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 -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한명기.신병주.강문식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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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참 멀다. 어릴 때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버지와 서먹했다. 그 사실을 알고 적잖이 안도 했다. 나는 나와 나의 아버지만 특별한 줄 알았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와는 서먹하다. 멀기도 하고.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뭐,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개인의 경험의 차이에 따라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다.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내 아버지와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이 책 「왕과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 내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과 왕세자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나와 내 아버지 이야기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왕의 이야기는 많은 책과 TV,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거의 1년 내내 사극이 방영되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그 시대 궁의 모습과 궁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그렇게 사극을 많이 방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 왜 한복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70-80년 대 패션이 다시 유행을 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의 패션과 문화, 생활양식이 부활해서 유행을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아버지와 다섯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본 내용이다.

사극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다소 다른 면이 많아 당황을 좀 하기도 했고, 제대로 된 사극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반드시 필요할 텐데 다른 것에만 너무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에 실린 순서 그대로 소개한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 태조와 태종

 

“세자 책봉에서 밀려나고 개국공신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이방원은 태조 재위 7년 동안 정치적 실권에서 배제된 채 야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다. 실제로 <태조실록>을 보면, 태조 재위 기간 중에는 이방원의 활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p.32)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훗날 태종)을 홀대한다. 자신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이 다름 아닌 아들 이방원임에도 태조는 아들을 내친다. 책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는 데 그중에서도 고려 시절부터 이성계와 절친하던 정몽주를 자신의 허락도 없이 죽인 것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한 번 싫어지기 시작한 이성계의 눈은 아들 이방원에게 만큼은 지독하게 차갑고 냉정하다. 사실, 망해가는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자칫 하다가는 역모죄로 바로 숙청을 당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태조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아들이라기보다 장차 자신의 보위를 위협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여겨졌던 것 같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자신이 최초의 왕좌에 올라 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될 수 있는 한 길게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 이방원은 라이벌 이었다. 이미 많은 군사와 백성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는 야심차고 젊은 이방원은 눈엣가시 였다. 목숨을 걸고 성공한 건국의 경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천륜이 가진 신성한 도덕적 가치 따위를 내동댕이치게 했다. 손에 쥔 권력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성계의 분명한 아들이다. 쉽게 내칠 수도 제거해 버릴 수도 없어서 야인으로 살도록 방치한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와 아들 : 태종과 양녕대군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도 받았고 견제를 받았던 이방원은 결국 왕위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왕자의 난’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과정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인 태조가 이방원의 야심을 경계했는데, 결국 방지하지 못한 꼴이 되었다. 태조의 집중적인 견제와 내침에도 결국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었으니 말이다. 옛말이 정말 틀린 것이 없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하여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p.106)

 

세종대왕의 형이던 양녕대군이 장자였음에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 이유에 대한 설이 많다. 그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양녕대군이 정치와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예술적인 면에 관심이 많아서라는 것이다. 예전에 본 사극에서도 양녕대군을 꼭 그렇게 묘사했었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근간이던 조선에서, 그것도 왕실에서 엄연히 살아있는 장자를 제쳐두고 다른 아들이 왕위를 잇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해서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록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방식으로 해석 하는데 더 설득력이 있고 신빙성이 있었다.

 

“태종은 양녕대군의 실행을 질책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으며 심지어 반성의 방법까지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국은 세자에서 폐위되는 비운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p.63)

 

실제로 태종은 자신이 형제들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장자인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녕대군을 어릴 때부터 왕세자로 책봉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 교육을 시키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시켰다. 그런데 그런 태종의 욕심과 기대에 양녕이 계속 미치지 못한 것이다. 태종 자신부터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피비린내를 진동하며 왕위를 잡았기에 자신의 아들부터는 최소한 장자가 차기 왕이 되는 정통성을 확립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정통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양녕은 미치지 못했다. 태종 자신은 야심이 넘쳐 아버지에게 견제를 받아 사이가 멀어졌는데, 자신의 아들은 야심이 없고 실력도 부족해 사이가 멀어졌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이 훗날 세종대왕이 되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니 결국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비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 선조와 광해군

 

“인사권 등 권한의 일부를 이양받았지만 ‘바짝 엎드리고 있던’ 광해군의 입장에서, 선조의 거듭된 전섭 명령은 몹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선조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자칫하면 ‘불충’으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29)

 

선조는 불행한 왕 중 하나였다. 200년 동안 평온하던 조선에 일본이 침략한 것이다. 200년 동안 평화롭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100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을 판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선조만을 탓할 수 없다. 건국 후 타국의 침략을 예방하지도 예견하지도 못한 관료와 시스템이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였다.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일본의 침략에 선조는 도망간다. 그리고 아들인 광해군에게 전섭을 명령한다. 전섭은 쉽게 말하면 조정을 둘로 떼어 차기 왕이 될 왕세자가 민심을 수습하고 현재 왕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치사한 짓인데, 조선은 왕위를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중대사였기 때문에 최악보다 차악을 택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선조는 임진왜란 시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양위카드’를 빼들었다. 모두 합하면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 남발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광해군과 신료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낼 수 있었다.” (p.138)

 

선조는 우유부단한 왕이었던 것 같다.

전섭 명령을 비롯한 양위에 대한 언급을 수시로 한다.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고 한다. 왕이라는 사람이 수시로 그런 배수의 진을 친다면 왕세자와 신하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차기 왕권을 이어 받을 광해군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신속히 양위할 것처럼 말하다가 상황이 조금 유리해지면 양위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광해군은 말 한마디 하는 것. 행동 하나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우유부단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탈피하고 싶어서였을까.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강대국들 사이에서 분명한 원칙을 고수한 채 기가 막힌 등거리 외교를 펼친다. 임진왜란으로 전 조선이 황폐화되고 전후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펼친 외교는 후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비록 그 시대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군’으로 격하되는 수치를 당하기는 했지만.

 

 

상처 입은 아버지와 새 세상을 본 아들 : 인조와 소현세자

 

“인조는 조정을 이끌고 강화도로 들어가고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이끌고 남하하여 인심을 수습토록 하자고 촉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 선조가 파천할 때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게 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p.166)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와 소현세자는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 수치를 당한다. 아마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일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겪은 후 타국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도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선조가 광해군에서 분섭을 명령한 것처럼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명령한다. 임진왜란 보다 더 가혹했던 병자호란으로 왕세자가 타국에 인질로 끌려간다. 아버지 인조는 막을 힘이 없는 자신과 조선을 탓하지도 못했다. 그저 아들을 끌고 가는 적장에게 일국의 왕이 조아리며 부탁을 하기까지 한다. 조선 시대 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고 최대한 후손을 많이 낳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소현세자도 인조에게는 많은 자식들 중 하나였겠지만 왕세자였고 굴욕을 함께 겪었으며 아비의 무력함으로 적국에 인질로 끌려가는 수모와 고통을 감내한 아들이기에 느끼는 감정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도 전쟁의 상황이 수습 되고 조선 시대 가장 큰 문제였던 당쟁으로 인해 아들인 소현세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음모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미안함이 증오로 변했다. 광해군에게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 왕실 최대 비극 : 영조와 사도세자

 

“영조는 사도세가 경연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를 늘 점검했다. 서연에 참여한 신하들을 따로 만나 그들에게 세자의 학습 상태를 물어보곤 하였다. 매번 세자의 차대 뒤에 입대한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사도세자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를 당하는 상태까지 몰린 것이다.” (p.219)

 

가장 불쌍한 왕세자는 누가 뭐라 해도 사도세자다.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8일을 갇힌 채 죽어 간 왕세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절망이다. 정조,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가장 뛰어난 왕 중 한명인 영조는 가차 없고 잔인한 아버지였다. 백성들을 위해 구휼책을 내어넣고 당쟁을 지혜롭게 견제하며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한 왕이었지만 아들에게만큼은 너무 철저하고 너무 냉정하고 너무 잔인했다. 힘없는 왕이 되면 어떤 수모를 겪는지 알고 있는 아버지는 강한 아들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커녕 제대로 된 사랑한번 건네지 않았다. 내 나이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이 거의 그렇다. 자신은 자식 많은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자란 것이 한이 되어 자신의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고자 하는 마음.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려서부터 무섭게 공부시키고 체벌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내 나이대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들의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며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하고 그 틈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영조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세자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 마음의 병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혜경궁도 ‘은혜와 사랑을 주시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p.222)

 

사도세자는 여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더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강한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사도세자는 그저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줄곧 다른 지향점만 바라보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비극이 찾아 왔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 3사관학교 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뜯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아직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다.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채우는 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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