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가끔 씻으러 들어 간 세면대 거울을 보고 문득 놀라고 낯설 때가 있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몸이 누구인가? 하는 쓸데없는 물음이 생길 때가 있다. 공연히 이런저런 말을 해보면서 ‘목소리도 이상해……. 눈·코가 왜 저렇게 생겼지?...’ 대답 없는 푸념도 쏟아낸다. 얼굴을 찡그려 잡히는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의 육체 안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남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불쾌감이에요.” (p.27)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사실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난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는 가장 근본적이고 어렵고 불편한 물음일 것이다. 엄청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다. 수많은 인간들이 그 물음 혹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써 왔지만 ‘인간이란 바로 이거야!’ 속 시원히 답을 내어 놓지 못한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과 교육과 정치와 문화를 꿰뚫더라도 결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어쩌면 애초부터 대답 혹은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재귀순환의 고리와 같은 ‘에고트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이라 명명된 존재의 존재론적인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에고트릭」은 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라 생각한다. 물론, 명쾌한 대답은 찾을 수 없었다. 뇌신경학, 사회심리학, 불교의 무아(無我)론, 미래기술 등의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독자로 하여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방면의 분야를 신나게 이동하는 듯한 청량감은 느끼게 해준다.

 

12가지의 철학적 질문들은 책의 소제목들처럼 꼭 학문적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씩은 가져봤음 직한 질문들이다. 다만 그것을 책의 소제목처럼 멋들어지게 꾸며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를 제외한 ‘상대’가 대신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어렵다.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 진실이고 환상인지, 어디까지 참이고 거짓인지 ‘상대’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결국 이것은 ‘나’에게 맡겨진 존재론적인 사명임과 동시에 숙명이다.

물론,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지의 여부 또한 ‘나’에게 있다.

 

철학적 짐 덩어리를 짊어진 채 현실의 아비규환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 기억은 수동적인 정보 덩어리가 아니다. 기억은 능동적인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용물이다.” (p.72)

“기억이라는 여과기를 거친 진실과 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해석된 사실이다.” (p.74)

 

‘기억’은 너무나 불안정한 도구이다. 얼마 전 군 복무시절 내 소대원이었던 동생을 만났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책에서의 언급처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그리고 가공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을 다시 꺼내 올렸을 때는 주관적으로 해석된 사실이 될 수밖에 없다.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내용이다. 책을 읽기 며칠 전 그런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갔겠지만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나’, ‘그 당시의 나’에 대한 ‘기억’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야~! 내가 말이야~~ 그때는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하는 따위의 객기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술자리에서 지나간 군 생활을 안주거리로 삼을 때나 필요한 것이다.

 

“그를 타락시킨 특수한 환경에 놓이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 (p.221)

“상황 요인이 개인의 성격보다 행동 예측에 좋은 지표일 때가 많다……. 실로 많은 상황에서 개인 성격이 확실한 행동 결정 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 (p.222)

 

범죄수사에 대한 프로파일링 기법이 이제는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연쇄범죄자나 사이코패스들에 대한 수사에만 프로파일링이 적용되고 있지만 나아가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도 프로파일링을 유용할 것 같다.

 

그리고 요즘 TV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가정 내 부부간, 부모·자식 간 불화 문제에 있어서도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요인을 파고 들어간다.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상처와 쓴 뿌리를 해소하고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해소와 제거 작업이 완료되면 참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래서 책의 언급처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이 사람의 성격은 이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모두가 결여된 성격의 집합체라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더 올바른 가치판단이다.

책의 12가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중 나는 기억과 상황요인에 대한 내용에 공감이 갔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나와는 다른 질문에 공감이 가고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참 어렵고 지루한 질문과 물음이지만 ‘나는 누구인가?’는 꼭 필요한 삶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꼭 시간이 많고 상황이 허락해야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당장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세면을 하다 거울을 보고, 운전하다 무심코, 책을 읽다 문득, 동료와 대화하다 화들짝 이런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했을 때 아주 잠시라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본다면 긴 인생의 여정의 어디쯤 방점하나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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