한 세기 100년에 가까운 개화기부터 내려온 그러한 우리 역사를우리 생활을공동으로 경험했던 것을너의 이야기가 됐든 나의 이야기가 됐든 그 이야기를 몇 가지 단어로 추려봐라.” / 9p

 

 

 

잘 있으세요여러분 잘 있어요

 

 

  놀랍게도 과거 이 땅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고 한다세종대왕 실록이나 성종 때의 기록에 의하면 진상품으로 받은 기록은 있으나 우리에게 원숭이는 상당히 낯선 동물임에 틀림없었다그러다 1909년 개화기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대중들은 처음으로 실제 살아 있는 원숭이를 보게 되었다개화기 때 처음으로 외국 사람을 본 것처럼어쩌면 원숭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 원숭이라기보다는 일본 사람선교사외국 사람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는 왜 하필이면 손이나 발도 아니고 하필 엉덩이를 언급하는 것일까여기에서 이어령 선생님은압도적인 힘을 가진 외국의 위력에 놀라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이중 감정을 지닌 개화기의 외국관이 곧 원숭이의 엉덩이를 상징하는 것이라 추측한다그들의 문화와 힘을 대단히 여기면서도 별 거 아니야’ 하는 오기 같은 것이런 감정이 4000년 동안 그 많은 외압과 그 많은 외래 문화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온(비록 단점도 있겠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 핵심적인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과의 의미를 무엇일까요그냥 먹거리가 아닙니다사과라는 말 속에는 그대로 서양 문명이 압축된 상징적 이미지가 있어요. 19세기 헝가리에 아주 유명한 수학자가 하나 있었어요보여이 야노시노라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창안한 수학자이지요이 사람이 놀라운 얘기를 합니다서양 문화는 딱 사과로 얘기하면 풀리지요아담의 사과선악과인류가 이렇게 해서 생겼잖아요기독교 문화종교 등 오늘날 유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복잡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것은 아담의 사과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사과로부터 시작돼요종교에서 시작된 거죠유럽의 모든 문화 문명을 이끌어온 기독교 정신이 바로 아담의 사과예요. / 29p

 

 

놀라운 건요이 바나나가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는 거예요일본 사람을 바나나라고 그랬어요바나나명예백인얼굴은 노란데우리 같은 황색 인종인데쫙 껍질을 벗겨보면 하얗다일본 사람은 겉으로는 동양 사람이지만 안은 완전히 서구화됐다서양 사람들이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을 바나나족이라고명예백인이라고 불렀어요사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원숭이 노래에서 백두산만 빼놓고 모든 게 그래요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도양 사람이지만바나나처럼 껍질을 벗겨보면 어느새 100년 동안 하얀 사람이 되어버렸어요이렇게 보면 바나나의 상징성은 더욱더 짙어져요. / 39p

 

 

 



 

 

 

 

  선교사들이 직접 나무를 갖다 심은 사과바다 너머의 서양을 상징하는 외국의 맛 바나나식민 정책에 의해 놓인 기찻길 그리고 저항과 눈물의 역사를 담은 열차. ‘떴다 떴다 비행기날아라 날아라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비행기도 못 만들고 비행 실험 하다 떨어져 죽은 모험가도 없지만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그걸 띄우는 노래를 만들었던 우리들이렇듯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속에 담긴 키워드와 그 안에 얽힌 시대의 정서를 읽어내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는 살아 마지막까지 성찰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빛나는 지성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2008학년도 서울대 입학식에서 한 축하연설이 마음을 울린다그는 여기에서도 <떴다 떴다 비행기동요로 운을 뗀다뜬금없는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날아야 된다라이트 형제 전에도 상당한 글라이더 비행선이 있었는데왜 엔진을 달고 활공이 아닌 제 힘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만들려고 했느냐글라이더와 플라이어는 다르다너희들은 지금까지 글라이더였다자기 힘으로 무엇을 한 게 아니다대학에 들어온 오늘부터 너희들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자기 엔진을 가져야 되고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한다그것도 그냥 나는 것이 아니라 높이 높이 날아라우리 비행기처럼.” 하고자기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자기 엔진이 없으면 금세 고꾸라진다고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고추진력을 가지고실력을 가지고 날 수 있는 엔진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어린 당부가 깊은 울림을 준다.

 

 

 

저항이었죠기적 소리와 함께 간 우리의 슬픔을형님의 눈물을누님의 눈물을어린애가 뭘 안다고 기차가 가면 이렇게 욕을 했어요기차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을 꺾은 그 역사로부터 출발합니다기차 얘기를 하면 한국에선 참 슬픈 이야기들이 나와요트로트 기사들만 봐도 전부 비 내리고 완행열차예요그런데 슬프기만 하냐아니죠완행열차에다 야간열차에다 비 내리는 가장 열악한 기차 속에는 한국인의 정이 잔뜩 담겨 있어요. / 47p

 

 

내가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키워드들이 만들어지려면 지나간 나의 이야기다섯 개의 키워드역전의 드라마로서우리가 이제는 세계를 향한 발신자로서 세계와 친구가 되고외국인이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니고더 이상 사과나 바나나가 기차나 비행기가 남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 되어버린 이 근대화 100년 속의 그 슬기가 필요해요종이비행기가 아닌 진짜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고또 그 비행기가 오가는 비행장이 세계 1등이 됐습니다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뜨기만 했지 날아야 할까요날려면 이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자기 엔진이 있어야 합니다. / 66p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원숭이사과바나나기차비행기로 상징되는 외국의 것을 열심히 쫓으며 뛰어왔다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다른 나라다른 문화의 것만 보고 따라갈 것인가이어령 선생님은 이제 백두산 그 이후의 키워드백두산부터 새롭게 시작될 키워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100년 동안 우리 것을 다 내주고 버려뒀던 것들에게서양극화하지 않고 융합시켜서씨앗이 되고불씨가 되고작은 터널 속 빛이 되어줄 미래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무엇보다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디지로그 시대생명의 가치가 제일이 되는 시대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잘 있으세요여러분 잘 있어요이제 그의 인사는 여기서 그치겠지만 지난 시간 그가 우리 시대에 전해준 언어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눈 먼 현대인들에게 맑은 지혜를 줄 것이라 믿는다.

 

 

 

100년 동안 살아온 내가앞으로 100년 동안 살아갈 어린아이들이 부르게 될 키워드 하나중요한 낱말 중에 하나를 꼽으면 버려둬입니다내가 살았던 시대의 가장 소중한 다섯 가지 키워드 속에서 잃어버렸던 그것이 그냥 버려지지 않고마치 누룽지처럼 묵은지처럼 우거지처럼 버려두었던 것이 우리 식탁에 올라올 새로운 메뉴로서 21세기앞으로 100년을 끌어갈 새로운 언어가 될 것입니다그것을 우리가 함께 경험하자는 것입니다내가 다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가슴속에 미래의 어린아이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어렴풋하게 떠오를 겁니다우리가 새로 만들어낼 중요한 단어들이 무엇일지 짐작이 갈 겁니다. / 138p

 

 

 




 

 

 

 

  유고집 작별을 끝으로 이어령이라는 이 시대의 큰 어른은 우리와 이별했다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언어라는 유산은 우리에게 훌륭한 자양분을 주었다이제는 우리가 그에게 보답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오늘 내가 쓰는 언어가 미래 세대의 유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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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업데이트할 시간입니다 - 흔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남궁원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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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의 마음에 채워줄 따뜻한 글 하나!

오늘도 흔들리며 사느라 내 마음 돌볼 틈도 없이 외로워하고 있을 이들에게!

 

 

 

  스물여섯의 나이쯤이었나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대학교 졸업식도 아직 치르지 않았는데 출판사에 취직했다고 기뻐서 날뛴 지 꼬박 1년이 지났을 때였다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었고그곳에서 전집 작가를 구한다기에 주저하지 않고 이력서를 냈다가 합격한 나는 1년 동안 성실하게 출퇴근했다그 사이 기획했던 전집은 어그러졌고뜻밖에도 외국어 서적과 신문 발행 파트의 업무를 맡아서 진행해야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직장 생활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 대표의 거친 말투에 한두 명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고그들의 업무를 내가 다 떠안은 것은 물론 디자인팀의 작업까지 배워서 해내야했던 나는 과중된 업무와 스트레스로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친구들을 찾고 밤새 술을 마시며 괴로움을 달랬다건강은 건강대로마음건강은 마음건강대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그때 좀 더 내 마음 챙기는 법을 알았더라면 덜 힘들었을 텐데잠에서 깨어나 그 지옥 같은 회사를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는 괴로움으로 속앓이 했던 시간들로부터 좀 더 빨리 탈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미련하게도 나는 방법을 몰라서 그로부터 한참동안 나를 동굴 속에 가둔 채 살아왔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 돌보는 법’,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과거의 나처럼 잘못의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느라 마음이 다치는 줄 모르고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이라 이해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야박하게 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책 마음을 업데이트할 시간입니다』 속에 이런 글귀가 있다. ‘지치고 힘겨운 마음은 어디에나 쌓이는 먼지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먼지를 조금 털어내고 들춰보면 그중에는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거나 녹이 슬었거나 굳어져 버린 마음들도 있었다그래서 한 번 더 확신했다마음을 관리하는 게 곧 삶을 관리하는 거라고지금 잘 살든 혹은 그렇지 않든항상 마음에 기름칠을 해주며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결국에는 삶의 승리자가 될 거라고.’ 마음을 관리하는 게 곧 삶을 관리하는 거라는 말내 마음에 기름칠을 해주면서 소중히 여기라는 말힘들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이 말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에 하나인 것 같다사랑행복행운… 우리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말들은 결국엔 나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찾아오는 법이니까.

 

 

 

잊지 말렴어두운 건 어두운 대로 놔두는 거야.

세상 모든 사람 누구나

하루에 꼭 한번은 어둠을 겪는 것처럼.

수많은 조명이 애써 빛을 뿜어대도

밤하늘을 밝히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어둠은

억지로 개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동이 트기 전 새벽처럼 옅어지는 거란다. / ‘야행성’ 중에서 20p

 

 

 



 

 

 

 

  아이의 어린이집 차량이 서는 골목길 앞에 어느 틈엔가 풀이 무성해졌다야트막하게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이 언제 이렇게 많이 자라서 빽빽하게 땅을 다 차지할 정도로 자라난 건지 놀라울 정도였다문득복잡한 상념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내 마음 같다한 번 들어와 앉으면 좀처럼 뿌리 뽑힐 줄 모르는 어지러운 생각들뭐 하나 시원하게 되는 일 없고오늘은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들이 번번이 발목 잡히고나는 왜 또 미련을 못 버려서 내내 끙끙 앓고 있는 건지.

 

 

안다뜻대로 안 된다는 거.

이제 그만 토해내고 싶다는 거.

다만 현재까지 마음이 어려운 건

마음속에 잡초 하나가 자랐기 때문이다. / ‘우울증’ 중에서 81p

 

 

 

  그래내 마음속에서 잡초가 자랐구나그게 어느 틈엔가 이만큼 자라나 뿌리 뽑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구나대체 언제부터이리도 많이 자랐나그런데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잡초가 왜 자라는지 의미와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고티끌만큼의 관심도 갖지 말고 잡초 생각이 나도 그냥 멋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라고그러다 잡초가 뿌리를 깊게 내린다면 그때 내가 해야 할 건 겁을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하고 향기 좋은 예쁜 꽃과 나무를 마음속에 심는 거라고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되고 꽃밭을 이루었을 땐그 기세에 잡초가 자랄 틈조차 사라져버리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피어날지 아는 이는 오직 나 자신뿐이다그것이 비록 잡초일지라도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을 쐬게 해줄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기에오늘도 내 마음 속에 무심코 잡초 하나 들여놓은 건 아닌지진즉에 잘라버리지 않고 또 방치해 둔 것은 아닌지 틈틈이 보듬어봐야겠다.

 

 

 

내가 보잘것없는 하루라고 치부하여 내팽개친 오늘은 누군가에겐 탐이 나는 보물이었던 거야.

정말로 의미가 없었던 건 내 생각이었지 삶이 아니었어.

삶에선 경험만이 존재할 뿐 의미 없는 순간은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도

아무 의미 없이 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 중에서 97p

 

 

적당한 걱정은 나를 현명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걱정은 나를 겁쟁이로 만드는 법이다나를 구원하는 건 복잡한 상상이 아닌 담백한 용기다고작 과장된 잡념일 뿐인 흙탕물에 오늘과 내일이 잠긴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때론 바보처럼 생각하고 천재처럼 행동하자모든 시작은 용기를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늘을 보라.

자외선 따위를 신경 써 커튼을 치기에는

너무 푸르지 아니한가. / ‘해방’ 중에서 207p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너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잘하는 게 없어도 된다고내세울 게 없어도 된다고특별한 게 없어도 된다고끊임없이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이 한 줄의 글이 참 위로가 된다오늘도 흔들리며 사느라 내 마음 돌볼 틈도 없이 외로워하고 있을 이들에게 이 책의 따뜻한 글귀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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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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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슴에 남아 성찰의 촉매가 된 언어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언어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해보는 데에서 삶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둘 무렵친구가 먼저 취직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콜센터 업무라고 했다평소 목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던 친구라 구체적으로 콜센터 상담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취직이 되었으니 잘 되었다고 좋아했다그렇게 3개월이 지나 만난 친구는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늘 활기찼던 음성은 온데간데없고상담 업무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푸느라 끊임없이 부정적인 언어만 쏟아내고 있었다그 어떤 직업도 쉬운 일이란 없겠지만당시에 나는 처음으로 감정 노동자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감정노동자.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등을 연기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우리나라에는 대략 740만 명의 감정노동자가 있다고 한다콜센터 직원텔레마케터백화점 판매원 등 서비스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로 여기에 속한다콜센터의 말이란 책을 마주한 순간나는 그때 친구가 서러움에 복받쳐서 쏟아냈던 말들이 떠올랐다콜센터를 통해 오가는 그 불편한 언어들은 내가 세상을 참 말랑하게만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다들 우리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친구의 격한 토로는 순진했던 나에게 합리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 게 세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10여 년이 넘게 흘렀고감정노동자들의 처우가 예전보다는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에게 박하다콜센터를 넘나드는 말의 무게에 대해수화기 너머로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그들의 진짜 목소리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이 세상에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때로는 회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기억을 모아 기어코 책 한 권을 완성한 것은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던 저자의 말은 여전히 무례와 비상식 속에서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헤드셋 너머로 전해오는 감정의 언어들

 

 

  『콜센터의 말은 520일 동안 일본의 한 여행사 상담 콜센터에서 일하며 울고 웃었던 기록들을 담은 에세이다하루에 적게는 20~30많게는 70명이 넘는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실수와 부침을 거듭해왔던 과정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여기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감염병이 몰고 온 혼란과 외국인 노동자로서 감내해야 했던 숱한 상처들까지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묵묵히 나아가야만 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본다그러는 동안에 대부분의 말은 입을 떠나거나 귀에 들어오는 순간 소멸되었지만유독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슴에 남아 성찰의 촉매가 된 언어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많은 상담원이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하면 조금 아득해진다어릴 적 장래 희망으로 콜센터 상담원을 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낭랑한 목소리와 기민한 센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매력을 느낄 수는 있다하지만 콜센터가 삶의 1지망이었다는 사람은 콜센터 안에서도 찾기 힘들다상담원 일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내가 경험한 콜센터는 각자의 이상적인 경로를 이탈한 사람들이 잠시 흘러 들어왔다 나가는 웅덩이에 가까웠다. / 8p

 

 

 




 

 

 

 

  고작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소리의 파동이 이토록 선명하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다니저자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들을 필요가 없었을 표현들을 적잖이 만난다. “이봐요일본에서는 이럴 때는 알았습니다.’ 하는 거예요일본어 다시 배우세요.”, “여기 일본 콜센터 아닌가요왜 외국인이 받는 거죠?” 같이 외국인과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고 모욕감을 주는 이들이 있다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독단적으로 콜센터 상담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무책임하다느니 상사를 바꾸라고 호통을 치는 이들도 있다. ‘콜센터에 전화만 하면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실생활에서 만나면 하나같이 차분하고 상냥한 이들이 비대면이라는 이유로고객이라는 이유로 언어라는 권력을 휘두른다덕분에 알게 된다인간은 사회적인 가면과 본능적인 욕구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평소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추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여행사도 잘못은 없는데 고생이네요.”, “솔직히 아가씨 잘못은 아닌데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해요열심히 응대해 줘서 고맙고요.” 심장이 굳고 피가 식는 느낌을 번번이 경험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한마디와 사과를 건네는 고객들이 있기에 이를 치료제 삼아 견디고 또 견딘다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체감한다.

 

 

 

  이치고 이치에일본어로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한다고 한다상담원과 고객의 전화 한 통이야말로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일지 모른다한 건의 문의가 해결되고 나면 두 번 연결되는 일은 좀처럼 없고아무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인생의 단 한번뿐인 만남에 누군가는 날카로운 말로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누군가는 다정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도닥이기도 한다나는 이쪽과 저쪽 중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가장 평범한 말이지만 이 말 한마디가 콜센터를 비롯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이자 하루의 고단함을 녹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저도 초보 시절에 실수가 잦았어요누구보다 본인이 자책하고 있을 걸 아는데굳이 한 소리 더할 필요가 있나요.”

콜센터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이처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그 답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안 그래도 고객으로부터 매일같이 상처를 받는데 내부에서조차 감싸 주는 이 하나 없다면 어떻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실수는 불가피하다동병상련에서 오는 진한 동료애와 사려 깊은 리더십을 나는 콜센터에서 처음으로 체감했다. / 37p

 

 

이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첫 석 달이 지난 후부터는 줄곧 평균 이상의 KPI를 유지했다. ‘고객을 감동시키되 전화는 최대한 빨리 끊어라.’라는 콜센터의 요구는디자인업계에 떠도는 화려하지만 심플하게라는 주문만큼이나 황당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객 감동과 최대한 빨리’ 둘 중 하나를 택한다보통 콜센터 KPI에 반영되는 비중은 통화의 질보다는 양이 높으므로어쩔 수 없이 상담원은 통화 시간에 민감해진다. / 52p

 

 

콜센터에서 일하는 동안나는 정해진 대본에 따라 누구보다 상냥하고 이해심 깊은 상담원을 연기해야 했다헤드셋을 쓰고 있는 나는 본래의 내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평소에는 타인의 일에 쉽게 간섭하지 않는 내가 고객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며 하나라도 더 도울 일은 없는지 끈질기게 물어봐야 했다. / 162p

 

 

 




 

 

 

 

  비록 1년 반 동안의 콜센터 상담원 시절은 고군분투의 연속이었지만저자는 이때 얻은 근력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산이 되어 다음 여정을 도울 것이라 믿는다아울러 고된 회사 생활이 자신을 끊임없이 생의 절벽으로 몰아붙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들에게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득히 멀어 보이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무엇보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언어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해보는 데에서 삶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나 또한 다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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