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정치를 말하다 - 세상을 구하는 지혜를 담은 고전 강의
이중텐 지음, 유소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고전을 좋아한다. 대학 전공 공부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떤 연유로 고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 들어간 시내 중고서점의 그 냄새와 누런 때가 묻은 오래된 책이 그냥 좋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내며 출간된 시기에 금서가 되기도 한 책도 찾아보고 조선 말기에 출간된 책도 찾아보고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 놓고 그 사람 책만 몇 시간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냥 그게 재미있고 좋았다. 책은 물론이고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고전은 여전히 사랑 받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고전을 사랑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도 하고 발전한다고도 많이들 얘기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다면 고전은 이미 없어졌어야 한다. 왜냐면 어제 보다 오늘이 발전되었고 오늘 보다 내일이 발전될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변한다고 해야지 발전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오류다.

지난해 말 영화 [레 미제라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의 거장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인데, 대단했다. 영화의 인기로 인해 원작 소설이 엄청나게 판매되었다. 영화가 인기를 얻기 전에도 사람들은 [레 미제라블]에 대한 내용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은 사람도 많다. 이 작품이 일정한 시기에 다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작품 자체가 가지는 매력 때문이다. 누가 임의로 ‘2012년 겨울에 이 작품을 다시 히트 시켜야지!’ 라고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고전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바뀌어도 세상이 변화해도 고전이 가진 보편적 가치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책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내용이다. 이중톈 교수는 이미 그의 전작들에서 중국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고전은 유명하다. 특히 이 책에서 분석한 백가쟁명 사상의 범위에 포함되는 유가, 묵가, 법가, 도가 사상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책이나 TV를 통해서 알게 된 것도 있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중국의 고전, 특히 여러 사상을 한꺼번에 공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중톈 같은 사람의 내용 풀이가 도움이 된다. 백가쟁명 사상의 한 줄기를 들여다보는 것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이 책을 읽으면 주요한 사상이 시사 하는 바와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이번 책은 언론과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좀 더 읽기 쉽게, 직접적인 대화 형식으로 엮었다.” (p.6)

 

이 책에서는 고전에서 얘기하는 세상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소개 한다. 중국의 고전 사상이 꽃피운 시기는 가장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다. 모두들 구원을 원하고 바라던 시기였으며 모두들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기였다. 칼이 흥하던 만큼 말과 글이 흥하던 시기였다. 지식과 지혜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태평이 성대하고 백성이 편안한 시기에 사상 또한 장족의 발전이 병행된다면 좋을 텐데 역사는 늘 아이러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상 중 아는 내용도 많았고 모르고 있었던 내용도 많았다. 독서와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 될 수 있는지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유가와 도가 사상보다 묵가와 법가 사상이 실제로 세상을 구하는 데 더 필요한 사상이라고 생각 한다.

 


“풀뿌리 계층은 이 사회가 힘들다.” (p.60)

“구시 방안 역시 인간관계와 분배 방법부터 착수하여 공평과 정의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p.75)

 

중국 역사상 최초로 풀뿌리 민중을 위해 입을 연 묵가 사상은 이전까지 정통 사상으로 여겨지던 유가 사상에 어퍼컷을 날렸다.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것을 신봉하는 것이 바로 천하를 바로 세우는 길이고 내가 잘 되는 길이라 가르쳤던 유가 사상가들에게 묵가 사상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천하의 질서라는 것이 천하의 뜻에 의해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였다면 묵가 사상에서 말하는 것들은 모조리 유가 사상가, 자신들을 절멸시킬 위험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민중을 이야기하고 풀뿌리 계층을 이야기 하면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 자체가 그렇게 결정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조건 어른에게 고개 숙이고 가진 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 천명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가 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이것은 혁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뿌리 밑바닥까지 옥죄어 오는 구조의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천지개벽이다. 이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공평과 정의에 대한 담론을 쏟아 냈다. 그냥 허리 굽혀 땅에 코를 박은 채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동력이 되고 충분히 공평하고 상식이 통용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겸애는 단순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p.86)

“묵자가 남들보다 예리하고 독창적인 이유는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양주가 깊이 있고 독창적인 이유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말했기 때문이다.” (p.158)

 

묵가 사상을 대표하는 묵자와 양주는 예리 하고 깊이 있으며 독창적이었다. 그들 이전까지 겸애니, 사랑이니, 공평이니, 정의니 이야기 하는 지식인이나 사상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손에 쥐고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만불손하고 위험천만한 사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각 사상이 얼마나 실제에 주효했는지,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 반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조선 말기 동학사상이 그토록 빠르게 번지고 풀뿌리 민중들에게 심어지게 된 것은 당시가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그 심정을 동학에 투영한 것이다.

하지만 묵가 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이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법가가 유가, 묵가, 도가와 구분되는 이유 중 하나는 법가를 제외한 모두가 ‘이상주의’라는 점입니다. 오직 법가만이 ‘현실주의’입니다.” (p.228)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묵가 사상가들도 말만 한 것이다. 물론, 도가나 유가 사상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그들이 담아내지 않았던 풀뿌리 민중들의 염원을 달래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라면 도가나 유가 사상의 한계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공평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별다른 대책도 없고 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면 속 빈 강정이다.

 


“보통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려고 한다면 개인의 능력에만 기댈 수 없다. 그렇기에 제도, 즉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법은 공개적이어야 하며, 법의 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사법은 공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의 법은 위엄과 명망을 상실한다.” (p.261)

 

이 한 문장으로 법가 사상이 지니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유가니 도가니 묵가니 좋다. 좋은 말 많고 꿈같은 말 많고, 그들의 말대로만 된다면 지상천국에 다름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는 사실 뜬 구름 한 조각도 잡지 못한다.

법가 사상은 허황된 이상이나 과대 포장된 선동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소수의 초인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철저한 제도와 법을 가장 우선시 한다.

 

입법은 공개적, 법의 집행은 공정, 사법은 공평

 

해야 나라가 바로 서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문득 2013년 대한민국이 중첩된다. 과연 2013년 대한민국은 입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법의 집행이 공정하며 사법은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입법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대표로 뽑아 놓은 국회의원님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법의 집행은 힘 센 놈에게는 관대하고 힘 약한 놈에게는 과격하다. 사법의 추는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진지 오래다.

법가에서는 이렇게 되지 않으면 나라의 법은 위엄과 명망을 상실한다고 했는데, 2013년 대한민국의 꼴이 바로 그렇다.

 

학교에서 법가 사상에 대해 배울 때에는 ‘법가 사상이 가진 엄혹함과 냉정함이 오히려 사회를 과격하거나 경직시켰다.’라고 배웠었는데 100%틀린 교육이었다.

언제 한번이라도 법가 사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혹하고 냉정하게 법과 제도가 정착되어 집행된 적이 있었나?

단연코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법가 사상이 사회 전반을 훑고 지나가 사회 전체가 법과 제도만으로 운영되고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

 

이중톈 교수는 책에서 어떤 사상이 더 낫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묵가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이상을 남겼으니 바로 평등과 상호이익, 박애이다. 도가는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인생의 추구하는 바를 남겼으니, 바로 진실과 자유, 관용이다. 법가는 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공개, 공평, 공정이라는 치국의 이념을 남겼다. 유가는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인애와 정의, 자강이라는 핵심 가치를 남겼다.” (p.352)

 

고전을 통해 살아가는 지혜와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사상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고 특별한 맥락이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고 우위가 정해지겠지만 책에서는 그런 것을 배제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고전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묵가 사상과 법가 사상이 더 좋고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호불호도 다르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이라는 곳에는 철두철미하고 적확하고 냉정한 법가 사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반드시 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차동엽 신부의 이전 베스트셀러도 읽지 않았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던 스님 한분의 책과 김난도씨의 책도 읽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책을 싫어한다. 어쭙잖은 희망, 힐링, 청춘 타령으로 오히려 독자들을 더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구조적 모순과 한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 주고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하는 선배, 스승, 어른의 권면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생각이다. 대학 시절 가치관과 신앙관을 정립하면서부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존경하고 배울만한 어른이 주위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책을 통해 스승과 어른을 만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했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원래 돈과 명예,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일요일에 나온 교회에서는 ‘안 그런 척’을 한다. 깨끗한 척, 거룩한 척, 고상한 척, 순수한 척……. 그런데 월요일부터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 교회에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 꼼수를 부린다. 교회 안에서도 엄청난 정치적 다툼이 일어난다.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직업이 좋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인정받는다. 교회 밖 세상과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도 서로 ‘안 그런 척’ 한다.

나는 이런 힐링 내지는 희망을 얘기하는 서적들도 그런 교회의 속살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맥락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이 이런 책을 쓰면서 정말 희망만으로 아픔이 오히려 청춘을 청춘답게 한다는……. 이런 말을 믿고 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에서 차동엽 신부는 그의 책이나 강연, 글로 인해 상처가 치유되고 돌이킬 수 없었던 선택을 돌이킨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것은 그것 자체로 인정한다.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정말 이 시대를 관통하고 시대를 아우르는 진통제 내지는 영양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포인트는 구조적 모순과 문제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지금의 아픔과 상처와 생채기는 아물지도 낳지도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아! 나도 이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어떤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희망만 부르짖으며 살아야지. 그러면 언젠가 그 희망이 실제가 되겠지’ 부푼 가슴을 안고 얼마간을 살 수 있을까? 여전히 일자리는 없고 취업문은 바늘구멍보다 좁고 갚아야 할 대출금은 산더미고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무섭기만 하고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대책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언제 자리를 비워야 할지 모를 사무실은 가시방석이고…….

아무도 없는 밤 혼자 하루의 모든 짐을 잠시나마 이 책을 읽으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그렇게 잠든 후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아침은 또 새로운 아비규환의 세계인데 말이다.


희망의 뻥쟁이가 되라.

꿈의 허풍을 떨어라.

꿈을 떠벌리고 다녀라.

언젠가는 스스로 놀라는 일이 생기리라! (p.141)

 

“나도 희망한다.” (Spero)

“너도 희망하라.” (Spera)

 

“목표를 알고 희망을 가지고 살면, 난관도 난관이 아니다. 반면 목표도 모르고 희망도 없이 살면, 똑같은 난관이 스트레스를 팍 주게 된다. ‘아우, 이놈의 스트레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은 그것이 결국 목표와 희망이 없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p.129)

 


차동엽 신부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희망예찬이 내 귀에 들어와 앉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이런 말들이 얼마나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주위 사람 중 이런 책을 읽고 실제 삶에서 희망을 얻고 진정한 위로와 힐링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경우도 없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와 모순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고 비판해봤자 어차피 해결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런 책을 읽고 잠시지만 마음의 위안을 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라면 계속해서 이런 책을 찾아야 한다.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과 출간하는 출판사는 ‘야호~~!!’ 하겠지. 몇몇 이런 책의 작가들이 시차를 두고 책을 출간한다면 책의 약발의 떨어질 때쯤 다시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비슷한 말이지만 그것으로 다시 자기를 위안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회의 구조와 싸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무조건 맞서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리 겁먹고 포기한 채 골방에 틀어 박혀 ‘다행이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래 내가 변해야 해. 내가 문제야’ 천착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은 어른들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절망을 학습시킨다는 사실이다. 거침없고 씩씩했던 청춘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먼저 배우는 것이 절망이 아닐까.” (p.75)

절망을 파는 사람들

부추겨진 절망

상대적 박탈감


 

결국 나도 차동엽 신부의 말에는 100% 동의하고 공감한다. 왜냐면 그의 말이 전부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배우고 꿈꾸지 전에 경쟁을 배우고 절망을 배우는 아이들이 자란 사회는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희망만을 얘기해도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절망으로 가득할 것이 뻔할 텐데 미리 앞서서 절망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폭력이다. 그런 절망을 파는 사람들도 흥건하고 그런 절망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널렸다. 이해, 배려, 희망을 얘기하면 뜬구름 잡는다고 나무란다. 어린이집에서부터 경쟁을 배운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본격적인 경쟁모드로 트랜스폼 한다.

최소한 이런 뒤틀려져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어렵고 힘든 세상이라고 많은 어른들이 말하지만 그들은 사실 자신들의 청춘의 그때보다 강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하며 쉽게 포기해 버리는 지금의 청춘들을 한심해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구조에 대한 반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며 의지가 박약한 청춘을 볼모로 삼는다. 내 얘기가 과한가? 나는 거르고 걸러 표현하고 있다. 현실은 더 냉혹하다.

얼마 전 모 교회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점심시간에 미리 들어 와 오후 업무를 준비하며 퇴근을 늦게 하고 야근을 즐거워하며 지원하라는 말이었다. 그건 교회 다니는 교인들에게 할 말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성경적이지도 신앙적이지도 않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목사가 단 한 번도 직장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들을 당해보지 않은 비직장인(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은) 출신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목사의 설교에 ‘아멘’하는 사람들이 나는 더 무서웠다. 실제로 당장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그렇게 살지도 않을 거면서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아멘’ 외칠 수 있는지…….

같은 맥락에서 넘쳐나는 힐링과 희망예찬은 자칫 무책임한 진정제가 될 수 있다. 일단 진정은 시켜 놓지만 다른 대안이나 책임감 있는 방향설정이 없는 것이다. 또 다시 표류하면서 또 다른 책, 강의를 찾는다.

이곳저곳 떠다니며 셀프 충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떻게 사회와 맞서야 하는지, 구조에 대응해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 실정에서 셀프 충전은 당연하다. 잠시 효과를 보는 진정제라 하더라도 일단 맞아보고 싶다. 잠깐이지만 힐링되고 싶고 위안을 얻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으며 칭찬을 받고 싶은 것이다.

청춘들이, 지친 사람들이 특출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잘한다, 힘내라.’ 이런 한 마디를 듣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단 한사람이라도 위안을 얻고 결코 흔들리거나 뽑히지 않을 희망을 마음속에 싹 틔울 수 있다면 이런 책의 출간과 구매, 독서는 유의미한 일이다.

나의 개인적 호불호는 무의미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세현의 정세토크 - 60년 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의 한반도로
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 서해문집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보름 뒤 예비군 동원 훈련에 입소했다. 2박3일 동안 숙박하며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5년차 훈련이었는데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평소에는 외부 강사 1시간, 대대장 1시간 하던 안보강의를 3시간으로 늘려서 하는 것이었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결과 발표가 있기도 전이었는데 안보강사로 온 교수라는 사람은 열변을 토하며 안보, 안보를 외쳤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지난 정권에서…….”라는 것이었다. 뭐든지 갖다 붙이는 데는 선수들이었으니까. 미사일 발사도 지난 정권의 무차별적인 퍼주기 때문이고, 북한의 몽니도 지난정권 때문이고. 외교·안보 분야 말고도 거의 전 부문에서 이명박 정권은 지난 정권을 붙잡고 늘어졌다. 조중동을 위시한 통제된 언론이 그대로 받아썼다.

미사일 발사건 하나만 놓고 다시 한 번 살펴보자. 1차 핵위기가 있었던 94년 당시는 지금의 새누리당의 전신이던 당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권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군사정권의 말기인 노태우 정권이었다. 그렇다면 94년 핵위기도 지난 노태우와 김영삼 정권의 무차별적인 퍼주기 때문인가? 아주 상식적이고 간단한 역사적 사실만 제시해도 지난 이명박 정권의 몽니는 한방에 무너지는데 언론 자체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 보니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야당이라고 있는 자들이 여당 2중대 노릇을 했으니 말해 무엇 하나 싶다. 뭐, 그런 말을 쏟아내려면 A4 10장으로도 모자란다.

중요한 것은 일반 국민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1차 핵위기가 불과 19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정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말을 쏟아 내고 언론에서 떠들어 대면 또 ‘그런가 보다’한다. 예전의 기억은 이미 깨끗하게 지워졌다. 한국 국민들이 머리가 참 좋다고 하는데 기억력은 현격히 떨어지나 보다.

 

 

이 책 「정세현의 정세토크」는 대북문제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식견과 노하우를 가진 정세현 전장관의 강의와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을 엮은 사람도 대북 관련해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기자인 프레시안의 황준호씨다. 고수 두 사람이 만나 북한 이야기와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구어체로 쓰여져 읽기 쉽고 어렵지 않다. 북한에 관련된 문제는 어렵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책은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런 얘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고.

 

 

 

“남쪽이 안 도와주니까 북한이 탈남입중(脫南入中)하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럴 줄 몰랐겠죠. 꽉 막아버리면 언젠가 무릎 꿇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북한은 이미 다른 쪽으로 숨통을 트고 있습니다. 중국도 정치·경제·외교·안보 차원의 고려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도와줄 수밖에 없어요. 북한은 이제 남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점점 기대를 접는 쪽으로 갈 겁니다.” (p.283)

 

지난 이명박 정권이 쏟아낸 수많은 정책 실패 중 4대강 다음으로 심각한 것이 나는 대북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집권 초부터 이미 예상되는 일이었고 5년 내내 그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책에서 정세현 전 장관이 수차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우유부단함이다. 애초에는 유연한 자세와 입장을 견지하다가 어느 때는 갑자기 강경 자세로 돌변하고 또 갑자기 유연하게 돌아서는 등 대북문제에 있어서 베테랑 중 베테랑 인 정세현 전 장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 쪽에서조차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을 상대로 수십 년 동안 외나무다리 외교를 펼친 북한 당국자들에게 이명박 정권은 그저 아마추어리즘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정권 막바지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 봉투를 건넸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었다.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가다가는 북한이 중국 경제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에서부터 태평양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중국의 힘이 이미 G2가 되었고 그들의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명박 정권은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있는 대로 북한을 보지 않고 자기의 편향된 대북관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대목을 찾아내고 그것을 확대해석해 보도하면, 그거야말로 신기루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쪽으로 쫓아가는 겁니다.” (p.78)

 

아직도 우리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신기루가 너무나 두껍게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정치적 민주화가 절차상으로나마 확립된 이후에도 중요한 선거 때마다 소위 ‘북풍’이 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지난 이명박 정권 때에는 조그만 사건만 생겨도 네티즌들이 “이번에도 북한의 소행이다.”라는 우스개를 퍼뜨리기도 했다.

 

 

“책을 내면서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스스로 보수층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보수니 진보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에 맞게 한반도 문제를 보는 틀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뒀다.” (p.6)

 

정세현 전 장관의 생각에 100% 동의 한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나 한국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사안인데 일반 국민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많다. 종편이라는 것이 탄생된 이후에는 줄곧 북한 관련 방송이 넘쳐 난다. 언제부터 한국의 언론이 북한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TV를 틀면 종편에서는 북한 이야기다. 보수니 진보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을 말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면 당장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상식’을 말해도 ‘비상식’적인 공격을 받게 되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 종북, 포괄적 종북, 빨갱이로 주홍글씨를 새겨 놓으면 게임 끝이다. 종북주의자, 종북세력이 하긴 얘긴 들을 필요가 없어. 빨갱이가 무슨 말이 많아. 해버리면 그만이다. 정 전 장관의 말대로 이 책을 자신이 보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북관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상식적이지만 파격적인 내용이다. 파격이라 하는 것은 워낙 뒤틀려진 정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착오 하나는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 늘 투자비용만 계산했지, 분단시대에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분단비용을 빼지 않은 것이었어요. 통일이 되면 분단비용은 통일비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통일비용을 계산하려면 투자비용에서 분단 비용을 빼야 순투자비용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빠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p.26)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 학계에서는 늘 통일비용을 문제 삼는다. 정 전 장관의 주장처럼 어떤 정책이든 코스트 cost(비용)를 말할 때는 반드시 베네핏 benefit(수익, 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 통일 비용을 이야기 할 때는 베네핏은 쏙 빼놓고 코스트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북한과 경제격차가 얼마나 나니까 우리가 이만큼 북쪽에 투자해야 하고 그것은 정부의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통일세와 같은 세금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로 겁을 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까지 통일을 해야 해?’

지금도 매일, 매순간 분단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수십 만 군인들이 밥을 먹고 훈련을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무기. 군사적인 요인 말고도 정치적·경제적 코스트는 분단 비용으로 고스란히 나가고 있다. 종전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전쟁이 재개 되든지 통일이 되든지, 그때까지는 그대로 투입되는 돈이 분단비용이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분단비용이 상쇄된다. 아주 상식적이고 너무나 쉬운 논리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지구는 둥글다. 정도의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도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의도하지 않고 빠뜨릴 수 없는 문제다. 의도하고 빠뜨렸다면 다른 숨겨진 의도가 반드시 있다는 반증이다.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미일동맹보다 우위에 둘 수 없습니다. 버든 셰어링 Burden-sharing(미군 주둔 부담금 등)의 액수나 비율만 봐도 일본만큼 우리를 대접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무기 구매를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네 물건 많이 사주고 주둔비 많이 내는 쪽을 중시할 수밖에 없어요.” (p.225)

 

예비군훈련 시 듣는 안보강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한미관계 강화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갖은 노력을 다해 환수해 온 전작권을 도로 연기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미국, 미군이 아니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한 일처럼 얘기했다. 예비군훈련장에서 듣는 한미관계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절박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냉전 시절 미국의 대소련 정책이나 현재 대중국 정책에서 한반도 보다 일본이 더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고 예비군훈련장에서 안보강연을 듣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미군 주둔 부담금과 무기 구매가 우리보다 일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반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집단들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들의 말만 들어보면 미국과 한국은 전 세계에 둘도 없는 혈맹국이고 친구이자 동지인데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서 한반도가 가장 우선순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팩트다. 오바마가 당선되고 힐러리 국무장관이 가장 먼저 순방한 곳이 아시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라는 사실은 대아시아 정책의 축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미국을 향한 끈질긴 짝사랑이 애처롭다.

 

 

“미국이 1등 강국인 건 틀림없지만 2등 강국인 중국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중국과도 잘 지내고 미국과도 잘 지내는 균형 외교, 혹은 등거리 외교를 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 최대의 시장이고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기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국을 놔두고 무조건 미국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p.349)

 

정 전 장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다.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오로지 동쪽만을 쳐다봤다. 서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 눈길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나라인가? 이미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미국의 2배가 넘는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만 바라본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 중국에게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만 있으면 오케이였다. 지금 박근혜 정권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고 가장 잘한일이 일관된 대북정책이라고 보수언론에서 떠들어 댔는데 도대체 무슨 대북정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대통령이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것이 일관된 대북정책이라 한다면, 글쎄 이명박 정권보다 더 암울한 관계가 이어질지 모르겠다. 실질적으로 대북 정책에 대해서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다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고 중재역할을 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하는데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이명박 정권 시절에 정 전 장관이 한 이야기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 재출범 한 지금의 상황에서 정 전 장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대북 정책에 관련해서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박근혜 정권인데 이런 위기와 냉각기를 떨쳐낼 수 있는 묘안이 있을지 모르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북정책을 꾸준히 펼친다면 ‘언젠가는 무너질테니 잠자코 기다리자’라는 식의 수준이하의 정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누구 한 쪽이 먼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채 언제 끝날지 모를 대치를 계속한다면 결실을 가져가는 쪽은 양자보다 더 힘의 우위에 있는 제3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반도의 통일 방안 중 최악의 수다.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 아직도 가장 심각한 터부가 되어있는 북한에 대한 정책과 보도와 연구가 상식적인 선까지 도달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들의 자세도 전향적이고 상식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통일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 사람과 세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 -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한명기.신병주.강문식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참 멀다. 어릴 때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버지와 서먹했다. 그 사실을 알고 적잖이 안도 했다. 나는 나와 나의 아버지만 특별한 줄 알았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와는 서먹하다. 멀기도 하고.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뭐,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개인의 경험의 차이에 따라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다.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내 아버지와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이 책 「왕과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 내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과 왕세자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나와 내 아버지 이야기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왕의 이야기는 많은 책과 TV,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거의 1년 내내 사극이 방영되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그 시대 궁의 모습과 궁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그렇게 사극을 많이 방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 왜 한복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70-80년 대 패션이 다시 유행을 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의 패션과 문화, 생활양식이 부활해서 유행을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아버지와 다섯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본 내용이다.

사극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다소 다른 면이 많아 당황을 좀 하기도 했고, 제대로 된 사극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반드시 필요할 텐데 다른 것에만 너무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에 실린 순서 그대로 소개한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 태조와 태종

 

“세자 책봉에서 밀려나고 개국공신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이방원은 태조 재위 7년 동안 정치적 실권에서 배제된 채 야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다. 실제로 <태조실록>을 보면, 태조 재위 기간 중에는 이방원의 활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p.32)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훗날 태종)을 홀대한다. 자신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이 다름 아닌 아들 이방원임에도 태조는 아들을 내친다. 책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는 데 그중에서도 고려 시절부터 이성계와 절친하던 정몽주를 자신의 허락도 없이 죽인 것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한 번 싫어지기 시작한 이성계의 눈은 아들 이방원에게 만큼은 지독하게 차갑고 냉정하다. 사실, 망해가는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자칫 하다가는 역모죄로 바로 숙청을 당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태조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아들이라기보다 장차 자신의 보위를 위협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여겨졌던 것 같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자신이 최초의 왕좌에 올라 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될 수 있는 한 길게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 이방원은 라이벌 이었다. 이미 많은 군사와 백성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는 야심차고 젊은 이방원은 눈엣가시 였다. 목숨을 걸고 성공한 건국의 경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천륜이 가진 신성한 도덕적 가치 따위를 내동댕이치게 했다. 손에 쥔 권력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성계의 분명한 아들이다. 쉽게 내칠 수도 제거해 버릴 수도 없어서 야인으로 살도록 방치한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와 아들 : 태종과 양녕대군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도 받았고 견제를 받았던 이방원은 결국 왕위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왕자의 난’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과정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인 태조가 이방원의 야심을 경계했는데, 결국 방지하지 못한 꼴이 되었다. 태조의 집중적인 견제와 내침에도 결국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었으니 말이다. 옛말이 정말 틀린 것이 없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하여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p.106)

 

세종대왕의 형이던 양녕대군이 장자였음에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 이유에 대한 설이 많다. 그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양녕대군이 정치와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예술적인 면에 관심이 많아서라는 것이다. 예전에 본 사극에서도 양녕대군을 꼭 그렇게 묘사했었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근간이던 조선에서, 그것도 왕실에서 엄연히 살아있는 장자를 제쳐두고 다른 아들이 왕위를 잇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해서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록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방식으로 해석 하는데 더 설득력이 있고 신빙성이 있었다.

 

“태종은 양녕대군의 실행을 질책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으며 심지어 반성의 방법까지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국은 세자에서 폐위되는 비운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p.63)

 

실제로 태종은 자신이 형제들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장자인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녕대군을 어릴 때부터 왕세자로 책봉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 교육을 시키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시켰다. 그런데 그런 태종의 욕심과 기대에 양녕이 계속 미치지 못한 것이다. 태종 자신부터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피비린내를 진동하며 왕위를 잡았기에 자신의 아들부터는 최소한 장자가 차기 왕이 되는 정통성을 확립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정통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양녕은 미치지 못했다. 태종 자신은 야심이 넘쳐 아버지에게 견제를 받아 사이가 멀어졌는데, 자신의 아들은 야심이 없고 실력도 부족해 사이가 멀어졌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이 훗날 세종대왕이 되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니 결국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비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 선조와 광해군

 

“인사권 등 권한의 일부를 이양받았지만 ‘바짝 엎드리고 있던’ 광해군의 입장에서, 선조의 거듭된 전섭 명령은 몹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선조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자칫하면 ‘불충’으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29)

 

선조는 불행한 왕 중 하나였다. 200년 동안 평온하던 조선에 일본이 침략한 것이다. 200년 동안 평화롭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100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을 판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선조만을 탓할 수 없다. 건국 후 타국의 침략을 예방하지도 예견하지도 못한 관료와 시스템이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였다.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일본의 침략에 선조는 도망간다. 그리고 아들인 광해군에게 전섭을 명령한다. 전섭은 쉽게 말하면 조정을 둘로 떼어 차기 왕이 될 왕세자가 민심을 수습하고 현재 왕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치사한 짓인데, 조선은 왕위를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중대사였기 때문에 최악보다 차악을 택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선조는 임진왜란 시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양위카드’를 빼들었다. 모두 합하면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 남발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광해군과 신료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낼 수 있었다.” (p.138)

 

선조는 우유부단한 왕이었던 것 같다.

전섭 명령을 비롯한 양위에 대한 언급을 수시로 한다.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고 한다. 왕이라는 사람이 수시로 그런 배수의 진을 친다면 왕세자와 신하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차기 왕권을 이어 받을 광해군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신속히 양위할 것처럼 말하다가 상황이 조금 유리해지면 양위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광해군은 말 한마디 하는 것. 행동 하나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우유부단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탈피하고 싶어서였을까.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강대국들 사이에서 분명한 원칙을 고수한 채 기가 막힌 등거리 외교를 펼친다. 임진왜란으로 전 조선이 황폐화되고 전후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펼친 외교는 후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비록 그 시대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군’으로 격하되는 수치를 당하기는 했지만.

 

 

상처 입은 아버지와 새 세상을 본 아들 : 인조와 소현세자

 

“인조는 조정을 이끌고 강화도로 들어가고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이끌고 남하하여 인심을 수습토록 하자고 촉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 선조가 파천할 때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게 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p.166)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와 소현세자는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 수치를 당한다. 아마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일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겪은 후 타국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도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선조가 광해군에서 분섭을 명령한 것처럼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명령한다. 임진왜란 보다 더 가혹했던 병자호란으로 왕세자가 타국에 인질로 끌려간다. 아버지 인조는 막을 힘이 없는 자신과 조선을 탓하지도 못했다. 그저 아들을 끌고 가는 적장에게 일국의 왕이 조아리며 부탁을 하기까지 한다. 조선 시대 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고 최대한 후손을 많이 낳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소현세자도 인조에게는 많은 자식들 중 하나였겠지만 왕세자였고 굴욕을 함께 겪었으며 아비의 무력함으로 적국에 인질로 끌려가는 수모와 고통을 감내한 아들이기에 느끼는 감정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도 전쟁의 상황이 수습 되고 조선 시대 가장 큰 문제였던 당쟁으로 인해 아들인 소현세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음모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미안함이 증오로 변했다. 광해군에게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 왕실 최대 비극 : 영조와 사도세자

 

“영조는 사도세가 경연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를 늘 점검했다. 서연에 참여한 신하들을 따로 만나 그들에게 세자의 학습 상태를 물어보곤 하였다. 매번 세자의 차대 뒤에 입대한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사도세자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를 당하는 상태까지 몰린 것이다.” (p.219)

 

가장 불쌍한 왕세자는 누가 뭐라 해도 사도세자다.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8일을 갇힌 채 죽어 간 왕세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절망이다. 정조,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가장 뛰어난 왕 중 한명인 영조는 가차 없고 잔인한 아버지였다. 백성들을 위해 구휼책을 내어넣고 당쟁을 지혜롭게 견제하며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한 왕이었지만 아들에게만큼은 너무 철저하고 너무 냉정하고 너무 잔인했다. 힘없는 왕이 되면 어떤 수모를 겪는지 알고 있는 아버지는 강한 아들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커녕 제대로 된 사랑한번 건네지 않았다. 내 나이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이 거의 그렇다. 자신은 자식 많은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자란 것이 한이 되어 자신의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고자 하는 마음.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려서부터 무섭게 공부시키고 체벌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내 나이대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들의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며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하고 그 틈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영조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세자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 마음의 병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혜경궁도 ‘은혜와 사랑을 주시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p.222)

 

사도세자는 여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더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강한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사도세자는 그저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줄곧 다른 지향점만 바라보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비극이 찾아 왔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 3사관학교 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뜯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아직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다.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채우는 아들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을 쓰는 법 - 살아갈 나를 위해 살아온 날을 쓴다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진영 옮김 / 페가수스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아직까지 직업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결심을 하게 해준 어느 작가의 글을 읽었던 그 밤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그 작가의 글은 마치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계어처럼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한글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 방금 낚아 올린 활어가 온몸으로 생명력을 표현하며 팔딱거리는 것처럼 그의 글은 종이 위에서 춤추고 날아 다녔다. 그의 글을 조금이라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흉내내보기도 하고 무작정 베껴 써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차츰 충격적이었던 그 밤의 기억을 잃어갔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블로그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오로지 그것은 나의 훈련과정이었다. 2년 조금 넘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사실 지난달부터 의욕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서평을 썼지만 어느 순간 내 글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듭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면 자연스레 내 글의 질도 나아질 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그간 작성한 서평을 읽어보는데 대형마트 한 가운데에 발가벗고 서 있는 것같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던 중 이 책 「내 인생을 쓰는 법」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자서전을 쓰기 위한 책이다. 뭔가 정체에 빠진 나의 독서와 글쓰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비법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과한 기대에는 필연적으로 치명적인 실망이 동반되지만 이 책은 그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굳이 자서전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한 조언과 실제적인 글쓰기 연습에 대해 권유 한다.

 


“가끔은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 좋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뭘 썼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손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원숭이 마음과 귀에 대고 네까짓 게 감히 뭘 쓰느냐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검열관 때문이다.” (p.103)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여러 번 읽고 마음에 새겼다. 나는 한 번도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 적이 없다. 한 번 작성한 글에 대해서는 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단 완성된 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것은 ‘혹시 내 글을 다시 읽다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말도 안 되는 표현이나 어설픈 구조를 발견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내 손가락을 조종하고 내 귓가에서 어김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잔혹하고 잔인한 검열관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몇 개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봤다. 저자의 권유처럼 마음이 평안해지거나 내 글이 소리 내어 읽기 전보다 더 훌륭하게 보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처럼 아내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는 글인데 아내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물론, 아내는 남편 기 살려주려고 대뜸 칭찬을 해주었지만 엎드려 절 받는 칭찬이더라도 위안이 되었다. 갑자기 생긴 용기에 힘입어 친한 친구에게 전화상으로 내 글 하나를 읽어 주었다.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더 훌륭한 글쓰기를 하는 친구라 또 다시 그 잔혹한 검열관이 등장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두 편을 연달아 읽었다. 친구놈 왈.

 


“나보다는 못쓰지만 들어줄만 하네~!”


“결국 도달해야 할 목표는 글이 투명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쓴 언어와 표현이 당신의 모습에서 떼어낸 아주 작은 파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p.74)

 

글이 투명해진다는 것. 어려운 일이다. 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 당연히 내가 쏟아 낸 글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습작을 하고 서평을 작성하면서 나는 얼마나 내 글에 투명했나 돌아봤다. 수치상으로 계량화 할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탁하면 탁했지 투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는 서평보다는 혼자 하는 습작이 서평보다는 내 자신과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 또한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글이란 내가 아닌 남들이 보게 되는 성질의 것이기에 글의 종류와 상관없이 내게서 쏟아지는 글은 투명해야 한다. 특히 내 자신에게는 더욱 그렇다. 내 자신에게조차 투명하지 못한 글은 남들에게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다.

 

 

“중요한 건 틀에 박힌 일 속에서 감정의 결은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살아 숨 쉬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당신은 진실한 마음을 종이 위에 옮김으로써 그 감촉을 우리에게 선물하라.” (p.157)

 

저자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한 마음. 투명한 감정. 그러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예민하게 감정의 결을 긁어내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에서 소모하는 감정에 대한 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드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소화해 내지 못한 감정 덩어리는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터져버리고는 한다. 그런 일상에서 감정의 결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종이 위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니 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펜을 들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10분 동안 맹렬하게 써라.” (p.89)

 

저자는 이렇게 어려운 글쓰기에 대해 무책임하게 ‘안 되면 말고’라고 하지 않는다. 책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10분 동안 써라> 저자의 말대로 정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고 뾰족한 묘안도 없다. 글쓰기는 반복되는 훈련이다.

 

후회하는 일, 고치고 싶은 것

내 인생 최고의 노래,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 내가 잊을 수 없는 것,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것, 내가 밤에 생각하는 것

 

이 책을 일고 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열흘 동안 위의 7가지에 대해서 10분 동안 글쓰기를 했다. 저자의 말대로 맹렬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아침잠을 깨워 써보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써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특별한 묘책을 가르쳐 주거나 지름길을 인도해주는 것이 의도가 아니라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쏟을 것을 주문한다. 매일 10분 동안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일 터.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사용해야 한다. 특별히 ‘후회하는 일’과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10분을 훌쩍 넘겨 20분 넘게 글을 쏟아 냈다. 저자의 권유대로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된 연습장에 오래된 연필로 썼다. 10분을 투자해 오랜만에 손 글씨를 쓰다 보니 그 자체로 힘이 들었다. 한 편 한 편 완성할 때마다 예전 글씨체를 찾아가는 것이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굳이 정리되거나 뭔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 이었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상태로 혹은 하루의 피곤함에 완전히 찌든 채로 책상에 넘어질 듯 걸터앉아 연필을 붙잡는 것이 짜릿 했다. 10분을 투자한 글 7편이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이라 그대로 용기가 되었다.

 


“작가들은 대체로 듣는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들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뿐 아니라 말의 주변에 있는 것, 그림자나 커튼, 말하지 않은 것까지 받아들인다. 작가들은 자신의 마음 속 소리도 듣는다. 우발적인 깨달음, 뜻밖의 직관, 생각, 문장, 내면과 바깥 세계의 리듬에도 귀를 기울인다.” (p.111)

 

때로는 아주 특별한 기억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버라이어티 하고 스펙타클 하고 다이내믹 한 꿈을 한참 꾸고 있을 때마다 꿈속에서 조차 ‘아~ 내일 일어나서 이거 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할 때가 있는데, 꿈을 망각하지 않을 특별한 기억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내가 꿈꾸는 작가의 길에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더불어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 생활의 리듬에도 편곡을 가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