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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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수치심을 직시해야 할 때!

극심한 양극화와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를 수치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다!

 

 

 

  수치심에 관한 나의 첫 기억은 무엇일까왁자지껄했던 초등 2학년 교실하필이면 선생님이 비웃음 섞인 얼굴로 나의 이름을 콕 집어 호명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그 일이 있기 전날담임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 몇몇 분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반 아이들에게 등교할 때 본드를 준비해오라고 단단히 이르셨다다음 날선생님은 본드를 가져온 친구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고그 틈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곤 너는 안 그래도 말이 없는 애가 뭐 하러 가져 왔어?” 하고 피식 웃으셨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이들의 수치심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휘두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은 앞으로 입을 본드로 봉해버리겠다는그 조악하기 짝이 없는 그네들만의 유머에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 입을 닫아버렸던가.

 

 

 

수치심이 내 안에 자리 잡으면,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면 꽤 오래도록 나와 함께한다.

수치심을 억누를 수는 있다그러나 수치심은

어딘가에 머물면서 빈틈을 노리고 자존심을 꺾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네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잖아안 그래?’ / 275p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더 깊게 들어가면 자신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가 없다는 것이 바깥에 드러날 것 같은 그러한 감정을 우리는 수치심이라 한다이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여타의 고통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이라 할 수 있다셰임 머신에 따르면 수치심은 하나의 집단 혹은 공동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사실 수치심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로인류가 처음 아프리카 사바나를 무리 지어 돌아다닐 때부터 우리가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무리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따르지 않거나 해를 가할 경우 수치심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따르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준을 따르도록 강제한다는 것은 곧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다시 말해 수치심은 일종의 경고 신호가 되어 개인의 의지를 꺾고 침묵시키며 명료한 사고를 막아 편향성을 가지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거창하게 예를 들지 않아도 달리기를 못해서음치라서 체육대회나 음악 실기시험을 하는 날만 다가오면 주눅이 들고못생겼거나 살이 쪘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문제는 수치심을 느끼는 당사자가 스스로에게 비난의 펀치를 돌리고삶 전체에 위축을 느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돌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방송에서는 당신의 외모와 건강과 능력이 평균 이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기업은 더욱 강력한 수치심 머신을 발동해 보다 큰 이윤을 챙기는 데 목적을 둘 뿐이다정부는 복지 혜택이라는 이유로 저소득층이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에게 개인의 자산 상태급료실패 경험낙담굴욕을 문서화하여 낱낱이 입증하게끔 하고 있다이처럼 외모가난젠더피부색정치적 입장 등 다방면에 걸쳐 왜곡된 수치심이 구조화되고 이를 정치적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만연해지고 있는 지금우리는 수치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이것이 우리가 셰임 머신을 당장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나의 수치심이 그들의 돈과 권력이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살면서 겪은 수치심을그리고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주입하는 수치심을 동시에 조명하는 데 있다안타깝게도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계속해서 끌어들인다페이스북을 위시한 대부분의 SNS는 이런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18년 페이스북의 내부 연구 자료는 우리의 알고리즘은 인간 두뇌가 분열에 이끌린다는 사실을 이용한다라면서 플랫폼을 지금처럼 방치하면 점점 더 분열을 낳는 콘텐츠를 계속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책의 저자인 캐시 오닐은 이것이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제어하는 자동화 플랫폼의 속성이라고 지적한다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또 우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몰입하지만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 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그 시스템이 바로 수치심 머신이며우리는 나의 수치심이 그들의 돈과 권력이 되는 세상 속으로 살고 있다.

 

 

 

향기 나는 젤부터 자기계발 팟캐스트까지 온갖 것을 갖춘 이 복합적 분야는 우리 삶에서 완벽해 보이지 않는 모든 면을 파고든다이들은 신체적정서적재정적정신적미용 측면에 처방을 내린다모든 처방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평균 이하 상태라는 단순한 전제에서 나온다추하고아프고냄새나고성 기능이 떨어지고너무 늙었고돈에 무지하다고 전제한다나 자신에게 못마땅하게 느끼는 점을 건강관리 업체들은 꼭 찾아내게 한다이 분야는 상업적 가능성이 무한하다다른 수치심 영역과 마찬가지로 유사 과학잘못된 통계허황된 약속이 넘쳐난다. / 115p

 

 

외로움은 수치심의 여러 징후 중 전형적인 형태이자 자연스러운 반응이다비만가난중독성 기능 부전 등 수치심의 원인이 무엇이든남들의 평가에 취약한 사람은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이런 행동은 수치심의 여러 형태처럼 자기 강화적 악순환을 낳는다수치심이 외로움을 낳고외로우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을 처벌할 확률이 매우 높다.

히키코모리의 처지는 자연스럽게 수치심 산업의 시장이 된다현재 많은 업체가 히키코모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가장 큰 경제적 기회는 히키코모리가 아닌 그들 부모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모들은 그야말로 수치심의 피해자다. / 208p

 

 

 



 

 

 

 

  때문에 저자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우리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이용한다면 이제 비난의 펀치를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해 날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 파악해야 한다일상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생기는지 자각하다 보면막강한 기업과 기관이 어떤 식으로 수치심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지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그렇게 머릿속에 수치심 항목을 만들어놓아야 우리는 무례한 댓글추잡한 비교행위남을 폄하하려는 리트윗불가능한 기대치 등 자존감을 꺾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공감이 반드시 필요하다피해자를 낙오자로 취급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가족으로 바라보는 마음바로 그 다정함 안에서 우리의 존엄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수치심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게끔 다른 선택지와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며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이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 211p

 

 

 



 

 

 

 

  극심한 양극화와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를 수치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아주 특별한 책이다타인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는 문화와 환경을 향한 노력을 조금만 더 살필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곳곳에 가 닿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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