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명작스캔들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보고 강렬하게 끌렸던 그림이 있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가 지난 2000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는데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86번째로 꼽혔다. 흔히 서구인들 일색인 그런 발표에서 일본인, 그것도 에도시대 화가가 말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이 작품,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린 작가이다. 그의 목판화 사진첩은 19세기 말부터 유럽에 큰 유행으로 번졌던 ‘자포니즘’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의 그림첩은 유럽의 인상파작가들에게는 필수교본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은 에도 말기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서구 문명에 침몰할 듯 휘청거리는 일본의 위태로움을 큰 파도와 배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백미는 한 중간에 작게 그려진 ‘후지산’이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 연작 목판화 [후가쿠 36경] 중 하나인데, 삼킬 듯 몰아치는 서구의 파도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후지산을 보며 일본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호쿠사이의 목판화는 유럽 대표 인상파 작가인 모네, 반 고흐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 「게 공선」의 표지는 조금 다르다.

 

 

 

그림을 보면 왼쪽의 파도는 그대로 인데 어부들이 타고 있는 조그만 배와 중간의 후지산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게 공선’으로 둔갑해 버렸다.

표지 그림만 봐서는 대(大) 작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모방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내포한 것도 같다.

 

「게 공선」표지의 파도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에서 시사 하는 서양문물이 아닌 덮칠 듯 몰아치는 자본주의체제이다.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쓰나미처럼 덮친 자본주의체제에서 양산된 자연스런 계급구조의 공고화, 그것으로 인한 계급 갈등의 한 복판에 있던 일본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해공선(蟹工船)이라 읽어야 맞다. ‘蟹’ 자는 ‘게 해’ 자인데, 왜 해공선이라 하지 않고 게공선이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삐딱한 양반이다. ㅋㅋ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p.6)


당시 일본은 전쟁 중이었다. 안팎으로 혼란과 혼돈의 시기였다. 서양문물에 대한 개방과 전쟁, 자본주의 체제의 쓰나미 등은 모든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을 바꿔놓았다. 계급구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각지에 생겨나는 공장과 탄광 등의 산업시설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발을 못 붙여 마지막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 바로 게공선이었던 것이다.


“나도 말이지, 이번엔 절대로 배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구.” (p.13)


홋카이도 북부, 오호츠크해 남쪽 연안의 게 어장으로 가는 공선(工船)에 오른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꾼 것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게공선의 탑승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게공선에는 선장과 선원, 300여명의 어업노동자, 잡일꾼, 기술자, 그리고 어업노동자들을 감독하는 감독이 탑승했다.



“이건 뭐야, 두들겨 패서라도 깨우겠다! 아무리 천하다고 해도 이 일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인 만큼, 전쟁과 똑같다. 죽을 각오로 일해! 멍청한 놈.” (p.95)

“너희 한두 명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어선 한 척이라도 없어졌단 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p.28)


홋카이도로 향하는 항해도 고역이었다. 찜통 같은 선실을 어업노동자들은 ‘똥통’이라 불렀다. 배를 삼킬 듯한 파도에도 8척의 똑딱선을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갑판으로 나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어업노동자가 물에 빠지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기적적으로 러시아 선박에 의해 구조되고 그들에게 ‘공산주의’를 듣게 되고 그것에 빠져들게 된다. 너무 맞는 말이니까. 자신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니까.



“노동자, 제일 위대하다. 노동자 없으면. 모두, 빵 없다. 모두 죽는다. 알아?” (p.65)


같은 노동자이지만 자신들의 현실과는 다른 러시아 노동자들을 보며 각성을 한다. 결국 다시 게 공선으로 돌아와 다른 어업노동자들에게 자본가와 자본가의 개 노릇을 하는 감독에게 저항하고 대항할 것을 독려한다.

그러나, 감독 또한 멀리 본사 빌딩에서 양복입고 근무하는 중역에게는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태업’을 거듭했다. 수장(水葬)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욱 행동이 통일되어갔다. 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p.138)


‘태업’을 하고 결국 감독의 폭압적인 지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반란을 일으키지만 직전에 어업노동자들의 동태를 눈치 채고 있던 감독은 일본 군함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게 공선의 혁명은 끝이 났다.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

“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 (p.175)


자신들의 혁명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의 군함은 중무장을 하고 게 공선에 올라 감독의 입장에서는 ‘반란’의 주동자들을 체포해 데려간다. 노동자의 편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론은 비관적이지 않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각성하고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감독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더 은밀하게 혁명을 도모하고 군함에 미리 연락하지 못하게 감시하며 게 공선의 작업이 모두 끝나 하선한 후에는 다양한 노동 계층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게 공선에서 이룩했던 ‘조직’, ‘투쟁’의 대단한 경험들을 전파하게 된다.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결론이다.



이 작품이 최근 일본에서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갑자기 불어난 「게 공선」의 판매부수에 대해 역자는 일본사회의 현재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 소개한다. 늘 불안한 노동자일 뿐인 수많은 비정규직들과 아무리 일해도 도무지 삶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들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일본보다 더욱 심각하리라 확신하는 국내의 비정규직 실상과 아무리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빚더미와 씨름하는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게 공선>에서 보여준 그 당시의 권력 관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현실에서 그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p.189)

 

 


저자인 고바야시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를 일깨우고 비정상적인 계급구조를 타파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각성해 들고 일어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8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게 공선」에서 지옥을 경험하던 어업노동자들의 삶과 지금의 노동자들의 삶의 양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책의 내용이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아주 예전 얘기라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각광을 받고 많이 읽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뭔가 바뀌기를 나아지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작품 속 어업노동자들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서는 「게 공선」의 지옥을 벗어나 새로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드는 각성한 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힘찬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이 책을 읽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80년 전 그들처럼 다시 ‘공산주의’를 부르짖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난해부터 봇물 터지듯 출간되는 ‘~해라, ~하자’ 유의 책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대안을 제시한다. 짱돌을 들라, 분노하라, 아프니까 청춘인 거다, 쫄지마라, 닥치고 투표해라 등등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자본주의 말기 현상일지 모를 신자유주의는 모두를 점으로 나눴다. 각자 자기 앞가림하기도 버겁게 만든 것이다. 한 움큼 쥔 모래가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듯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일은 너무 어렵게 됐다. 그래서 분석이 쉽지 않고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다.

점성이 있는 점들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구체적 대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출간된 지 80년이나 지난「게 공선」이 다시금 읽히고 나라는 사람까지 읽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보다 나은 사회와 개인적 삶을 위해 준비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밤이다.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고바야시의 책 표지에서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는 나를 덮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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