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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신경숙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나를 책의 세계로 천착하게 만든 것은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세로쓰기로 된 두꺼운 양장본의 그 책은 고향집에 내려간 대학1학년 겨울방학을 황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게 책이구나, 이래서 고전 문학, 톨스토이, 톨스토이 하는구나’ 뼛속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문·사회서적만 탐독하는 나를 발견했다. 우연히 읽게 된 고(故)리영희 선생님의 책 이후로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또 문학만 파고 들었다.
나의 독서 패턴은 늘 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 책장을 정리하는 데 문학, 특히 내가 읽은 소설 중 대다수가 남성 작가의 작품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스라칠 정도는 아니지만 꽤 놀랐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경숙, 은희경, 심지어 박경리씨의 작품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부랴부랴 책을 구입 해 읽었다.
이 책 「모르는 여인들」은 단편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읽은 「엄마를 부탁해」는 왠지 읽기 싫어 「모르는 여인들」을 구입했는데, 단편소설집이라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구입했다.
처음 읽어 본 신경숙의 글은 따뜻했다. 이것이 7편의 단편 모두에서 받은 느낌이다. 문장의 호흡이 짧아 좋았다. 내가 워낙 김훈의 글과 문장을 흠모해서 인 탓이겠지만 호흡이 길고 너무 많은 것을 의도한 문장을 읽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 면에서 신경숙의 글과 문장은 김훈의 그것과 닮아 있는 듯 보였다. 두루뭉술하게 펼치기만 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 요즘 신경숙의 글과 문장에서는 베테랑 다운 작가 자신만의 글을 볼 수 있어 오히려 신선했다.
7편의 단편이 모두 따뜻하다. 그리고 또한 처연하다. 애달프고 애처로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서늘하고 담담하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이해될 듯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공감이 안 될 듯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그가 지금 풀숲에서]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아내와 [모르는 여인들]에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의 메모 교환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아내는 머리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공감이 되는 캐릭터였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린 시절 읽었을 때 받았던 느낌과 장성한 뒤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듯이 여성 작가가 창조해낸 여성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독자의 욕심으로 머릿속에 우겨넣으려 하는 것은 말그대로 욕심일 뿐일 것이다. 다만, 7편의 단편소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공감한 따스함과 처연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욕심이 아니다.
“파를 종종 썰어넣은 무친 생굴에서 참기름 냄새가 맡아졌다. 큼직한 깍두기, 멸치볶음, 깻잎, 계란찜. 언제 만들었는지 숭늉이 담긴 큰 양푼이 밥상 아래 놓여 있다.” (p.147)
“산수유에 복숭아나무에 배나무에 살빛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그런 봄날이었어.” (p.153)
한눈에도 맛있게 차려진 밥상이 그려지고 온갖 꽃들로 만발한 봄의 산이 그려지는 작가의 문장은 그대로 캐릭터의 감정선과 공유되고 평행하게 흘러간다. 7편의 작품 모두에서 동일했다. 이 부분이 나는 가장 좋았다. 무심하게 관망하는 듯한 말투가 작가의 문장에서 그대로 배어난다. 그리고 평행을 유지한 채 공감을 이끌어 낼 뿐 과도하게 캐릭터에 끼어들지 않는다. 단어 하나로 독자의 머릿속에 그대로 그림 그려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어렵지 않고 흔한 굴이니, 참기름이니, 계란찜이니 하는 단어의 선택 또한 작가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읽었던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의 그 자질구레하고 무슨 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의 고저는 읽는 내내 불편하고 짜증스럽게 했다.
처음 접한 작가 신경숙의 글과 문장은 따뜻하지만 처연했다. 호흡이 짧아 좋았고 쉽고 간편해 읽는 독자가 바로 이미지화 시켜 체화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와도 적정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관망하는 것이 좋았다.
결코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쓰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해서 좋은 글과 문장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신경숙의 글은 좋았다.
불쑥불쑥 ‘이게 더 정확하게는 무슨 의미일까? 작가는 이런 문장을 왜 여기에 썼을까?’ 하는 등의 물음이 울컥 치받기도 했지만 큰 의미를 찾지 못해 그만 두었다.
다음번엔 단편소설집이 아닌 장편을 읽어볼 생각이다.
작가 신경숙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