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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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어느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소소하지만 따뜻한 풍경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 내 하루의 모든 것이 위안이 된다!

 

 

 

 

  어린이날이라고 야구장에 가고 싶다던 아이들이 열흘 전부터 야단이었다야구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룰도 잘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가 보는 야구TV를 시청하며 무턱대고 파란 팀을 응원하던 아이들은 그저 야구장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는가 보다시끌벅적한 야구장에서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며 맛있는 치킨 먹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은 다음에 또 가자고 벌써 또 난리다마침 연달아 어버이날도 있으니 양가 어르신들 뵙고 그 주의 휴일을 바쁘게 보내고 났더니 지치긴 했나보다우리 부부가 덜컥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버렸다아니나 다를까아이들도 40도까지 열이 들끓어 밤새 해열제를 먹이고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이며 갖은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지독한 A형 독감에 가족 모두가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새삼 가정의 달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다 번거롭게 느껴지면서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아이들과 집에서 요양을 하고 나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도 어느 덧 중순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두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나자 집안이 고요하다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시려니 이 시간이 참 귀하고 달다내친김에 오랜만에 햇빛 좀 보자고 산책길로 걸음을 나서니 어느 새 초록 풀잎사귀가 무성하다벤치에 앉아 독감 때문에 그간 손에 잡히지 않던 책을 펼쳐 한 장 두 장 넘기는 이 여유로운 시간이 오늘따라 더 고맙고 다정하다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아파보고 나니 이 시간도 무척이나 귀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마침 읽은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란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의 매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거나 놓치지 않길겨울이 지나면 봄마다 새롭게 꽃이 피듯더러 구름이 끼어 보이지 않아도 365일 매일매일 밤하늘에 별이 빛을 발하고 있듯삶 속에는 늘 사랑과 기쁨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길.” 애써 찾지 않아도 내 삶의 곳곳에 만발해있는 행복과 감사할 일들을 그저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이미 풍요로운 것이 된다그러다 혹여 오늘 내 하루에 무심했던 듯한 기분이 들 땐 이 말을 떠올려보는 거다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이렇게 행복이 있는데하고.

 

 

 




 

 

 

 

아이야행복에 특별한 조건을 달지 말렴.

이것만 있었어도이것만 없었어도.

삶이 힘겨울 때도

뭔가 비범하고 대단한 해법을 찾지 말렴.

공기와 물처럼나무와 바람처럼

소중한 것은 언제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란다. / 14p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을 담아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소소하지만 그 속에서 비범한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화가 강진이의 그림일기책이다소박하고 자잘한 날들의 기쁨을 채집하듯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 폭의 그림과 자수로 담아내 엮어냈다어린 시절 사이사이를 누비던 골목길의 풍경평상 위에 둘러앉아 한 그릇씩 가득 받아 입도 손도 옷자락도 빨갛게 수박 물을 들이며 먹던 그 날의 맛인형 하나 제 이부자리에 틈을 내어주고 곤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향긋한 오이소박이 냄새족집게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뽑아낸 외할머니의 흰 머리카락까지… 우리의 삶 어느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풍경들이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글과 그림 속에 녹아있다.

 

 

 

의기양양하게 국수를 헹구고 한 줌 집어 물기를 뺀 국수를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이때 먹는 국수가 가장 맛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어느새 둘째도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섰다새끼 제비 두 마리처럼소파에서 큐브 맞추기 삼매경이던 아빠 제비는 이 광경을 놓치지 않고 흐뭇하게 바라보다 외친다. “나도나도!”

가족이 둘러앉아 후루룩후루룩 국수 한 그릇 말아 먹으며 보내는 휴일 오후마음속으로 오늘 하루 제목을 붙여보니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만큼이나 완벽하다. / ‘완벽한 어느 하루’ 중에서 21p

 

 

안방 한가운데로 볕이 가득 들어차는 날이면 조그만 낮잠 베개를 베고 누운 외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뽑았다철부지 내게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은 양 볼 부풀려 불던 달콤한 풍선껌 같았다족집게로 꼭 집어 올리면 쏙 뽑히는 머리카락힘없이 빠지는 흰 머리카락들은 동그란 거울 위에 잡초처럼 붙여두었다여덟 살 땐 한 개에 십 원열 살 땐 열 개에 오십 원재 작은 손이 족집게에 익숙해질수록 할머니 머리 위 흰 눈은 더 많이 쌓여갔다족집게로는 미처 잡을 수 없었던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 ‘흰머리 뽑던 날’ 중에서 27p

 

 

봄에도 여름에도겨울을 향해가는 가을에도 자연은 급한 것이 없다. “익어가는 것들은 숨 가쁘게 달리지 않는다고 박노해 시인은 가을을 노래했다노란 잎도촘촘한 열매도 이내 떨어져 이리저리 나뒹굴다 흔적만 남겠지만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람을 느끼는 나무는 의연하다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자연은 서로를 부러워하거나 비교하지 않는다그저 제 생긴 그 모습대로 잘 익어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익어가는 것들’ 중에서 49p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모이처럼 덥석덥석 받아먹고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와 소타기말타기를 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난 시절의 내가 있었으니또 내 아이들의 뱃속에 하나하나 맛난 음식들을 채워주고 토닥토닥 잠자리를 봐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그렇게 별 것 아닌 것들이 수놓은 일상이 내가 살아간 힘이었음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일상도 모든 게 위안이 된다그러니 조급해하지도불안해하지도 말아야지오늘 내가 양손에 쥔 두 아이의 손과 남편의 다정한 배려에 감사해하며 나의 일상을 사랑해야지하고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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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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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라는 감각 혹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 따위가 무의미해진 척박한 지하 도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 여린 존재들에게!

이런 작가가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라서 참 다행이고고맙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이런 걸 산송장이라고 한단다.”

  하늘을 본 적이 없으니 하늘을 그리워한다는 것은바다를 본 적이 없으니 헤엄치고 싶다는 것은드넓은 대지를 본 적이 없는데 마음껏 뛰고 싶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일 테지만인간에겐 유전으로 학습된 기억이란 것이 있어 지금의 지하 도시인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짓지도 않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인류가 되어버렸다지상이 멸망한 뒤 인류는 지하에서 삶을 연명하는 길을 택했다정확히 표현하자면 추방된 쪽에 더 가까울지도.

 

 

 

  정확히 언제 그들이 지하로 들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지상을 탐사하는 선발대 모집은 6년 전을 끝으로 기약이 없고 우주 탐사대 역시 완전히 죽어버린 직업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인구가 늘어 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허가받은 아이만이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한된 인구 정책엄지손톱만한 칩을 심어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지하 도시 생활의 유지에 필요한 VA2X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에게 엄격한 경제 활동이 요구되는 이곳에 자유와 인권은 자연히 사치다이것이 지상이 멸망한 뒤 지하 도시로 들어간 인류의 모습을 담은 연작소설집 이끼숲이 그리는 기후 위기 시대 이후의 미래다.

 

 

 

어디에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사막화가 되어버린 인류의 미래를 담아낸 전작 랑과 나의 사막에 이어 이번에는 절멸된 지상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린 이끼숲으로 돌아왔다전작의 배경이 되었던 사막이 그러했던 것처럼세 편의 연작소설집의 배경이 되는 지하 도시 세계 역시 숨 막힐 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천선란 식 SF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집이다. ‘나태함과 무기력함게으름과 우울이 가장 무서운 전염병처럼 나도는 지하 세계출구도 희망도 없이 오직 절망만이 일상의 공기처럼 떠도는 이 닫힌 세계를 기어코 목전에 둔 우리의 낭패감을 이미 봐버린 듯한 기분이랄까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무겁고 목이 조이는 듯 갑갑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나는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인간 복제는 인간의 한계 같아그 한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인간 복제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할걸인간은 영생에 실패했고뇌 정복에 실패했어전부 다 실패했어고작 똑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최악의 진화 아니니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건데너는?”

은희는 웃으며 물었다마르코는 여태껏 인간의 발전과 진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태어나보니 이곳이었다마르코의 삶 전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선택권이 결여된 순간이 그때일 것이다탄생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자신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바다눈」 중에서 69p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그 칩에는 이름과 출생일과 고유 아이디가 들어 있어서 구역과 구역을 나누는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인식된다고 했어그게 꼭 있어야 한다고그게 없으면 정체불명’ 혹은 미입력자’‘불법 거주자’‘비시민’‘침입자’ 따위가 되어 체포된다고그다음은 몰라어디로 잡혀가서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보나마나 죽겠지지하 도시가 이미 추방된 곳인데 여기서 어디로 또 추방할 수 있겠니? / 우주늪」 중에서 113p

 

 

 




 

 

 

 

   「바다눈」 속 주인공인 마르코는 생명공학 연구소 빅터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그는 매일 철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한다마르코로서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떼어다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한다다만 어떤 상상이든 결국 인간의 몸을 조립하고아바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사고 팔 수 있는 이 세계를 영원히 납득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한편우주늪에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로 태어난 죄로배관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평생을 숨어서 살아야하는 의조가 등장한다엄마는 어린 의조에게 악어떼’ 노래를 부르며 엉금엉금 기렴악어처럼엉금엉금 기어가렴하고 속삭인다의조는 자신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우주 같은 배관 통로를 하릴없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우주 찌꺼기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아니존재로 입증될 수 없으니 존재라고도 명명할 수 없는 제로에 가까울지도이렇듯 바다눈우주늪이끼숲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소설은 공동체라는 감각 혹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 따위가 무의미해진 척박한 지하 도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여린 존재들을 조명한다.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하지만 천선란 작가가 스스로 구하는 이야기를조금 더 뚜렷하게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듯서로를 믿고의지하고사랑하고힘껏 껴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존재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며 주저앉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크게 일으킨다. ‘과거는 우주와 같아서 우리는 걸어 그곳에 갈 수 없고네가 꿈꾸는 아름다움은 만질 수 없는 별과 같아서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실망만 가득할 거라는 걸’ 알지만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가 닿기 위해서로를 알아본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세계를 지배한 절망보다 나약하게 핀 희망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살아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은 강하다던 믿음을 실현한다너무나 눈부시게.

 

 

 

나는 방금 말한 것들이 간절했지만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이곳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나는 여전히 그 애를 잃은 슬픔이 유별나다분하고 억울하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 / 이끼숲」 중에서 232p

 

 

소마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고귀할 필요 없이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 이끼숲」 중에서 247p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거대하게 뿌리를 내리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축축한 틈 곳곳에서 멸종되지 않고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어디서든 살아가는 이끼 같은 마음들이 때로는 더 강한 법이다거듭된 여러 편의 작품 속에서 작가 천선란이 보여주는 이 견고한 믿음이 참 좋다이런 작가가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라서 다행이고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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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 -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바바라 베르크한 지음, 장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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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아니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당신을 위한 책!

나를 아끼고 지키는 현실적인 거절의 기술들!

 

 

 

 

  늘 그러하듯, ‘아니라는 말이 목 안에서 알러지 반응처럼 간질거린다얼른 대답해야 한다는 내 안의 압박감이 결국 망설일 틈도 없이 그래난 괜찮아.” 하고 대답해버린다. ‘됐어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거지.’ ‘이게 최선이야.’ 거절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도 우리의 관계는 서로 얼굴을 붉힐 일 없이 무탈하게 흘러갔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며 나의 결정을 긍정하려 한다사실 나 역시 아니안 돼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거절하지 못한 대가는 곧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로나의 책임이 아닌 것이 나의 책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그런데도 왜 나는 이토록 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일까우리는 왜 가뿐하게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삶의 즐거움은 더 가까워진다

 

 

  “Nope!”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가뿐히 거절을 표시하는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화술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인 바바라 베르크한의 거절의 기술을 담은 책이다저자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단어가 바로 아니라는 말이라고 강조한다오히려 아니는 자기 결정권의 표현으로 단순한 거절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이는 경계를 짓는 일로우리의 몸과 마음을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며주의력집중력시간과 에너지 같은 고유의 소중한 자원을 관리해주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때문에 이 책은 이제껏 아니라는 표현 속에서 부정적인 신호만을 감지했던 우리들에게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려 한다.

 

 

 

문제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주변 사람들이 당신 고유의 영역을 크게 차지하는 이유는 침입 금지’ 표지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당신에게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이를테면 여기는 내가 결정해!”라고 알려주는 확실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분명한 경계선이 없으면 당신은 원치 않는 밀물을 맞게 된다너무 많은 의무너무나 많은 일정너무나도 많은 책임을 안고 만다그리고 또 한편으로 원치 않는 썰물을 겪게 된다스스로를 돌볼 시간당신의 배터리를 재충전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얻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집중력은 극도로 적어진다그러면서 당신의 필요와 욕구도 점점 줄어든다. / 18p

 

 

바깥에서 들이닥치는 요구에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당신은 스스로를 보호하게 된다경계 짓기로 당신은 고유의 영역을 지키게 된다그곳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영역으로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당신만의 것이다거기서 당신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린다바깥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당신은 고유의 영역을 언제나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 / 24p

 

 

 



 

 

 

 

  저자는 우리가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인격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 내면의 비평가내면의 감독관걱정 생산자에 주목한다내면의 비평가는 우리에 대해 불평불만을 말하고과소평가하며행동을 비롯해 감정과 결정 그리고 생활 방식 전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다이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또한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잘못 보관소를 털어 과거의 실수를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내면의 감독관의 상당수는 완벽주의자다완벽주의 성향의 감독관은 매우 높은 기준을 세우며 우리에게 흠 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요구하고 압박한다걱정 생산자는 불행 예언자작은 혼란과 방해를 커다란 재앙처럼 과정하며 부정적인 미래를 보여준다우리는 세 골칫덩이가 내 머릿속에서 발언권을 쥐려고 할 때마다 이를 알아차리고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생각 바깥으로 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무엇보다 이들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실체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명쾌하고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전략확실하고도 효과적인 경계선을 긋는 세 단계

첫 번째 단계무엇 때문에 경계선을 그으려 하는지 확실히 하자무슨 이유로 당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두 번째 단계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자당신이 괜찮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려주자당신이 무언가를 왜 원하는지당신이 생각하는 한계점이 어디인지도.

세 번째 단계고집스럽게 버티자누군가는 당신의 경계를 좀먹거나 무너트리거나 혹은 무력화시키며 당신 고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할 것이다그래도 문제없다당신이 계속해서 끈질기게 경계를 지으면 된다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자주 경계를 짓자당신의 고집을 깨워 활발하게 작동시키자. / 22p

 

 

당신을 작동시키는 버튼을 파악하기

어떤 상황에서 당신은 과도한 부담을 알아서 떠안는가?

당신이 경계를 잃어버리며 그래라고 답하게 만드는 말은 무엇인가?

상대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당신은 그의 걸림돌을 치워주려 하는가?

상대가 (심리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어떤 상태일 때 책임감을 느끼며 그의 잘못이나 실수를 수습하려 드는가? / 37p

 

 

 




 

 

 

 

  저자는 말한다.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부정적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거절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거부하거나 비난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상상일 뿐이라고사랑받기 위해 늘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자기 내면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이 외에도 책은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생각들부정적인 생각을 이로운 생각으로 바꾸는 생각법아니라고 말하지 않고도 거절할 수 있는 방법 등 나를 아끼고 지키는 현실적인 거절의 기술들을 알려준다오늘도 타인의 부탁 앞에서 어설픈 예스로 나와 관계를 모두 불편하게 하고 있다면 이 책의 도움을 빌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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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파더스 클럽 -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강혁진 외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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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아빠들의 뜨거운 육아 현장 분투기!

우리 가정의우리 사회 내 돌봄 문화의 현실을 돌이켜보게 하는 소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책!

 

 

 

  여기함께 육아일기를 써보자며 뜻을 모은 다섯 명의 아빠들이 있다그 이름도 독특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다눈 깜짝할 새에 쑥쑥 커버리는 아이와의 일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글로 담고 싶었던 이서 아빠’ 강혁진 작가는 이왕이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다이왕이면 육아 경험이 있으면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지인을 찾다가 네 명의 아빠들이 흔쾌히 뜻을 같이 하기로 합류했고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본격 성장일기 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발을 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뉴스레터는 어느 덧 1년째 1,600명의 구독자들에게 가 닿아 매주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아빠라는 이름의 무게에 비해 돌봄과 육아라는 현실은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것투성이지만진심을 다해 잘해내고 싶은 다섯 아빠들의 뜨거운 분투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내 아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아빠라는 단어의 크기를 조금 더 키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모여 쓴 글들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함께라서 더 괜찮은작지만 특별한 공동체

 

 

  “아이고 우리 아들밤새 배 많이 고팠지?” “아이고 우리 아들아빠가.”

  응내가 아빠라고몸에 딱 맞지 않은어딘가 수선할 부분이 남은 새 옷을 걸친 것처럼 여전히 나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일이 어색했다는 글 속의 고백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하긴나도 아이를 낳고 품에 처음 안는 순간 내가 엄마야.”라고 말하는 데앞으로 수천 번도 넘게 불릴 그 이름이 진정 내 것이 맞나 한참을 어색해했던 기억이 있다그로부터 나의 하루하루는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체감해야 하는생애 가장 낯선 감각에 적응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엄마는 처음이라서당연히 아빠도 처음이라서 육아는 매순간이 낯설고 어색하고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그냥 처음부터 그것을 순순히 인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능숙한 척괜찮은 척자책은 또 얼마나 했었던가.

 

 

 

  그래서일까, “육아의 현실에서 준비와 계획만큼 무용한 단어는 없어서준비된 지식이나 완벽한 계획을 이기는 건 결국 부모의 몰입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는 책 속의 글귀가 퍽 위안이 된다시간이 지나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준비되었는가얼마나 능숙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순간순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과 꼭 필요한 순간에 옆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그러니 난 아이들 보는 데 소질이 없는 것 같애” “난 좋은 부모가 아닌 것 같아” 같은 말로 서투름을 자책하기보다 그 시간에 더 많이 안아주고더 자주 예쁘다사랑한다’ 말해주며 절대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그렇게 내 안에 엄마라는 이름의 크기를아빠라는 이름의 크기를 키워가다 보면 그 이름을 먹고 아이는 저절로 커져 있을 테니까.

 

 

 

여전히 내가 아빠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거나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잇다나에게는 아빠가 되기 전 40년의 삶이 있다아빠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끔 어색한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한다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함께 웃고 우는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더 자주 안아주고더 자주 아이 볼에 입 맞추고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에 스스로 어색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조금씩오랫동안 내 안에 아빠라는 단어의 크기를 키워갈 것이다. / 34p

 

 

아이의 탄생에 오직 부모의 의지만 개입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모든 행불행은 부모의 책임이 된다부모의 미숙함과 세상의 불완전함은 아이를 돌보는 마음에 자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중략하지만 내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나에게 와준 것이라면 부모는 씩씩해질 수 있다함께 힘을 내볼 수 있다아이도 용기를 내줬으니까.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중에서 / 100p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시작하고 각종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다섯 아빠들은 사실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누구에게나 돌봄과 양육이 처음이라서새로운 역할과 친숙해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잘하고 싶어서소외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서툰 사람끼리 도움을 주고받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에 가까웠지만여전히 우리 사회가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고 육아일기를 쓰는 일을 낯설고 특별한 일처럼 여긴다는 증거가 아닐까그건 곧 다시 말해 양육자 중에서도 아빠가 얼마나 소수인지늘 공기처럼 있었지만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절대 다수인 엄마와 여성이란 존재가 얼마나 소외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돌봄의 현장에서 어느 한쪽이 소외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돌봄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 가정의우리 사회 내 돌봄 문화의 현실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낯선 영역에서 비슷한 사람이나 롤 모델소위 레퍼런스가 없을 때 외로움과 막막함은 피할 수 없는 친구가 된다아내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내게 아내는 이미 능력치가 다른 사람이자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레퍼런스였다.

만약 육아휴직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회사원으로서의 걱정이 아닌 아빠로서의 경험담을 들었으면 어땠을까백화점 문화센터에 아빠랑 아기랑’ 강좌가 개설되어 아이들 나이대가 비슷한 다른 아빠들의 육아 스킬 또는 역경을 엿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만약 내가 사는 동네에 휴직한 아빠가 많아 평일 오후 4시에 다 같이 라테 한 잔을 마시며 육아가 지닌 50가지 그림자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상상만 해도 육아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 83p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삶에서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삶의 피버팅을 잘하는 사람은아빠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삶 역시 굳건히 다져가는 사람일 것이다내가 굳건해야 아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라는 중심축을 지지하는 발이 단단해야 아이를 향해 움직이는 다른 발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피버팅할 수 있다그러니 앞으로도 삶에 더욱 충실하려 한다언제든 아이에게 향할 피버팅 능력을 기르기 위해. / 167p

 

 

노키즈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차별혐오 같은 객관적 정의보다당사자들이 겪은 주관적 상처와 불편함에 대한 공감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노키즈존의 시작이 처음부터 아동 혐오가 아닌 진상 부모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은 점주의 상처와 그로 인한 자구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보면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따뜻함과 친절함일지도 모른다. / 210p

 

 

 



 

 

 

 

  아빠들의 육아일기이자성장일기이면서 돌봄 현장의 또 다른 생생한 목소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아빠들의 이런 움직임이 더 이상 별스럽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아울러 오늘도 외롭고 고단한 육아로 지쳐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이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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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충돌과 융합 - 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 역사의 시그니처 2
최광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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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가치관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융합할 수 있을 때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 역시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다!

고전임에도 상세한 설명과 해석, 그 중에서도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들을 선별해 소개해놓아 음미하듯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사상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의 입체적인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혁명과 배신의 시대가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진화론 등 근대화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가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었던 20세기 초를 조명한다면, 사유의 충돌과 융합은 유교와 불교, 도교, 토착신앙이 충돌하다 마침내 이들을 융합해 다원주의와 상생의 시대정신으로 나아간 고대 동아시아를 살펴본다.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유교와 도교의 전통 아래, 외래종교 불교의 유입, 토착신앙의 발전 등 사유의 용광로와 다름없었던 고대 동아시아가 공존과 조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문명과 종교의 갈등이 극심한 오늘날, 동아시아에 깃든 화합의 가치와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융합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상생의 시대정신을 통해 본 고대 동아시아 사상의 흐름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다원주의적 종교문화는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다채롭게 수용하였던 동아시아적 세계관에서 기원한다. 1세기부터 8세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유··선의 종교의식이 충돌하고 융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동아시아 의식은 7세기 이후 중국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으로 점차 확장되었고, 한국과 일본 역시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되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와 같은 의식의 대립과 화합의 과정은 1세기부터 8세기를 다루는 세 국가의 고전에서 구체적으로 잘 나타난다. 이에 책은 오긍의 정관정요, 최치원의 계원필경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도네리 친왕의 일본서기를 통해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된 오긍의 정관정요는 당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으로, 미래 세대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기록한 저서다.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당태종의 통치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로, 당나라의 황제뿐만 아니라 통일신라나 일본 왕들의 통치 지침서로도 기능했다는 점에서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로 정치적인 이야기를 논하지만 한대부터 당대까지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흐름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큰 특징이다. 통치이념으로 기능한 유교는 사회윤리의 규범이 되었으며, 외래종교인 불교는 내세를 위한 신앙으로 숭상되었고, 도교는 일상의 삶에서 재앙을 쫓고 복을 부르는 기능을 했는데, 이처럼 삼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로 융화되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하여 위징은 대답한다. “임금들이 상황이 위급할 때는 어질고 재주가 있는 사람을 임명하고 충언을 받아들였으나, 천하가 안정되고 살기 좋아지면 게을러지고 태만하게 되어 충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편안한 시기가 오면 나태하게 되어 국력이 쇠약하고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므로 이러한 때일수록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25p

 

 

정관의 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발전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태종이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황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긍은 후대의 황제들이 이 기록을 통하여 함부로 민심을 거슬러서 공사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이야기를 싣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태종은 정교한 보석이나 복식들이 사치스러워지면 나라가 멸망할 징도라고 하면서 관혼상제의 의례도 허례허식을 지양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 48p

 

 




 


 

 

 



 

  앞서 오긍의 정관정요가 그러했듯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치원의 계원필경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일본서기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선 삼교의 융합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의 중흥을 꾀하고자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지방 호족이 대두하고 농민반란이 일어났을 때 최치원은 화랑과 국선이 이끌어왔던 신라의 중흥을 꿈꾸었다. 그리고 지도 이념인 풍류도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중들을 교화하려는 염원을 표현했다.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드러내기 위하여 신라의 왕국과 성곽을 새로이 신축하려는 뜻을 품고 의상법사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의상법사는 정도를 강조하며 이를 만류했다. 의상법사는 불교 승려이면서도 왕업의 지속성에 대하여 언급할 때는 유교적인 가치인 정도를 근본으로 삼아 유교와 불교가 함께하는 유·불 융화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만파식적 신화는 문무왕의 신성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토착신인 천신과 용신을 등장시켜 만파식적으로 상장되는 국가의 안녕과 새로운 통치이념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통일신라의 건국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파식적은 유교적 통치이념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토착신앙을 배제하지 않고 융화하고나 하는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가 모두 천강신화와 난생신화의 복합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여기에서는 천강신화와 용신신화가 융합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용신은 수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 세력의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신라의 영역이 육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삼면의 바다를 포함한다는 의미로, 그만큼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197p

 

 

소가씨는 주변 여러 나라가 모두 불교를 수용하고 있으므로 수용하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모노노베씨는 천지와 사직의 180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어왔는데 이제 와서 제사의 대상을 외래신으로 바꾼다면 토착신인 국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신라에서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려고 하였을 때 토착신앙을 신봉하는 귀족들은 반대하고, 이차돈 등은 찬성한 것과 같은 양상이다. 천황이 소가씨로 하여금 불상을 자기 집에 모시고 시험 삼아 예배하도록 하였는데 돌림병이 돌자 모노노베씨 쪽에서 자기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니 그 불상을 없애버리자고 하였다.

천황이 그렇게 하도록 하여 유사가 불상을 강에 던져 버리고 절에 불을 놓아버렸더니 갑자기 궁궐의 대전에 불이 나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불교를 수용하는 데 신이한 이적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은 이차돈이 사망하자 머리에서 흰 피가 솟았다는 기이한 일화를 연상하게 한다. / 252p

 



 

 

 

 

 



 

  이처럼 각기 다른 신앙의 융합을 통해 하나로 뜻을 모으고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려했던 동아시아의 사상사는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말로는 공정을 외치지만 내로남불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 책의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에 있던 것을 잘 활용하여 쓰기보다 늘 새로운 것을 좇는 허례허식에 빠진 우리들에게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교훈 역시 되새겨 봄 직하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융합할 수 있을 때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 역시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훌륭한 도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 무엇인지 되새겨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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