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의 정세토크 - 60년 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의 한반도로
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 서해문집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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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보름 뒤 예비군 동원 훈련에 입소했다. 2박3일 동안 숙박하며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5년차 훈련이었는데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평소에는 외부 강사 1시간, 대대장 1시간 하던 안보강의를 3시간으로 늘려서 하는 것이었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결과 발표가 있기도 전이었는데 안보강사로 온 교수라는 사람은 열변을 토하며 안보, 안보를 외쳤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지난 정권에서…….”라는 것이었다. 뭐든지 갖다 붙이는 데는 선수들이었으니까. 미사일 발사도 지난 정권의 무차별적인 퍼주기 때문이고, 북한의 몽니도 지난정권 때문이고. 외교·안보 분야 말고도 거의 전 부문에서 이명박 정권은 지난 정권을 붙잡고 늘어졌다. 조중동을 위시한 통제된 언론이 그대로 받아썼다.

미사일 발사건 하나만 놓고 다시 한 번 살펴보자. 1차 핵위기가 있었던 94년 당시는 지금의 새누리당의 전신이던 당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권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군사정권의 말기인 노태우 정권이었다. 그렇다면 94년 핵위기도 지난 노태우와 김영삼 정권의 무차별적인 퍼주기 때문인가? 아주 상식적이고 간단한 역사적 사실만 제시해도 지난 이명박 정권의 몽니는 한방에 무너지는데 언론 자체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 보니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야당이라고 있는 자들이 여당 2중대 노릇을 했으니 말해 무엇 하나 싶다. 뭐, 그런 말을 쏟아내려면 A4 10장으로도 모자란다.

중요한 것은 일반 국민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1차 핵위기가 불과 19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정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말을 쏟아 내고 언론에서 떠들어 대면 또 ‘그런가 보다’한다. 예전의 기억은 이미 깨끗하게 지워졌다. 한국 국민들이 머리가 참 좋다고 하는데 기억력은 현격히 떨어지나 보다.

 

 

이 책 「정세현의 정세토크」는 대북문제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식견과 노하우를 가진 정세현 전장관의 강의와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을 엮은 사람도 대북 관련해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기자인 프레시안의 황준호씨다. 고수 두 사람이 만나 북한 이야기와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구어체로 쓰여져 읽기 쉽고 어렵지 않다. 북한에 관련된 문제는 어렵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책은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런 얘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고.

 

 

 

“남쪽이 안 도와주니까 북한이 탈남입중(脫南入中)하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럴 줄 몰랐겠죠. 꽉 막아버리면 언젠가 무릎 꿇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북한은 이미 다른 쪽으로 숨통을 트고 있습니다. 중국도 정치·경제·외교·안보 차원의 고려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도와줄 수밖에 없어요. 북한은 이제 남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점점 기대를 접는 쪽으로 갈 겁니다.” (p.283)

 

지난 이명박 정권이 쏟아낸 수많은 정책 실패 중 4대강 다음으로 심각한 것이 나는 대북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집권 초부터 이미 예상되는 일이었고 5년 내내 그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책에서 정세현 전 장관이 수차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우유부단함이다. 애초에는 유연한 자세와 입장을 견지하다가 어느 때는 갑자기 강경 자세로 돌변하고 또 갑자기 유연하게 돌아서는 등 대북문제에 있어서 베테랑 중 베테랑 인 정세현 전 장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 쪽에서조차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을 상대로 수십 년 동안 외나무다리 외교를 펼친 북한 당국자들에게 이명박 정권은 그저 아마추어리즘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정권 막바지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 봉투를 건넸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었다.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가다가는 북한이 중국 경제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에서부터 태평양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중국의 힘이 이미 G2가 되었고 그들의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명박 정권은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있는 대로 북한을 보지 않고 자기의 편향된 대북관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대목을 찾아내고 그것을 확대해석해 보도하면, 그거야말로 신기루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쪽으로 쫓아가는 겁니다.” (p.78)

 

아직도 우리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신기루가 너무나 두껍게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정치적 민주화가 절차상으로나마 확립된 이후에도 중요한 선거 때마다 소위 ‘북풍’이 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지난 이명박 정권 때에는 조그만 사건만 생겨도 네티즌들이 “이번에도 북한의 소행이다.”라는 우스개를 퍼뜨리기도 했다.

 

 

“책을 내면서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스스로 보수층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보수니 진보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에 맞게 한반도 문제를 보는 틀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뒀다.” (p.6)

 

정세현 전 장관의 생각에 100% 동의 한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나 한국 전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사안인데 일반 국민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많다. 종편이라는 것이 탄생된 이후에는 줄곧 북한 관련 방송이 넘쳐 난다. 언제부터 한국의 언론이 북한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TV를 틀면 종편에서는 북한 이야기다. 보수니 진보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을 말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면 당장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상식’을 말해도 ‘비상식’적인 공격을 받게 되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 종북, 포괄적 종북, 빨갱이로 주홍글씨를 새겨 놓으면 게임 끝이다. 종북주의자, 종북세력이 하긴 얘긴 들을 필요가 없어. 빨갱이가 무슨 말이 많아. 해버리면 그만이다. 정 전 장관의 말대로 이 책을 자신이 보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북관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은 상식적이지만 파격적인 내용이다. 파격이라 하는 것은 워낙 뒤틀려진 정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착오 하나는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 늘 투자비용만 계산했지, 분단시대에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분단비용을 빼지 않은 것이었어요. 통일이 되면 분단비용은 통일비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통일비용을 계산하려면 투자비용에서 분단 비용을 빼야 순투자비용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빠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p.26)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 학계에서는 늘 통일비용을 문제 삼는다. 정 전 장관의 주장처럼 어떤 정책이든 코스트 cost(비용)를 말할 때는 반드시 베네핏 benefit(수익, 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 통일 비용을 이야기 할 때는 베네핏은 쏙 빼놓고 코스트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북한과 경제격차가 얼마나 나니까 우리가 이만큼 북쪽에 투자해야 하고 그것은 정부의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 통일세와 같은 세금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로 겁을 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까지 통일을 해야 해?’

지금도 매일, 매순간 분단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수십 만 군인들이 밥을 먹고 훈련을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무기. 군사적인 요인 말고도 정치적·경제적 코스트는 분단 비용으로 고스란히 나가고 있다. 종전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전쟁이 재개 되든지 통일이 되든지, 그때까지는 그대로 투입되는 돈이 분단비용이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분단비용이 상쇄된다. 아주 상식적이고 너무나 쉬운 논리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지구는 둥글다. 정도의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도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의도하지 않고 빠뜨릴 수 없는 문제다. 의도하고 빠뜨렸다면 다른 숨겨진 의도가 반드시 있다는 반증이다.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미일동맹보다 우위에 둘 수 없습니다. 버든 셰어링 Burden-sharing(미군 주둔 부담금 등)의 액수나 비율만 봐도 일본만큼 우리를 대접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무기 구매를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네 물건 많이 사주고 주둔비 많이 내는 쪽을 중시할 수밖에 없어요.” (p.225)

 

예비군훈련 시 듣는 안보강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한미관계 강화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갖은 노력을 다해 환수해 온 전작권을 도로 연기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미국, 미군이 아니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한 일처럼 얘기했다. 예비군훈련장에서 듣는 한미관계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절박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냉전 시절 미국의 대소련 정책이나 현재 대중국 정책에서 한반도 보다 일본이 더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고 예비군훈련장에서 안보강연을 듣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미군 주둔 부담금과 무기 구매가 우리보다 일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반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집단들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들의 말만 들어보면 미국과 한국은 전 세계에 둘도 없는 혈맹국이고 친구이자 동지인데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서 한반도가 가장 우선순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팩트다. 오바마가 당선되고 힐러리 국무장관이 가장 먼저 순방한 곳이 아시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라는 사실은 대아시아 정책의 축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미국을 향한 끈질긴 짝사랑이 애처롭다.

 

 

“미국이 1등 강국인 건 틀림없지만 2등 강국인 중국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중국과도 잘 지내고 미국과도 잘 지내는 균형 외교, 혹은 등거리 외교를 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 최대의 시장이고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기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국을 놔두고 무조건 미국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p.349)

 

정 전 장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다.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오로지 동쪽만을 쳐다봤다. 서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 눈길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나라인가? 이미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미국의 2배가 넘는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만 바라본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 중국에게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만 있으면 오케이였다. 지금 박근혜 정권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고 가장 잘한일이 일관된 대북정책이라고 보수언론에서 떠들어 댔는데 도대체 무슨 대북정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대통령이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것이 일관된 대북정책이라 한다면, 글쎄 이명박 정권보다 더 암울한 관계가 이어질지 모르겠다. 실질적으로 대북 정책에 대해서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다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고 중재역할을 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하는데 기대조차 되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이명박 정권 시절에 정 전 장관이 한 이야기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 재출범 한 지금의 상황에서 정 전 장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대북 정책에 관련해서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박근혜 정권인데 이런 위기와 냉각기를 떨쳐낼 수 있는 묘안이 있을지 모르겠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북정책을 꾸준히 펼친다면 ‘언젠가는 무너질테니 잠자코 기다리자’라는 식의 수준이하의 정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누구 한 쪽이 먼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채 언제 끝날지 모를 대치를 계속한다면 결실을 가져가는 쪽은 양자보다 더 힘의 우위에 있는 제3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반도의 통일 방안 중 최악의 수다.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 아직도 가장 심각한 터부가 되어있는 북한에 대한 정책과 보도와 연구가 상식적인 선까지 도달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들의 자세도 전향적이고 상식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통일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 사람과 세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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