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릿 S클래식 :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지음, 알렉산드로 발드리히 그림, 윤영 옮김 / 스푼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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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빚의 굴레불평등으로 점철된 사회 구조빈곤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할 길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배움의 기회가 되어줄 찰스 디킨스의 명작!

 

 

 

  어린이 세계명작 시리즈 ‘S 클래식찰스 디킨스’ 편의 네 번째 책은 작은 도릿이다찰스 디킨스의 대표작들 중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우리 아이들에게 찰스 디킨스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된 ‘S 클래식만의 아주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앞서 읽은 크리스마스 캐럴』 데이비드 코퍼필드』 황폐한 집이 그러했듯작은 도릿』 역시 원작이 다소 긴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간결하고 쉬운 표현에 감동과 재미 요소들을 잘 살려내 어린이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 흥미를 끈다.

 

 

 

진짜 감옥은 어디일까?

감옥 안과 밖을 넘나든 작은 도릿 이야기

 

 

 

오래전 영국에는 마샬시라는 이름의 감옥이 있었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사람은 마샬시로 보내졌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도릿 씨는 돈을 빌렸다가 그 돈을 갚지 못해 마샬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

도릿 씨가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어.

그 중 막내딸이자 작은 도릿이라 불렸던 에이미는 마샬시 감옥 벽에 맞닿은 작은 방에 혼자 살며 귀족인 클레넘 부인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정성껏 돌보았어.

그러던 어느 날클레넘 부인의 아들이 외국에서 돌아오면서 에이미와 친해지게 되고탐정인 팬크스를 통해 도릿 가문에 얽힌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

바로 어마어마한 재산이 도릿 가문에 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도릿은 빚을 갚고 감옥에서 출소해 호화로운 삶을 살게 돼.

이때부터 평화로운 미래만 눈앞에 펼쳐질 것 같았던 도릿과 에이미는 뜻밖의 일로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돼.

이제 에이미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에이미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어느 날 아침 아서는 온몸이 아파서 멍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어그런데 작은 감옥 안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지.

에이미 도릿이었어!

에이미는 물컵을 그의 입에 갖다 대 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어.

우리가 마샬시에 있을 때 당신이 도와줬잖아요이제는 제가 당신을 도와줄 차례예요.” / 88p

 

 

 

   『작은 도릿은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사회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찰스 디킨스 만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 중에 하나다극심한 빈부격차와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온 가족이 감옥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끊임없는 빚의 굴레불평등으로 점철된 사회 구조빈곤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할 길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배움의 기회가 되어줄 작품이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얻고도 비굴했던 과거의 감옥 생활에 얽매여 살아갔던 도릿 씨를 보며 자유는 돈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특히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버린 시대에서 모든 재산을 잃고도 원망이 아닌 포용과 사랑의 숭고함을 보여준 에이미를 통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인 데다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로 아이와 재미있는 독후활동까지 기대되니 작은 도릿을 만난 기쁨이 크다이 책을 많은 어린이들이 읽어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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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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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공감 능력을 깨우는 이타적 욕구의 비밀!

이타심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고 사회에 잘 적용한다면 그 어떤 문제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책!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

  몇 달 전브라이언 에어와 버네사 우즈의 역작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은 적이 있다생존과 진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적자생존만큼 완벽히 설명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믿어왔던 우리의 관념을 뒤집고친화력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다정한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책이다뿐만 아니라 정재승 뇌과학자 역시 최근 몇 년간 지성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협력우정과 환대공감과 이타주의즉 다정함이라 밝히며 다정함이 우리의 본성임을 강조한 바 있다마찬가지로 책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에서도 다정함이야말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진화하고 적응된 동물의 본능임을 주장한다.

 

 

 

  사실 다정함이 인류의 진화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다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토록 이타심을 강조하는 연구와 이를 분석한 저작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정재승 뇌과학자가 주지하듯 약육강식과 비즈니스의 정글로 변해버린 경쟁의 세계 속에서 이타주의에 대한 주목이 반동적으로 나타난 것일까어쩌면 이타성의 욕구와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와 우리사회지구의 안녕에 관한 열쇠를 찾을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적응적이며 합리적이고 때로는 재미를 선사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다정함의 특별한 힘을 그 무엇보다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왜 인간은 냉담한 방관자가 되었다가도

경이로운 거인이 되길 자처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과 이타적 욕구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매력적인 책이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인 스테퍼니 프레스턴은 부지런한 어미 쥐에 관한 한 실험으로부터 출발한다. 1969년 생리심리학자인 윌슨크로프트에 의해 진행된 실험으로어미 쥐가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회수하는 동기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먹이를 받지 않고 심지어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새끼 쥐를 계속해서 구조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다저자는 윌슨크로프트의 실험을 통해 일찍이 새끼를 돌보는 포유류 사이에서 새끼를 회수하려는 기본 욕구가 발달했음을 밝힌다하지만 이는 온전히 타고난 본성이라기보다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 유전자 공유를 촉진하기 때문에(혹은 부분적 혜택적응적 행동인 것으로 분석한다다시 말해 무력한 아이를 회수하려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와 뇌 그리고 몸속에 내재된 유전적 유산으로이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상대가 낯선 사람이거나 심지어 다른 종일 경우라도 이타적 욕구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이타적으로 행동할 때 대부분 적은 비용이나 진귀한 대가를 치르지만사회집단 속 개개인이 유전자를 공유하거나 나중에 우리를 돕게 된다면 분명 그 대가를 뛰어넘는 적응 혜택도 존재할 것이다우리의 선행을 다른 사람들이 목격하고(직접 상호성), 그것을 높이 평가한 누군가나 피해자가 우리 또는 우리 친족에게 보답해올(간접 상호성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돌봄본능에 의존하는 협동 정신에 의해 집단 전체도 부분적으로나마 혜택을 얻는다이타적 반응은 장기적 스트레스나 고통이 건강집단 화합포식 위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도 한다게다가 누군가를 도우면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그러므로 직접 상호성의 도움을 베푸는 성향은 대가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실질적인 혜택을 준다. / 170p

 

 

 




 

 

 

 

  그렇다면 누군가는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사람이나 상어의 공격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로부터 영웅적인 이타심을 발휘하는데왜 누군가는 피해자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하거나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방관하는 것일까저자는 사실 이타적 욕구는 유전자와 어린 시절 및 가정환경개인차상황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여러 요인을 반영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이타적 반응이 고정행동패턴이라 하더라도 아무 상황에서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새끼 돌봄 맥락과 관련 있는 신호자극에 의해 방출되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이타적 반응 모델이란 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반응을 촉진하는 피해자의 특징과 반응을 촉진하는 목격자의 특징이 이타적 반응 가능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타적 반응 모델에 따르면 우리는 무력한 아기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일 때 돕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한다즉 어리고취약하고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에게 더 반응한다는 말이다비록 어른이라 할지라도 유형성숙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더 쉽게 도움을 유발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또한 피해자가 혹시라도 나중에 시간을 낼 수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도움을 요구할 때 가장 강하게 동기화된다여기에 아기의 울음소리 같이 강한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는 목격자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나이든 배우자나 병약한 친척을 돌보는 사람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등 돌봄 제공자들이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환자의 요구에 너무 익숙해졌거나 기운이 소진되는 상황에 있을 때는 환자의 만성적인 요구가 돕기 욕구를 꺾을 수도 있다. (이런 일상적 요구는 건강한 생활을 위해 필요하지만엄밀히 말해서 전동차가 점점 다가오는 선로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일처럼 즉각적인 요구는 아니다결과적으로 이런 덜 긴급한 요구는 동일한 반응욕구를 촉발하지 않는다.

(만성적인 문제들이 이타적 욕구를 제한하지만 우리가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예를 들어장기 요양시설에서는 무력하고 쇠락해지고 버림받았다고 느낄 환자들의 관점에 정기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일상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일의 공로를 사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솔직히 불쾌한 일이고사랑하는 가족들도 집에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필수불가결하다면분명 높은 급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 243p

 

 

고통은 취약성과 요구에 강하게 연결된 신호로 진화했고그 신호는 목격자에게 행동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할 때도 종종 자신의 고통을 숨긴다그렇게 고통을 숨기면 나약함이나 취약함을 연상시키는 것은 피할 수 있지만피해자와 목격자 모두 불리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감정이 진화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때때로 감정이 제 일을 하도록 놔둔다면 궁극에 가서는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273p

 

 

 

  반면 이타적 반응 모델에서 가장 강렬한 목격자 특성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 한다우리의 기부가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믿음 아래에서 제공하게 되는 보다 일반적인 유형의 돕기 행동에는 자기효능감도 영항을 미친다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은 우리가 이타심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고 사회에 잘 적용한다면 그 어떤 문제라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중대하고 어려운 문제일지라도개인의 작은 행동을 통해 구체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 속에서 이타심이 잘 발현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도와야 할 피해자가 누구인지어떤 방법으로 도와야 할지 실질적으로 인지할 수 있을 때 자기효능감과 만족감을 더 많이 느낀다따라서 큰 문제일수록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과 자기효능감이 감소하므로 사람들의 의욕은 감소한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이끌리도록 진화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큰 문제일수록 돕고 싶은 욕구를 덜 느끼는 것이다. / 297p

 

 

아동의 친사회적 행동을 조장하는 요인을 살핀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성실하거나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하거나소중한 사회적 파트너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는 권위 있는 양육 태도를 지닌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더 잘 돕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옳은’ 일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공감해주고 보살펴주고 따뜻한 행동의 본을 보이는 부모들은 거칠고 엄격하거나 냉혹한 부모들보다 자녀를 더 친사회적인 아이로 기른다. / 308p

 

 

 




 

 

 

 

  우리의 다정함은 진화적으로 유전자와 뇌 속에서 새겨진 유산이면서동시에 이타적 반응 모델을 활용하면 타인을 이해하고 이타적인 행동이 보다 더 발현될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이다내 안의 선한 의지를 읽고 반응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지금우리가 다정함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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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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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함이 언어의 무게를 배반하는 순간유머가 발생한다!

그래서고급 한국어는 언제 내주실 건데요

 

 

 

 

  얼마 전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복합감정문화라는 특수성을 지닌 이들이라 진단한다일례로 한 외국인 교수가 그에게 섭섭하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한다사전에 따르면 이를 sorry 혹은 disappointed로 정의하는데사실 이건 애석하다고 표현하기도 마땅치 않고실망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어쩐지 과하며 친밀한 관계 속에서 상대가 나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 못내 아쉽고 서운한…… 그러니까 한국인인 우리로서도 이 미묘한 뜻까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외국인 교수는 결국 난해한 표정으로 그렇게 돌아갔고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김경일 교수를 만났을 땐 이번에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또 한번 물었다고 한다. “섭섭하다까진 어떻게든 이해하겠는데그럼 이건 뭐야시원섭섭하다?” 이거 참.

 

 

 

  그러고 보니 중급 한국어』 속에서 글쓰기 강의를 맡은 지혁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들이 보입니다인데요미국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 단어를 처음 알려 주었을 때 학생들이 보였던 반응이 생겨납니다간단한 단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냐는 거였죠.” 우리가 이렇게나 복잡하고 예민하고 복합적인 정보를 지닌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니그러니 이 이 고단할 수밖에섭섭하다 못해 시원섭섭하기까지 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 땅덩어리에서 말이다그래서 또 다시 감탄하게 되는 것은그 수많은 값을 지닌 언어를 찾고 고르고 골라 지우고 복원하기를 반복하며 오랜 부침 끝에 한 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인간들인가 하는 점이다돈 텔벗 쇼좋은 글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음으로써 말하지 않고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에좋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그 끝없는 분투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제가 너무 복잡하게 말했나요이 책당신의 글이 참 좋다고 말하려고 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즉 현재의 조이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일 거예요어린 소년을 화자로 선택해서 조이스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닙니다사실 관계의 확인도 아니죠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통찰깨달음더 나아가서는 내 과거에 대한 해석과 논평일 겁니다커넥팅 더 닷츠인생이란 점을 선으로 잇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점과 점을 잇는 선선을 그리는 것그 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는 것.

…… 여러분의 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 62p

 

 

 

  『중급 한국어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간강사이자 소설 작가인 문지혁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소설은 지혁이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를 해독하고그에 따라 자신의 글을 써봄으로써 한 권의 책을 완성해가는 수업의 커리큘럼에 따라 진행된다강의의 첫 번째 시간에서는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탐독해보기로 한다이는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이 동명인 것처럼소설 중급 한국어가 본질적으로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일러주는 신호가 된다실제 글쓰기의 과정과 기술’, ‘유년’, ‘사랑’, ‘대화’, ‘일상’ 등에 이르기까지 글쓰기 강의 속 커리큘럼들이 지혁의 삶 곳곳에서 긴밀하게 연결되는데이는 마치 글쓰기의 실전편 같은 인상을 준다.

 

 

 

소설이라는 실험실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 / 93p

 

 

이건 카프카 생전에 발표되었던 변신의 표지입니다이 작품이 출간될 때 카프카는 출판사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해요절대로 벌레의 모습이 보여서는 안 된다고여기서도 그렇죠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고(이미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죠.)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입니다아무것도 없어요아니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보이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정말로 무서운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죠. (진정한 공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텅 빈 공간에서 비롯됩니다.

한 가지 빼먹었네요.

백색의 종이……. / 132p

 

 

 




 

 

 

 

  지혁은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갔다가 반원을 그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마치 여행을 하듯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가처음 떠났던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구조다하지만 정확하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도착 지점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온 우리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렇다면 돌아온 A는 무엇이 될까. B? C? 아니면 그대로 A? 지혁은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것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의심한다어째서 내 삶은 A는커녕 A-밖에 될 수 없냐고혹은 지혁이 스스로를 애매한 사람이라 정의한 것처럼, A와 A′ 그리고 A-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애매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거냐고고전적인 소설 창작론의 관념으로부터 배반된 삶그 안에 깃든 아이러니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다는데정말 그럴까 하는 자문그렇게 관념은 관념으로만 남아 기망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 무렵소설은 뜻밖에도 지혁의 딸 은채의 천진난만함을 통해 그곳으로부터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정형화된 언어 너머에 존재했던 ‘~’지금은 오래되고 익숙한 자장가 섬집 아기를 향한 애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3개월간 주구장창 들어야 할지 모를 BTS의 다이너마이트」 에나 마음 단단히 먹을 때라고알고 보면 관념의 밖’ 그 어디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소설은 가장 미숙하지만 순수한 은채를 통해 보여준다.

 

 

 

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말했잖아요?

우리는 A에서 A가 되었으니까요. / 47p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글쓰기도 결국은 반복입니다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되풀이 그 자체예요때로 우리는 희망에 도취해 반복을 벗어나거나절망에 빠져 되풀이를 그만두곤 합니다하지만 인생이 언제 그렇던가요오늘이 좋았다고 해서 내일이 찾아오지 않거나어제가 최악이었다고 해서 오늘 역시 그대로 끝나 버리지는 않죠어떤 날을 보냈든 내일은 또 찾아오고기어코 태양은 다시 떠오릅니다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요그러니 희망을 붙들지 말고 절망에 물들지 마세요그냥 하는 겁니다우리가 그냥 살듯이. / 166p

 

 

 




 

 

 

 

  천진난만함이 언어의 무게를 배반하는 순간그때 풉 하고 터져 나오는 유머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소설이다자가 격리로 인해 줌 강의를 하던 도중 은채가 우는 바람에 잠시 강의가 중단되자갑자기 모니터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스무 개의 얼굴과그들의 다정한 목소리와동아줄처럼 위로 줄지어 올라가던 작고 귀여운 이모티콘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광경을 독자에게 선물하는 이 작가의 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그래서고급 한국어는 언제 내주실 건데요? (고급이라니어쩐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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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왔습니다
조피 크라머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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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 닿지 못할 죽은 연인을 향한 메시지가 한 낯선 남자에게 전해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

읽는 내내 가슴이 설레고 한 번 손에 쥐면 내려놓을 수 없는 소설!

 

 

 

 

클라라_

 

잘 잤어사샤크로와상 먹을래?”

클라라는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로 갓 내린 커피 향을 만족스럽게 음미한다짧게 정돈된 까칠까칠한 벤의 수염이 자신의 쇄골에 닿으면서 깨어나는 아침을 무척이나 좋아했음을 떠올린다하지만 눈을 뜨고 나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그리고 곧잔인한 현실로 돌아온다다시는 클라라의 곁에 나타나지 않을벤이 없는 세계로벤이 가족들 앞에서 클라라에게 프러포즈를 했고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두 사람을 힘껏 끌어안으며 축복해준 게 불과 몇 주 전이었는데… 그런데 추락사로 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스벤_

 

스벤은 늘 자신이 운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3년 전부터 일생이 자꾸만 삐걱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경제부 기자라는 커리어에서 있어서만큼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존경과 칭찬을 받고 있지만 그 외 다른 일들에서는 좀처럼 활기를 느낄 수 없었다피오나와 헤어진 일 때문에 무기력에 빠진 건가그는 스스로 문제를 제어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고심지어 피오나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최면을 걸 듯 되뇌기도 했지만어떻게 하면 삶에 변화와 활기를 일으킬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린다이름 모를 낯선 번호다.

 

 

 

자기야도대체 어디 있어잘 지내는 거야?

당신은 곁에 없지만 난 오늘 처음으로 다시 웃었어.

영원히 사랑해당신의 사샤가.

 

 

 



 

 

 

 

  소설 메시지가 왔습니다는 사랑하는 연인을 추락사로 잃고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 속에서 헤매던 여주인공이 죽은 연인의 전화번호로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을 보내기로 하는 데서 출발한다클라라는 상담 치료와 함께 놓고 있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나가지만불쑥불쑥 사무치도록 벤이 그리울 때면 휴대전화를 꺼내 하릴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그러다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되어버려서벤에게 메시지를 보내 연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한편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스벤은 새로 바꾼 휴대전화로 매일 같이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하기 시작한 날부터 마음이 뒤숭숭해진다처음에는 지인 중 누군가가 스벤을 놀리려고 보낸 것이겠거니 했지만점차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우울감과 마음을 다한 애정에 이입된다대체 사샤라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그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궁금해진 스벤은 이제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자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문자를 읽고 나자 스벤은 그것이 자신에게 온 문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아무래도 가망 없는 로맨티스트가 메시지를 잘못 보낸 것 같았다그럼에도 내용에는 공감했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바보가 된다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무뎌진다. / 28p

 

 

연인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한 젊은이의 인생이 비극적인 사고 한 번으로 망가져버린 사건보다 더 처참한 일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을 나누던 단 한 명의 연인에 대해 사실상 거의 아는 게 없었다는 느낌보다 비참한 기분이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불안을 겪었던 걸까? / 33p

 

 

 



 

 

 

 

  『메시지가 왔습니다는 독일 아마존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2016년 그해의 독일 영화 흥행 순위 9위를 기록한 바 있는 작품이다여기에 소니 픽처스가 리메이크해 2023년 전 세계에 개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결코 가 닿지 못할 죽은 연인을 향한 메시지가 한 낯선 남자에게 전해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이 기적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설레는 봄처럼 다가온다주요 스토리는 이렇듯 사랑을 잃은 여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가 운명처럼 이끌리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곁에 있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믿음으로부터 상처를 회복하고 한 발 한 발 새로운 꿈을 성취함으로써 삶의 희망을 얻어가는 성장 이야기가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중요한 건 그런 신호가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네가 그것이 신호라는 걸

알아보느냐 그리고 그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겠니?” / 163p

 

 

 

  읽는 내내 가슴이 설레고 한 번 손에 쥐면 내려놓을 수 없는 페이지 터너의 매력까지 갖춘 소설이다덕분에 이 작품이 어떻게 영상화될지 벌써부터 무척 기대가 된다이 책을 읽고 오늘은 클라라가 그랬던 것처럼 가 닿기 힘들 것 같은 마음을 메시지에 담아 전해보시길이 따뜻한 봄날에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고 있는 기적을 마음껏 품에 안아보시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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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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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읽는 이야기!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조금씩 녹아내리던 빙하가 어느 순간 빠르게 무너지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해수면이 상승하자 육지에 살던 생명체들은 발을 디디고 살 곳을 잃었고빙하 안에 있던 바이러스가 바다를 떠다니다 육지로 넘어와 생존을 더욱 위협했다하지만 그도 잠시대부분의 땅이 이내 바다에 잠겼다해일에 풍화되어 남은 땅들마저 깎여 나갔고 육지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물에 잠긴 지구인류에게 닥친 재앙나는 언젠가는 마주할 것 같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일찍이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환상은 현실보다 진실을 보는 인식 방법이다.

판타지의 비-현실은 초-현실이고리얼리즘보다 폭넓은 모습으로

펼쳐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판타지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해설 미래를 색칠하는 파국과 환상 중에서 253p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기후위기와 해수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육지가 바다로 뒤덮이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집이다작가 김청귤은 인류에게 닥친 재앙 그 이후의 시간즉 생존을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인류의 이야기를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바다가 육지를 잠식하기 시작한 뒤 맞은 전염병과 대혼란의 시기에서부터 인류가 해저도시를 건설하고바뀐 환경에 따라 좀 더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면서 마침내 물속의 신인류만이 살아남아 바다로 환원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그려나간다.

 

 

 

  첫 번째 소설인 불가사리는 육지가 바다에 잠기기 시작하자 인류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바뀐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그러던 와중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다사람들이 바다에 잠겨 살아갈 곳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죽어가자연구원과 동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신종 바이러스 연구에 활용할 샘플을 채취하는 데 혹등고래의 유전자를 지닌 고야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몰아붙인다그렇게 고야의 희생으로 재생력이 뛰어난 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얻으면서 일단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만심각한 피부 발진이라는 부작용과 함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점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려는 건지다시 바다로 회귀하고픈 불가사리의 본능인지사람들이 홀린 듯 바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다불가사리의 재생력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인류의 과욕이미 인류는 멸망과 재앙을 맛보았으면서도 여전히 이기심은 끝이 없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또 한번 그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선택한 결과의 값들을 직시하게 한다.

 

 

 

이록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현관을 향해 천천 걸어갔다이록은 개구리의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났다그래서 어릴 때는 손과 발에 물갈퀴가 있었고 피부도 녹색이었다생물의 특성이 기질이나 기능으로 반영된 게 아니라 신체에 발현된 건 드문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록은 아이들 사이에서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미지의 바이러스 때문에 병에 걸려 이상하게 태어났다며 따돌림을 당했다그런 이록의 특성에 아랑곳없이 곁에 있어준 게 나였고. / 불가사리」 중에서 15p

 

 

단일 동물 개체와 기존 인간여러 동물 개체와 인간개체와 개체의 유전자 편집 후 태어난 변이 개체와 인간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지금도 인간은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16p

 

 

내 생각에 답은 간단했다유전자 편집을 통해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는 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제어할 수 없는 세포의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우리는 바다가 아니라 스스로를살고자 부렸던 욕심을 원망해야 했다땅이 점점 줄어든 건 인간 탓이 맞았지만우리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게 이미 늦은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니 억울한 면도 있긴 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라고 정당화하며 신이 된 것처럼 동물의 유전자를 고르고 잘라내고 이어 붙이고 버리는 건 인간들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22p

 

 

 




 

 

 

 

  김청귤의 단편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인류가 생존의 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해 신인류인 수인(水人)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이다불가사리」 속에는 혹등고래 세포와 결합한 고야와 문어 세포와 결합한 해수 사이에서 태어난 지화가 등장한다바다와 함께 춤을과 파라다이스에서는 돌고래와 같은 바다 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인(水人)해저도시 배달부에서는 물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헤엄칠 수 있어 바다의 해저도시인 돔과 돔을 오가며 식량이나 물자를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등장한다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는 해저도시의 가장 큰 외벽인 돔을 청소하는 청소부가 주인공이다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바다 생활에 적응하고 수중 호흡까지 가능하며바다 생태계와 어우러진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는 바다에서 생존에 유리한 형태로 태어났지만 애석하게도 별종으로 취급되거나 오히려 인간에게 이용당한다개구리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난 이록은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따돌림을 당하고(불가사리), 돔에 입성하지 못해 작은 배에 의지해 삶을 연명하던 엄마는 파랑이로 하여금 바닷속에서 값비싼 물건을 찾아내 크루즈의 남은 자리에라도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다(파라다이스). 한편에서는 바다 상어와 고래를 잡아먹기 위해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파랑이의 생포해 그녀의 목소리를 이용한다(파라다이스). 돔 내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고작 3년 정도의 수명에 불과한 돔 벽 청소부들을 만들어 공장의 로봇처럼 이용하다 폐기해버린다(해저도시 다코야키). 멸망과 재앙으로 몰락하는 와중에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삼으면서설령 치졸하며 이기적인 방식이라 할지라고 생존에의 열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우리가 특별한 거야?”

특별…… 그래특별해생긴 건 비슷하지만우리만 물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그런데 특별하다는 건 인간의 기준에서는 보통이 아니라는 거고다르다는 뜻이기도 해그들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몰라물 밖에 사는 배 인간은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고 우리처럼 특별한 존재를 보면 괴롭힐지도 몰라게다가 파랑이는 돌고래나 상어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있지배 인간들이 알면 신기해서 잡아가려 할 수도 있어그러니까 배를 탄 인간을 보면 멀리 피해야 해알았지?” / 바다와 함께 춤을」 중에서 90p

 

 

스노볼을 처음 봤을 때 엄마에게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사냥할 때 쓰는 거냐고 묻자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장식품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는 물건이라고 했다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예쁜 것땅이 물에 잠기기 전에는 저렇게 예쁜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원한다면 그 중 많은 것을 골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영상 속의 세계를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나는 무서웠다저런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모든 땅이 물에 잠긴 걸 텐데.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24p

 

 

 



 

 

 

 

  그러나 김청귤은 바다와 가장 친밀한 존재들에게망해버린 세상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는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희망을 엿본다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맞고 심각한 부작용을 얻은 이록을 지화는 아무런 저항 없이 끌어안는다(불가사리). 바다와 함께 춤을」 속의 는 그물에 갇힌 바다 생물들의 자유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뒤 스스로 바다가 되려 한다인간들에게 생포된 파랑이를 구한 건 배에서 가장 작고 힘없는 연희다(파라다이스). 예비 해저 배달부 보름이를 다시 유전자 조작에 이용하려는 엄마로부터 구해낸 건 같은 수인이자 동료인 배달부 언니들이다(해저도시 배달부). 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 짤막한 인생동안 도구처럼 이용되는 돔 벽 청소부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타코야키를 만들어 먹이는 루나 역시 마찬가지다그렇게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마리아 언니는 배달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필요한 것들을 배달했다메이린 언니는 다들 염치없다며 욕을 하면서도 배달부가 없으면 사는 게 힘들어질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이 도시의 삶을 버티지 못한 배달부 몇몇은 다른 도시로 떠나기도 했지만대부분 이 도시를 고향으로 여기며 목숨을 걸고 바다를 누볐다.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67p

 

 

아니그런 거 아니에요다른 사람은 몰라도문이 맛있는 음식을 따뜻할 때 먹으면 좋겠어서 그래요.”

루나의 웃는 얼굴도 다정한 말도 다 좋아서 혹시 이게 꿈이라는 건가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나는 꿈을 꿀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는데도. / 해저도시 타코야키」 중에서 203p

 

 

 

  지구 끝에 온실을 세웠던 김초엽이 있었고랑과 고고가 누볐던 사막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천선란이 있었다그리고 이제파랑이가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을 바다로 문을 연 김청귤이 여기에 있다지화를파랑이를보름이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만 있어도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달라질 수 있다그걸 알려준 김청귤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나는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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