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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402_11.jpg)
인간의 이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읽는 이야기!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 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씩 녹아내리던 빙하가 어느 순간 빠르게 무너지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 해수면이 상승하자 육지에 살던 생명체들은 발을 디디고 살 곳을 잃었고, 빙하 안에 있던 바이러스가 바다를 떠다니다 육지로 넘어와 생존을 더욱 위협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대부분의 땅이 이내 바다에 잠겼다. 해일에 풍화되어 남은 땅들마저 깎여 나갔고 육지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물에 잠긴 지구, 인류에게 닥친 재앙. 나는 언젠가는 마주할 것 같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일찍이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환상은 현실보다 진실을 보는 인식 방법이다.
판타지의 비-현실은 초-현실이고, 리얼리즘보다 폭넓은 모습으로
펼쳐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판타지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 해설 | 미래를 색칠하는 파국과 환상 중에서 253p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기후위기와 해수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육지가 바다로 뒤덮이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집이다. 작가 김청귤은 인류에게 닥친 재앙 그 이후의 시간, 즉 생존을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인류의 이야기를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바다가 육지를 잠식하기 시작한 뒤 맞은 전염병과 대혼란의 시기에서부터 인류가 해저도시를 건설하고, 바뀐 환경에 따라 좀 더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면서 마침내 물속의 신인류만이 살아남아 바다로 환원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그려나간다.
첫 번째 소설인 「불가사리」는 육지가 바다에 잠기기 시작하자 인류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바뀐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던 와중,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바다에 잠겨 살아갈 곳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죽어가자, 연구원과 동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신종 바이러스 연구에 활용할 샘플을 채취하는 데 혹등고래의 유전자를 지닌 고야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몰아붙인다. 그렇게 고야의 희생으로 재생력이 뛰어난 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얻으면서 일단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만, 심각한 피부 발진이라는 부작용과 함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점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려는 건지, 다시 바다로 회귀하고픈 불가사리의 본능인지, 사람들이 홀린 듯 바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다. 불가사리의 재생력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인류의 과욕, 이미 인류는 멸망과 재앙을 맛보았으면서도 여전히 이기심은 끝이 없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또 한번 그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선택한 결과의 값들을 직시하게 한다.
이록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현관을 향해 천천 걸어갔다. 이록은 개구리의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났다. 그래서 어릴 때는 손과 발에 물갈퀴가 있었고 피부도 녹색이었다. 생물의 특성이 기질이나 기능으로 반영된 게 아니라 신체에 발현된 건 드문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록은 아이들 사이에서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미지의 바이러스 때문에 병에 걸려 이상하게 태어났다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이록의 특성에 아랑곳없이 곁에 있어준 게 나였고. / 「불가사리」 중에서 15p
단일 동물 개체와 기존 인간, 여러 동물 개체와 인간, 개체와 개체의 유전자 편집 후 태어난 변이 개체와 인간.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지금도 인간은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16p
내 생각에 답은 간단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는 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제어할 수 없는 세포의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바다가 아니라 스스로를, 살고자 부렸던 욕심을 원망해야 했다. 땅이 점점 줄어든 건 인간 탓이 맞았지만, 우리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게 이미 늦은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니 억울한 면도 있긴 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라고 정당화하며 신이 된 것처럼 동물의 유전자를 고르고 잘라내고 이어 붙이고 버리는 건 인간들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 「불가사리」 중에서 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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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귤의 단편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인류가 생존의 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편집해 신인류인 수인(水人)를 만들어냈다는 설정이다. 「불가사리」 속에는 혹등고래 세포와 결합한 고야와 문어 세포와 결합한 해수 사이에서 태어난 지화가 등장한다. 「바다와 함께 춤을」과 「파라다이스」에서는 돌고래와 같은 바다 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인(水人)이, 「해저도시 배달부」에서는 물속에서 마음껏 숨 쉬고 헤엄칠 수 있어 바다의 해저도시인 돔과 돔을 오가며 식량이나 물자를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등장한다. 「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는 해저도시의 가장 큰 외벽인 돔을 청소하는 청소부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바다 생활에 적응하고 수중 호흡까지 가능하며, 바다 생태계와 어우러진 삶을 살아간다.
신인류는 바다에서 생존에 유리한 형태로 태어났지만 애석하게도 별종으로 취급되거나 오히려 인간에게 이용당한다. 개구리 유전자와 결합해 태어난 이록은 괴물이나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따돌림을 당하고(「불가사리」), 돔에 입성하지 못해 작은 배에 의지해 삶을 연명하던 엄마는 파랑이로 하여금 바닷속에서 값비싼 물건을 찾아내 크루즈의 남은 자리에라도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다(「파라다이스」). 한편에서는 바다 상어와 고래를 잡아먹기 위해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파랑이의 생포해 그녀의 목소리를 이용한다(「파라다이스」). 돔 내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고작 3년 정도의 수명에 불과한 돔 벽 청소부들을 만들어 공장의 로봇처럼 이용하다 폐기해버린다(「해저도시 다코야키」). 멸망과 재앙으로 몰락하는 와중에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생존의 도구로 삼으면서, 설령 치졸하며 이기적인 방식이라 할지라고 생존에의 열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우리가 특별한 거야?”
“특별…… 그래, 특별해. 생긴 건 비슷하지만, 우리만 물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특별하다는 건 인간의 기준에서는 보통이 아니라는 거고, 다르다는 뜻이기도 해. 그들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몰라. 물 밖에 사는 배 인간은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고 우리처럼 특별한 존재를 보면 괴롭힐지도 몰라. 게다가 파랑이는 돌고래나 상어 친구들이랑 대화할 수 있지? 배 인간들이 알면 신기해서 잡아가려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배를 탄 인간을 보면 멀리 피해야 해. 알았지?” / 「바다와 함께 춤을」 중에서 90p
스노볼을 처음 봤을 때 엄마에게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사냥할 때 쓰는 거냐고 묻자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장식품. 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는 물건이라고 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 예쁜 것. 땅이 물에 잠기기 전에는 저렇게 예쁜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원한다면 그 중 많은 것을 골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영상 속의 세계를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무서웠다. 저런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모든 땅이 물에 잠긴 걸 텐데.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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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청귤은 바다와 가장 친밀한 존재들에게, 망해버린 세상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는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희망을 엿본다. 불가사리 유전자가 담긴 항체를 맞고 심각한 부작용을 얻은 이록을 지화는 아무런 저항 없이 끌어안는다(「불가사리」). 「바다와 함께 춤을」 속의 ‘나’는 그물에 갇힌 바다 생물들의 자유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뒤 스스로 바다가 되려 한다. 인간들에게 생포된 파랑이를 구한 건 배에서 가장 작고 힘없는 연희다(「파라다이스」). 예비 해저 배달부 보름이를 다시 유전자 조작에 이용하려는 엄마로부터 구해낸 건 같은 수인이자 동료인 배달부 언니들이다(「해저도시 배달부」). 「해저도시 타코야키」에서 짤막한 인생동안 도구처럼 이용되는 돔 벽 청소부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타코야키를 만들어 먹이는 루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들로부터 다시 세우는 세계, 이것이 김청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멸망 이후의 미래다.
마리아 언니는 배달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필요한 것들을 배달했다. 메이린 언니는 다들 염치없다며 욕을 하면서도 배달부가 없으면 사는 게 힘들어질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 이 도시의 삶을 버티지 못한 배달부 몇몇은 다른 도시로 떠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 도시를 고향으로 여기며 목숨을 걸고 바다를 누볐다. / 「해저도시 배달부」 중에서 167p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이 맛있는 음식을 따뜻할 때 먹으면 좋겠어서 그래요.”
루나의 웃는 얼굴도 다정한 말도 다 좋아서 혹시 이게 꿈이라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꿈을 꿀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는데도. / 「해저도시 타코야키」 중에서 203p
지구 끝에 온실을 세웠던 김초엽이 있었고, 랑과 고고가 누볐던 사막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천선란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파랑이가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을 바다로 문을 연 김청귤이 여기에 있다. 지화를, 파랑이를, 보름이를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만 있어도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달라질 수 있다. 그걸 알려준 김청귤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나는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