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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돌콩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0
홍종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4월
평점 :
오공일, 159cm, 46kg, 홀어머니, 이복 형, 학교폭력 피해자, 기수
오공일이 갖춘 조건은 전형적인 루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일(일요일)에 태어나 오공일로 이름 붙여졌고 남성의 평균 신장에 십 여 센티미터가 모자라며 아버지는 비명횡사 했고 배다른 형이 있고 형수는 지독히도 싫어한다. 학교에서는 늘 두드려 맞기 일쑤였고 자퇴를 했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우연히 기수를 검색하다 무작정 기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오공일이 한국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비명횡사한 아버지가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 사회에 진출해 성공할 확률은 아주 작다. 아직 제대로 꽃망울도 피워보지 못한 아이들이 수십 미터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사회에서 오공일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정문제로, 학교폭력문제로, 성적문제로 아이들은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아이들이 더 이상 캄캄한 땅 밑으로 몸을 던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사회는, 이 국가는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왜 저러지? 나약해 빠져가지고 말이야!, 학교에서만은 떨어지지 않도록 창문을 열지마!! 이런 정도다.
오공일은 우연히 찾아 본 기수라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낸다. 기존 사회에서 사람들이 실패할 거라고, 사회의 루저가 될 거라고 짐작하고 판단하고 폄하했지만 오공일은 해 낸다. 이 책 「달려라 돌콩」은 그래서 신난다. 오공일을 향한 사회와 사람들의 이죽거림에 어퍼컷을 날린다. 그래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도민이는 형의 아들로 나보다 두 살 많지만 족보상으로 엄연한 조카다. 그놈도 나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도민이는 일찌감치 축구 선수가 되어 대학의 스카우트가 확정된 상태였다.” (p.13)
배 다른 형의 아들은 조카지만 모든 면에서 오공일을 능가한다. 인물도, 조건도, 능력도 오공일보다 낫다. 그래서 주눅 들어 산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피해 다닌다.
“엄마! 형의 입에서 엄마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네 엄마라는 3인칭이 아니라 그냥 엄마다. 나의 엄마, 형의 엄마다.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더니 목구멍을 콱 막았다. 숨이 막혀 당장 죽어 버린다 해도 정말 뱉어 내고 싶지 않았다.” (p.42)
배 다른 형에게서 어쩌다 ‘엄마’ 소리가 나온 것에 이 정도의 의미를 둔 나약하고 작고 애달픈 캐릭터가 오공일이다. 구제역에 걸려 죽음을 앞둔 형의 목장에 있는 소 우공일도 그랬다. 죽음을 직감한 듯이 평소 천방지축이던 우공일이 체념한 듯 그렇게 좋아하는 들콩도 받아먹지 않는다. 오공일과 너무 비슷하고 닮아 소‘우’자를 붙여 우공일로 이름을 붙였다.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등을 오공일에게 내어 준 녀석이었다. 기수를 준비하기 전 일을 하던 형의 목장에서 녀석은 유일한 오공일의 친구였다. 그런데 그 녀석도 죽었다.
하지만 오공일 곁에는 금자, 영태, 아영이가 있었다.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주는 금자와 오공일을 향한 폭력 행사자였지만 기수가 되려는 오공일을 도와주는 영태, 학교 일진에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이지만 아픈 가정사를 가진 아영이가 곁에서 오공일을 지켜 준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좋은 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뭐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이네~. 결국 잘 되는 거잖아.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 말이야.’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돌콩 공일이의 스토리는 다르게 다가 왔다.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이다. 수치상으로 따져 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20대 30대가 50대 60대와 겪는 세대차의 몇 곱절은 될 것이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는지 요즘 아이들을 보며 마음속으로나 입 밖으로 ‘우리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모르는 속을 타인이야 어떻게 짐작할 수 있나. 없다.
작품 속에서나마 모든 조건이 루저로 향하는 공일이가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당연한 듯 여겨지는 궤도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좋은 조력자들을 만나는 과정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공일이와 함께 꿈을 이뤄가는 것 같기도 했고 공일이 옆에서 공일이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출산율이 너무 저조합니다. 어서 어서 아이를 낳으세요!! 국민의 의무를 다하세요!! 일단 낳으세요!”
떠들지만 일단 낳으면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현실이다.
“학생들 힘내세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
떠들지만 여린 순 같은 아이들을 폭풍 같은 경쟁 속으로 밀어 넣기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공일이의 스토리가 더 반갑고 신난다. 비록 현실에서는 공일이와 같은 스토리를 접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스토리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제 목숨을 내던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말로만 공치사를 날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의 저자 홍종의 작가는 거창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떻고 하는 따위 말이다. 오공일처럼 작고 작은 것들에 그런 존재들을 꺼낸다. 다마스도 그렇고 돌콩도, 오공일도, 우공일도, 제주마도 그렇다. 작은 것에 눈을 멈춘다.
“드디어 체력검사 시작이다. 첫 번째로 악력 테스트, 아귀 힘이다. 준비운동으로 손을 탈탈 털었다. 잡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놈들에게 당할 때 최선의 방어는 막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이었다. 놈들의 손이든 물건이든. 그것도 못하면 주먹이 부서지도록 꽉 쥐며 참았다.” (p.104)
오공일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얼마나 맞았는지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치다 무면허로 다마스를 운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 폭력을 겪었던 그 경험이 기수 시험의 한 관문인 체력테스트에서 도움이 될 줄 몰랐다. 고삐를 쥐는 악력테스트에 오공일의 과거가 도움이 된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 어떤 일이 어떤 방법과 방향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지 피해가 될지 알수 없다. 그래서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어른들이 얘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희망은 있다. 단순히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하는 합리화가 아니라 오공일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런 우연같은 희망들이 분명히 있다. 비록 오공일보다 훨씬 세상을 오래 산 나에게는 그런 희망이 일어난 적은 없지만 내게도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땠어? 잘 봤어?”
“죽을 만큼 버르적거렸는데 모르겠다. 근데 돌콩이 뭐야?”
“그럼 됐겠지. 뭐, 돌콩?”
“가녀린 줄기지만 한 번 잡으면 끊어져도 꽉 잡고 있는 것. 작은 데 단단하게 익는 콩.” (p.109)
아영이가 공일이에게 붙여준 별명 돌콩. 작지만 단단하게 익는 콩. 우공일도 너무 좋아했고 아영이의 제주도 목장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제주마도 돌콩이다.
크고 단단하고 튼튼하고 거침없는 것들만 주류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 돌콩과 같은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다.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들이 꼭꼭 숨은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질서에 익숙해 진 내 눈이 눈앞에 돌콩을 두고도 보지 않는 것이다. 홍종의 작가처럼 세상을 보는 눈에 라식을 해야 한다. 한번 시술하면 영구적인 라식 시술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또 다른 공일이를 만들어 내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 사회와 어른들의 당연한 임무다. 적어도 내 자식만큼은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향한 눈을 조금만 거두고 내 눈을 다시 한 번 씻어내야 한다. 키도 작고 가정사도 불행 하고 허구한 날 학교에서 두드려 맞고, 자퇴한 오공일과 같은 아이가 당장 내 앞에 있다면 나와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무엇보다 단단한 돌콩으로 키워내야 한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은 쭉 뻗기 만한 나무는 결코 풍파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