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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 불평등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초상
뉴욕 타임스 지음, 김종목.김재중.손제민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얼마 전 진보 정당 내 종북 세력 문제로 한참 동안 떠들썩했다. 분단국가의 특성 상 이데올로기는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소재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다고 판단되는 지금에도 여전히 친북·종북의 탈은 토끼사냥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친미·종미·숭미를 표방하는 집단과 조직, 사람들이 많다. 다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그렇게 살고 있다.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을 머나먼 미국에 보내고 자신은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이 무수하고 영어 하나면 뭐라고 하고 산다는 우스개는 정설이 되었다.
법체계에서부터 행정·사회구조·경제체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식을 표방한다. 어쨌든 미국이 세계 1등이기 때문이다. 힘도 제일 세고 돈도 제일 많으니까.
2005년 뉴욕타임스에서 기획 취재한 기사를 번역한 「당신의 계급사다리는 안전합니까?」는 이런 기존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급속도로 불평등한 구조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상승 이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미국은 계급과는 거리가 먼 사회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환상에 불과하며, 현실은 계급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급사회라는 것을 대중매체 기자들이 밝히고 있다는 점” (p.349)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던 미국의 속살을 그것도 대형 신문사에서 들추어냈다는 것에 일단 놀랐다.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전 세계 어디에도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도 이미 공식적으로는 없는 제도이다. 그러나 ‘1%의 초부유층, 0.001%의 재벌’ 이런 뉴스를 접하면 욕지거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아~! 부럽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이라는 탄식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사다리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릴로는 한창때의 연봉이 최하 10만 달러인 경제적으로 동질한 소집단이다. 그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p.212)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미줄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여하튼 그들은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p.104)
내가 사는 대구에도 강남 같은 곳이 있다. 대구에 살지 않는 사람도 ‘수성구’는 들어 봤으리라 생각한다. 예전에 한창 ‘강남8학군’으로 시끄러웠을 때 ‘강남8학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곳이 대구의 ‘수성구’라고 했었다. 예전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성구’의 프리미엄을 맛보기 위해 타 구에 살고 있는 부모들은 고등학생 자녀들을 위장전입 시키면서까지 ‘수성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입학시키거나 전학시킨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법과 탈법을 몸소 가르치는 것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수성구’에는 책에서 소개하나 ‘릴로’처럼 전문직 직업을 가진 고소득 계층이 많이 살고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도 이런 아이들이 많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해서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더 좋은 학교를 위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고 말하며 설득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지옥 같은 등·하교를 1시간 반 동안 해야 한다.
“평등을 크게 촉진하는 것으로 이상화되었던 시스템이 오히려 태어날 때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p.14)
“결국 체제의 문제다.” 슬라보예 지젝
결국은 체제의 문제이다. ‘수성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불사하는 학부모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나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수성구’가 아닌 타구에 있는 학교에서 빼어나게 공부를 잘했다면 굳이 불법을 자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교육을 공공의 영역에서 완전히 포기하다 보니 사적인 시장영역에 맡겨져 버렸다. 한 시간에 수십만 원씩 하는 과외를 받는 아이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리 위장전입을 불사하는 아이들이라 해도 따라가지 못한다. 처음부터 올라갈 수 없는 저 높은 곳의 사다리 위에 있었던 것이다.
“더욱 글로벌화한 시장의 탄생, 신기술, 감세로 인해 가속화한 투자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주가는 급등했고 그만큼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업종들이 이익을 보았다.” (p.265)
“이 책이 다룬 양극화, 중간계급 붕괴, 초부유층의 독식 같은 문제는 진행형이거나 더 악화되었다.” (p.364)
신자유주의가 가속화 되면서 모든 것은 시장권력으로 기울어 졌다. ‘있는 놈은 더 부자가 되고 없는 놈은 더 가난해 지는’ 형국이 공고화 된 것이다. ‘중산층 붕괴’라는 말이 나온 지는 어림잡아도 십여 년은 지난 것 같다. ‘중산층 붕괴’는 더 가속화 되고 격렬해 졌을 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모든 권력이 시장에 쏠리다 보니 국가의 모든 힘(공권력을 포함한)도 시장으로 쏠렸다. 수백, 수천억을 개인의 잘못으로 기업에 피해를 줬다 해도 어차피 재벌가 소유의 기업이기에 처벌 받지 않는다. 법·언론·학계를 아우르는 모든 분야가 시장 권력을 적극적으로 서포팅 한다. 도쿄에서 벌어지는 한·일전 축구를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서포팅, 그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현란하게 말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0.1%의 재벌이거나, 1%초부유층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돈이 최고야~ 재벌은 아무도 못 건드리는구먼~ 내 아들놈은 꼭 세 개의 별에 입사시켜야지~!’ 생각한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4월 시급 20달러가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시급 20달러는 연봉 4만 1600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적인 삶’ 즉 자동차와 집을 갖고 대학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최소 연봉이다.” (p.368)
연봉 4만 달러면 우리 돈 4천만원대 중반이다. 결코 적지 않은 연봉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아이 한명을 낳아 기르는데 최소한 필요한 비용이 월300만원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역시 미국의 따라 쟁이다. 모든 것을 따라간다.
“2009년 미국과 한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임금과 하위 10퍼센트의 임금 비율은 각각 4.86퍼센트와 4.74퍼센트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한 1위와 2위 국가였다.” (p.361)
상위 10퍼센트의 임금과 하위 10퍼센트의 임금 비율은 물론 부의 독점 현상도 한국은 미국에 이은 OECD2위 국가이다.
미국의 계층 구조는 계급 사다리 구조로 확고해졌다. 중산층은 붕괴하고 초부유층의 독식은 심화되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안정된 삶을 구가하고 보장보험의 혜택을 누렸으나 지금은 흔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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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끝자락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서글프다.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렸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도 우리 경제 수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적습니다.’ 라는 바보 같은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전부였던 미국의 경제체제가 모래위의 성처럼 부실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한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나름대로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미국식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데 한국의 현실은 그대로다. 숭미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파멸로 갈수도 있는 미국의 초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 될 까 걱정된다.
체제가 양극화를 심화 시키고 중간계급을 붕괴시키고 초부유층의 독식을 지원했다면 체제가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체제를?
책에서는 그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심층 취재까지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