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사이 1 밤과 낮 사이 1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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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두 권은 전문적인 견해는 아니지만 미국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좀 더 아마추어 적인 개인적 표현을 하자면 미국 냄새가 나는 작품인 듯하다.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아서 기껏 읽어본 작품이라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몇 작품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분노의 포도」였다. 불멸의 역작 펄 벅 여사의 「대지」에 버금가는 작품이었다. 최근에는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 인상 깊었다. 생각해보니 둘 다 장편 소설인데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된 「밤과 낮 사이」는 단편 소설을 묶었다. 묶인 수십 편의 작품들 모두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 얘기한대로 뭔가 미국 냄새가 나는 작품들이었다.

 

 

1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이라는 작품이다. 이 책에 묶인 작품들은 장르도 다양한데 로맨스에서부터 스릴러에 이른다.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은 딱히 어떤 장르라고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소설 이면에 내포된 의미가 다면적이다.

 

 

“여기요, 편집장님. 심술생크스 여사의 이번 주 습격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시계처럼 꼬박꼬박 그들이 냈던 기사를 자기 식으로 교정 본 것이 배달된다. 온통 눈이 어질어질할 지경으로 빨간 잉크투성이가 돼서 온다.”

 

심술생크스 여사가 사는 작은 동네는 늘 심술쟁이 할머니로 인해 골치가 아프다. 특히 신문사는 죽을 지경이다. 찔러도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생크스 할머니 주방 냉장고 위를 스윽 문질러도 먼지 한 톨 묻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과 기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성격은 사실 많은 장점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요구될 때는 피곤해 진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 진다. 아니 자신의 성격과 기질은 자신에게는 편하고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까. 하지만 주변 사람들, 타인들에게 그것이 요구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작은 마을 신문사는 심술 생크스 여사의 이런 기질과 타인을 향한 요구로 죽을 지경이다. 편집장은 노이로제에 걸려 심술생크스 여사가 보낸 빨간색 잉크 투성이의 기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사소한 오탈자부터 어색한 문맥(물론, 심술 생크스 여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에 대한 교정, 조금이라도 틀린 내용이 있으면 그녀의 빨간 펜이 가차 없이 춤춘다. 처음 몇 번은 이렇게 자신들의 기사를 꼼꼼하게 읽고 정성 들여 교정해 준 것에 고마워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 번 두 번, 수십 번 반복되면 정말 미쳐버린다. 예전 직장의 모과장도 그랬다. 기획안이나 결재안의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표가 작다느니, 그래프를 더 명확하게 표시하라느니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몇 번이고 되돌려 보내고는 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부하 직원들은 아예 결재를 요하는 서류는 놔두고 일부러 미완성된 서류를 미리 가져가 몇 번 퇴짜를 맞은 후 완성된 기 서류를 들고 가고는 했다. 몇 번이고 되돌아오면서 쏟아낸 모과장을 향한 욕설과 탕비실에서 내 뱉은 저주로 인해 그 모과장은 아마 200수는 천명을 누릴 것이라 확신 한다.

심술생크스 여사의 주변도 그랬다. 편집장은 어김없이 배달되는 여사의 빨간 잉크 교정본을 본체만체 하는데 이른다.

우편을 배달하는 직원을 붙잡고 매번 심술을 부리고 트집을 잡기 일쑤다. 그래서 그 직원은 심술생크스 여사가 집 앞으로 나오는 시간을 정확히 체크해 두고 있다가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 광속과 같은 속도로 달려가 우편물을 집어넣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마을의 골칫덩어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내 예전 직장의 모과장도 그런 것처럼 이런 사람들은 늘 상대방을 탓한다.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왜 자신을 멀리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100% 맞다.’라고 결론만 내리면 이후의 일들은 편하다. ‘내가 아니라 니가 잘못한 거야. 당신들이 틀린 거야.’ 낙인찍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심술생크스 여사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모과장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멀어져 간다.

 

 

“이웃집 여자가 건너와 경찰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자, 그들은 집주인이 1층 층계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앙상하게 마른 목에 교살흔이 남아 있었다. 빨간, 그녀의 펜에 담겨 있는 잉크처럼 새빨간 손자국이었다.”

 

그러던 중 심술생크스 여사가 자신의 집 안에서 피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작은 마을이기에 충격적인 뉴스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미리 짠 것처럼 똑같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도 소식을 알리는 신문사도 다른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거야말로 사상 최고로 긴 피의자 명단이 나올 사건이구먼!”

“경찰은 아직까지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는데, 이는 용의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알잖나, 아무리 우리가 이 사건의 범인을 발견해서 재판에 회부한다 해도, 피고인 측 변호사가 피고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를 증오했는지 입증하면서 아주 신나게 판을 벌여놓을 거야. 그거면 어떤 배심원이라도 ‘합리적인 의혹’에 근거한 무죄 평결을 내기에 충분할걸.”

 

심술생크스 여사의 목에 교살흔을 남긴 용의자의 대상이 너무 방대하다. 아무리 심술생크스 여사의 심술이 도가 지나치고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괴롭혔다 하더라도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이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확고하고 분명한 법집행을 행사해야 할 사람들도 미리 고개를 내저었다. 사상 최고로 긴 피의자 명단이 나오더라도 그 판결이 심술생크스 여사로부터 피곤함을 당한 주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판결이 될 것이기에 무죄 판결을 미리 짐작한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등골이 오싹했다. 집단·군중의 심리가 이렇게 작용된다면 무섭고 차가운 세상이 될 것 같았다. 심술생크스 여사가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원망을 사는 일을 평소에 얼마나 많이 했으면 이런 결론이 맺어질까 싶으면서도 마치 중세 마녀사냥처럼 나는 분명 맞는 것 같은데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틀렸다고 한다면 내가 마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몇 몇 기사가 생각났다.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전혀 주변에서 알지 못해 나중에 시체가 썩는 냄새가 온 아파트에 진동하고서야 문을 열어봤다는 기사들 말이다. 당장 내 앞집,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인사 한 번 나눠보지 않은 내 사는 모습도 뇌리를 스쳐갔다.

물론, 심술생크스 여사 같은 사람들도 좀 마음을 열고 타인과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

내 집에서 죽었는데도 제대로 범인을 잡지 못할 것 같은 삶을 살아서야 되겠나.

 

 

또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첫 남편」이라는 작품이다.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옛 사진에 담긴 옛 연인과의 다정한 아내의 모습에 편집증적인 집착과 의심을 시작하고 결국 그 사진 속 아내의 옛 애인을 살해하는 내용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우신 다이안레인 누님이 주연한 영화 『언페이스플』이 생각났다. 젊은 남성과의 아슬아슬한 밀회를 즐기다 남편인 리처드기어 형님이 알게 되고 결국 젊은 남성을 살해한다.

 

“나하고 단둘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이 여자가 나를 그놈과 비교하는 거지, 안 그래!” 편

“나를 사랑하긴 했어, 발레리? 처음에 나하고 결혼했을 때라도 말이야.”

“잠시라도 날 사랑했어? 처음에라도? 사랑한 때가 있기는 했어?”

 

한 번 빠진 의심은 걷잡을 수 없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내의 행동도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판단한다. 전후 사정을 조금만 따져 보고 아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만 했어도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 작품의 남편은 한 번 정한 방향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질주한다. 의심은 커지고 확신이 된다. 의심에서 확신이 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유턴을 할 수 없는 무제한 고속도로를 하릴없이 내달리는 꼴이다. 다이안레인 누님은 젊은 남성과의 밀회를 정확하게 들켰지만 이 작품의 아내는 그저 남편의 의심으로 부정을 저지른 못된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변명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인한 파국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 결혼 3년차 남편인 나는 저 남편처럼은 되지 않아야지 소심하게 다짐해 본다. 당연히 나도 행동거지 조심하고^^

 

 

2권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오 양의 정반대」라는 작품이다. 저자인 마틴 리먼은 20년간 미군에 복무한 퇴역 군인이고 그의 복무 기간 중 10년은 한국에서 보냈다. 주한미군 출신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이 반가웠다. 이 작품을 제외한 1,2권 모든 작품이 외국이 배경인데 딱 한 편 이 작품에서 한국사람 이름과 지명이 나와 반가웠다. 하지만 내용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지리학상으로 말하면 한국이 지구상에서 미국과 정확하게 정반대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그에 가깝다. 여기에서는 온갖 것이 다 다르다. 사람들이 인생을, 인간관계를, 이 세상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눈이 미국에 거주하는 이들과 같지 않다.”

 

미국과 지리상으로 떨어진 거리만큼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미국과의 인연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오래 되고 돈독하지만 그래도 많이 다르다. 미국이 한국을 보는 눈과 한국이 미국을 보는 눈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한국 내에서도 미국에 대한 생각이 천양지차다. 나의 군 생활 중에서도 설문을 했는데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 표기한 숫자가 상당했으니 말이다. 주한미군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눈과 한국 사람들을 보는 주한미군의 눈 또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다른 차이에도 미국, 미국 하는 걸 보면 배알이 없는 것인지 심성이 너무 착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한국에 주둔한 주한 미군의 눈으로 사건을 풀어낸다. 그래서 좀 불편하다.

 

 

“8군에 돌아와서 나는 보고서를 타자 쳤다. 에버렛 P. 로텐버그 일병은 한국 경찰에게서 풀려났다. 딱한 노릇이 된 신 씨는 병원으로 실려 갔고 별 탈 없이 잘 낫고 있었다.”

 

수십 년간 주둔해 온 미군의 기간만큼 그들로 인해 발생한 범죄도 많았다. 특히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범죄. 이 작품도 기지촌에서 일하는 오 양이 살해된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유력한 용의자 로텐버그 일병은 결국 풀려났고 신 씨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대두된다. 작품이 명확한 결말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오 양을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이지 못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주한미군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가 또 다시 상기되어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예전처럼 주한미군 철수를 내건 목소리는 많이 들리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는 지금이다. 언제쯤이나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통일이 되어도 미군은 계속 이 곳에 주둔하고 있을 것 같다는 씁쓸한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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