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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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피아노 음악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

음악 애호가는 물론평소 클알못이라고 생각했던 초심자들도 부담 없이 음악과 해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피아노 음악사!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저는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해서 인간에게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보이지는 않지만보이는 것보다도 진실한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음악이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쇼팽라흐마니노프이 위대한 음악가들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에 진심을 담아 매순간 새로운 우주를 펼쳐 보이는 음악가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게 된다.

 

 

 

  『피아노의 시간은 그 여정에 바치는 찬가이자매혹적인 음악의 세계로 안내하는 보석 같은 책이다특히 독주곡과 협주곡실내악에서 재즈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피아노 음악으로 특별히 엄선된 100여개의 곡들은 어느 한 곡도 빠짐없이 우리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다각 곡마다 QR코드가 있어 음악 애호가는 물론평소 클알못이라고 생각했던 초심자들도 부담 없이 음악과 해석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피아노 음악사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보자.

 

 

 

바흐베토벤라흐마니노프를 거쳐 거슈인과 글래스로

 

 

 

  피아노 음악 역사의 포문을 여는 이는 역시 바흐다바흐의 생애와 피아노의 출현 시기는 짧게 겹치는데피아노가 막 개발되던 시기에 바흐는 이미 작곡가로 무르익은 상태였다그래서 바흐가 주로 사용한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책 속에 수록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955년 캐나다 피아니스트이자 당시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글렌 굴드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녹음을 하면서 그의 연주를 통해 많은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저자는 하프시코드는 두 악기의 음악적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오늘날의 피아니스트는 하프시코드 소리가 어땠는지 이해하는 것도 진정한 바흐의 음악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조언한다과연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바흐의 곡을 검색해보니 피아노와는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이왕이면 이 두 가지 악기를 함께 즐겨보는 묘미를 누려보시기를 추천드린다오늘날엔 대바흐의 곡이 주목을 받지만 당시 18세기 후반에는 그의 아들인 C. P. E. 바흐가 더 유명했다 하니 책에 수록된 자유 환상곡 f샤프단조를 통해 비교하는 재미도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바흐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한가작곡 형식과 스타일이 이룬 높은 경지지적인 에너지성실함과 진지함일관된 작품 수준 모두 감탄할 만하다바흐는 작곡가의 개성보다 음악적 솜씨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기의 막바지에 나타났다바흐 직후 음악의 중심은 작곡가가 느끼는 극적인 감정운명과 사투를 벌이는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으로 옮겨갔다베토벤 시대에는 음악적 솜씨보다 극적인 면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바흐 시대에는 솜씨가 여전히 중요했다바흐의 건반음악이 이런 솜씨를 보여주는 증거다바흐의 음악은 건반악기를 향한 사랑에 악기 연주에 필요한 요소를 간파한 연주자의 이해를 더한 수년간의 부단한 지적 작업이 이룬 결과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25p

 

 

 



 

 

 

 

  오늘날 우리가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로 연주하는 작품을 작곡한 최초의 작곡가가 바로 하이든과 모차르트다연주자가 해머의 속도를 조절해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포르테피아노의 특징은 금세 작곡가들을 사로잡았고작곡가들은 표현과 울림의 범위가 넓은 피아노를 위한 훌륭한 건반악기 작품을 남겼다그 중 모차르트의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구성된 최초의 피아노 4중주 피아노 4중주 1번 g단조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열정적으로 대화하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듯한 도입부에서부터 마치 협주곡을 듣는 것 같은 꽉 찬 매력을 느낄 수 있다이후 창의적인 예술가를 영혼과 지성을 겸비한 인격체로 승격시켜 타고난 특권 수준의 경지로 끌어올린 베토벤의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는 황제라는 제목답게 힘과 유려함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누군가에게 어떤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유명한지 묻는다면 단연 베토벤의 황제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 <피아노 협주곡 5>에서 피아니스트는 도입부에서 힘 있고 유려하며 장대한 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위대한 배우 역할을 맡는다독주자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 메커니즘이 발전해 전보다 음이 크고 멀리 뻗어나간 덕분이기도 하다베토벤은 피아노의 넓어진 음역을 최대한 활용한 최초의 작곡가였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중에서 107p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f단조>는 피아노 5중주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이 작품에서 피아노는 영웅해설가동반자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어둡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부드럽고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드는 등 감정의 기복이 크다사실 피아노 파트의 상당 부분이 조용히 연주되는데이는 이 5중주 작품이 장엄하다는 명성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이 작품은 분명 웅장하지만 그 웅장함은 음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 요하네스 브람스피아노 5중주 f단조 중에서 222p

 

 

 

  에리크 사티는 자신의 장기인 유머를 곁들여 감상자가 지나치게 음악에 빠져들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그래서 피아노 작품집 차가운 소품들에는 음악으로는 거의 구현하기 힘든 독특한 악상 기호가 많다곡 중간에 너무 많이 먹지 말 것이라는 지시가 있는가 하면 잠시 눈에 보이게’ ‘약간 익혀서’, 심지어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와 같이 모호하면서도 독창적인 해석이 가능한 지시를 내리곤 하는 것이다한편 여성의 활동 무대가 적었던 음악계에서 시마노프스카가 쇼팽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무척 흥미롭다젊은 남성 작곡가가 여성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시대였으니 우리 시대에 그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다만 책에서 소개된 곡을 들어보면 연습곡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뚜렷이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데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내 알지 못했을 테니 화려한 조명 뒤에서 소리 없이 자신의 음악을 전했던 음악가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리스트-그리그-라흐마니노프 계열의 피아노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평소 좋아하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역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는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영상이 수록되어 있어 설렜고이 연주 영상만 서른 번은 넘게 본 것 같은데도 또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 새로운 시대의 음악가와 그의 연주를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이 외에도 어마어마한 기교를 요구하는 밀리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데다 대담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죄르지 쿠르탁의 건반놀이래그타임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재즈곡들도 소개되어 있으니 피아노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오랫동안 <이슬라메이>가 큰 명성을 얻은 주된 이유는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거의 불가능한 속도로 건반 위를 날아다니며 반복음더블 옥타브점프하는 화음정교한 내성왼손 옥타브 아르페이오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데스칸트를 종횡무진 움직여야 한다기본 형식은 단순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체력적인 도전을 주며 반사 신경을 실험하는 곡이다대부분 피아니스트의 이해나 수용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던 발라키레프 자신조차 연주할 수 없는 악절이 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 밀리 발라키레프이슬라메이 중에서 241p

 

 

이어 그리그의 기량이 돋보이는 좋은 예가 등장하는데매우 서정적인 악절이 좀 더 장대한 분위기를 예견하는 악구로 휘몰아치며 제2주제를 향한다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제2주제는 이제껏 들었던 주제와 리듬은 비슷하지만 선율이 더 좁고 내밀하게 억제되었다아주 감동적인 부분이다아름다운 전개부가 지나면 긴 피아노 독주 카덴차가 나온다도입부 주제로 조용히 시작한 카덴차는 강력한 트레몰로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점 힘을 쌓아나간다왼손에서는 아르페이오가 건반을 휩쓸고 이어 양손이 저음에서 리스트풍의 반음계로 포효한다이런 피아노 작법이 라흐마니노프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에드바르 그리그피아노 협주곡 a단조 중에서 274p

 

 

 



 

 

 

 

  책 속의 친절한 해설과 감상을 따라가며 피아노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으니 음악이 한결 더 풍부하게 다가온다. “무한한 미래의 영역으로 내 창을 던지는 일이라던 리스트의 말처럼때로는 잘 벼린 창을때로는 투박하거나 여리디 여린 창을 내던지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확보해간 음악가들에게 새삼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분들이 피아노 음악의 매력을 더 많이 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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