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제너레이션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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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별로 무섭지 않다. 좀비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B급 호러물 정도로 보인다.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고 중국 사람들이 강시를 무서워하듯이 미국 사람들은 좀비를 무서워하나 보다.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썩은 채로 두 팔을 벌리고 어기적거리며 걷는 좀비는 무섭기보다 기괴하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런 좀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어~ 하며 돌아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귀신이나 강시의 주된 활동은 보통 밤에 이루어지는데 이놈의 좀비들은 낮밤 구분도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 영화 [연가시]가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는데,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재하는 연가시에 대한 공포를 스크린을 통해 체험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좀비가 이역만리 미합중국의 얘기로만 들리지만 이놈의 좀비들이 우리에게 실제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3년 2월 프리덤 워치 본부에서 발표한 2012년도 대한민국의 좀비사태 발생 위험도는 91%로 나와 있다. 이는 미국 서부와 아이티를 제외한 가장 높은 수치인데,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삼면이 바다로 막혀 있는 상태에 북쪽은 휴전선이 있어서 실질적인 고립지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프리덤 워치 본부에서는 인구 밀집도가 높고 고립된 지역이 좀비사태 발생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p.218)

 

소설을 다큐로 보는 것은 참 멍청한 일이지만 그 멍청한 일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는 실재하는 로봇생명체들과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가 있다. [맨인블랙]에서도, 그리고 무수한 음모론 중에서도 이 책에 등장하는 프리덤워치와 비슷한 비밀 조직이 등장 한다. 이런 비밀 조직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이면의 세계 바로 그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이 흐르고 있고 그들만의 일상이 영위되고 있다는 사실. 좀비사태 발생 위험도라는 것도 사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 질 것이다. 책에서처럼 인구밀도와 지리적 요인으로만 따지면 정말 좀비의 본고장 미합중국과 부두교의 원천 아이티를 제외하고 한국이 가장 위험한 곳인 것 같다. 프리덤워치가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베라는 좀비들이 이미 한국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헉!! 프리덤워치가 미리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기도 전에 좀비들이 온라인 판을 점령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식은땀이 나는구나…….

아니다. 책에서 좀비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고 했는데 일베라는 곳의 좀비로 추정되는 것들은 얼마 전 모 광역시장의 법적대응 발언에 대규모로 삭제요청을 했다고 하니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공포에는 즉각 반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좀비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럼 도대체 너네들 정체가 뭐야?

 


“이 책은 좀비사태의 발생 직후부터 이동 과정, 이동하는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규합하는지, 그리고 안전지역으로 설정된 지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서 필요한 장비들과 행동요령이 들어 있다. 따라서 좀비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5)

“명심해야 할 것은 좀비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좀비 자체보다는 혼란스러운 상황 자체가 더 위험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다.” (p.36)

 

몇 달 전 본가에 내려갔는데 그 지역에 큰 산불이 났었다. 시커먼 구름이 듬성듬성 베란다 창문으로 보여 ‘어디서 불이라도 났나?’ 생각했는데 삽시간에 온 하늘에 시커멓게 변하더니 아파트 바로 뒷산에서 시뻘건 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단 30분 만에 온 아파트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1500세대가 사는 대단지인 본가는 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당시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고 대기가 건조해 불똥이 산을 넘어 옮겨 붙는 지경이었다. 산과 마주한 아파트 동에 사는 주민은 빨리 대피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고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헬기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워낙 바람이 많이 불어 지상에 주차된 차량에 불이 옮겨 붙을까봐 지하주차장에 차량을 옮기라는 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코와 눈을 찌르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어지러웠다. 후끈한 열기로 가득 했고 재가 하늘에서 떨어져 마치 약한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차량을 지하로 옮기고 지상으로 올라가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중요한 물건을 챙겨 피신하려는 주민들의 차량으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누구를 부르는 소리, 싸이렌 소리, 뭔지 모를 폭발음……. 나중에 불길이 잡히고 보니 아파트 단지를 둘러 싼 산의 면에는 불이 전혀 붙지 않았다. 미리 겁먹고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였다.

최소한 그런 산불 상황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상황이 좀비 사태일 것이다. 책에서 주인공이 우연히 발견한 한국 프리덤워치의 좀비 사태 대응 매뉴얼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국민 여러분. 현재 서울 시내에 신종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 전파되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시고 집에 계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려 드립니다…….” (p.49)

“방송에서 얘기한 거점이 이 모양이 된 걸 보면 결국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는 좀비사태를 진압하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망연자실해진 나는 거리를 활개치고 다니는 좀비들을 내려다봤다.” (p.164)

 

여전히 나라는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못할 것으로 사료 된다. 어느 대통령인가 국민들에게 곧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니 평소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라고 해놓고 서는 자신은 다리를 끊고 대전으로 도망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 늘 그런 식이다.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최소한의 대응책 없이 바로 알렸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피해를 보는 것은 막아야 한다. 연가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한강의 괴물에게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경험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쳇, 좀비들도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나?

 


“행정부는 세종 신도시로 내려갔습니다. 미군이 곧 평택과 오산에 들어올 계획이고 우리도 평택으로 갈 겁니다. 그 외에도 군대가 장악한 지여들이 몇 군데 있어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p.166)

 

결국 구원자는 미군인가?

그렇게 난리를 치며 서울에 남으려 하던 행정부가 좀비 사태에 직면하고서야 세종 신도시로 내려갔네? 이건 뭔 코미디? 흐흐

 


“우리는 똑같이 탐욕스럽고, 집요했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지극히 잔인한 점도 같았어. 어쩌면 우리와 너희들의 차이점은 아주 작거나 거의 없을지도 몰라. 인간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잔인한 본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어쩌면 너희, 좀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p.198)

 

책에서 말하는 자세한 좀비 사태 대응 매뉴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 좀비가 되지 않는 것일 테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밥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고 하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한 번 물리거나 체액으로 인해 좀비가 될 수 있는 허망함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좀비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뭐 정부가 군대가 미국이 알아서 좀비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이미 내가 누군가에게는 좀비가 아닌 지 가만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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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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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진우 시사IN기자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한 기사를 봤다. 주요 외신들이 이 사건을 기사화하며 코미디 같은 한국의 상황을 비꼬기도 한 모양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권장하는 사회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대로 떠드는 것에는 발작을 일으킨다.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에서 한 일 중 지금 가장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언론정책이다. 방통위와 주요 방송의 요직에 낙하산으로 인사를 집어넣어 장악했다. 이미 틀어진 언론의 환경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효과는 지난 대선에서 그대로 나타났고 이제는 TV만 틀면 지겹게 뉴스를 볼 수 있고 넘쳐나는 신문들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론의 사명 같은 것은 사장된 지 오래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업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리 만무하고 MBC조합원들은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요 며칠 핫이슈가 되고 있는 윤창중씨 사건도 그렇다. 정확한 팩트에 기반한 뉴스를 전달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것으로 갈무리하면 될 일을 이리 볶고 저리 볶아 뉴스 피로도를 높인다. 그러면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런 뉴스를 계속 내보내는 이유는 뭘까?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임을 먼저 밝히고, 다른 뉴스를 묻어버리기 위함이다. 남양사태, 국정원 댓글부대 수사 등 산적한 사안을 일거에 덮어 버릴 수 있는 호재다. 어느 쪽에는 분명히 그렇다.

결국 우리는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2차정보를 접하게 된다. 바쁜 출근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뉴스를 검색하면서 그 기사 전체를 읽을 여유가 없다. 한 줄의 기사 제목만 보는 것이다. 말도 그렇지만 글을 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단어 하나, 단어의 위치 하나에 따라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뉴스의 제목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목만 보고 클릭을 해 들어가면 전혀 엉뚱한 내용의 기사인 경우도 있고 제목은 부정적인 듯 하지만 기사 내용은 긍정적인 경우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뉴스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는 미디어 종사들에게는 특별한 사명감을 요구한다. 공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디어 종사자 대부분에게 이런 사명감은 아웃 오브 안중!!

조중동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 TV매체는 완전히 언론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와 경제 권력에 완전하게 유착된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런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선정성이다. 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을 찾는다. 언론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색으로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데 다들 비슷하다보니 다들 질적으로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환경에서는 어떤 매체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특정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매체가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 「타블로이드 전쟁」은 이런 ‘옐로 페이퍼’들이 난립했던 20세기 초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지만 르포르타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500달러 포상

<월드>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스트 강과 할렘 강 근처에서 발견된 남자 시체 토막에 관한 미스터리를 정확히 푸는 사람에게 500달러를 금화로 지급할 것입니다. 사건에 대한 가설이나 추측을 봉투에 “살인 사건 미스터리”라고 표시해서 <월드> 사회부 편집장 앞으로 보내십시오. 반드시 <월드>에만 보내야 합니다. 다른 신문에 같은 해법이 게재된다면 포상금 지급이 취소됩니다. (p.56)

 

 

<월드>, <헤럴드>, <이브닝 텔리그램>, <프레스>, <이브닝저널>, <브루클린 이글> 등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신문사들은 난립하는 그들의 숫자만큼 고약한 싸움을 이어갔다. 굴든수프라는 남자의 시체가 토막 난 채 강에 버려진 사건을 두고 이들이 벌인 악취 나는 경쟁에 속이 더부룩해 진다.

 


“경찰은 아직 이 사건에 착수하기 전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미 뛰어 들었다는 것을 캐리는 알게 되었다. 기자들이었다.” (p.31)

“죽은 사람 손이 신문 지면에서 튀어나와 독자들의 멱살을 잡을 것 같았다.” (p.44)

 

이들에게는 토막 난 시체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신문사보다 더 빠르게 더 자극적이게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퓰리처의 명성을 뛰어 넘으려 발버둥을 치던 <월드>의 허스트로 인해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경찰보다 더 빨리 정보를 캐내고 급기야 수사본부 까지 만들어 직접 정보원을 고용하거나 증인을 찾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를 이기려 안간힘을 썼다.

온갖 불확실한 정보와 제보가 난무했고 이들 ‘옐로 페이퍼’들은 그것을 이용했다. 상대 신문사보다 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만 달아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정보와 제보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만약 전혀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정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냄비에 물을 붓고 멈추지 않고 물을 끓이는 것처럼 가열에 가열을 거듭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기관차처럼.

책에서 굴든수프를 살해한 피의자를 잡아 놓고 벌인 법정다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들 ‘옐로 페이퍼’들은 굿판을 벌인다. 증언한 내용 한마디 한마디 표정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기사화 한다. 기사라고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신문에 실었다.

 

오리 발자국으로 추적한 살인이라고 <헤럴드>는 외쳤다.

죽음의 집! <월드>가 소리 높였다.

무시무시한 남녀! <프레스>가 덧붙였다. 뉴욕 신문들의 주 메뉴는 여전 했다.

 

100년 전 뉴욕의 상황이나 지금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씁쓸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오늘 아침 이 서평을 쓰기 전(새벽6시 경) 오늘자 뉴스의 헤드라인을 훑어봤다. <헤럴드>와 <월드>와 <프레스>의 그 헤드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가득했다. 기사거리가 되지도 않는 것에 지면을 낭비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하는 착각이다. 그들 스스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는 것이 당연하다. 작년 대선 시즌 SNS에서의 여론과 실제 여론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SNS라는 것이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 번 경험한 ‘예로 미디어’들은 이제 더 이상 겁먹을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뉴스를 쏟아낼수가 있다. 그렇게 마음대로 휘갈겨도 착하디착한 국민들은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니까.

 


“허먼 낵은 이름이 알려져서 배달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1903년, 굴든수프가 살해되고 거의 6년이 지난 뒤에, 허먼 낵은 조용히 배달마차를 커낼 가에 버려두고 허드슨 강에 몸을 던졌다.” (p.369)

 

굴든수프 사건은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그렇게 난리를 치던 신문들은 굴든수프 사건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기사를 쓴 적이 있었나?’ 잊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로 인해 실제적인 고통을 받았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요즘 한국의 언론, 미디어 환경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워낙 발달한 인터넷 환경과 굴절된 정치적 환경은 특정 기사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신상을 단 몇 시간 만에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는 지경이다. 인격을 말살시키고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데 손가락 몇 번 클릭하면 된다. 무섭고 저급한 세상이다


.

“1911년 사망한 뒤에 퓰리처는 역사적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황색 언론 전쟁은 잊히고, 컬럼비아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고 작가와 기자들에게 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상이 제정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허스트는 반성할 줄 몰랐다. 허스트는 황색 혁명이 길러 낸 블록버스터 일요판 신문에서 늘 희열을 느꼈다.” (p.391)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그 퓰리처가 황색 미디어 전쟁의 당사자였던 그 퓰리처라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사망 후 퓰리처상이 제정되고 수상되면서 지금의 퓰리처는 전혀 다른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한창 옐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언론인들이 100년 뒤 어떤 역사로 기록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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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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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특별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책을 고르고 읽는 것에 유별난 고집이 있는 탓도 있고 한국 사람이 쓴 소설이 더 이해하기 쉽고 공감가는 것도 많으니까.

이 책 「마법의 순간」은 거장 파울로 코엘료의 트윗을 모아 놓은 글이다. 짧은 글에 황중환씨가 그림을 그렸다.

국내에서 유명 작가이면서 파워 트위터리안인 사람이 여러 명 있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팔로워는 730만 명이라고 한다. 730만 명! 매일 영어, 스페인어, 불어로 올리는 트윗을 모아 놓은 책이다. 깜짝 놀랐다.

책을 읽어본 후 더 놀랐다. 이전 그의 책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더 놀랐다.

짧은 문장에 호흡을 불어 넣고 글의 맛을 더욱 살린 황중환 씨의 감각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트윗을 모아 놓은 책이기에 읽기가 쉽다. 분량도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덮어놓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글이 많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글이 많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글을 직접 소개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감상으로서는 제격인 듯 하다.

 


외국 사람이 크게 놀라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햇빛을 차단하는 길쭉한 썬 캡을 쓰고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온통 가린 채 두 팔을 휘저으며 운동하는 한국의 아줌마들과 버스와 지하철, 식당과 곳곳에서 손바닥만 한 기계 핸드폰에 온통 얼굴을 들이 박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예수가 2013년의 한국에 갑자기 나타나 제자 열둘을 뽑아 놓고 만찬을 가진다면 딱 저런 그림 같은 장면이 나올 것 같다. 코엘료의 표현처럼 좀비같이 고개를 들이 박은 채 손바닥만 한 기계에 몰두하는 모습. 메시아를 앞에 두고도 카톡에 검색에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제자들의 모습.

첨단의 문명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중요한 가치를 갉아먹으며 발전해 왔다. 사람들은 대화를 점점 어려워한다. 함께 존재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을 거북해 한다. 손바닥 안에 모든 세상이 펼쳐지는 데 굳이 얼굴을 맞대는 불편함을 감당할 이유가 없다. 한 집 안에서도 ‘물 좀 줘.’라는 말을 카톡으로 한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좀비처럼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다 보면 강력한 무기 한방에 전멸할 수 있다. 완전한 좀비가 되기 전에 손에 붙들고 있는 그 기계 좀 내려놓는 것은 어떨지.

 


모 사이트가 여러 가지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곳이다. 저주와 증오가 판을 치고 있는 곳이다. 모두들 알고 있다. 그 곳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일 거라고. 신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어린 아이들일 수도 있다. 그들과 척을 두고 맞대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삼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싸워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신나게 키보드로 싸워 이겨 뭘 하겠다는 건가. 남는 게 있나. 똑같이 대응하면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고 참는 자세쯤은 그들을 위해서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코엘료의 글보다 황준환씨의 그림이 더욱 섬뜩하다. 시간만 죽이는 빈둥거림은 결국 악어 밥이다.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그림이었다. 개구리를 가만히 물에 넣고 온도를 높이면 그대로 죽어가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과 그 시간이 이루어 가는 일상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끔 하는 글과 그림이다. 악어 밥이 되는 줄도 모르고 넘쳐 흐리기만 하는 것 같은 시간 위에서 빈둥거리기만 한다면……. 끔찍하다.




나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빙빙 둘러 요점을 흐리는 것을 싫어한다.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점을 분명히 말해야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리 출발하면 되는 데 늦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처사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이 모든 것이 결혼 후에 많이 변했다. 원래 내가 가진 기질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아무튼 많이 달라졌다. 결혼 후 만나는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믿을 만하다. 특히, 아내가 옆에 있으면 온순한 양이 된다. 옆구리 한 방 쿡 찌르면 입 지퍼가 닫힌다. 입 꼬리를 올리고 부릅뜬 눈을 푼다.

“나는 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사리를 분별하는데 그 사람은 왜 그런지 몰라!!”

라는 말에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생각해 봤어?”

할 말이 없었다.

여자는 나보다 더 지혜롭다.

아직 뒤돌아보지 말고 재빨리 용서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용서하는 시늉은 내지만 속으로 꿍꿍이를 가질 때가 많다.

그 사람에 대해 비판하고 꼬투리 잡는 것에 재빨리 머리를 굴리는 것만큼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재빨리 생각해야겠다. 다짐이다.

 


삼십 대 중반인 나는 고민이 많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은 산처럼 쌓인다. 하고 싶은 일은 돈이 되지 않고 돈이 되는 일을 하자니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허들을 뛰어 넘는 그림의 사람은 두 다리를 최선을 다해 찢고 있다. 얼마나 아플까^^;; 분명 아플 텐데 웃고 있다. 예쁘게 빛나는 노란별을 보며 두 눈에는 하트를 뿅뿅~~!! 정말 엄청나게 아플 텐데 웃는다. 코엘료 아저씨의 말처럼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계를 넘어서는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허벅지를 풀면서 다리를 벌려 본다. 으아아악~!! 오래 굳어 뻣뻣한 두 다리를 옆으로, 앞뒤로 벌려 본다. 으아아악~!!!

 

책을 읽기 전보다 읽고 난 후 이 책이 더 좋다. 트윗으로 소통하는 대가의 노력이 지구반대편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짧은 글에 숨을 불어 넣는 황중환 작가의 감각도 탁월하다. 오랜 시간 동안 곁에 두고 다시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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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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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사체험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 현세를 넘어선 내세가 있다는 믿음은 있지만 TV에 나오거나 책으로 펴낸 임사체험 이야기들은 믿지 않는다. 내가 가진 신앙에 대해서는 대학 때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성경을 5번 읽고 독일 신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이성과 논리로 정립을 한 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영적인 것에 대해서 강조하거나 그것만을 주요하게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임사체험이라니…….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에 의한 증언이 전부인 것이 아닌가? 임사체험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근접한 체험을 하고 다시 살아난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임사체험을 키워드로 검색해 봤는데 깜짝 놀랐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임사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되거나 공증이 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 체험을 증언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세를 믿는 신앙이기도 하고 몇 해 전 아버지께서 죽음 직전의 병환을 겪으셨던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대장암 환자가 아니셨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뭐야~ 이거 또~ 의사가 무슨 이런 책이야~’ 라며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가족의 입장이다 보니 그 전과는 좀 다르게 보였다.

 

 

“임사체험 세 가지 주요 진영. 임사체험을 믿는 사람들. 확고한 불신자들. 임사체험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온갖 종류의 사람들. 임사체험을 경험한 의사로서, 나는 이와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또한 생각하면 할수록 이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p.189)

 

이 책은 신경외과 의사가 썼다. 신경외과 분야에서도 뇌를 연구하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다. 의학의 그 어떤 분야보다 과학적이고 첨단의 학문을 다루는 박사학위를 가진 의사가 쓴 자신의 임사체험에 대한 기록이다.

 

“집에서 아이들한테는 잠 자기 전 기도를 하게끔 시켰지만 영적인 리더는 결코 아니었다. 영적인 일들이 과연 얼마나 사실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성장하면서 하느님과 천국과 사후세계를 믿고 싶었지만, 수십 년을 신경외과 학계의 엄격한 과학적 세계 속에서 보내면서는 영적인 세계가 정말로 실재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p.52)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는 하지만 남부의 보수적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매주 교회를 출석하는 수는 적다고 알고 있다. 저자 자신도 보수적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저자는 어린 시절 입양되었다) 우리가 흔히 미국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할 거 다하고 시늉만 기독교인인 그런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상에서 신앙과 영적인 담론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저자의 말대로 수십 년 동안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제로 환자를 만나 진단하고 치료한 의학박사, 의사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은 임사체험은 그야말로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가 겪은 임사체험으로 그가 잊고 있었던 신앙이 더 돈독해지고 이전까지는 등한시하던 천국, 영적세계 같은 것들에 특별히 정성을 쏟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그의 말대로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해 말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이런 말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임사체험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고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않는 사람들. 종교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안티종교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아주 조금도 귀에 들리지 않는 내용일 것이다.

아마 저자도 한동안 그런 혼돈과 고민 속에 허우적거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의학 중에서도 가장 첨단을 다루는 사람이고 병원에서도 잘 나가는 의사인데 말도 안 되는 임사체험 이야기를 하고 책까지 낸다면 분명 주변의 시선이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었다. 이 책은 이미 미국에서 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 비록 기독교를 시늉으로만 입고 있을지라도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일까. 이런 임사체험을 다룬 책이 미국에서 많이 팔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희귀한 질병에 걸려 7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 동안에 나의 대뇌 신피질 즉, 우리를 인간이게끔 해주는 뇌의 겉 표면이 기능을 멈춰버렸다. 그것이 작동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뇌가 부재하는 상태였다.” (p.18)

 

성인에게는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발병한다는 대장균성 박테리아 뇌막염 판정을 받은 저자는 7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저자가 쉽게 설명하고 있듯이 외부 바이러스의 침투로 인해 뇌 기능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뇌가 멈추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의 표현대로 뇌가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람이 혼수상태에 있는 것만큼 좌절감을 주는 경험은 없다. 돕고 싶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을 뜨길 바라지만 그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한다.” (p.126)

 

앞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는 대장암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으셨다. 그런 대형 외과 수술을 가족이 받은 것은 처음이라 공포 그 자체였다. 차가운 수술대기실에서 6시간 동안을 기다렸다.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전혀 아버지라고 생각되지 않는 물체 하나가 온갖 기괴한 호스와 전선과 같은 것들로 휘감겨져 있는 그 모습. 무섭고 낯설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 바로 의식이 회복되었지만 그 짧은 순간이 참 길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보다 더 심각한 혼수상태가 7일간 이어졌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절망이다.

책은 저자가 쓰러져 입원한 후 그의 임사체험과 가족들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실려 있다. 마치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일기를 각자 쓰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나비 날개 위에 있는 나의 수호천사와 함께 아주 긴 시간을 보냈고 중심근원 깊은 곳에서 창조주와 빛의 구체로부터 영원한 시간 동안 배움을 받았다.” (p.140)

 

책에 실린 저자의 임사체험에 대한 묘사에는 여전히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의 기억 속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하고 실제적인 체험이었겠지만 그의 분류대로라면 임사체험에 대해 중간자적 입장인 내게는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저자에게는 그 영적인 체험이 7일이라는 시간적 개념과 병원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초월한 실제였다고 한다.

반대로 7일 동안 죽은 것과 똑같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저자를 보는 가족들의 상실과 슬픔, 절망도 실제다.

두 개의 실제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서로 상존할 수 없는 세계다. 영적인 세계와 그 영역에 대해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실 어리석을 일이다. 믿음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이 엄연히 다른 것은 그 두 영역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믿음은 과학적이지 않아서 믿지 못하겠다는 것과 신앙도, 믿음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논리가 맞지 않고 이치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저자가 직접 겪었다고 하는 임사체험이 실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 임사체험에 대한 마음이 열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사건이 진실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일일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알리는 것에 대해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p.193)

 

저자는 7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한 달 정도라 지나서야 혼수상태 이전의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가 가져 온 기억과 지식 같은 것들 말이다. 적어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책 팔기 위해서 과정하거나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저자도 특별히 신앙적으로 더 월등한 사람이 되었다거나 확고한 내세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기 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는 것 같다. 이게 핵심으로 보인다.

같은 문제와 사건을 두고 화만 내거나 당황만 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진지하고 성의 있게 고려하는 태도. 그래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되는 자세.

뭐,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 다른 느낌과 반응을 가질 것이다. 임사체험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질 수도, 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만 진지하고 성의 있게 고려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만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어디에도 없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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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과외 제1교시 -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몇 가지 비공식 역사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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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후 폭풍처럼 밀려 온 멘붕상태가 꽤 오래 갔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올 초까지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 만들어 온 구조가 생각보다 단단하고 튼튼했다. 5년 동안 해 온 삽질과 뻘짓들을 보며 잘 한다. 잘 한다. 했었다. 스스로 무너지는 꼴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 저들의 안도가 내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하긴 뭐 언제부터 정치가 내 생활 가까운 것에 의미가 있었을 때가 있었나 생각하며 애써 다시 외면했다. 그래도 절망은 절망이었고 뭘 해도 안 된다는 체념은 분노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도 뭐 시간이 조금만 흐르니 다시 늘 그랬던 것처럼 잘 잊혀졌다. 언제 절망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러던 중에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미 시작된 지 반 년이나 지난 방송이고 팟캐스트 순위를 수차례 점령한 방송이었다. 이 방송은 역사에 대한 내용이 위주였다. 잘못 알고 있거나 잘 알고 있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작가와 박사와 빨갱이 타이틀을 가진 세 남자가 풀어내는 방송이었다. 재미있었다. 내가 워낙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탓도 있지만 대선 이후 썰물처럼 빠져 나간 패배 진영의 팟캐스트 방송과는 달리 이들은 멘붕을 자가 치료 한 후 다시 방송을 재개 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30편이 넘는 방송을 두 번 정도 반복해서 들었다. 이전 대통령들에서부터 친일파, 재벌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다루는 폭은 광범위하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방송이라 생각해 주변에 알리고 추천도 많이 했다. 팟캐스트를 점령한 방송임에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고 이미 유명한 팟캐스트 방송이 워낙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터라 그런 것 같았다. 그중에는 정말 좋은 내용이다. 많은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라고 고마움을 표한 지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시금 먹고 사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느라 보통 2시간에 이르는 방송을 성의 있게 듣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는 했다.

지난 정권에서 역사 교육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탓에 지금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은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3.1운동도 야스쿠니 신사도 엉뚱하게 대답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 방송의 도입부에는 항상 이런 멘트가 깔린다.

 

 

“본 방송은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니 임산부 노약자 19세 미만의 청취를 금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욕설과 비속어, 듣는 욕설과 비속어에 비해 귀여운 편이다. 고등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를 한 번 타보라.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휘황찬란한 욕과 비속어, 그들만의 외계어의 향연을 맛 볼 수 있으니. 이들은 친절하게도 청소년을 위해 욕설과 비속어를 삭제한 편집본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실제 청소년들에게는 오리지널 방송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방송을 들으며 이동형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 한국 현대사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대학 때 전공이 나와 같고 자신은 DJ빠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그가 가진 디테일에 경악했다. 단순히 음모론을 펼치거나 다른 책에 쓰인 거 발췌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시기의 신문과 다른 많은 책들을 크로스체크 해서 자신만의 논지를 전개하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이 책 「정치과외 제1교시」는 그의 3권의 책 중 가장 늦게 출간된 책이다. [이이제이]방송에서 다룬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지만 방송에서 놓친 세부적인 사항들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정치 과외 중에서도 1교시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뒷담화 또는 야사 들이다.” (p.9)

 

이동형 작가는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거 같다. 심각하게 접근하고 풀어내봐야 원래 역사라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재미있어하는 이야기 위주로 풀어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책에 실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재미있고 놀라운 것투성이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일본 우익과 지난 한국의 군사정부가 맺어 온 밀실정치에 대한 내용이 특히 재미있었다.

 

 

“옛날 우리 부하가 한국에서 최고 실권자가 되었다. 한국은 우리 일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일본을 돕고 있다.” (p.48)

 

기시 노부스케라는 일본의 우익 막후 정치인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는 현 일본 아베 총리의 외조부가 되는 사람이다. 기시의 일가에서 이미 여러 번 총리를 역임했고 수십 년 동안 일본을 주물러 온 자민당의 실세들이기도 했다. 요즘 아베 총리가 마음먹고 망언을 쏟아 내고 극우적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의 집안 내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다고 한다. 만주국 일본 장교출신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일본의 정치인에게 얼마나 굴욕적인 행동을 했는지 책에서 자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하나하나 열 받는 일이다. 한 번 읽어보시면 뚜껑이 바로 열리는 정도의 어이없음도 탑재되어 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대변하던 작전참모(세지마 류조)가 작전 짜듯이 조언을 하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충성을 맹세한 반도 출신 관동군(박정희)이 조언을 충실히 따르니 이 나라가 과연 해방이 된 게 맞나?” (p.56)

“장군, 지금 일본에선 88올림픽을 유치하려 하고 있어요. 그러나 올림픽이 필요한 건 나고야가 아니라 서울입니다. 올림픽만 유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국민들의 눈과 귀를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습니다.” (p.58)

 

기시 노부스케 말고도 일본의 막후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한국의 정부와 밀약을 맺어 밀실 정치를 이어 갔다. 세지마 류조라는 만주국 참모장 출신의 우익 정치인은 기시 노부스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한국의 군사정권 깊숙이 관여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88올림픽 유치, 전두환의 3S 정책의 기초가 바로 세지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노태우가 세지마 앞에서 멋지게 엔카를 부른 일화도 소개 된다. 뭐, 인과응보다 해방 후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기에 그들 기회주의자들은 여전히 득세했고 이어진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기득권을 형성했다. 그들에게 역사, 민족 자존심 따위는 먼지보다 가벼웠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밀실야합을 이해할 수 없다.

 

 

“한일협정이 성사되고 75년까지 이런 식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퍼준 돈이 20억 달러나 되었다. 그러나 그 12년 동안 그들은 우리에게서 되레 85억 달러를 가지고 가다. 이런 대 일본 무역적자, 대 일본 경제의존도는 지금도 우리 경제를 힘들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p.66)

 

지난 정권에 빌붙어 한바탕 쇼를 펼친 뉴라이트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일본에 의한 경제발전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퍼준 돈이 20억 달러고 퍼간 돈이 85억 달러라고 한다. 4배나 넘게 해 먹은 일본의 우익이 오히려 제대로 된 우익보수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어쨌든 자국의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한국을 이용했고 성과를 거두었으니까.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난 한국의 소수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도 나름 콩고물을 얻어먹었다. 결국 피해자는 일반 국민들뿐이다.

 

 

“친일의 ‘원죄’가 있는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 세력들은 그들의 집권과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항상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이 색깔론은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반공’, ‘빨갱이’라는 매카시즘 수법은 그들에겐 만병통치약이자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이었다.” (p.102)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대우에 관한 것이다. 세계경영으로 한 때 최고의 경영자라 불리던 김우중의 몰락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풀어내는데,

 

“일부 국민들이 말하는 ‘잘나가는 대우를 김대중이 죽였다.’라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기에 사실도 틀리 수밖에 없다. 대우는 앞서 언급했듯 잘나가기는커녕, 부실덩어리였다. 김대중이 인간적인 정 때문에 끝까지 살렸다면 국민들의 세금은 어마어마하게 대우로 끌려들어갔을 것이다.” (p.254)

 

실제로 나이가 지긋한 분들 중 많은 수가 대우를 김대중이 죽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함께 일하는 상사중 한 분도 김대중 얘기만 나오면 늘 그 이야기를 한다. 대우 죽이고 전라도에 다 몰아줬다고. 딱히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강성 이념에 취한 것처럼 그쪽으로만 생각한다. 그렇게 매커니즘이 이미 짜여져 다른 쪽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는 것 같다.

IMF 당시 한국의 재벌 기업 중 부채 비율과 규모가 가장 큰 곳이 대우였다고 한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몸집을 줄여 자구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닥친 위험 경보를 무시한 채 ‘세계경영, 세계경영’, ‘실패를 기회로’를 외치며 다녔을 뿐이었다. IMF 광풍 후 김우중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6조만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거 결국 국민들 세금이다. 6조라는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더라면 망해가는 대우를 살릴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부담이 가중 될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다.

그것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김대중이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대우가 망했다고 떠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모르기 때문에 언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분명히 재벌 오너의 방만한 경영과 잘못된 판단에 의해 해당 기업이 망한 것인데 말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작가 이동형씨의 주장과 논리가 100%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균형을 잡는데 에는 적격이다.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 사안을 소개 받고 판단은 각자가 하면 될 일이다.

‘뭐야~ 이거 친노, 종북, 빨갱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귀에는 한 치도 먹히지 않을 내용이지만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현대 정치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의 귀에는 착착 들어가 감길 내용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읽으면 분명히 공부가 되는 책이다. 어렵지 않고 무겁지 않다. 다만 울화통이 울컥 울컥 치미는 부작용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숱한 비도덕적 행위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국민이 기억하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목탁이 되어 권력과 강자들의 비리를 폭로, 심판해야 할 언론들이 그 임무를 태만히 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알렉시 드 토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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