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충돌과 융합 - 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 역사의 시그니처 2
최광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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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가치관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융합할 수 있을 때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 역시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다!

고전임에도 상세한 설명과 해석, 그 중에서도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들을 선별해 소개해놓아 음미하듯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사상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의 입체적인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혁명과 배신의 시대가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진화론 등 근대화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가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었던 20세기 초를 조명한다면, 사유의 충돌과 융합은 유교와 불교, 도교, 토착신앙이 충돌하다 마침내 이들을 융합해 다원주의와 상생의 시대정신으로 나아간 고대 동아시아를 살펴본다.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유교와 도교의 전통 아래, 외래종교 불교의 유입, 토착신앙의 발전 등 사유의 용광로와 다름없었던 고대 동아시아가 공존과 조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문명과 종교의 갈등이 극심한 오늘날, 동아시아에 깃든 화합의 가치와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융합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상생의 시대정신을 통해 본 고대 동아시아 사상의 흐름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다원주의적 종교문화는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다채롭게 수용하였던 동아시아적 세계관에서 기원한다. 1세기부터 8세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유··선의 종교의식이 충돌하고 융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동아시아 의식은 7세기 이후 중국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으로 점차 확장되었고, 한국과 일본 역시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되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와 같은 의식의 대립과 화합의 과정은 1세기부터 8세기를 다루는 세 국가의 고전에서 구체적으로 잘 나타난다. 이에 책은 오긍의 정관정요, 최치원의 계원필경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도네리 친왕의 일본서기를 통해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된 오긍의 정관정요는 당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으로, 미래 세대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기록한 저서다.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당태종의 통치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로, 당나라의 황제뿐만 아니라 통일신라나 일본 왕들의 통치 지침서로도 기능했다는 점에서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로 정치적인 이야기를 논하지만 한대부터 당대까지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흐름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큰 특징이다. 통치이념으로 기능한 유교는 사회윤리의 규범이 되었으며, 외래종교인 불교는 내세를 위한 신앙으로 숭상되었고, 도교는 일상의 삶에서 재앙을 쫓고 복을 부르는 기능을 했는데, 이처럼 삼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로 융화되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하여 위징은 대답한다. “임금들이 상황이 위급할 때는 어질고 재주가 있는 사람을 임명하고 충언을 받아들였으나, 천하가 안정되고 살기 좋아지면 게을러지고 태만하게 되어 충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편안한 시기가 오면 나태하게 되어 국력이 쇠약하고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므로 이러한 때일수록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25p

 

 

정관의 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발전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태종이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황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긍은 후대의 황제들이 이 기록을 통하여 함부로 민심을 거슬러서 공사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이야기를 싣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태종은 정교한 보석이나 복식들이 사치스러워지면 나라가 멸망할 징도라고 하면서 관혼상제의 의례도 허례허식을 지양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 48p

 

 




 


 

 

 



 

  앞서 오긍의 정관정요가 그러했듯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치원의 계원필경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일본서기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선 삼교의 융합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의 중흥을 꾀하고자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지방 호족이 대두하고 농민반란이 일어났을 때 최치원은 화랑과 국선이 이끌어왔던 신라의 중흥을 꿈꾸었다. 그리고 지도 이념인 풍류도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중들을 교화하려는 염원을 표현했다.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드러내기 위하여 신라의 왕국과 성곽을 새로이 신축하려는 뜻을 품고 의상법사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의상법사는 정도를 강조하며 이를 만류했다. 의상법사는 불교 승려이면서도 왕업의 지속성에 대하여 언급할 때는 유교적인 가치인 정도를 근본으로 삼아 유교와 불교가 함께하는 유·불 융화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만파식적 신화는 문무왕의 신성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토착신인 천신과 용신을 등장시켜 만파식적으로 상장되는 국가의 안녕과 새로운 통치이념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통일신라의 건국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파식적은 유교적 통치이념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토착신앙을 배제하지 않고 융화하고나 하는 상징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가 모두 천강신화와 난생신화의 복합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여기에서는 천강신화와 용신신화가 융합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용신은 수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 세력의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신라의 영역이 육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삼면의 바다를 포함한다는 의미로, 그만큼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197p

 

 

소가씨는 주변 여러 나라가 모두 불교를 수용하고 있으므로 수용하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모노노베씨는 천지와 사직의 180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어왔는데 이제 와서 제사의 대상을 외래신으로 바꾼다면 토착신인 국신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신라에서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려고 하였을 때 토착신앙을 신봉하는 귀족들은 반대하고, 이차돈 등은 찬성한 것과 같은 양상이다. 천황이 소가씨로 하여금 불상을 자기 집에 모시고 시험 삼아 예배하도록 하였는데 돌림병이 돌자 모노노베씨 쪽에서 자기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니 그 불상을 없애버리자고 하였다.

천황이 그렇게 하도록 하여 유사가 불상을 강에 던져 버리고 절에 불을 놓아버렸더니 갑자기 궁궐의 대전에 불이 나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불교를 수용하는 데 신이한 이적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은 이차돈이 사망하자 머리에서 흰 피가 솟았다는 기이한 일화를 연상하게 한다. / 252p

 



 

 

 

 

 



 

  이처럼 각기 다른 신앙의 융합을 통해 하나로 뜻을 모으고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려했던 동아시아의 사상사는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말로는 공정을 외치지만 내로남불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 책의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에 있던 것을 잘 활용하여 쓰기보다 늘 새로운 것을 좇는 허례허식에 빠진 우리들에게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교훈 역시 되새겨 봄 직하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융합할 수 있을 때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 역시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훌륭한 도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 무엇인지 되새겨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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