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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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까지 정치적 각성을 20대와 30대 한 번씩 두 번 했다. 20대의 각성은 대학 때 고(故)리영희 교수님의 책 「반세기의 신화」를 읽고 나서였다. 30대의 각성은 ‘나는 꼼수다’를 듣고 나서였다.


주진우 기자도 ‘나꼼수’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누나전문 기자’, ‘부인전문 기자’, ‘디테일 기자’, ‘사탄기자’, ‘탐사보도 1인자’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 처음 들어본 주진우 기자의 목소리와 말투, 화법은 어눌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무슨 탐사보도 1인자라고 하나?’ 생각했다. 말을 너무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기존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알려주지 않고 보도하지 않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혹자는 이것이 우매한 국민을 선동하기 위함이니, 모함이니, 음모니 하지만 그렇게 일반 국민을 훈계와 계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자들은 최소한 ‘나꼼수’처럼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단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저만치 떨어져 고고하게 다리 꼬고 앉아 독야청청하며 개소리만 떠들어 댔다.


이 책은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주진우기자의 비망록이다. 관심 있게 바라보는 많은 이들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팟캐스트 방송보다 더욱 디테일을 채웠다. 이면의 적나라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어눌하지 않다.

 

 


“2003년쯤 자각이 생겼다. 돈만 숭배하는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나만의 창을 조금씩 갖게 됐다……. 종교, 청와대, 권력기관. 무엇보다 삼성. 전문 분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p.70)

“삼성이 지켜보자 술도 끊었다.” (p.100)

 

 


개인적인 자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역사적인 것이든 반드시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진우기자는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보며 자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강하고 견고한 성역(聖域)인 삼성과 조용기 목사를 줄기차게 건드렸다. 파고들어 취재하고 보도하고 소송 당하고 사탄이라 취급받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자기 가족이라도 대통령 경호실과 정보원을 방불케 하는 경호력과 정보력을 투입하는 삼성에게 조금이라도 흠이 될까 술도 끊었다고 한다.


삼성의 치부를 수년간 파헤쳐 왔는데 삼성이 주진우기자의 머리털까지 털어보고 살펴보고 조사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진우기자를 ‘나꼼수’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자기 스스로 정제하고 절제하고 깨끗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삼성과 싸워온 고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그에 대한 별 말이 없다. 원래 정말 힘든 군 생활 하고 제대한 사람은 군대 얘기 잘 안 한다. 뜨뜻미지근하게 군 생활 한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거품 물고 얘기한다.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한다. 이건 신념이 아니라 간지다.” (p.149)

“종교 비리는 검찰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고민할 것도 없다. ‘그럼 내가 해야지.’” (p.109)

 

 


개인적 자각으로 시작된 특별한 기자질(?)이었지만 주기자 자신은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이 안 하는 취재 하니까 ‘저거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정체가 뭐야?’ 손가락질 받는 것이고, 사탄이니 악마니 별소리를 다 듣고 힘을 가지고 무분별하게 칼춤 추는 자들에게는 타도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이식의 발로가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이 힘 있고, 빽 있고, 권력 있고, 돈 있는 놈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무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건 아니다!! 잘못 됐다!! 하지 마라!!’라고 외쳤던 것일 테다.

 

그래서 지난 10년 정도 한국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가장 크고 굵직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바로 주기자가 있었다. 유영철 사건, 삼성비리(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큰 목사님을 위시한 비리, 조선일보와의 싸움, BBK, 2002년 16대 대선 전 날 있었던 정몽준 뻘짓사건의 전말, 최진실 사건 등 지난 10년을 아로새길 큰 일들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도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나꼼수’의 이상한 인기에 편승해 유명해 지고 책을 내 돈을 번다고.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가정과 추측을 가지고 혹세를 무민한다고.



그러나,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다.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황과 일과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있었다. ‘나꼼수’에 참여하기 훨씬 전부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고 쌍용차와 용산, 강정마을, 그리고 모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가까이 하지 않던 최진실의 곁에 있었다.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이것을 정확히 해야 한다.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고 우리는 그를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혹자들은 또 말한다. 급진적이고 편향적이다. 그러나 주기자는 국가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고 지금도 신경 쓰지 않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곁에도 항상 있었다.

 

“독립유공자 유족 6천여 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퍼센트가 넘고, 봉급생활자는 10퍼센트 남짓이다. 중졸이하 학력이 55퍼센트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p.300)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는 응당 국가적 정책과 제반지원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다. 그곳에도 늘 있었다. 오히려 좋은 것을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 ‘보수’에서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좌나 우에 편향된 정치적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보수’라 자칭하는 자들과 세력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과제다.

 

 


“한 전직 지검장이 말했다. ‘검사에게 승진과 출세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양심이, 신념이 인생을 책임져줍니까. 순진한 소리죠. 주 기자는 꼴통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지.” (p.61)

 

 


또 하나의 성역(聖域) 판검사 집단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줄곧 같은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아무도 이 판검사 성역(聖域)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검찰개혁을 위해 온갖 시도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한 곳이다. 절대로 쓰러뜨릴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주기자는 꼴통같이 살았다. 비판하고 조사하고 취재하고 보도했다.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그런 주기자의 꼴통 짓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이런 기자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아직도 이런 기자가 있으니 말이다. 힘을 다해 지켜줘도 시원찮을 판이다.

 


“내 취재 기법은 단 한가지다. ‘일단 가본다. 그리고 일단 해본다.’” (p.133)

 

 


책을 읽으며 욕지거리를 쏟아 부어도 속이 풀리지 않을 존재는 무엇보다 언론이라는 생각이다. 큰 건물 책상에 앉아 시시콜콜한 여론몰이에만 촉각을 세우고 여론의 향배를 좌지우지 하는 자들이 많으니 제대로 된 취재와 보도는 어불성설이다. 가보지도 않고 일단 부딪혀보지도 않고 언론인이라는 자들은 ‘~~카더라, ~~인 것 같다, ~~관계자가 말했다.’ 따위의 수사(修辭)로 자신을 감춘다. 자신이 없으니까.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웬만한 오보와 추측 기사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무섭지 않으니까.

정치적 편향성, 추측성 폭로의 마녀사냥으로 주기자를 가두려 한다. 제발 주기자를 살려주셨으면 한다.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 자기 머리 짓이겠다는데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자가 되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하지 않는 취재를 하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을 건드리고 비판했다. 그게 이 책을 읽고 나서 주기자에게 받은 가장 큰 인상이다. ‘나꼼수’에 나와 수줍고 어눌하게 예기하는 주진우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자, 주기자이다. 눈치 보지 않고 강자에게 편승하지 않고 정치적 패권에 따라 펜끝이 달라지는 기자다.

 

사실, 주기자같은 기자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 성숙한 사회일 텐데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실타래처럼 꼬이고 얽히고 설켜 있어 누군가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 낱낱이 파헤쳐주지 않으면 국민들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주기자는 계속 혼자만의 정통시사활극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고 기자니까 말이다. 단순히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자를 뒤늦게 발견했으니 오래두고 보고 싶다. 그의 활약이 빛나고 종횡무진 일수록 그만큼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기자 하나쯤은 숨겨둔 비상금처럼 사회의 청량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똑바로 알아야 한다.

주기자는 늘 그곳에 있었고 우리는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돈 뺏기는 거다. 그래서 난 5백 원이라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서 추징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욕먹는 것, 칼을 씌워 광화문 앞에서 석고 대죄시키는 것보다 5만 원을 뺏으면 더 슬퍼할 거다. 명예라는 건 애초에 없어서 부끄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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