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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정치를 말하다 - 세상을 구하는 지혜를 담은 고전 강의
이중텐 지음, 유소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고전을 좋아한다. 대학 전공 공부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떤 연유로 고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 들어간 시내 중고서점의 그 냄새와 누런 때가 묻은 오래된 책이 그냥 좋았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내며 출간된 시기에 금서가 되기도 한 책도 찾아보고 조선 말기에 출간된 책도 찾아보고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 놓고 그 사람 책만 몇 시간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냥 그게 재미있고 좋았다. 책은 물론이고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고전은 여전히 사랑 받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고전을 사랑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도 하고 발전한다고도 많이들 얘기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다면 고전은 이미 없어졌어야 한다. 왜냐면 어제 보다 오늘이 발전되었고 오늘 보다 내일이 발전될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변한다고 해야지 발전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오류다.
지난해 말 영화 [레 미제라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의 거장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인데, 대단했다. 영화의 인기로 인해 원작 소설이 엄청나게 판매되었다. 영화가 인기를 얻기 전에도 사람들은 [레 미제라블]에 대한 내용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은 사람도 많다. 이 작품이 일정한 시기에 다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작품 자체가 가지는 매력 때문이다. 누가 임의로 ‘2012년 겨울에 이 작품을 다시 히트 시켜야지!’ 라고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고전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바뀌어도 세상이 변화해도 고전이 가진 보편적 가치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책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내용이다. 이중톈 교수는 이미 그의 전작들에서 중국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고전은 유명하다. 특히 이 책에서 분석한 백가쟁명 사상의 범위에 포함되는 유가, 묵가, 법가, 도가 사상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책이나 TV를 통해서 알게 된 것도 있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중국의 고전, 특히 여러 사상을 한꺼번에 공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중톈 같은 사람의 내용 풀이가 도움이 된다. 백가쟁명 사상의 한 줄기를 들여다보는 것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이 책을 읽으면 주요한 사상이 시사 하는 바와 현재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이번 책은 언론과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좀 더 읽기 쉽게, 직접적인 대화 형식으로 엮었다.” (p.6)
이 책에서는 고전에서 얘기하는 세상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소개 한다. 중국의 고전 사상이 꽃피운 시기는 가장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다. 모두들 구원을 원하고 바라던 시기였으며 모두들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기였다. 칼이 흥하던 만큼 말과 글이 흥하던 시기였다. 지식과 지혜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태평이 성대하고 백성이 편안한 시기에 사상 또한 장족의 발전이 병행된다면 좋을 텐데 역사는 늘 아이러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상 중 아는 내용도 많았고 모르고 있었던 내용도 많았다. 독서와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 될 수 있는지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유가와 도가 사상보다 묵가와 법가 사상이 실제로 세상을 구하는 데 더 필요한 사상이라고 생각 한다.
“풀뿌리 계층은 이 사회가 힘들다.” (p.60)
“구시 방안 역시 인간관계와 분배 방법부터 착수하여 공평과 정의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p.75)
중국 역사상 최초로 풀뿌리 민중을 위해 입을 연 묵가 사상은 이전까지 정통 사상으로 여겨지던 유가 사상에 어퍼컷을 날렸다.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것을 신봉하는 것이 바로 천하를 바로 세우는 길이고 내가 잘 되는 길이라 가르쳤던 유가 사상가들에게 묵가 사상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천하의 질서라는 것이 천하의 뜻에 의해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였다면 묵가 사상에서 말하는 것들은 모조리 유가 사상가, 자신들을 절멸시킬 위험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민중을 이야기하고 풀뿌리 계층을 이야기 하면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 자체가 그렇게 결정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조건 어른에게 고개 숙이고 가진 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 천명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가 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이것은 혁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뿌리 밑바닥까지 옥죄어 오는 구조의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천지개벽이다. 이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했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공평과 정의에 대한 담론을 쏟아 냈다. 그냥 허리 굽혀 땅에 코를 박은 채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동력이 되고 충분히 공평하고 상식이 통용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겸애는 단순히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p.86)
“묵자가 남들보다 예리하고 독창적인 이유는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양주가 깊이 있고 독창적인 이유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말했기 때문이다.” (p.158)
묵가 사상을 대표하는 묵자와 양주는 예리 하고 깊이 있으며 독창적이었다. 그들 이전까지 겸애니, 사랑이니, 공평이니, 정의니 이야기 하는 지식인이나 사상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손에 쥐고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만불손하고 위험천만한 사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각 사상이 얼마나 실제에 주효했는지,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 반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조선 말기 동학사상이 그토록 빠르게 번지고 풀뿌리 민중들에게 심어지게 된 것은 당시가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그 심정을 동학에 투영한 것이다.
하지만 묵가 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이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법가가 유가, 묵가, 도가와 구분되는 이유 중 하나는 법가를 제외한 모두가 ‘이상주의’라는 점입니다. 오직 법가만이 ‘현실주의’입니다.” (p.228)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묵가 사상가들도 말만 한 것이다. 물론, 도가나 유가 사상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그들이 담아내지 않았던 풀뿌리 민중들의 염원을 달래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라면 도가나 유가 사상의 한계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공평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별다른 대책도 없고 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면 속 빈 강정이다.
“보통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려고 한다면 개인의 능력에만 기댈 수 없다. 그렇기에 제도, 즉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법은 공개적이어야 하며, 법의 집행은 공정해야 하고, 사법은 공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의 법은 위엄과 명망을 상실한다.” (p.261)
이 한 문장으로 법가 사상이 지니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유가니 도가니 묵가니 좋다. 좋은 말 많고 꿈같은 말 많고, 그들의 말대로만 된다면 지상천국에 다름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는 사실 뜬 구름 한 조각도 잡지 못한다.
법가 사상은 허황된 이상이나 과대 포장된 선동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소수의 초인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철저한 제도와 법을 가장 우선시 한다.
입법은 공개적, 법의 집행은 공정, 사법은 공평
해야 나라가 바로 서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문득 2013년 대한민국이 중첩된다. 과연 2013년 대한민국은 입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법의 집행이 공정하며 사법은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입법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대표로 뽑아 놓은 국회의원님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법의 집행은 힘 센 놈에게는 관대하고 힘 약한 놈에게는 과격하다. 사법의 추는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진지 오래다.
법가에서는 이렇게 되지 않으면 나라의 법은 위엄과 명망을 상실한다고 했는데, 2013년 대한민국의 꼴이 바로 그렇다.
학교에서 법가 사상에 대해 배울 때에는 ‘법가 사상이 가진 엄혹함과 냉정함이 오히려 사회를 과격하거나 경직시켰다.’라고 배웠었는데 100%틀린 교육이었다.
언제 한번이라도 법가 사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혹하고 냉정하게 법과 제도가 정착되어 집행된 적이 있었나?
단연코 없었다. 없었기 때문에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법가 사상이 사회 전반을 훑고 지나가 사회 전체가 법과 제도만으로 운영되고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
이중톈 교수는 책에서 어떤 사상이 더 낫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묵가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이상을 남겼으니 바로 평등과 상호이익, 박애이다. 도가는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인생의 추구하는 바를 남겼으니, 바로 진실과 자유, 관용이다. 법가는 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공개, 공평, 공정이라는 치국의 이념을 남겼다. 유가는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인애와 정의, 자강이라는 핵심 가치를 남겼다.” (p.352)
고전을 통해 살아가는 지혜와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사상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고 특별한 맥락이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고 우위가 정해지겠지만 책에서는 그런 것을 배제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고전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묵가 사상과 법가 사상이 더 좋고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호불호도 다르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이라는 곳에는 철두철미하고 적확하고 냉정한 법가 사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반드시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