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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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아 외롭고고립된 존재들을 향한 깊고 따뜻한 시선!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우리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믿음직한 결말이 사랑스럽다!

 

 

 

 

  “여자는 남자들과 축구를 할 수 없어.”

  무경은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다행히 무경의 실력을 알아본 코치 선생님이 남학생과 같이 공을 차게 해주었고 중학교도 축구로 진학하게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갔다하지만 중학교 축구부 코치는 네가 축구 말고 뭘 하겠냐?” “나보다 너를 아끼는 쌤은 없어.” 같은 말들로 무경을 혹독하게 다루었고자신의 요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는 욕설과 인신공격 그리고 구타를 일삼았다그나마 무경을 버티게 한 건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단짝친구인 지선이지만지선이 코치에게 성추행을 당한 일을 계기로 학교를 나오지 않자 무경은 낙담하고 만다오히려 친구가 입은 피해를 바로잡으려 나섰다가 축구부를 망쳐놓았다는 냉담한 질타만 받게 될 뿐이다.

 

 

 

  축구를 그만 두고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무경은 그곳에서 지선처럼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고 있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난다드센 아이들의 표적이 되기보다 약자로 지내기를 택한 예찬남자친구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겪고 상담을 구한 선생님으로부터는 추행을 당하면서 이중의 상처를 얻은 서연선생님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친구를 대신해 익명의 대자보를 썼다가 학교의 평판에 먹칠을 한 배신자로 낙인찍힌 현정이 그러하다단짝이었던 지선을 지켜내지 못한 데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무경은이들과 서로를 보듬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볼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우리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지켜 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너를 지켜줄게. / 257p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의 수상작인 꼬리와 파도는 폭력 앞에서 무력했던 청소년들이 세상이 그들에게 가한 상처에 맞서기 위해 연대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작가 강석희는 특히 우리 사회가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가하는 균열들에 주목한다줌 수업 시간에 소리가 조금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선이가 집게 손’ 모양을 한 것으로 보고 페미라 몰고 가는 남학생들그런 남학생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이나 나쁜 말을 쓰기 않겠다는 다짐만 있을 뿐 선이를 향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다마치 다들 태어나면서부터 검은 띠를 매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약한 아이들 앞에서 힘을 과시하는 아이들은 어느 무리에나 존재한다교실에서는 ‘1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쓸고 닦기만 잘해도 시집은 간다’ 같은 말들이 여학생들의 성정체성을 박제한다.

 

 

 

그냥 축구가 잘 안 풀린 것에 대한 화풀이였고, 1학기 내내 이어진 이형섭의 과시적 행동의 일환이었다예찬을 비롯해 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예찬을 도우려는 사람도 이형섭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예찬은 상관없었다누가 누구보다 세고 누가 누구를 이기고…… 그런 일에 끼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스스로를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 악다구니에 껴서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달갑지는 않아도 약자의 자리에서 숨어 있으면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약자는 가만히 있다가도 당하니까 약자인가? / 71p

 

 

그 저열한 말들은 무경의 고향인 시골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무경의 신체에 관한 것이기도 했으며무경의 이목구비에 대한 것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무경의 성별과 관련된 것으로 끝났다그들은 무경이 듣는데도아니 오히려 들으라고 더 그랬다그들은 여럿이었고 그래서 당당했다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서로에게 떠넘기고 죄책감은 뒤로 숨기면서 나쁜 짓거리가 주는 달콤함만 맛보았다. / 104p

 

 

 



 

 

 

 

  그럼 내가 그때 무엇을누구를 믿었어야 해?

  아이들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어른은 없다선생님에게 추행을 당한 지선에게 어른들은 네가 조심했어야 하는 거라고조심하지 않으면 너에게도 책임이 있어.”라며 몸가짐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피해자를 탓한다또한 너 같은 건 공부 안 해도 된다남자 잘 만날 궁리나 해라.” 같은 말들로 여성을 폄하한다그래서 아이들은 의지할 데 없는 어른들을 찾아가는 대신 자신을 원망하는 쪽을 택한다믿지 말걸그러지 말걸하지 말걸가만히 있을걸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면그다음엔 자신을 용서하기만 하면 되니까잘못한 것도 나용서하는 것도 나용서받는 것도 나이렇듯 꼬리와 파도는 무경을 중심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청소년을 향한 폭력과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무경과 지선은 습관처럼 자책을 했다믿지 말걸그러지 말걸하지 말걸가만히 있을걸파도는 해일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지선과 무경이 작당해서 코치를 몰아낸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았다둘이 같이 뛰고 싶어서 팀에 분열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함께였다어쩐 일인지 축구부의 누구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 64p

 

 

이쯤 하자그렇게 매달려서 네가 얻는 건 또 뭐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하는 학생 주임의 얼굴에 피로와 귀찮음이 가득했다.

뭘 얻고 싶은 게 아닌데요.”

종률이 말했다학생 주임은 고개를 비뚜름하게 기울이고 종률을 봤다.

계속 이런다고 역사 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니까네가 더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인마.” / 82p

 

 

 

  하지만 소설은 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씩씩하게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아이들의 희망찬 결말을 보여준다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진 않으리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목소리를 모으고 마음을 나누며 연대하는 가운데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간다외로우나 의연하게두려우나 눈감지 않는 법을많은 것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바꾸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진심을 다해 세상에 전한다.

 

 

 



 

 

 

 

  “잘 찾아왔어제대로 찾아왔어.” 무경은 도움을 요청하러온 선이와 미주를 기꺼이 반긴다무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적어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세상에 맞춰 필요한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늘 이 자리에서 너의 목소리를 듣고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을 더 중요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그리고 학교라면 그 누구도그 무엇도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덕분에 소설을 읽으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거듭 생각해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이 작품이 보여준 연대와 선의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세상이 되길 또한 간절히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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