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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과외 제1교시 -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몇 가지 비공식 역사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2년 9월
평점 :
지난 대선 후 폭풍처럼 밀려 온 멘붕상태가 꽤 오래 갔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올 초까지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 만들어 온 구조가 생각보다 단단하고 튼튼했다. 5년 동안 해 온 삽질과 뻘짓들을 보며 잘 한다. 잘 한다. 했었다. 스스로 무너지는 꼴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다. 저들의 안도가 내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하긴 뭐 언제부터 정치가 내 생활 가까운 것에 의미가 있었을 때가 있었나 생각하며 애써 다시 외면했다. 그래도 절망은 절망이었고 뭘 해도 안 된다는 체념은 분노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도 뭐 시간이 조금만 흐르니 다시 늘 그랬던 것처럼 잘 잊혀졌다. 언제 절망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러던 중에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미 시작된 지 반 년이나 지난 방송이고 팟캐스트 순위를 수차례 점령한 방송이었다. 이 방송은 역사에 대한 내용이 위주였다. 잘못 알고 있거나 잘 알고 있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작가와 박사와 빨갱이 타이틀을 가진 세 남자가 풀어내는 방송이었다. 재미있었다. 내가 워낙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탓도 있지만 대선 이후 썰물처럼 빠져 나간 패배 진영의 팟캐스트 방송과는 달리 이들은 멘붕을 자가 치료 한 후 다시 방송을 재개 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30편이 넘는 방송을 두 번 정도 반복해서 들었다. 이전 대통령들에서부터 친일파, 재벌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다루는 폭은 광범위하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방송이라 생각해 주변에 알리고 추천도 많이 했다. 팟캐스트를 점령한 방송임에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고 이미 유명한 팟캐스트 방송이 워낙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터라 그런 것 같았다. 그중에는 정말 좋은 내용이다. 많은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라고 고마움을 표한 지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시금 먹고 사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느라 보통 2시간에 이르는 방송을 성의 있게 듣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는 했다.
지난 정권에서 역사 교육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탓에 지금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은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3.1운동도 야스쿠니 신사도 엉뚱하게 대답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 방송의 도입부에는 항상 이런 멘트가 깔린다.
“본 방송은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니 임산부 노약자 19세 미만의 청취를 금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욕설과 비속어, 듣는 욕설과 비속어에 비해 귀여운 편이다. 고등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를 한 번 타보라.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휘황찬란한 욕과 비속어, 그들만의 외계어의 향연을 맛 볼 수 있으니. 이들은 친절하게도 청소년을 위해 욕설과 비속어를 삭제한 편집본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실제 청소년들에게는 오리지널 방송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방송을 들으며 이동형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 한국 현대사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대학 때 전공이 나와 같고 자신은 DJ빠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그가 가진 디테일에 경악했다. 단순히 음모론을 펼치거나 다른 책에 쓰인 거 발췌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시기의 신문과 다른 많은 책들을 크로스체크 해서 자신만의 논지를 전개하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이 책 「정치과외 제1교시」는 그의 3권의 책 중 가장 늦게 출간된 책이다. [이이제이]방송에서 다룬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지만 방송에서 놓친 세부적인 사항들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정치 과외 중에서도 1교시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한국 남성 30∼50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뒷담화 또는 야사 들이다.” (p.9)
이동형 작가는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거 같다. 심각하게 접근하고 풀어내봐야 원래 역사라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재미있어하는 이야기 위주로 풀어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책에 실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재미있고 놀라운 것투성이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일본 우익과 지난 한국의 군사정부가 맺어 온 밀실정치에 대한 내용이 특히 재미있었다.
“옛날 우리 부하가 한국에서 최고 실권자가 되었다. 한국은 우리 일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일본을 돕고 있다.” (p.48)
기시 노부스케라는 일본의 우익 막후 정치인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는 현 일본 아베 총리의 외조부가 되는 사람이다. 기시의 일가에서 이미 여러 번 총리를 역임했고 수십 년 동안 일본을 주물러 온 자민당의 실세들이기도 했다. 요즘 아베 총리가 마음먹고 망언을 쏟아 내고 극우적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의 집안 내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다고 한다. 만주국 일본 장교출신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일본의 정치인에게 얼마나 굴욕적인 행동을 했는지 책에서 자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하나하나 열 받는 일이다. 한 번 읽어보시면 뚜껑이 바로 열리는 정도의 어이없음도 탑재되어 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대변하던 작전참모(세지마 류조)가 작전 짜듯이 조언을 하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충성을 맹세한 반도 출신 관동군(박정희)이 조언을 충실히 따르니 이 나라가 과연 해방이 된 게 맞나?” (p.56)
“장군, 지금 일본에선 88올림픽을 유치하려 하고 있어요. 그러나 올림픽이 필요한 건 나고야가 아니라 서울입니다. 올림픽만 유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국민들의 눈과 귀를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습니다.” (p.58)
기시 노부스케 말고도 일본의 막후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한국의 정부와 밀약을 맺어 밀실 정치를 이어 갔다. 세지마 류조라는 만주국 참모장 출신의 우익 정치인은 기시 노부스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한국의 군사정권 깊숙이 관여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88올림픽 유치, 전두환의 3S 정책의 기초가 바로 세지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노태우가 세지마 앞에서 멋지게 엔카를 부른 일화도 소개 된다. 뭐, 인과응보다 해방 후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기에 그들 기회주의자들은 여전히 득세했고 이어진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기득권을 형성했다. 그들에게 역사, 민족 자존심 따위는 먼지보다 가벼웠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밀실야합을 이해할 수 없다.
“한일협정이 성사되고 75년까지 이런 식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퍼준 돈이 20억 달러나 되었다. 그러나 그 12년 동안 그들은 우리에게서 되레 85억 달러를 가지고 가다. 이런 대 일본 무역적자, 대 일본 경제의존도는 지금도 우리 경제를 힘들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p.66)
지난 정권에 빌붙어 한바탕 쇼를 펼친 뉴라이트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일본에 의한 경제발전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퍼준 돈이 20억 달러고 퍼간 돈이 85억 달러라고 한다. 4배나 넘게 해 먹은 일본의 우익이 오히려 제대로 된 우익보수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어쨌든 자국의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한국을 이용했고 성과를 거두었으니까.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난 한국의 소수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도 나름 콩고물을 얻어먹었다. 결국 피해자는 일반 국민들뿐이다.
“친일의 ‘원죄’가 있는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 세력들은 그들의 집권과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항상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이 색깔론은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반공’, ‘빨갱이’라는 매카시즘 수법은 그들에겐 만병통치약이자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이었다.” (p.102)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대우에 관한 것이다. 세계경영으로 한 때 최고의 경영자라 불리던 김우중의 몰락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풀어내는데,
“일부 국민들이 말하는 ‘잘나가는 대우를 김대중이 죽였다.’라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기에 사실도 틀리 수밖에 없다. 대우는 앞서 언급했듯 잘나가기는커녕, 부실덩어리였다. 김대중이 인간적인 정 때문에 끝까지 살렸다면 국민들의 세금은 어마어마하게 대우로 끌려들어갔을 것이다.” (p.254)
실제로 나이가 지긋한 분들 중 많은 수가 대우를 김대중이 죽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함께 일하는 상사중 한 분도 김대중 얘기만 나오면 늘 그 이야기를 한다. 대우 죽이고 전라도에 다 몰아줬다고. 딱히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강성 이념에 취한 것처럼 그쪽으로만 생각한다. 그렇게 매커니즘이 이미 짜여져 다른 쪽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는 것 같다.
IMF 당시 한국의 재벌 기업 중 부채 비율과 규모가 가장 큰 곳이 대우였다고 한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몸집을 줄여 자구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닥친 위험 경보를 무시한 채 ‘세계경영, 세계경영’, ‘실패를 기회로’를 외치며 다녔을 뿐이었다. IMF 광풍 후 김우중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6조만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거 결국 국민들 세금이다. 6조라는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더라면 망해가는 대우를 살릴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부담이 가중 될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다.
그것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김대중이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대우가 망했다고 떠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모르기 때문에 언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분명히 재벌 오너의 방만한 경영과 잘못된 판단에 의해 해당 기업이 망한 것인데 말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작가 이동형씨의 주장과 논리가 100%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균형을 잡는데 에는 적격이다.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 사안을 소개 받고 판단은 각자가 하면 될 일이다.
‘뭐야~ 이거 친노, 종북, 빨갱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귀에는 한 치도 먹히지 않을 내용이지만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현대 정치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의 귀에는 착착 들어가 감길 내용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읽으면 분명히 공부가 되는 책이다. 어렵지 않고 무겁지 않다. 다만 울화통이 울컥 울컥 치미는 부작용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숱한 비도덕적 행위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국민이 기억하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목탁이 되어 권력과 강자들의 비리를 폭로, 심판해야 할 언론들이 그 임무를 태만히 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알렉시 드 토크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