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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더위를 유달리 많이 탄다. 집안 내력인 탓이다. 아버지는 조금만 뜨거운 음식이나 조금만 매운 음식을 드셔도 땀을 비 오듯 흘리신다. 나와 내 동생도 아버지의 그런 기질을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중학생이던 어느 여름 날 밥상머리에서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치시며 화를 내신 적이 있다. 그때도 분명 뜨거운 음식을 먹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밥상에 앉은 세 남자가 하나같이 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으니 갑자기 밥맛이 떨어지신 것인지 보기에 안쓰러운 것을 넘어 짜증이 나셨던 것인지 아무튼 화를 내셨다. 대학 입학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인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나는 대학 입학 첫 해 여름을 잊지 못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내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2주일 만에 그만 뒀다. 도로 이정표를 교체하고 수리하는 일이었는데 한 여름 대구의 더위를, 그것도 아스팔트 위에서 맛보니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 더위를 많이 타고 한 겨울에도 땀이 나는 기질인 내게 그 아르바이트는 지옥불과도 같았다. 2주 일 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었다. 더위 중에서도 푹푹 찌는 습기가 가득한 눅눅하고 기분 나쁜 더위를 가장 싫어한다. 차라리 햇볕이 미친 듯이 내리쬐고 기온이 쭉쭉 올라가는 폭염은 그나마 낫다. 나를 둘러 싼 온 세계가 원래부터 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지는 여름 더위에는 그대로 K.O패다.
“창문을 열면 흠뻑 젖은 담요보다도 더 묵직하고 둔중한 더운 공기가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좁다란 방 하나짜리 집 안으로 뜨거운 살덩이처럼 밀려들었고” (p.31)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문장이다. 전체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등장인물 또한 이런 분위기다. 모호하고 아리송하고 개운하지 않다. 배수아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솔직히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묘사하는 저 분위기만큼은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역 후 바로 취업을 했다. 혼자 살아야 했기에 직장 근처에 살 집을 구했다. 직장의 위치가 시내 중심이라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3년 6개월 동안 군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모은 돈을 몽땅 쏟아 부어도 허름한 원룸 한 칸에 만족해야 했다. 그 곳에서 4년 정도 살았는데 정말 여름에는 최악인 주거지였다. 원룸 촌이 모여 있어 창을 열어도 맞바람이 불지 않는 구조였고 처음 들어 간 해에는 에어컨도 없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시내 근처라 열섬현상도 심각했던 것 같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잠시만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창문을 열면 흠뻑 젖은 담요보다도 더 묵직하고 둔중한 더운 공기가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좁다란 방 하나짜리 집 안으로 뜨거운 살덩이처럼 밀려들었고”
담요보다도 더 묵직하고 둔중한 더운 공기가 어떤 것인지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후텁지근하고 기분 나쁜 여름 밤 공기. 기분 좋게 TV를 보다가도 금세 스트레스 지수가 폭발할 수 있을 정도의 그 여름 밤 공기. 한 여름 만원 버스 안에서 엉겁결에 내 팔뚝에 비벼진 찐득찐득하고 뜨거운 그 사람의 살덩이. 사실 기분 나쁜 것보다 짜증이 난다. 그렇게 매년 더위에 완패를 당하기를 4년을 하고 나니 ‘여름’하면 치가 떨렸다.
“헤더야트는 이란의 작가로 「눈먼 부엉이」는 그의 대표작이죠. 고통과 몽환으로 가득 찬 분위기와 염세주의 미학으로 이름 높은 작품입니다. 특히 작품의 곳곳에 등장하는 신비한 반복 진술이 환상과 초현실주의적 효과를 느끼게 합니다.” (p.119)
주인공 아야미가 일하던 오디오 극장에서 상영한 공연이다. 아야미가 공연 전 관객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는데 마치 배수아 작가가 독자인 내게 들려주는 작품 설명 같았다. 헤더야트와 「눈먼 부엉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감상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야미와 극장장 여니……. 모두 고통을 가진 인물들이다. 각자의 삶은 철저하게 독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얽혀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고 태어 난 것처럼 그렇게 따로 떨어져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은 서로로 인해 가중되고 상쇄된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삶에 내재된 고통과 혼란의 실제가 때론 몽환적으로 염세적으로 표현되고 받아들여지는 탓에 그나마 삶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여름 기분 나쁘고 나를 녹다운 시키는 작은 원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더운 공기처럼 숨이 막힐 듯 막힐 듯 하지만 겨우 잠들어 버리면 아침은 또 온다. 비록 그 아침이 여전히 25도가 넘는 열대야의 더운 공기를 그대로 들어 마신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은 아침일지라도 아침은 아침이다. 새로운 시작이니까.
“버스는 남자의 몸 바로 앞에서 기적처럼 멈추어 섰고 이미 남자의 몸은 도로에 길게 쓰러진 뒤였다. 길게 누운 커다란 짐승 같은 검은 덩어리. 환하게 실내등을 밝힌 버스 안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반듯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으며 가장 어두운 뒷자리 구석에는 가사를 걸친 승려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p.82)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런 문장을 대할 때 난감하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문학적 감수성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건 뭐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뭔가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하며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인데 뭘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 「파고」의 그 메마른 스크린이 생각나기도 하고 실존주의 영화의 대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도 생각나는데 왜 그 영화들이 생각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잘 모르겠다.’라는 서평을 쓰고 있는 나를 더 잘 모르겠다. 흐흐흐…….
“아야미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시집의 제목을 읽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157)
그 불쾌했던 한 여름 더운 공기를 온 몸으로 맞았던 그 여름 날 밤 비루한 원룸 안에 누워 있는 것처럼 찝찝하다. 그들은 고통을 몸으로 그대로 감내한다. 특별하게 이겨내려 몸부림치거나 발버둥치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떤 고통에 놓여 있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떨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진 낡은 실 한가닥같은 위안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위안조차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여름 시원한 수박 한 통 잘라먹고 사방이 트인 넓은 평상에 드러누워 반나절 달콤한 낮잠을 잘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 유쾌해 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렇게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서로를 마주하거나 속 시원히 서로를 내보이지 않는다. 말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고 온몸의 감정을 하나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나와 같은 기질의 사람에게는 분통 터지는 답답한 처사지만 이런 유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상황과 내용일 것 같다.
괜스레 오기도 생긴다. 한 여름에 배수아씨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틀지 않고 온 집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단단히 닫은 채 하얀 책 위에 투명한 땀을 후드득 흘려 가며 읽어보고 싶다. 그러면 그녀의 작품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둔중하고 묵직하며 불쾌한 공기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