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의 서비스에 사람들이 몰릴까? - 전 세계 일등 서비스 리더들의 고객 모시기 전략
레오나르도 인길레리 & 마이카 솔로몬 지음, 임준영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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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여 년을 한 통속으로 지내온 절친 두 명이 있다. 나보다 나를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혼자서 끙끙거리지 않고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얘기한다. 그러다보면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고 하기 싫은 소리를 할 때도 있다. 정말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더 나은 방향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얘기한다.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그 때 그 말을 잘 들었다.’ 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얼마 전 두 놈에게 “야! 내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면 잘 할 거 같지 않냐? 싹싹하고 예의 바르고 엉?” 그랬더니 단 칼에

 

“임마~! 내가 확신하는 데 그 가게 한 달 안에 망한다. 니때문에!!”

“왜? 나 잘할 거 같은데?”

“너 손님이 와서 이런저런 불평하면 들어줄 수 있나?”

“그거 들어주면 되지 뭐 어렵나? 돈 버는 일인데?”

“웃기고 있네! 니는 한 대 때리고 병원비로 월급 다 들어가고 바로 짤린다 임마!”

 

 

그냥 한 얘긴데 두 놈이 잡아먹을 듯 달려들어 그 때는 좀 섭섭하고 서운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돌이켜보니 두 놈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그리고 나는 친절한 손님·고객도 아닌 것 같다. 조금만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바로 얘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빙빙 둘러 얘기하는 게 아니라 면전에서 직설하고 한참 기다리는 식당에서는 직원 누구라도 보라는 듯이 온통 인상을 구기고 있으니 말이다.

서비스업 종사는커녕 서비스업에 대해서 다시 배워야 할 판이다.

 

지인 중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 있는데 그들의 공통된 넋두리는 이것이다.

“장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배알도 없고 자존심도 없어야 돼~.”

나는 절대로 서비스업에는 종사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런 내게도 단골 가게나 업체가 있다. 나처럼 까다롭고 불친절한 손님을 단골로 확보한 몇 곳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이 책 「왜 그들의 서비스에 사람들이 몰릴까?」에서 말하는 ‘충성고객’을 확보한 그곳이다. 나를 충성고객으로 만든 몇 곳의 공통점은 단박에 나왔다.

 

 

[내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운영자와 친하다]는 것이었다.

 

“단골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바꿀 수 있을까? 즉 자주 오지만 충성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객을 눈여겨봐야 한다…….대화가 잘 진행되면 고객은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이다……. 고객이 일단 충성도를 갖게 되면 서비스에 간혹 실수가 있다 해도 까다롭게 응대하지 않는다.” (p.143∼145)

 

‘친하다는 것’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책에서 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떤 우연한 기회(나에게는 우연, 그 직원에게는 의도 였을 수도 있고^^;;)에 대화를 나누게 되고 ‘저 사람 참 친절하네~’ 생각하게 되었고 다음번에 ‘그 때 그 친절했던 가게’ 로 가게 되고 단골이 되고 충성고객이 되었던 것이다.

 

그 직원이나 운영자가 나에게 쌍욕을 하거나 나를 때리지 않는 이상 나는 그 가게와 업체로 계속 간다. 다른 곳에서는 받을 수 없는 감정의 교환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돈을 내고 그 서비스를 사는 것이지만 같은 값이면 더 친절한 곳으로, 서비스를 산 내 돈의 가치를 더욱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고 보면 나를 ‘충성고객’으로 만든 그 가게와 업체는 나와 같은 ‘충성고객’이 많은 곳인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니까 말이다.

 

이 책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불친절한 고객이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뛰어난 서비스로 업계에서 성공을 거둔 많은 업체의 노하우가 가득 담겨있고 반대로 서비스를 실패해서 업계에서 실패한 업체의 사례가 함께 담겨있기 때문이다.

 

“마술과도 같은 뛰어난 서비스는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고객이 욕구를 드러내기 전,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함으로써 가능하다.” (p.7)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라. 이 방식은 실패한 서비스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p.51)

“사과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고객이 마음을 열고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일 때까지 천천히 사과하는 것이다.” (p.54)

 

책의 많은 부분에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제시되어 있지만 [고객의 욕구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는 서비스를 하라]는 것과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으로 서비스하라], [고객이 사과를 받아들일 때까지 천천히 사과하라] 라는 구체적 방법에는 큰 공감이 갔다.

실제로 고객의 입장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받는 다면 굳이 설득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충성고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온라인 서비스에 대해서도 책의 말미에 풍부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이트의 페이지마다 실시간 채팅버튼을 만들어라. 회사에 연락할 수 있는 무료 전화번호를 눈에 잘 띄게 게시하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기능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텍스트 리더 기능을 활용하라.” (p.211)

 

이런 방법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시각·청각장애인이 전체 고객 중 몇이나 될까? 이런 생각을 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우리는 소수의 고객층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서비스 합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나는 국내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기능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텍스트 리더 기능이 되어 있는 곳을 보지 못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서비스를 받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뿌듯하고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하지만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를 받았을 때는 기분이 나빠진다. 계산하는 돈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회사의 고객충성도가 높아지면 고객들은 변화한다. 고객들에게 당신 회사는 시장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상점이 된다. 충성고객은 오직 한 회사만을 바라본다.” (p.253)

 

비록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서비스업을 운영할 일은 없겠지만^^;; 나와 같은 불친절한 고객·손님이 읽기에도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참에 나도 조금만 더 친절한 고객·손님이 되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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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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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씻으러 들어 간 세면대 거울을 보고 문득 놀라고 낯설 때가 있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몸이 누구인가? 하는 쓸데없는 물음이 생길 때가 있다. 공연히 이런저런 말을 해보면서 ‘목소리도 이상해……. 눈·코가 왜 저렇게 생겼지?...’ 대답 없는 푸념도 쏟아낸다. 얼굴을 찡그려 잡히는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의 육체 안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남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불쾌감이에요.” (p.27)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사실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난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는 가장 근본적이고 어렵고 불편한 물음일 것이다. 엄청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다. 수많은 인간들이 그 물음 혹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써 왔지만 ‘인간이란 바로 이거야!’ 속 시원히 답을 내어 놓지 못한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과 교육과 정치와 문화를 꿰뚫더라도 결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어쩌면 애초부터 대답 혹은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재귀순환의 고리와 같은 ‘에고트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이라 명명된 존재의 존재론적인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에고트릭」은 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라 생각한다. 물론, 명쾌한 대답은 찾을 수 없었다. 뇌신경학, 사회심리학, 불교의 무아(無我)론, 미래기술 등의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독자로 하여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방면의 분야를 신나게 이동하는 듯한 청량감은 느끼게 해준다.

 

12가지의 철학적 질문들은 책의 소제목들처럼 꼭 학문적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씩은 가져봤음 직한 질문들이다. 다만 그것을 책의 소제목처럼 멋들어지게 꾸며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를 제외한 ‘상대’가 대신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어렵다.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 진실이고 환상인지, 어디까지 참이고 거짓인지 ‘상대’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결국 이것은 ‘나’에게 맡겨진 존재론적인 사명임과 동시에 숙명이다.

물론,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지의 여부 또한 ‘나’에게 있다.

 

철학적 짐 덩어리를 짊어진 채 현실의 아비규환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 기억은 수동적인 정보 덩어리가 아니다. 기억은 능동적인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용물이다.” (p.72)

“기억이라는 여과기를 거친 진실과 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해석된 사실이다.” (p.74)

 

‘기억’은 너무나 불안정한 도구이다. 얼마 전 군 복무시절 내 소대원이었던 동생을 만났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책에서의 언급처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그리고 가공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을 다시 꺼내 올렸을 때는 주관적으로 해석된 사실이 될 수밖에 없다.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내용이다. 책을 읽기 며칠 전 그런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갔겠지만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나’, ‘그 당시의 나’에 대한 ‘기억’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야~! 내가 말이야~~ 그때는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하는 따위의 객기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술자리에서 지나간 군 생활을 안주거리로 삼을 때나 필요한 것이다.

 

“그를 타락시킨 특수한 환경에 놓이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 (p.221)

“상황 요인이 개인의 성격보다 행동 예측에 좋은 지표일 때가 많다……. 실로 많은 상황에서 개인 성격이 확실한 행동 결정 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p.222)

 

범죄수사에 대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이제는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연쇄범죄자나 사이코패스들에 대한 수사에만 프로파일링이 적용되고 있지만 나아가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도 프로파일링을 유용할 것 같다.

 

그리고 요즘 TV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가정 내 부부간, 부모·자식 간 불화 문제에 있어서도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요인을 파고 들어간다.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상처와 쓴 뿌리를 해소하고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해소와 제거 작업이 완료되면 참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래서 책의 언급처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이 사람의 성격은 이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모두가 결여된 성격의 집합체라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더 올바른 가치판단이다.

책의 12가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중 나는 기억과 상황요인에 대한 내용에 공감이 갔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나와는 다른 질문에 공감이 가고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참 어렵고 지루한 질문과 물음이지만 ‘나는 누구인가?’는 꼭 필요한 삶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꼭 시간이 많고 상황이 허락해야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당장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세면을 하다 거울을 보고, 운전하다 무심코, 책을 읽다 문득, 동료와 대화하다 화들짝 이런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했을 때 아주 잠시라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본다면 긴 인생의 여정의 어디쯤 방점하나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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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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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명작스캔들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보고 강렬하게 끌렸던 그림이 있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가 지난 2000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는데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86번째로 꼽혔다. 흔히 서구인들 일색인 그런 발표에서 일본인, 그것도 에도시대 화가가 말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이 작품,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린 작가이다. 그의 목판화 사진첩은 19세기 말부터 유럽에 큰 유행으로 번졌던 ‘자포니즘’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의 그림첩은 유럽의 인상파작가들에게는 필수교본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은 에도 말기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서구 문명에 침몰할 듯 휘청거리는 일본의 위태로움을 큰 파도와 배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백미는 한 중간에 작게 그려진 ‘후지산’이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 연작 목판화 [후가쿠 36경] 중 하나인데, 삼킬 듯 몰아치는 서구의 파도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후지산을 보며 일본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호쿠사이의 목판화는 유럽 대표 인상파 작가인 모네, 반 고흐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 「게 공선」의 표지는 조금 다르다.

 

 

 

그림을 보면 왼쪽의 파도는 그대로 인데 어부들이 타고 있는 조그만 배와 중간의 후지산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게 공선’으로 둔갑해 버렸다.

표지 그림만 봐서는 대(大) 작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모방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내포한 것도 같다.

 

「게 공선」표지의 파도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에서 시사 하는 서양문물이 아닌 덮칠 듯 몰아치는 자본주의체제이다.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쓰나미처럼 덮친 자본주의체제에서 양산된 자연스런 계급구조의 공고화, 그것으로 인한 계급 갈등의 한 복판에 있던 일본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해공선(蟹工船)이라 읽어야 맞다. ‘蟹’ 자는 ‘게 해’ 자인데, 왜 해공선이라 하지 않고 게공선이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삐딱한 양반이다. ㅋㅋ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p.6)


당시 일본은 전쟁 중이었다. 안팎으로 혼란과 혼돈의 시기였다. 서양문물에 대한 개방과 전쟁, 자본주의 체제의 쓰나미 등은 모든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을 바꿔놓았다. 계급구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각지에 생겨나는 공장과 탄광 등의 산업시설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발을 못 붙여 마지막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 바로 게공선이었던 것이다.


“나도 말이지, 이번엔 절대로 배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구.” (p.13)


홋카이도 북부, 오호츠크해 남쪽 연안의 게 어장으로 가는 공선(工船)에 오른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꾼 것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게공선의 탑승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게공선에는 선장과 선원, 300여명의 어업노동자, 잡일꾼, 기술자, 그리고 어업노동자들을 감독하는 감독이 탑승했다.



“이건 뭐야, 두들겨 패서라도 깨우겠다! 아무리 천하다고 해도 이 일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인 만큼, 전쟁과 똑같다. 죽을 각오로 일해! 멍청한 놈.” (p.95)

“너희 한두 명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어선 한 척이라도 없어졌단 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p.28)


홋카이도로 향하는 항해도 고역이었다. 찜통 같은 선실을 어업노동자들은 ‘똥통’이라 불렀다. 배를 삼킬 듯한 파도에도 8척의 똑딱선을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갑판으로 나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어업노동자가 물에 빠지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기적적으로 러시아 선박에 의해 구조되고 그들에게 ‘공산주의’를 듣게 되고 그것에 빠져들게 된다. 너무 맞는 말이니까. 자신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니까.



“노동자, 제일 위대하다. 노동자 없으면. 모두, 빵 없다. 모두 죽는다. 알아?” (p.65)


같은 노동자이지만 자신들의 현실과는 다른 러시아 노동자들을 보며 각성을 한다. 결국 다시 게 공선으로 돌아와 다른 어업노동자들에게 자본가와 자본가의 개 노릇을 하는 감독에게 저항하고 대항할 것을 독려한다.

그러나, 감독 또한 멀리 본사 빌딩에서 양복입고 근무하는 중역에게는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태업’을 거듭했다. 수장(水葬)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욱 행동이 통일되어갔다. 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p.138)


‘태업’을 하고 결국 감독의 폭압적인 지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반란을 일으키지만 직전에 어업노동자들의 동태를 눈치 채고 있던 감독은 일본 군함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게 공선의 혁명은 끝이 났다.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

“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 (p.175)


자신들의 혁명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의 군함은 중무장을 하고 게 공선에 올라 감독의 입장에서는 ‘반란’의 주동자들을 체포해 데려간다. 노동자의 편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론은 비관적이지 않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각성하고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감독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더 은밀하게 혁명을 도모하고 군함에 미리 연락하지 못하게 감시하며 게 공선의 작업이 모두 끝나 하선한 후에는 다양한 노동 계층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게 공선에서 이룩했던 ‘조직’, ‘투쟁’의 대단한 경험들을 전파하게 된다.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결론이다.



이 작품이 최근 일본에서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갑자기 불어난 「게 공선」의 판매부수에 대해 역자는 일본사회의 현재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 소개한다. 늘 불안한 노동자일 뿐인 수많은 비정규직들과 아무리 일해도 도무지 삶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들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일본보다 더욱 심각하리라 확신하는 국내의 비정규직 실상과 아무리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빚더미와 씨름하는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게 공선>에서 보여준 그 당시의 권력 관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현실에서 그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p.189)

 

 


저자인 고바야시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를 일깨우고 비정상적인 계급구조를 타파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각성해 들고 일어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8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게 공선」에서 지옥을 경험하던 어업노동자들의 삶과 지금의 노동자들의 삶의 양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책의 내용이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아주 예전 얘기라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각광을 받고 많이 읽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뭔가 바뀌기를 나아지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작품 속 어업노동자들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서는 「게 공선」의 지옥을 벗어나 새로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드는 각성한 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힘찬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이 책을 읽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80년 전 그들처럼 다시 ‘공산주의’를 부르짖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난해부터 봇물 터지듯 출간되는 ‘~해라, ~하자’ 유의 책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대안을 제시한다. 짱돌을 들라, 분노하라, 아프니까 청춘인 거다, 쫄지마라, 닥치고 투표해라 등등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자본주의 말기 현상일지 모를 신자유주의는 모두를 점으로 나눴다. 각자 자기 앞가림하기도 버겁게 만든 것이다. 한 움큼 쥔 모래가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듯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일은 너무 어렵게 됐다. 그래서 분석이 쉽지 않고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다.

점성이 있는 점들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구체적 대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출간된 지 80년이나 지난「게 공선」이 다시금 읽히고 나라는 사람까지 읽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보다 나은 사회와 개인적 삶을 위해 준비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밤이다.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고바야시의 책 표지에서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는 나를 덮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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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낯선 인간 - 풍요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빈곤한 유전자
피터 글루크먼 & 마크 핸슨 지음, 김명주 옮김 / 공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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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생명은 약 38억 년 전에 시작됐고, 그때 이래로 DNA의 복제가 끊임없이 계속되어 우리와 지구상에 살아 있는 다른 모든 동물들에까지 이르렀다.” (p.121)

 

 

진화론에서 얘기하는 인간생명의 출발점은 수십억 년 전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진 DNA다. 그것이 복제와 복제를 거듭한 후 약 15만 년 전부터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 인간 조상이 생겨났다고 한다. 수렵과 사냥으로 시작된 인간생물의 활동은 처한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퇴화하고 진화해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 책은 15만 년이라는 기나긴 인간의 진화과정을 뒤엎는 미스매치가 단 100여 년 만에 일어나고 있는 현대 문명의 어긋남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된다.

쉽게 얘기하면 고도로 발달된 문명은 오랜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 온 인간진화 과정의 축적된 양태를 한 번에 뒤엎었다는 것이다. 유물론을 설명하는 것에 빗대어 본다면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내 어떤 일정한 ‘합’의 형태를 가진 진화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의 축적된 양태가 이어오면서 마치 큰 강의 굽이에 거대한 퇴적토가 쌓이는 것처럼 인간의 모습 속에 새겨져 왔다는 것이다.

 

 

“환경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여기에는 분명히 진화 과정들이 관여한다.” (p.105)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임기를 지난 여성이 자연스럽게 폐경을 맞는 것처럼 생식능력을 다한 인간은 적절한 시기에 죽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엄청나게 길어졌다.

중세와 19세기 말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병은 인간진화 과정에 특별한 정체를 가하는 요소였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 이후 항체의 형성과 반작용의 방법으로 적응해 내는 진화를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문명이 낯선 인간」)처럼 지금의 문명은 인간에게는 너무 낯설다. 속도가 맞지 않는 것이다. 맞물려 진행되어온 유구한 인간진화의 역사가 폭발하는 문명의 속도와 미스매치 되는 것이다.

 

 

“부정교합은 17세기까지는 골격에서 이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부정교합이 출현한 것은 갓난아이의 음식이 거친 물질에서 현대의 유아식과 같은 부드러운 물질로 바뀌었기 때문인 듯하다……. 씹을 일이 줄어들면 턱에 가해지는 스트레스와 긴장이 줄고 턱이 잘 성장하지 못해서 부정교합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거친 물질을 먹도록 설계됐다. 이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치아 교정 비용이다.” (p.63)

“생물의 삶을 어긋남의 틀로 바라보는 것을 이 책에서는 ‘미스매치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p.26)

 

 

이것은 분명 진화생물학자나, 진화유전학자들에게는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오늘날에도 주류 생물의학계 내에서 후성유전학의 중요성은 이제 겨우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p.107)

“후성유전학은 외적 영향들이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효과를 다루는 생물학의 한 분과로 정의한다.” (p.108)

 

 

단순히 반복되는 유전의 관점에서만 진화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개체가 되는 유전자의 발생 이전의 상황들까지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태아가 최초로 수정이 되는 순간 이전의 상황 -어머니의 난자의 유전인자가 외할머니의 난자의 유전인자 속에 있는-을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외적 영향들이 있었는지, 그것이 지금의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100여 년 전까지의 인간진화 과정의 유전법칙들이 지금의 문명에서는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맞물림이다. 어긋나있는 문명과 인간의 틈을 메워 맞물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종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요소와 그들의 현재 및 미래 환경을 더 잘 맞물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p.306)

“우리는 대사적 측면과 여타 측면들에서 지난 15만 년 동안 진화해 온 우리의 생물학적 대처 능력을 한참 벗어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 환경을 다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우리의 생물학적 과정과 더 잘 맞물리게 바꾸는 것이다.” (p.307)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이상적인 진화의 과정은 문명으로 인해 무너졌다. 암, 당뇨병, 퇴행성 신경 질환, 심장병 등의 온갖 퇴행성 질환과 중년 및 노년질환 발생의 빠른 증가는 인간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노화의 양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인간진화의 가장 근원적인 바탕인 생식능력에 있어서 15만 년 동안 각 대륙에서 각자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적응해 가며 진화해 온 생식능력이 고도의 문명의 산물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와 소아, 청소년 질환 등으로 인해 어긋나 버렸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들의 생리는 가장 자연스럽고 이상적으로 체득되어온 진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명과 어긋나버리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책의 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이다.

 

 

“미스매치 패러다임은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변화를 나타낸다…….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결론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환경과 가능한 한 생물학적으로 잘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p.291)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진화와 유전학, 생물학 따위는 과학인데 이들이 주장하는 ‘후성유전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은 인문학, 사회학, 문화인류학을 한데 섞은 짬뽕유전학이 된 것 같다. 다윈과 멘델 이후 서구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의 과학계를 주름잡아온 진화생물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진화나 생물, 유전학이 어차피 어려운 학문이니 인문·사회, 문화인류학과 크로스오버 해서 그들의 학문에 대한 어긋남을 은근슬쩍 메우려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히 자신들이 신봉해 오던 학문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크로스오버를 시인한 것도 아니다.

 

그런 의구심이 물밀 듯 밀려오던 찰나에 두 저자의 실제적이고 다소 황당한(?) 맞물림 대안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어긋남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 예측을 바꾸거나, 아니면 나중의 환경을 생애 초기에 예측된 것에 가깝게 고치는 것이다……. 건강한 습관과 운동을 권장한다.”

“임신 관리를 잘하면 맞물림 능력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가 확보된 방법들 중 하나는, 첫 임신을 여성의 골반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 즉 적어도 초경을 맞은 지 4년 뒤로 미루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금연을 장려하는 것이다.” (p.263)

 

 

건강한 습관과 운동을 권장한다? 이거 어디 보건소 복도에 붙여진 표어 문구도 아니고 이렇게 어려운 용어와 설명으로 가득한 책에서 결론은 건강한 습관과 운동이라니……. 좀 어이가 없었다.

 

또한 임신 관리를 잘하면 맞물림 능력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다니? 의사인 두 저자가 너무 공부만 열심히 해서 현대 문명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결론이 너무 착하고 유치하다.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의 토론수업에 손을 들고 또박또박 의견을 말하는 것 같다.

 

예측 가능하지 않고 예방은 더욱 어려운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이 두 저자의 말대로만 해결되어서 어긋남이 맞물림으로 서서히 진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쉽고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뭐, 굳이 이해를 하려 한다면 어차피 이 책이 인문·사회 서적은 아니기 때문에 철저하게 의학·유전학·생물학의 관점에서 쉽게 말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대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조기 임신 현상에 대한 수십, 수백, 수천가지 인문·사회학적 요소를 따져보면 하나하나가 다를 것이다. 첫 임신을 여성의 골반이 완전히 자랄 때까지 적어도 초경을 맞은 지 4년 뒤로 미루는 것이다. 따위의 결론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란 말이다.

 

어렵게 읽은 책의 말미에 얼토당토않은 저자들의 결론을 보면서 좀 어이가 없었다. 후성유전학이 유전학과 생물학 분야에서도 아직은 생소한 학문이고 이제 출발하는 단계라면 차라리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기존 진화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문명과의 어긋남에 대한 통찰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어긋남을 맞물림으로 바꾸려 한 욕심이 지나쳤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면서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 어긋나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생물학적으로 잘 맞물려야 한다는 저자들의 언급이 오히려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 맞물리는 결론이라 생각한다.

 

높이, 멀리, 깊이, 크게 사방으로 뻗어 온 문명의 칼끝을 무뎌지게 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것과 맞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사회학, 인류학만으로 제시할 수 없는 대안과 결론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어설픈 결론은 내리지 말아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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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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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정치적 각성을 20대와 30대 한 번씩 두 번 했다. 20대의 각성은 대학 때 고(故)리영희 교수님의 책 「반세기의 신화」를 읽고 나서였다. 30대의 각성은 ‘나는 꼼수다’를 듣고 나서였다.


주진우 기자도 ‘나꼼수’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누나전문 기자’, ‘부인전문 기자’, ‘디테일 기자’, ‘사탄기자’, ‘탐사보도 1인자’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 처음 들어본 주진우 기자의 목소리와 말투, 화법은 어눌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무슨 탐사보도 1인자라고 하나?’ 생각했다. 말을 너무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기존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알려주지 않고 보도하지 않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혹자는 이것이 우매한 국민을 선동하기 위함이니, 모함이니, 음모니 하지만 그렇게 일반 국민을 훈계와 계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자들은 최소한 ‘나꼼수’처럼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단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저만치 떨어져 고고하게 다리 꼬고 앉아 독야청청하며 개소리만 떠들어 댔다.


이 책은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주진우기자의 비망록이다. 관심 있게 바라보는 많은 이들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팟캐스트 방송보다 더욱 디테일을 채웠다. 이면의 적나라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어눌하지 않다.

 

 


“2003년쯤 자각이 생겼다. 돈만 숭배하는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나만의 창을 조금씩 갖게 됐다……. 종교, 청와대, 권력기관. 무엇보다 삼성. 전문 분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p.70)

“삼성이 지켜보자 술도 끊었다.” (p.100)

 

 


개인적인 자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역사적인 것이든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진우기자는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보며 자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강하고 견고한 성역(聖域)인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줄기차게 건드렸다. 파고들어 취재하고 보도하고 소송 당하고 사탄이라 취급받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자기 가족이라도 대통령 경호실과 정보원을 방불케 하는 경호력과 정보력을 투입하는 삼성에게 조금이라도 흠이 될까 술도 끊었다고 한다.


삼성의 치부를 수년간 파헤쳐 왔는데 삼성이 주진우기자의 머리털까지 털어보고 살펴보고 조사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진우기자를 ‘나꼼수’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자기 스스로 정제하고 절제하고 깨끗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삼성과 싸워온 고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그에 대한 별 말이 없다. 원래 정말 힘든 군 생활 하고 제대한 사람은 군대 얘기 잘 안 한다. 뜨뜻미지근하게 군 생활 한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거품 물고 얘기한다.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한다. 이건 신념이 아니라 간지다.” (p.149)

“종교 비리는 검찰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고민할 것도 없다. ‘그럼 내가 해야지.’” (p.109)

 

 


개인적 자각으로 시작된 특별한 기자질(?)이었지만 주기자 자신은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이 안 하는 취재 하니까 ‘저거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정체가 뭐야?’ 손가락질 받는 것이고, 사탄이니 악마니 별소리를 다 듣고 힘을 가지고 무분별하게 칼춤 추는 자들에게는 타도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이식의 발로가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이 힘 있고, 빽 있고, 권력 있고, 돈 있는 놈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무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건 아니다!! 잘못 됐다!! 하지 마라!!’라고 외쳤던 것일 테다.

 

그래서 지난 10년 정도 한국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가장 크고 굵직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바로 주기자가 있었다. 유영철 사건, 삼성비리(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큰 목사님을 위시한 비리, 조선일보와의 싸움, BBK, 2002년 16대 대선 전 날 있었던 정몽준 뻘짓사건의 전말, 최진실 사건 등 지난 10년을 아로새길 큰 일들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도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나꼼수’의 이상한 인기에 편승해 유명해 지고 책을 내 돈을 번다고.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가정과 추측을 가지고 혹세를 무민한다고.



그러나,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다.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황과 일과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있었다. ‘나꼼수’에 참여하기 훨씬 전부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고 쌍용차와 용산, 강정마을, 그리고 모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가까이 하지 않던 최진실의 곁에 있었다.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이것을 정확히 해야 한다.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고 우리는 그를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혹자들은 또 말한다. 급진적이고 편향적이다. 그러나 주기자는 국가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고 지금도 신경 쓰지 않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곁에도 항상 있었다.

 

“독립유공자 유족 6천여 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퍼센트가 넘고, 봉급생활자는 10퍼센트 남짓이다. 중졸이하 학력이 55퍼센트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p.300)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는 응당 국가적 정책과 제반지원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다. 그곳에도 늘 있었다. 오히려 좋은 것을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 ‘보수’에서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좌나 우에 편향된 정치적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보수’라 자칭하는 자들과 세력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과제다.

 

 


“한 전직 지검장이 말했다. ‘검사에게 승진과 출세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양심이, 신념이 인생을 책임져줍니까. 순진한 소리죠. 주 기자는 꼴통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지.” (p.61)

 

 


또 하나의 성역(聖域) 판검사 집단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줄곧 같은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아무도 이 판검사 성역(聖域)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검찰개혁을 위해 온갖 시도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한 곳이다. 절대로 쓰러뜨릴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주기자는 꼴통같이 살았다. 비판하고 조사하고 취재하고 보도했다.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그런 주기자의 꼴통 짓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이런 기자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아직도 이런 기자가 있으니 말이다. 힘을 다해 지켜줘도 시원찮을 판이다.

 


“내 취재 기법은 단 한가지다. ‘일단 가본다. 그리고 일단 해본다.’” (p.133)

 

 


책을 읽으며 욕지거리를 쏟아 부어도 속이 풀리지 않을 존재는 무엇보다 언론이라는 생각이다. 큰 건물 책상에 앉아 시시콜콜한 여론몰이에만 촉각을 세우고 여론의 향배를 좌지우지 하는 자들이 많으니 제대로 된 취재와 보도는 어불성설이다. 가보지도 않고 일단 부딪혀보지도 않고 언론인이라는 자들은 ‘~~카더라, ~~인 것 같다, ~~관계자가 말했다.’ 따위의 수사(修辭)로 자신을 감춘다. 자신이 없으니까.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웬만한 오보와 추측 기사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무섭지 않으니까.

정치적 편향성, 추측성 폭로의 마녀사냥으로 주기자를 가두려 한다. 제발 주기자를 살려주셨으면 한다.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 자기 머리 짓이겠다는데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자가 되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하지 않는 취재를 하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을 건드리고 비판했다. 그게 이 책을 읽고 나서 주기자에게 받은 가장 큰 인상이다. ‘나꼼수’에 나와 수줍고 어눌하게 예기하는 주진우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자, 주기자이다. 눈치 보지 않고 강자에게 편승하지 않고 정치적 패권에 따라 펜끝이 달라지는 기자다.

 

사실, 주기자같은 기자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 성숙한 사회일 텐데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실타래처럼 꼬이고 얽히고 설켜 있어 누군가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 낱낱이 파헤쳐주지 않으면 국민들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주기자는 계속 혼자만의 정통시사활극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고 기자니까 말이다. 단순히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자를 뒤늦게 발견했으니 오래두고 보고 싶다. 그의 활약이 빛나고 종횡무진 일수록 그만큼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기자 하나쯤은 숨겨둔 비상금처럼 사회의 청량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똑바로 알아야 한다.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고 우리는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돈 뺏기는 거다. 그래서 난 5백 원이라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서 추징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욕먹는 것, 칼을 씌워 광화문 앞에서 석고 대죄시키는 것보다 5만 원을 뺏으면 더 슬퍼할 거다. 명예라는 건 애초에 없어서 부끄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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