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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쓰는 법 - 살아갈 나를 위해 살아온 날을 쓴다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한진영 옮김 / 페가수스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아직까지 직업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결심을 하게 해준 어느 작가의 글을 읽었던 그 밤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그 작가의 글은 마치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계어처럼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한글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 방금 낚아 올린 활어가 온몸으로 생명력을 표현하며 팔딱거리는 것처럼 그의 글은 종이 위에서 춤추고 날아 다녔다. 그의 글을 조금이라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흉내내보기도 하고 무작정 베껴 써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차츰 충격적이었던 그 밤의 기억을 잃어갔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블로그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오로지 그것은 나의 훈련과정이었다. 2년 조금 넘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사실 지난달부터 의욕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서평을 썼지만 어느 순간 내 글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듭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면 자연스레 내 글의 질도 나아질 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그간 작성한 서평을 읽어보는데 대형마트 한 가운데에 발가벗고 서 있는 것같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던 중 이 책 「내 인생을 쓰는 법」을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자서전을 쓰기 위한 책이다. 뭔가 정체에 빠진 나의 독서와 글쓰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비법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과한 기대에는 필연적으로 치명적인 실망이 동반되지만 이 책은 그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굳이 자서전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한 조언과 실제적인 글쓰기 연습에 대해 권유 한다.
“가끔은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 좋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뭘 썼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손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원숭이 마음과 귀에 대고 네까짓 게 감히 뭘 쓰느냐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검열관 때문이다.” (p.103)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여러 번 읽고 마음에 새겼다. 나는 한 번도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 적이 없다. 한 번 작성한 글에 대해서는 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단 완성된 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것은 ‘혹시 내 글을 다시 읽다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말도 안 되는 표현이나 어설픈 구조를 발견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내 손가락을 조종하고 내 귓가에서 어김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잔혹하고 잔인한 검열관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몇 개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봤다. 저자의 권유처럼 마음이 평안해지거나 내 글이 소리 내어 읽기 전보다 더 훌륭하게 보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처럼 아내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는 글인데 아내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물론, 아내는 남편 기 살려주려고 대뜸 칭찬을 해주었지만 엎드려 절 받는 칭찬이더라도 위안이 되었다. 갑자기 생긴 용기에 힘입어 친한 친구에게 전화상으로 내 글 하나를 읽어 주었다.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더 훌륭한 글쓰기를 하는 친구라 또 다시 그 잔혹한 검열관이 등장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두 편을 연달아 읽었다. 친구놈 왈.
“나보다는 못쓰지만 들어줄만 하네~!”
“결국 도달해야 할 목표는 글이 투명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쓴 언어와 표현이 당신의 모습에서 떼어낸 아주 작은 파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p.74)
글이 투명해진다는 것. 어려운 일이다. 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 당연히 내가 쏟아 낸 글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습작을 하고 서평을 작성하면서 나는 얼마나 내 글에 투명했나 돌아봤다. 수치상으로 계량화 할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탁하면 탁했지 투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는 서평보다는 혼자 하는 습작이 서평보다는 내 자신과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 또한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글이란 내가 아닌 남들이 보게 되는 성질의 것이기에 글의 종류와 상관없이 내게서 쏟아지는 글은 투명해야 한다. 특히 내 자신에게는 더욱 그렇다. 내 자신에게조차 투명하지 못한 글은 남들에게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다.
“중요한 건 틀에 박힌 일 속에서 감정의 결은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살아 숨 쉬고 싶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당신은 진실한 마음을 종이 위에 옮김으로써 그 감촉을 우리에게 선물하라.” (p.157)
저자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한 마음. 투명한 감정. 그러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예민하게 감정의 결을 긁어내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에서 소모하는 감정에 대한 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드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소화해 내지 못한 감정 덩어리는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터져버리고는 한다. 그런 일상에서 감정의 결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종이 위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니 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펜을 들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10분 동안 맹렬하게 써라.” (p.89)
저자는 이렇게 어려운 글쓰기에 대해 무책임하게 ‘안 되면 말고’라고 하지 않는다. 책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10분 동안 써라> 저자의 말대로 정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고 뾰족한 묘안도 없다. 글쓰기는 반복되는 훈련이다.
후회하는 일, 고치고 싶은 것
내 인생 최고의 노래,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 내가 잊을 수 없는 것, 내가 용서할 수 없는 것, 내가 밤에 생각하는 것
이 책을 일고 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열흘 동안 위의 7가지에 대해서 10분 동안 글쓰기를 했다. 저자의 말대로 맹렬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아침잠을 깨워 써보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써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특별한 묘책을 가르쳐 주거나 지름길을 인도해주는 것이 의도가 아니라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쏟을 것을 주문한다. 매일 10분 동안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일 터.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사용해야 한다. 특별히 ‘후회하는 일’과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10분을 훌쩍 넘겨 20분 넘게 글을 쏟아 냈다. 저자의 권유대로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된 연습장에 오래된 연필로 썼다. 10분을 투자해 오랜만에 손 글씨를 쓰다 보니 그 자체로 힘이 들었다. 한 편 한 편 완성할 때마다 예전 글씨체를 찾아가는 것이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굳이 정리되거나 뭔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 이었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상태로 혹은 하루의 피곤함에 완전히 찌든 채로 책상에 넘어질 듯 걸터앉아 연필을 붙잡는 것이 짜릿 했다. 10분을 투자한 글 7편이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이라 그대로 용기가 되었다.
“작가들은 대체로 듣는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들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뿐 아니라 말의 주변에 있는 것, 그림자나 커튼, 말하지 않은 것까지 받아들인다. 작가들은 자신의 마음 속 소리도 듣는다. 우발적인 깨달음, 뜻밖의 직관, 생각, 문장, 내면과 바깥 세계의 리듬에도 귀를 기울인다.” (p.111)
때로는 아주 특별한 기억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버라이어티 하고 스펙타클 하고 다이내믹 한 꿈을 한참 꾸고 있을 때마다 꿈속에서 조차 ‘아~ 내일 일어나서 이거 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할 때가 있는데, 꿈을 망각하지 않을 특별한 기억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내가 꿈꾸는 작가의 길에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더불어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 생활의 리듬에도 편곡을 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