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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중국의 역사는 실로 장구하다. 학창시절 세계사의 한 꼭지로 다룰 만한 것이 아니다. 삼국지 같은 역사 소설로만 인식할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쟁경」같은 책은 군 시절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작업량을 눈앞에 마주 하고 절망에 빠진 이등병에게 슈퍼맨처럼 나타난 말년 병장의 신들린 듯한 삽질과 같다. 중국 고대 왕국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가로지를 역사서를 단번에 볼 수 없다. 그 방대한 분량 앞에 기만 죽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에 의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특정한 영역을 선택해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수천 년을 이어 온, 그래서 접하는 이로 하여금 기가 질려 도저히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장구하고 방대한 중국의 역사 중에서 그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말(論)을 모아 놓은 책이다. 역사라는 것이 입(口)으로 전해진 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록이다. 딱딱한 만연체로 서술된 역사는 지겹다. 이 책은 말(論)을 그대로 풀어내고 소개한다. 지겹기는커녕 900페이지가 넘는 잠들기 딱 좋은 분량이지만 긴장감이 있다. 장강의 길이만큼 길게 펼쳐진 중국의 역사를 논쟁(論爭)으로 풀어낸다. 쟁(爭)이지만 단순히 정치적인 다툼이나 토론만이 아니라 말(論)로 인해 일어난 여러 가지 국면에 대한 사례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책의 범위는 이러한 논쟁(論爭)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까지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의 역사’라고 함축해도 무방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수십 명의 황제에서부터 책사, 정치인, 환관들의 말은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온 역사다. 수천, 수만 명의 군사보다 한 사람의 말이 역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도 하고 목숨을 내어놓는 용기로 악행을 저지르는 왕과 황제에게 간언을 하기도 한다. 또 욕심과 쾌락에 빠졌지만 이러한 신하와 간관의 충언을 들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바른 정치를 시행한 왕과 황제도 소개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시황, 공자, 노자, 장자, 제갈량도 나온다.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말로 인해 성공을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를 살았던 그들에게는 그것이 삶의 가장 적극적인 자세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따로 구분을 하거나 작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책의 흐름대로 1부에서부터 4부까지의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들을 소개하고 내 의견을 간략하게 덧붙이는 형태가 좋을 것 같다.
1부 춘추전국시대 책사들이 천하를 종횡하고 논변의 백가쟁명이 일어나다
“춘추 전국 시대로 접어든 뒤 논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그 기세가 자못 왕성한 형세였다. 혀는 검과 같고 입술은 창과 같은 논변가들이 예리한 언사로 상대 논객과 날카롭게 맞서는 논변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격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춘추 전국 시대는 말 그대로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하루아침에 왕이 되고 왕이 죽고 나라가 바뀌고 온 산과 강은 피비린내로 진동을 하던 시대였다. 오직 칼만이 힘의 우위를 결정하는 시대였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국면에서 논변가들의 말로 아위가 결정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허탈했다. 워낙 많은 나라가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는 시기였기에 조금 더 말을 잘 하고 내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내 옆에 앉히는 것은 천하를 호령할 욕심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가졌을 욕심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1부 춘추전국시대의 ‘말’들에 대한 분량이 가장 많다. 그 만큼 많은 말이 쏟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감히 태후의 일로 나에게 간언을 하는 자가 있으면 옷을 벗겨 찔레 가시로 그의 골육을 도려내고 몽둥이로 때려 죽여, 그 사지를 잘라 대궐 아래 쌓으리라!”
의붓아버지를 거열형에 처해 죽이고 또 두 아우를 자루에 넣어 쳐 죽였으며 어머니를 부양궁에 옮겨 가두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그 유명한 진시황제는 그러한 자신의 처사에 대해 입만 벙긋해도 다 잡아다 죽였다. 말 그대로 입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난장판이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게 거칠 것이 무엇이 있었겠나. 신하라고 앉힌 자들은 모두 자신에게 감히 맞설 수 없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모초’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할 수 없었던 간언을 진시황에게 올린다. 그가 간언을 하기 바로 직전 진시황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신하 이십 여명이 그대로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모초는 두려움 없이 쫄지 않고 진정한 신하의 자세로 진시황에게 위 건에 대한 간언을 올린다. 처음에는 진시황이 당장 거열형에 처하라며 난리를 치는데 결국에는 모초의 간언을 받아 들여 자신의 악행을 바로 잡는다. 진시황이라 하면 폭군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데 사실 나는 모초의 용기도 대단하지만 아무것도 거칠 것 없던 진시황이 신하의 쓴 소리를 결국 들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 되었다. 물론,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과 패악질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최소한 목숨을 내어 놓고 올린 간언마저 내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한편 다행이기도 하다.
“위세로써 백성들의 여론을 막는 짓은 마치 강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소. 방죽을 크게 터서 한꺼번에 흐르게 하면 더 큰 피해가 생기듯, 정치적 올도 크게 터질수록 반드시 백성들의 아픔만 커질 뿐이오.”
정나라 정치가 ‘자산’이라는 사람은 정나라 왕이 충언과 간언을 하지 않는 신하들에 가려 백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백성들의 여론을 맞는 짓은 마치 강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자연스레 흐르는 강물을 막으면 필시 부작용이 생긴다. 섭리와 질서가 무너지면 옳은 일을 낳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연스레 흐르던 대로 놔두면 되는데 억지로 막거나 방향을 틀려 하거나 더 높이 방죽을 쌓다가는 더 큰 일이 날 거라 말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국민들이 밑에서부터 부르짖는 목소리가 위정자들에게 자연스레 흘러 들어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리 막히고 저리 막혀 상달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터져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는 것은 위정자들도 원하는 일이 아닐 텐데 백성의 아픔, 국민의 고통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일일까?
진나라 ‘모초’처럼 목숨을 내어 놓아야만 겨우 들어줄 것인지 모르겠다.
“앞뒤 가리지 말고 간언을 올리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신하들이 앞 다투어 진언하는 모양새가 문정약시(門庭若市)를 이루었다. 제나라 위왕은 간언이 옳으면 반드시 따랐다. 한 해가 지나자 신하들과 백성들은 비록 간언을 하고 싶어도 말할 것이 없게 되었다. 제나라는 그리하여 재빠르게 강성해졌다.”
제나라의 ‘위왕’은 모든 여론의 길을 열어 놓았다. 신하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더 이상 간언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언로(言路)가 열려 있고 이쪽과 반대쪽의 소통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그냥 듣는 것에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간언을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어지럽던 시대에도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소개하는데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물론, 올리는 모든 간언과 흘러가는 여론에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국가가 힘없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지는 않다는 아주 작은 위안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묵자 비공(非攻) 침략전쟁 반대, 비악(非樂)음악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롭지 않다. 비명(非命) 숙명론은 ‘폭도의 이론’이다. 비유(非儒) 공자의 유학은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비를 논하지 않고 일체의 사물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만물과 조화를 이루고 초탈하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주장 했다.”
“변론보다 침묵이 더 낫다.”
그런 반면에 ‘묵자’와 ‘장자’는 예의 시크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두 사상가는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쏟아낸 무수한 ‘말’들이 있을 텐데 저자는 춘추전국시대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말’들의 쓰나미에서 그것을 시크하게 비판하는 두 사상가의 삐뚤어짐(?)을 소개하는데 재미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묵자’의 견해가 더 와 닿는다. ‘장자’에 대해서는 책도 몇 권 읽고 워낙 많이 알려진 터라 주워들었던 내용인데 ‘묵자’의 것은 완전히 새로웠다. 찾아보고 싶다. 모두가 그것이 옳고 그쪽으로 간다고 해서 휩쓸리지 않고 좀 삐딱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묵자’가 오히려 멋있다.
춘추전국시대를 소개 하는 1부에 비해 나머지 2,3,4부는 분량도 적고 1부의 내용과 비슷한 것도 많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왕조가 바뀌면서 해당 왕조의 특성대로 ‘말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의미도 있고 더 재미있다.
2부 백가쟁명이 끝나고 궁정 논변이 펼쳐지다. 양한·위진 남북조 시대
3부 쟁신을 육성하여 궁정 논변의 황금기를 이루다 당나라·송나라 시대
“유총은 여전히 삼가지 않으며 충신들의 간언과는 정반대로 환관 선회의 양녀를 중황후로 세웠다. 어쩌면 유총의 죄악이 너무도 많아, 주변 십 리 안에서 혈우(血雨)가 내렸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유총의 아들 유약이 죽고 유총은 정신 착란을 일으켜 늘 귀신 소리를 들었다.”
중국 오호 십육국의 하나인 전조의 황제였던 유총은 이 책에서 가장 심한 악행을 저지른 군주로 보인다. 저자가 그렇게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유총을 소개하는 부분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저지른 악행으로 가득하다. 오죽했으면 하늘에서 혈우(血雨)가 내리고 귀신이 도처에 깔렸으며 온갖 이상한 자연현상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충성스런 신하들의 쓴 소리는 듣지 않고 환관들에게 전권을 내던진 채 오직 쾌락과 향락을 일삼고 백성들의 목소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히 그와 그의 나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위징은 저명한 간관으로, 절묘한 그의 웅변은 설득력이 강했다. 위징은 당태종을 십칠 년간 보좌하며 수백 가지의 정사에 진언을 했는데 당태종은 이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게다가 당태종은 위징에서 수차례 큰 상을 내리고 작위로 여러 차례 올려 주었다.”
그와 반대로 당나라를 탄생시키고 초대 황제가 된 당태종은 ‘위징’이라는 신하의 간언을 소중히 여겼다. 수나라가 부정과 부패, 환관들의 정치로 무너진 것을 두 눈으로 봤기 때문에 더 간언을 잘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새롭게 시작된 당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처세였기도 했겠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전조의 황제 ‘유총’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준 당태종이었다. 그 덕에 당나라는 빠른 시기에 안정적인 황권을 구축하고 중국의 역사 상 가장 위대했던 나라가 후대에 평가받기도 한 것 같다.
4부 소수 민족 정권과 함께 논변의 격변기를 맞다 원·명·청나라 시대
“원나라 왕조는 몽골 귀족 통치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권일 뿐이었다. 원나라 조정은 몽골 귀족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다수의 한족 백성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통제 정치를 펼쳤다.”
마지막 4부에서는 저자가 다소 힘이 빠진 탓인지 아니면 정통 한족이 아닌 소수 민족이 잡은 정권이라 그래서인지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를 바꿀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데 원·명·청나라 중에서 명나라에 비해 원·청나라에 대해서는 ‘원래 태생이 한족이 아니라 오랑캐이니 간관, 간언 이런 것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던 시기’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기 하다. 그리고 몽골에 대해서 우리들도 오랫동안 잘못 써왔던 단어 ‘몽고’를 책에서 여러 번 기술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인의 시각이다. ‘어리석을 몽(懞)’에 ‘옛 고(古)’자를 써서 몽골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은 그대로 가져와 우리도 ‘몽고’라고 흔히 말해 왔지만 실제 몽골인 들은 이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분명하게 ‘몽골’이라 표현해야 한다. 중국인 저자가 그렇게 썼다하더라도 번역 과정에서 몽골로 바꾸어 표현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싶다.
이 책은 900페이지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읽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거나 지루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에 소개된 각 시대별 사례는 짧게 실려 있어서 띄엄띄엄 읽어도 무방하다.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사상가, 황제, 정치가도 많아 그들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하며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모쪼록 한국에도 ‘말’이 넘쳐나는 ‘쟁(爭)’이 넘쳐나야 할 것이다. 막아 놓고 귀를 틀어막는 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대통령 탓이다.’라고 하며 마음껏 대통령을 씹고 돌리고 비틀어 대던 때가 그나마 지금 보다는 나았던 때라고 복기 해봐야 별 의미 없다. 신의 경지이던 황제조차 간언을 하는 신하와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는데 신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고 인의 장막에 가려 여론을 오판하고 있다면 거추장한 것들 좀 걷어내고 언로(言路)부터 좀 트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 본다.
이 책은 위정자들부터 읽게 해드리는 것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