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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특별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책을 고르고 읽는 것에 유별난 고집이 있는 탓도 있고 한국 사람이 쓴 소설이 더 이해하기 쉽고 공감가는 것도 많으니까.
이 책 「마법의 순간」은 거장 파울로 코엘료의 트윗을 모아 놓은 글이다. 짧은 글에 황중환씨가 그림을 그렸다.
국내에서 유명 작가이면서 파워 트위터리안인 사람이 여러 명 있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팔로워는 730만 명이라고 한다. 730만 명! 매일 영어, 스페인어, 불어로 올리는 트윗을 모아 놓은 책이다. 깜짝 놀랐다.
책을 읽어본 후 더 놀랐다. 이전 그의 책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더 놀랐다.
짧은 문장에 호흡을 불어 넣고 글의 맛을 더욱 살린 황중환 씨의 감각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트윗을 모아 놓은 책이기에 읽기가 쉽다. 분량도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덮어놓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글이 많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글이 많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글을 직접 소개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감상으로서는 제격인 듯 하다.

외국 사람이 크게 놀라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햇빛을 차단하는 길쭉한 썬 캡을 쓰고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온통 가린 채 두 팔을 휘저으며 운동하는 한국의 아줌마들과 버스와 지하철, 식당과 곳곳에서 손바닥만 한 기계 핸드폰에 온통 얼굴을 들이 박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예수가 2013년의 한국에 갑자기 나타나 제자 열둘을 뽑아 놓고 만찬을 가진다면 딱 저런 그림 같은 장면이 나올 것 같다. 코엘료의 표현처럼 좀비같이 고개를 들이 박은 채 손바닥만 한 기계에 몰두하는 모습. 메시아를 앞에 두고도 카톡에 검색에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제자들의 모습.
첨단의 문명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중요한 가치를 갉아먹으며 발전해 왔다. 사람들은 대화를 점점 어려워한다. 함께 존재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을 거북해 한다. 손바닥 안에 모든 세상이 펼쳐지는 데 굳이 얼굴을 맞대는 불편함을 감당할 이유가 없다. 한 집 안에서도 ‘물 좀 줘.’라는 말을 카톡으로 한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좀비처럼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다 보면 강력한 무기 한방에 전멸할 수 있다. 완전한 좀비가 되기 전에 손에 붙들고 있는 그 기계 좀 내려놓는 것은 어떨지.

모 사이트가 여러 가지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곳이다. 저주와 증오가 판을 치고 있는 곳이다. 모두들 알고 있다. 그 곳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일 거라고. 신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어린 아이들일 수도 있다. 그들과 척을 두고 맞대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삼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싸워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신나게 키보드로 싸워 이겨 뭘 하겠다는 건가. 남는 게 있나. 똑같이 대응하면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고 참는 자세쯤은 그들을 위해서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코엘료의 글보다 황준환씨의 그림이 더욱 섬뜩하다. 시간만 죽이는 빈둥거림은 결국 악어 밥이다.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그림이었다. 개구리를 가만히 물에 넣고 온도를 높이면 그대로 죽어가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과 그 시간이 이루어 가는 일상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끔 하는 글과 그림이다. 악어 밥이 되는 줄도 모르고 넘쳐 흐리기만 하는 것 같은 시간 위에서 빈둥거리기만 한다면……. 끔찍하다.


나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빙빙 둘러 요점을 흐리는 것을 싫어한다.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점을 분명히 말해야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리 출발하면 되는 데 늦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처사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이 모든 것이 결혼 후에 많이 변했다. 원래 내가 가진 기질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아무튼 많이 달라졌다. 결혼 후 만나는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믿을 만하다. 특히, 아내가 옆에 있으면 온순한 양이 된다. 옆구리 한 방 쿡 찌르면 입 지퍼가 닫힌다. 입 꼬리를 올리고 부릅뜬 눈을 푼다.
“나는 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사리를 분별하는데 그 사람은 왜 그런지 몰라!!”
라는 말에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생각해 봤어?”
할 말이 없었다.
여자는 나보다 더 지혜롭다.
아직 뒤돌아보지 말고 재빨리 용서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용서하는 시늉은 내지만 속으로 꿍꿍이를 가질 때가 많다.
그 사람에 대해 비판하고 꼬투리 잡는 것에 재빨리 머리를 굴리는 것만큼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재빨리 생각해야겠다. 다짐이다.

삼십 대 중반인 나는 고민이 많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은 산처럼 쌓인다. 하고 싶은 일은 돈이 되지 않고 돈이 되는 일을 하자니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허들을 뛰어 넘는 그림의 사람은 두 다리를 최선을 다해 찢고 있다. 얼마나 아플까^^;; 분명 아플 텐데 웃고 있다. 예쁘게 빛나는 노란별을 보며 두 눈에는 하트를 뿅뿅~~!! 정말 엄청나게 아플 텐데 웃는다. 코엘료 아저씨의 말처럼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계를 넘어서는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허벅지를 풀면서 다리를 벌려 본다. 으아아악~!! 오래 굳어 뻣뻣한 두 다리를 옆으로, 앞뒤로 벌려 본다. 으아아악~!!!
책을 읽기 전보다 읽고 난 후 이 책이 더 좋다. 트윗으로 소통하는 대가의 노력이 지구반대편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짧은 글에 숨을 불어 넣는 황중환 작가의 감각도 탁월하다. 오랜 시간 동안 곁에 두고 다시 읽어 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