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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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생의 길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근사한 가면으로 치장되는 인간의 비겁함위선욕망의 허울들을 관조적이면서 성숙한 시선으로 엮어나간 모파상의 대표작!

 

 

 

 

  독서모임 책으로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선정해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이 기시감은 대체 뭘까플롯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배경이 낯설지 않다고개를 갸웃거리며 3분의 정도의 내용을 읽어나갔을 즈음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간에 써왔던 리뷰들을 모은 블로그에서 모파상을 검색했다아니나 다를까 몇 해 전에 이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그런데 왜 내가 기억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보니당시에 읽은 책은 어느 인생(백선희 옮김새움)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얼핏 보면 어느 인생과 여자의 일생은 한 작품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거리감이 있는 것이어서 나는 어째서 이토록 다른 제목을 붙였을까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이 작품에 저자가 붙인 제목은 ‘Uni vie’, ‘어느 인생’ 혹은 어떤 일생’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그만큼 모파상이 제목에서 고유명사를 배제한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텐데 다수의 출판사가 여자의 일생을 관습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자칫 한 여주인공의 개별적 인생을 여자의 일생으로 일반화시켜버릴 수 있는 해석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건 아마도 잔느라는 여성의 일생을 중심으로당대 여성들의 공허하고도 고독한 일상에 깃든 우수를 담아내고자 한 모파상의 통찰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제목이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그는 곧잔느를 통해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볼 것인가를 독자로 하여금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반면 어느 인생이란 제목으로 바라보자면특정 시대 속의 여성들로 이야기를 한정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이고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삶 전체를 조망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착오 덕분에 한 작품을 두 번 읽게 된 나는 첫 독서에서는 여주인공의 기구한 운명과 불행에 몰입하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두 번째 독서를 통하여 좀 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계기가 얻었다이래서 책은 여러 번 읽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가보다심심한 듯 음울한 느낌이 단조롭게 펼쳐지는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캐릭터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살아 숨 쉬시는 듯하고마침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로 귀결되는 장면은 인생이라는 모진 풍파 속에서 건져 올린 감회가 이토록 생생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소설은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던 잔느가 비슷한 계층의 자작인 쥘리앵을 만나 불행으로 점철된 결혼 생활을 하다 점차 쇠락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중심 서사는 주인공인 잔느를 따라 연대기적으로 흘러가지만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세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모파상의 디테일이 단연 돋보인다비만 때문에 안락의자에 붙박여 지내게 되자 과거에 자신이 가장 예뻤던 시절에 주고받았던 여러 비밀 편지와 몽상에 빠져 지내는 남작 부인,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크게 산 것도 없는데 오늘도 100프랑이나 써 버렸단 말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도 현실 감각이 없는 특유의 선량함 때문에 돈이 새어 나가는 줄도 모르는 남작극도로 인색하며 가족에 대한 헌신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앞세우는 쥘리앵아무도 존재 자체를 신경을 쓰지 않아 살아 있는 가구 취급을 받는 리종 이모 등이 그러하다.

 

 

 

얇은 옷 속으로 억센 골격이 두드러져 보이는 키 큰 어부 아낙네들이 마지막 어부가 출발할 때까지 머물러 있다가왁자지껄하게 캄캄한 거리의 깊은 잠을 깨우면서괴괴한 마을로 돌아갔다.

남작과 잔느는 우두커니 서서 그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지만너무 가난해서 평생고기도 먹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 138p

 

 

그녀는 바늘로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돈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그런 행위가 천하고 추하게 보였다. “돈이란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란다.”라는 엄마의 말을 그녀는 얼마나 자주 듣고 자랐던가그런데 이제 쥘리앵이 그녀에게 거듭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함부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을 고칠 수 없겠소?” 그리고 임금이나 상품 가격에서 돈 몇 푼을 깎을 때마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 잔돈푼을 굴려 넣으면서 미소를 띠고 선언하듯 말했다. “작은 개울물이 큰 강을 이루는 법이거든.” / 142p

 

 

 

  소설 속 인물들은 모파상이 당대의 풍속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쓰임새도 없는 가구들로 넘쳐나는 넓은 거실 속에서 프랑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귀족 친척들에게 편지나 쓰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격식을 차리는 일에 여념이 없는 귀족들은, 19세기 국가 체제의 변화와 귀족 시대의 몰락 앞에서 더없이 무력한 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인어른이 재산을 낭비해서 가진 것을 탕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런 처지에 빠지진 않았겠죠장인어른이 파산한다면 누구 잘못이겠어요?” 와 같이 장인을 향한 쥘리앵의 맹렬한 일침은 현실감 없는 귀족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이 고장 계집애들치고 임신하지 않고 결혼하는 애는 없답니다.” 고을의 처녀들을 싸잡아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쥘리앵의 간통을 정당한 것으로 무마하는 신부의 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성폭력의 역사를 들추어보게 한다이렇게 소설은 근사한 가면으로 치장되는 인간의 비겁함위선욕망의 허울들을 관조적이면서 성숙한 시선으로 엮어나간다이것이 자칫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소설이 지닌 남다른 힘이다.

 

 

 

남작의 맹렬한 기세에 놀란 쥘리앵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쥘리앵이 좀 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그렇지만 1500프랑이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계집애들은 모두 결혼하기 전에 애를 낳아요그러니 그게 누구 자식이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2만 프랑 가치가 있는 농장 하나를 준다면우리 내외가 입는 손해는 고사하고 세상 사람 모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얘기해 주는 셈이라고요적어도 우리 가문과 우리 위치를 생각하셔야죠.” / 188p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거야.” 누군가가 그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끼어들었다그러자 거지 영감이 무섭게 화를 냈다. “왜 그 편이 낫다는 거야나는 가난하고그자들은 부자라서지금 저들 꼴을 보라고…….” 누더기를 걸친 채수염은 얼크러지고 밑 빠진 모자 밖으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더러운 꼴을 한 거지는빗물을 줄줄 흘리고 덜덜 떨면서 갈고리처럼 굽은 그의 지팡이 끝으로 두 사람의 시체를 가리키며 선언했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 모두 평등하다고.” / 265p

 

 

잔느는 순간순간 되뇌는 것이었다. “나는 평생 운이 없었어.” 그러면 로잘리가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면품팔이를 하러 가려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했다면 어쩔 뻔했어요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그런 사람들은 너무 늙어 일을 못 하면비참하게 죽는답니다.”

잔느는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아들에게 버림받아혼자뿐이라는 걸 좀 생각해 봐.” 그러자 로잘리가 무섭게 화를 내며 말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생각해 보세요군대에 간 자식들도 있고미국에 가서 사는 자식들도 있어요.” / 338p

 

 

 




 

 

 

 

  『여자의 일생』 이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다양한 계절을 넘나드는 노르망디의 풍경과 소설의 운명이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찬란한 초록빛 자연 속에서 생동하는 잔느와 음울한 잿빛 전원에서 자신의 운명을 비감하는 잔느의 대비는 모파상의 서정적인 문체와 한 몸을 이룬다때문에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생의 허무와 고독비애는 또 다시 무심코 꽃망울을 터뜨리는 계절이 찾아올 때쯤이면 얼마간의 희망을 기약하게 하며 우리를 계속에서 삶의 길로 이끈다그렇게 소설은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생의 담담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읽어도 좋았다읽는 내내 우울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다그나저나 모파상당신은 왜 여자의 마음을 여자보다도 잘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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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교실 거꾸로 공부 : How to flipped learning
정형권 지음 / 성안당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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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관행을 뒤집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공부법을 제안하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는 교사와 학교부모 안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산업 사회가 필요로 하는 표준형 인간을 양성하기에 적합했던 현 교육 시스템은 21세기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지금은 변화가 빠른 시대 속에서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자기주도적 학습의 역량이 필요한 때이다이미 교육 현장에서도 자기주도적 배움이 일어나도록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여전히 기존의 교실 수업과 괴리가 큰 것이 사실이다그렇다면 새 시대에 걸맞은 교육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거꾸로 교실 거꾸로 공부는 거꾸로 교실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21세기 아이들에게 걸맞은 교육법을 찾고 있는 책이다저자는 수가타 미트라와 살만 칸존 버그만 등이 거꾸로 교실거꾸로 공부’ 지도 방식에서 발견한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네가 그리로 간다면나도 너와 함께 갈게.”

 

 

 

가르치지 마세요대화를 나누세요,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에게 답을 찾아보라고 하세요.

 

 

 

  12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인도에서 수가타 미트라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이에 수가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에 주목했고계속된 실험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한다는 것과 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적절한 질문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면 아이들이 배움에 적극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교사와 학생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기만 해도 스스로 배우려는 학생들의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그것은 이른바 할머니 선생님’ 교육법으로교사가 가르치는 역할에서 벗어나 오로지 칭찬과 격려를 통해 아이들의 학습 의지를 북돋아주기만 하면 된다는우리로써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여기에는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개선 방안에 관한 조언이나 질문만 있을 뿐학습 평가나 정답을 유도하는 기존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이를 최소 간섭 교육이라고 표현한다.

 

 

 

능동적 배움에 대한 자코토의 발견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증명해 낸 사례가 바로 바로 수가타 미트라의 위대한 교육 실험이다자코토의 실험과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친구와 협력하며 배울 때 더 잘 배운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자코토가 개인의 지적 능력은 평등하며 무한하다는 개별성에 집중하였다면수가타 미트라는 집단 내의 상호 작용을 통한 집단 지성의 창발에 더 큰 주안점을 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58p

 

 

네가 그리로 간다면나도 너와 함께 갈게.”

이러한 정의는 전통적인 교실에서의 교사 역할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SOLE 수업에서는 이해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며그것은 교사의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교류와 소통에 의해서이다그러므로 아이들의 교사는 친구이거나 인터넷이 될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폄하될 수는 없다.

교사는 적절한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미트라 교수는 10대 아이들과 SOLE 수업을 진행하면서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더 어린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주제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질문이 주어져야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67p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더 나아가 살만 칸은 아예 교실을 거꾸로 뒤집는다거꾸로 교실 수업 방식은 다음과 같다교사가 수업 내용을 미리 10~15분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한다그리고 학생들은 수업 시작 전에 미리 영상을 보고 수업에 참여한다수업은 강의식이 아닌 오로지 참여식 수업으로 진행된다영상을 통해 핵심 내용을 이미 파악한 상태에서 학생들은 교실에서 다양한 모둠 활동으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한다이러한 방식은 학생들의 개별 수준에 따른 맞춤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합심해서 배움으로써 응용분석활용창의력을 이끄는 데 유용하다.

 

 

 

  기존에 우리가 해왔던 교육 방식은 학교 수업 시간에서는 비교적 쉬운 내용을 학습하고정작 집에서는 응용이 필요한 활동을 숙제로 해왔다아이들은 응용이나 심화 과정의 어려운 숙제를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내야 했다선생님이 문제 푸는 것을 지켜보면서 학생들이 어떤 부분에서 막히고 있는지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각 개개인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평균 수준의 학생에게 맞추어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은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땐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는가이렇듯 거꾸로 교실은 기존의 관행을 뒤집어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공부법을 제안한다.

 

 

 

거꾸로 수업에서 동영상을 미리 보거나 반복 시청을 하고수업 시간에 궁금한 내용을 검색하고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고결과물로 UCC를 제작하는 등 수시로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다 보면 유익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면서 학생들은 동료 간에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지금 인터넷은 학습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이를 사용하여 다양한 지적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거꾸로 수업에 디지털 기기를 적극 활용하자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 156p

 

 

 

  저자는 거꾸로 공부법을 가정에서도 활용해보기를 제안한다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아이가 선생님이 되고 부모가 학생이 되어 역할을 바꿔 보라 말한다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부모님께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이때 아이가 설명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책을 보고 다시 설명해 주세요제가 조금 이해가 안되네요선생님.”과 같은 방법으로 절대 무안을 주거나 혼내지 말라고 조언한다사실 엄마표 공부를 지향하다보면 배우는 아이보다 정작 부모인 내가 앞서서 더 생각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할 때가 있다미리 책을 살펴보고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저자의 설명대로라면 가르치는 사람의 두뇌 가동률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이다반면 듣고 있는 아이는 엄마인 내가 자기 대신에 열심히 생각을 해주기 때문에 엄마도와줘이게 무슨 뜻이야?” 하고 너무도 쉽게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의 힌트와 유도대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과연 이런 공부 방법이 우리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나는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을 누군가가 쾅하고 치고 간 듯한 충격에 빠졌다이제 우리 가정의 교육 방식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시모토 선생님의 수업은 매번 이렇게 옆길로 새기 일쑤였고 그래서 진도는 천천히아주 천천히 나갔다이러한 방식의 수업 덕분에 학생들은 세상에 나왔을 때 균형 잡힌 사고와사물이나 현상을 넓게 바라보는 교양이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거꾸로 교실의 수업 방식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진짜 세상과 만나는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거꾸로 교실로 초대된 아이들은 배움의 샛길로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 / 186p

 

 

하시모토 선생님은 왜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이렇게 쓰는 일에 집착하였을까그는 쓰는 행위를 통해 판단력과 구성력집중력이 길러지는데이것은 읽기만을 통해서는 익히기 어려운 능력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을 때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들이 명백해지고 생각이 예리해진다글을 쓸 때 생각이 정교해진다는 사실은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사실 학생들에게 학습을 지도할 때도 쓰기를 병행하면 훨씬 더 학습 효율이 높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215p

 

 

 



 

 

 

 

  저자는 거꾸로 교실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학생의 능력과 지능을 불신하는 교사 자신의 고정 관념이라고 지적한다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야하고 치부할 수도 있다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는 교사와 학교부모 안에서 변화는 찾아오고 아이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통적인 가르치는 수업의 한계를 넘어 학생의 목소리로 채우는 거꾸로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일선의 교사들을 비롯해 학부모들이 학생 교육과 자녀 교육의 관한 인식 전환의 계기로 이 책을 꼭 참고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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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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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아 외롭고고립된 존재들을 향한 깊고 따뜻한 시선!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우리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믿음직한 결말이 사랑스럽다!

 

 

 

 

  “여자는 남자들과 축구를 할 수 없어.”

  무경은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다행히 무경의 실력을 알아본 코치 선생님이 남학생과 같이 공을 차게 해주었고 중학교도 축구로 진학하게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갔다하지만 중학교 축구부 코치는 네가 축구 말고 뭘 하겠냐?” “나보다 너를 아끼는 쌤은 없어.” 같은 말들로 무경을 혹독하게 다루었고자신의 요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는 욕설과 인신공격 그리고 구타를 일삼았다그나마 무경을 버티게 한 건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단짝친구인 지선이지만지선이 코치에게 성추행을 당한 일을 계기로 학교를 나오지 않자 무경은 낙담하고 만다오히려 친구가 입은 피해를 바로잡으려 나섰다가 축구부를 망쳐놓았다는 냉담한 질타만 받게 될 뿐이다.

 

 

 

  축구를 그만 두고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무경은 그곳에서 지선처럼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고 있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난다드센 아이들의 표적이 되기보다 약자로 지내기를 택한 예찬남자친구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겪고 상담을 구한 선생님으로부터는 추행을 당하면서 이중의 상처를 얻은 서연선생님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친구를 대신해 익명의 대자보를 썼다가 학교의 평판에 먹칠을 한 배신자로 낙인찍힌 현정이 그러하다단짝이었던 지선을 지켜내지 못한 데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무경은이들과 서로를 보듬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볼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우리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지켜 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너를 지켜줄게. / 257p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의 수상작인 꼬리와 파도는 폭력 앞에서 무력했던 청소년들이 세상이 그들에게 가한 상처에 맞서기 위해 연대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작가 강석희는 특히 우리 사회가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가하는 균열들에 주목한다줌 수업 시간에 소리가 조금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선이가 집게 손’ 모양을 한 것으로 보고 페미라 몰고 가는 남학생들그런 남학생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이나 나쁜 말을 쓰기 않겠다는 다짐만 있을 뿐 선이를 향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다마치 다들 태어나면서부터 검은 띠를 매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약한 아이들 앞에서 힘을 과시하는 아이들은 어느 무리에나 존재한다교실에서는 ‘1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쓸고 닦기만 잘해도 시집은 간다’ 같은 말들이 여학생들의 성정체성을 박제한다.

 

 

 

그냥 축구가 잘 안 풀린 것에 대한 화풀이였고, 1학기 내내 이어진 이형섭의 과시적 행동의 일환이었다예찬을 비롯해 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예찬을 도우려는 사람도 이형섭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예찬은 상관없었다누가 누구보다 세고 누가 누구를 이기고…… 그런 일에 끼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스스로를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 악다구니에 껴서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달갑지는 않아도 약자의 자리에서 숨어 있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약자는 가만히 있다가도 당하니까 약자인가? / 71p

 

 

그 저열한 말들은 무경의 고향인 시골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무경의 신체에 관한 것이기도 했으며무경의 이목구비에 대한 것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무경의 성별과 관련된 것으로 끝났다그들은 무경이 듣는데도아니 오히려 들으라고 더 그랬다그들은 여럿이었고 그래서 당당했다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서로에게 떠넘기고 죄책감은 뒤로 숨기면서 나쁜 짓거리가 주는 달콤함만 맛보았다. / 104p

 

 

 



 

 

 

 

  그럼 내가 그때 무엇을누구를 믿었어야 해?

  아이들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어른은 없다선생님에게 추행을 당한 지선에게 어른들은 네가 조심했어야 하는 거라고조심하지 않으면 너에게도 책임이 있어.”라며 몸가짐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피해자를 탓한다또한 너 같은 건 공부 안 해도 된다남자 잘 만날 궁리나 해라.” 같은 말들로 여성을 폄하한다그래서 아이들은 의지할 데 없는 어른들을 찾아가는 대신 자신을 원망하는 쪽을 택한다믿지 말걸그러지 말걸하지 말걸가만히 있을걸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면그다음엔 자신을 용서하기만 하면 되니까잘못한 것도 나용서하는 것도 나용서받는 것도 나이렇듯 꼬리와 파도는 무경을 중심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청소년을 향한 폭력과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무경과 지선은 습관처럼 자책을 했다믿지 말걸그러지 말걸하지 말걸가만히 있을걸파도는 해일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지선과 무경이 작당해서 코치를 몰아낸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았다둘이 같이 뛰고 싶어서 팀에 분열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함께였다어쩐 일인지 축구부의 누구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 64p

 

 

이쯤 하자그렇게 매달려서 네가 얻는 건 또 뭐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하는 학생 주임의 얼굴에 피로와 귀찮음이 가득했다.

뭘 얻고 싶은 게 아닌데요.”

종률이 말했다학생 주임은 고개를 비뚜름하게 기울이고 종률을 봤다.

계속 이런다고 역사 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니까네가 더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인마.” / 82p

 

 

 

  하지만 소설은 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씩씩하게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이들의 희망찬 결말을 보여준다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진 않으리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목소리를 모으고 마음을 나누며 연대하는 가운데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간다외로우나 의연하게두려우나 눈감지 않는 법을많은 것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바꾸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진심을 다해 세상에 전한다.

 

 

 



 

 

 

 

  “잘 찾아왔어제대로 찾아왔어.” 무경은 도움을 요청하러온 선이와 미주를 기꺼이 반긴다무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적어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세상에 맞춰 필요한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늘 이 자리에서 너의 목소리를 듣고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을 더 중요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그리고 학교라면 그 누구도그 무엇도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덕분에 소설을 읽으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거듭 생각해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이 작품이 보여준 연대와 선의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세상이 되길 또한 간절히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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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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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피아노 음악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

음악 애호가는 물론평소 클알못이라고 생각했던 초심자들도 부담 없이 음악과 해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피아노 음악사!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저는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해서 인간에게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보이지는 않지만보이는 것보다도 진실한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음악이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쇼팽라흐마니노프이 위대한 음악가들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에 진심을 담아 매순간 새로운 우주를 펼쳐 보이는 음악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게 된다.

 

 

 

  『피아노의 시간은 그 여정에 바치는 찬가이자매혹적인 음악의 세계로 안내하는 보석 같은 책이다특히 독주곡과 협주곡실내악에서 재즈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피아노 음악으로 특별히 엄선된 100여개의 곡들은 어느 한 곡도 빠짐없이 우리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다각 곡마다 QR코드가 있어 음악 애호가는 물론평소 클알못이라고 생각했던 초심자들도 부담 없이 음악과 해석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피아노 음악사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보자.

 

 

 

바흐베토벤라흐마니노프를 거쳐 거슈인과 글래스로

 

 

 

  피아노 음악 역사의 포문을 여는 이는 역시 바흐다바흐의 생애와 피아노의 출현 시기는 짧게 겹치는데피아노가 막 개발되던 시기에 바흐는 이미 작곡가로 무르익은 상태였다그래서 바흐가 주로 사용한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책 속에 수록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955년 캐나다 피아니스트이자 당시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글렌 굴드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녹음을 하면서 그의 연주를 통해 많은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저자는 하프시코드는 두 악기의 음악적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는 하프시코드 소리가 어땠는지 이해하는 것도 진정한 바흐의 음악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조언한다과연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바흐의 곡을 검색해보니 피아노와는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이왕이면 이 두 가지 악기를 함께 즐겨보는 묘미를 누려보시기를 추천드린다오늘날엔 대바흐의 곡이 주목을 받지만 당시 18세기 후반에는 그의 아들인 C. P. E. 바흐가 더 유명했다 하니 책에 수록된 자유 환상곡 f샤프단조를 통해 비교하는 재미도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바흐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한가작곡 형식과 스타일이 이룬 높은 경지지적인 에너지성실함과 진지함일관된 작품 수준 모두 감탄할 만하다바흐는 작곡가의 개성보다 음악적 솜씨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기의 막바지에 나타났다바흐 직후 음악의 중심은 작곡가가 느끼는 극적인 감정운명과 사투를 벌이는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으로 옮겨갔다베토벤 시대에는 음악적 솜씨보다 극적인 면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바흐 시대에는 솜씨가 여전히 중요했다바흐의 건반음악이 이런 솜씨를 보여주는 증거다바흐의 음악은 건반악기를 향한 사랑에 악기 연주에 필요한 요소를 간파한 연주자의 이해를 더한 수년간의 부단한 지적 작업이 이룬 결과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25p

 

 

 



 

 

 

 

  오늘날 우리가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로 연주하는 작품을 작곡한 최초의 작곡가가 바로 하이든과 모차르트다연주자가 해머의 속도를 조절해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포르테피아노의 특징은 금세 작곡가들을 사로잡았고작곡가들은 표현과 울림의 범위가 넓은 피아노를 위한 훌륭한 건반악기 작품을 남겼다그 중 모차르트의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구성된 최초의 피아노 4중주 피아노 4중주 1번 g단조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열정적으로 대화하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듯한 도입부에서부터 마치 협주곡을 듣는 것 같은 꽉 찬 매력을 느낄 수 있다이후 창의적인 예술가를 영혼과 지성을 겸비한 인격체로 승격시켜 타고난 특권 수준의 경지로 끌어올린 베토벤의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는 황제라는 제목답게 힘과 유려함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누군가에게 어떤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유명한지 묻는다면 단연 베토벤의 황제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 <피아노 협주곡 5>에서 피아니스트는 도입부에서 힘 있고 유려하며 장대한 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위대한 배우 역할을 맡는다독주자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 메커니즘이 발전해 전보다 음이 크고 멀리 뻗어나간 덕분이기도 하다베토벤은 피아노의 넓어진 음역을 최대한 활용한 최초의 작곡가였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중에서 107p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f단조>는 피아노 5중주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이 작품에서 피아노는 영웅해설가동반자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어둡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부드럽고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드는 등 감정의 기복이 크다사실 피아노 파트의 상당 부분이 조용히 연주되는데이는 이 5중주 작품이 장엄하다는 명성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이 작품은 분명 웅장하지만 그 웅장함은 음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 요하네스 브람스피아노 5중주 f단조 중에서 222p

 

 

 

  에리크 사티는 자신의 장기인 유머를 곁들여 감상자가 지나치게 음악에 빠져들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그래서 피아노 작품집 차가운 소품들에는 음악으로는 거의 구현하기 힘든 독특한 악상 기호가 많다곡 중간에 너무 많이 먹지 말 것이라는 지시가 있는가 하면 잠시 눈에 보이게’ ‘약간 익혀서’, 심지어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와 같이 모호하면서도 독창적인 해석이 가능한 지시를 내리곤 하는 것이다한편 여성의 활동 무대가 적었던 음악계에서 시마노프스카가 쇼팽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무척 흥미롭다젊은 남성 작곡가가 여성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시대였으니 우리 시대에 그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다만 책에서 소개된 곡을 들어보면 연습곡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뚜렷이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데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내 알지 못했을 테니 화려한 조명 뒤에서 소리 없이 자신의 음악을 전했던 음악가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리스트-그리그-라흐마니노프 계열의 피아노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평소 좋아하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역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는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영상이 수록되어 있어 설렜고이 연주 영상만 서른 번은 넘게 본 것 같은데도 또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 새로운 시대의 음악가와 그의 연주를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이 외에도 어마어마한 기교를 요구하는 밀리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데다 대담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죄르지 쿠르탁의 건반놀이래그타임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재즈곡들도 소개되어 있으니 피아노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오랫동안 <이슬라메이>가 큰 명성을 얻은 주된 이유는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거의 불가능한 속도로 건반 위를 날아다니며 반복음더블 옥타브점프하는 화음정교한 내성왼손 옥타브 아르페이오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데스칸트를 종횡무진 움직여야 한다기본 형식은 단순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체력적인 도전을 주며 반사 신경을 실험하는 곡이다대부분 피아니스트의 이해나 수용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던 발라키레프 자신조차 연주할 수 없는 악절이 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 밀리 발라키레프이슬라메이 중에서 241p

 

 

이어 그리그의 기량이 돋보이는 좋은 예가 등장하는데매우 서정적인 악절이 좀 더 장대한 분위기를 예견하는 악구로 휘몰아치며 제2주제를 향한다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제2주제는 이제껏 들었던 주제와 리듬은 비슷하지만 선율이 더 좁고 내밀하게 억제되었다아주 감동적인 부분이다아름다운 전개부가 지나면 긴 피아노 독주 카덴차가 나온다도입부 주제로 조용히 시작한 카덴차는 강력한 트레몰로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점 힘을 쌓아나간다왼손에서는 아르페이오가 건반을 휩쓸고 이어 양손이 저음에서 리스트풍의 반음계로 포효한다이런 피아노 작법이 라흐마니노프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에드바르 그리그피아노 협주곡 a단조 중에서 274p

 

 

 



 

 

 

 

  책 속의 친절한 해설과 감상을 따라가며 피아노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으니 음악이 한결 더 풍부하게 다가온다. “무한한 미래의 영역으로 내 창을 던지는 일이라던 리스트의 말처럼때로는 잘 벼린 창을때로는 투박하거나 여리디 여린 창을 내던지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확보해간 음악가들에게 새삼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분들이 피아노 음악의 매력을 더 많이 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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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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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수치심을 직시해야 할 때!

극심한 양극화와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를 수치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다!

 

 

 

  수치심에 관한 나의 첫 기억은 무엇일까왁자지껄했던 초등 2학년 교실하필이면 선생님이 비웃음 섞인 얼굴로 나의 이름을 콕 집어 호명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그 일이 있기 전날담임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 몇몇 분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반 아이들에게 등교할 때 본드를 준비해오라고 단단히 이르셨다다음 날선생님은 본드를 가져온 친구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고그 틈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곤 너는 안 그래도 말이 없는 애가 뭐 하러 가져 왔어?” 하고 피식 웃으셨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이들의 수치심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휘두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은 앞으로 입을 본드로 봉해버리겠다는그 조악하기 짝이 없는 그네들만의 유머에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 입을 닫아버렸던가.

 

 

 

수치심이 내 안에 자리 잡으면,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면 꽤 오래도록 나와 함께한다.

수치심을 억누를 수는 있다그러나 수치심은

어딘가에 머물면서 빈틈을 노리고 자존심을 꺾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네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잖아안 그래?’ / 275p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더 깊게 들어가면 자신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가 없다는 것이 바깥에 드러날 것 같은 그러한 감정을 우리는 수치심이라 한다이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여타의 고통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이라 할 수 있다셰임 머신에 따르면 수치심은 하나의 집단 혹은 공동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사실 수치심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로인류가 처음 아프리카 사바나를 무리 지어 돌아다닐 때부터 우리가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무리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따르지 않거나 해를 가할 경우 수치심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따르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준을 따르도록 강제한다는 것은 곧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다시 말해 수치심은 일종의 경고 신호가 되어 개인의 의지를 꺾고 침묵시키며 명료한 사고를 막아 편향성을 가지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거창하게 예를 들지 않아도 달리기를 못해서음치라서 체육대회나 음악 실기시험을 하는 날만 다가오면 주눅이 들고못생겼거나 살이 쪘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문제는 수치심을 느끼는 당사자가 스스로에게 비난의 펀치를 돌리고삶 전체에 위축을 느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돌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방송에서는 당신의 외모와 건강과 능력이 평균 이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기업은 더욱 강력한 수치심 머신을 발동해 보다 큰 이윤을 챙기는 데 목적을 둘 뿐이다정부는 복지 혜택이라는 이유로 저소득층이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에게 개인의 자산 상태급료실패 경험낙담굴욕을 문서화하여 낱낱이 입증하게끔 하고 있다이처럼 외모가난젠더피부색정치적 입장 등 다방면에 걸쳐 왜곡된 수치심이 구조화되고 이를 정치적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만연해지고 있는 지금우리는 수치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이것이 우리가 셰임 머신을 당장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나의 수치심이 그들의 돈과 권력이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살면서 겪은 수치심을그리고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주입하는 수치심을 동시에 조명하는 데 있다안타깝게도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계속해서 끌어들인다페이스북을 위시한 대부분의 SNS는 이런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18년 페이스북의 내부 연구 자료는 우리의 알고리즘은 인간 두뇌가 분열에 이끌린다는 사실을 이용한다라면서 플랫폼을 지금처럼 방치하면 점점 더 분열을 낳는 콘텐츠를 계속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책의 저자인 캐시 오닐은 이것이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제어하는 자동화 플랫폼의 속성이라고 지적한다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또 우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몰입하지만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 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그 시스템이 바로 수치심 머신이며우리는 나의 수치심이 그들의 돈과 권력이 되는 세상 속으로 살고 있다.

 

 

 

향기 나는 젤부터 자기계발 팟캐스트까지 온갖 것을 갖춘 이 복합적 분야는 우리 삶에서 완벽해 보이지 않는 모든 면을 파고든다이들은 신체적정서적재정적정신적미용 측면에 처방을 내린다모든 처방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평균 이하 상태라는 단순한 전제에서 나온다추하고아프고냄새나고성 기능이 떨어지고너무 늙었고돈에 무지하다고 전제한다나 자신에게 못마땅하게 느끼는 점을 건강관리 업체들은 꼭 찾아내게 한다이 분야는 상업적 가능성이 무한하다다른 수치심 영역과 마찬가지로 유사 과학잘못된 통계허황된 약속이 넘쳐난다. / 115p

 

 

외로움은 수치심의 여러 징후 중 전형적인 형태이자 자연스러운 반응이다비만가난중독성 기능 부전 등 수치심의 원인이 무엇이든남들의 평가에 취약한 사람은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이런 행동은 수치심의 여러 형태처럼 자기 강화적 악순환을 낳는다수치심이 외로움을 낳고외로우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을 처벌할 확률이 매우 높다.

히키코모리의 처지는 자연스럽게 수치심 산업의 시장이 된다현재 많은 업체가 히키코모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가장 큰 경제적 기회는 히키코모리가 아닌 그들 부모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모들은 그야말로 수치심의 피해자다. / 208p

 

 

 



 

 

 

 

  때문에 저자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우리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이용한다면 이제 비난의 펀치를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해 날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 파악해야 한다일상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생기는지 자각하다 보면막강한 기업과 기관이 어떤 식으로 수치심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지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그렇게 머릿속에 수치심 항목을 만들어놓아야 우리는 무례한 댓글추잡한 비교행위남을 폄하하려는 리트윗불가능한 기대치 등 자존감을 꺾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공감이 반드시 필요하다피해자를 낙오자로 취급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가족으로 바라보는 마음바로 그 다정함 안에서 우리의 존엄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수치심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게끔 다른 선택지와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며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이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 211p

 

 

 



 

 

 

 

  극심한 양극화와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를 수치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아주 특별한 책이다타인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는 문화와 환경을 향한 노력을 조금만 더 살필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곳곳에 가 닿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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