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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로서의 발전>

이 책의 저자 아마티아 센은 인도의 석학입니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사람입니다. 그는 인도의 역사, 종교, 정치, 문화, 사회전반을 통찰하는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늘 조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충만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서구가 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로만 인식하고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것에 주목합니다. 더불어 인도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며 인도의 역사 이래 축적된 지적유산을 잘 활용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아마티아 센은 무엇보다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중심으로 한 후생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로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책에서도 사회정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축으로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경제적 지표 몇개가 상승하는 것이 발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이 진정한 발전의 목표라는 점에 주안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가 양적으로는 가파른 성장의 길을 걸었지만 그것이 더불어 잘사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까지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2. <한국인의 탄생>

꽤 흥미로운 저작입니다. "시대와 단절한 근대 한국인"이라는 표지 소개글이 관심을 끕니다. 중세와 근대를 잇는 분기점은 어느 국가나 민족에게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수백년을 이어 온 전통과 관습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서구 열강과 제국주의 국가의 접근과 갈등, 수탈과 억압으로 점철된 그 분기점은 조선인, 반도인, 한국인 그 어느 것으로도 명명할 수 없었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한국의 근대의 시기를 놓고 상이한 시각차를 보이기도 합니다. 근대 이후 현대를 잇는 분기점도 한국전쟁과 독재라는 혼란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적 정치적 시각을 벗어나 근대문학 속에 나타난 인물들을 통해 근대 한국인을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신선한 접근이라 생각됩니다. 왕조가 무너지고 총과 칼을 앞세운 제국주의를 직면한 풍전등화와 같은 한국인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3. <돈의 철학>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지 오래입니다.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최고의 재벌 기업은 연일 사상 최고의 이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그 재벌 기업의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던 말단 직원은 얼마 전 자살을 했습니다. 

돈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참 좋은 것입니다. 누구나 돈을 가지고 싶어 하죠. 있으면 더 있었으면 좋겠고 없어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입니다. 짐멜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관통하는 돈의 철학을 통찰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와르르 무너저내렸지만 자본주의는 철옹성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나아가서 역사적, 사회적 세력과 질서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렇다면 무작정 좋은 것, 무작정 나쁜 것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돈의 철학을 사유해야 합니다. 이 책이 그 출발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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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 - 역사 속 말없는 여성들에게 말 걸기
주진오 외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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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절반가량의 사람들은 여성에 대해 잘 모른다. 당연하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으로 살 수 없고, 여성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을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윗입술 언저리에 거뭇거뭇 수염이 나는 시절부터 줄곧 여성을 상상하고 여성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맹렬하게 탐구한다.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여성이 아닌 사람들의 타고난 운명이라 할 수도 있다. 여성이 아님에도 여성을 잘 안다고 하는 치들의 이야기는 거의가 추정 내지는 판타지다. 내지는 여성들이 자신들과 다른 성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과 패턴의 차이에 따라 홀로 이미지는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은 결혼 후 완벽하게 확고해 졌다. 아내와는 대학 때부터 10년간을 연애했다. 연애 전에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서로의 집안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나눌 정도의 친구.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 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물론, 내가 3년 6개월가량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애 기간은 6년 정도이다. 어쨌든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 잘 알고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은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부부 생활은 또 다른 세계였다. 나는 정말 놀랐다. 10년 간 한 여성과 연애를 하고나니 웬만한 여성이나 커플들의 상태나 심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결혼은 완전히 달랐다. 10년간의 연애 기간은 완전히 삭제되고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야 했다.

 

 

“왜 명절 때 꼭 시집부터 먼저 가야해?”

“...”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다. 어린 시절 명절이나 방학 때 항상 먼저 가는 곳은 어머니의 시집이었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친정부터 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집이 그랬다. 당연히 엄마의 시집부터 간 다음 친정에 갔다. 그렇게라도 가면 다행이었다. 시집과 친정의 거리가 멀거나 꼬장꼬장한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라면 명절에 친정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서 시집온 지 몇 해가 지나도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그런 관습도 있고 나는 남성이니 그런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네, 왜 시집부터 먼저 가지? 유교적인 관습 때문인가?”

“몰라~! 어쨌든 억울해.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건 정말 억울해.”

“...”

 

정말 억울할 것 같았다. 내가 만약 여성으로 태어나 결혼해 매 명절 때마다 시집부터 찾아간다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우선 여성은 혼인 뒤 꼭 시집에 갈 필요가 없고 친정 부모를 모실 수도 있었으니 ‘출가외인’이라는 관념이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도 시집에 들어가 살 때에 비해서는 덜 일방적이었을 것이다.” (p.96)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말인데, TV에서 보거나 주변에서 들을 때에는 당연히 오랜 관습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 「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에서는 그것이 오랜 전통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고려시절에는 오히려 혼인 한 뒤에는 일정 기간 동안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세종대왕께서 옛 제도를 흠모하여 왕자와 왕녀의 혼인을 모두 친영으로 하고 사대부들에게도 본받게 하였는데, 근래 들으니 구습을 그대로 쫓아 여전히 ‘남귀여가’하니 천도에 역행하는 것이다.” (p.148)

 

이러한 관례를 가리켜 ‘남귀여가’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남귀여가’ 관습이 고려시절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중엽 이후 까지 줄곧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중종이 한 위의 말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초기에는 고려의 관습이던 ‘남귀여가’를 금지시켰다. 그런데 그것은 말소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세종 이후 중종 무렵까지 횡행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 무렵까지도 딸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남귀여가(혼인 후 남성이 여자 집에서 생활하는 것)라는 혼인 풍속에 따라 여자들이 혼인을 해도 친정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여자들은 자신이 남의 집의 며느리이기보다는 그저 자기가 살던 집의 딸이라는 의식이 더 강했다.” (p.141)

 

국가가 귀족 계층은 물론 평민들에게까지 이런 ‘남귀여가’현상을 금지시켰다는 것은 조선의 지배이념이던 성리학적 세계관에 다소 배치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더군다나 조선 말기 횡행했던 외척에 의한 부정과 부패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혼한 후에도 ‘출가외인’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살던 집의 딸이라는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궁이나 빈에 오르면 당연히 외척들을 살피고 좋은 자리에 등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모두 열두 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대학교 여성사 수업의 교재로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 해석을 뒤집거나 문제제기한 것은 토론 수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p.8)

 

이 책 「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는 여성 학자들이 쓴 논문을 엮을 책이다. 내가 10년 동안 연애를 하고도 결혼한 후 아내의 모습이 완전히 생소했던 경험을 한 것처럼 남성은 여성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알 수 없다. 서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읽었다. 다소 학구적인 냄새가 나는 책이라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내 나름의 방식대로 읽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여성인 아내를 조금 더 이해해보자.’ 싶었다.

각 주제에 따라 심도 깊게 논의가 펼쳐진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출가외인’ 경향이 굳어지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명절 때는 시집부터 가는 경향이 형성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유교적 전통이나 조선조 관습이 그대로 답습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17세기에 접어들자 단순히 재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열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점차 열녀는 남편을 따라 죽는 여자를 의미하게 됐다.” (p.177)

 

한국에서 살아 온 여성들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오해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였다. ‘열녀’에 대해서도 다분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조명하고 기록했다는 것을 책에서는 지적한다.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된 채로 정절을 지키는 것이 ‘열녀’라고 흔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 시부모를 잘 봉양하고 시댁의 가세를 일으켰다면 ‘열녀문’이 내려지고 임금으로부터 큰 칭찬과 인정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열녀’현상이 17세기에 들어서는 남편을 따라 죽는 여자를 의미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잔인하고 무서운 행위다. 지금보다 일찍 혼인을 했지만 그만큼 수명이 짧았다. 아주 잠깐 부부의 정도 나누기 전에 남편이 죽은 채 청상과부로 남은 아내는 다른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열녀 행위를 부추겼음이 틀림없다. 즉 이데올로기적인 강요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 이 강요는 도덕성이라는 이름하에 자발성에 기초를 두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것을 강요라기보다는 자신의 도덕적 실천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p.189)

 

여성의 시각으로 이런 17세이 이후 ‘열녀’에 대한 풀이가 설득력이 있었다. 흡사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서 만들어 낸 ‘카미카제’ 현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분명 ‘카미카제’는 자살 폭격기에 타고 장렬하게 전사한 조종사들의 사후에 만들어진 단어다. 전쟁과 제국주의, 황제에 대한 충성이 버무려져 기꺼이 목숨을 내어던지는 자발적 자살이 미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 ‘열녀’는 조금 다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그 이전 왕조인 고려시대보다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좁았다. 시집을 와서 남편이 죽어버리면 재가를 하지 않는 이상 학문에 정진하거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불비했다. 자식이라도 있다면 자식을 보고 견디며 살겠지만 자식도 없이 남편이 죽었다면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구차하고 의미 없이 사느니 이름을 남기는 열녀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50여 년이 흐른 뒤였다. 1988년 일본 남성들이 한국에서 성매매 관광을 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한 세미나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p.287)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이 일본의 한국내 성매매 관광이었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친일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역사가 이어졌으니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굴욕적인 대일청구권협상으로 아직까지 공식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말해 무엇 할까 싶다. 수요 집회가 1000차가 넘어서고 국회에서 증언을 해도 꿈쩍도 없다.

 

 

“1991년 8월 14일, ‘위안부’문제가 다시 잊힐 것만 같은 막막한 상황에서 김학순(1922-1997)은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p.288)

“‘위안부’ 피해여성들이 피해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커밍아웃’행위에 비유되고는 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각오해야 하듯이, ‘위안부’피해여성 또한 자신의 피해를 밝히기까지 많은 것을 고민하고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p.289)

 

늘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할머니들에 의해 알려지고 퍼져 나갔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오욕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고 제 나라의 국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데 국가가 위안부 피해여성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미국에 가서 증언을 하고 유수의 외신들과 인터뷰를 해도 이놈의 나라에서는 도무지 이슈가 되지 않는다. 평생을 오욕과 수치의 역사를 작은 몸뚱어리로 신음하며 살아 온 할머니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것이 이놈의 나라다.

 

 

“한국전쟁 중 국군을 특별하게 ‘위안’한다는 명목 하에 조직된 특수위안대는 공식 역사가 기억되지 않는, 망각된 역사이다.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이야기이니 만큼 그 전모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p.308)

 

책의 말미에 한국전쟁 중 있었던 ‘특수위안대’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이것은 예전에 다른 책에서 잠깐 봤던 내용인데 그 책에서도 아직 전모가 밝혀지거나 직접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부족해 이슈가 되지 않고 있을 뿐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도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한마디로 국군 병사의 성욕 해소를 위한 공식 사창가를 만든 것이다.

 

 

“특수위안대의 문제는 첫째, 남성 병사의 성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제하고 여성을 성욕 해소의 수단으로 대상화했으며 둘째, 강간 사건을 사전에 막는다는 구실로 일부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셋째, ‘위안부’를 군의 직접적 통제를 받는 비정규군으로 규정함으로써 성적 ‘위안’을 국가를 위한 공무로 포장해 여성의 성 동원을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p.311)

 

특수위안대의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로 압축해 설명하는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논리다. 이것이 법률적으로 문화적으로 시대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있고 불법성을 다툴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정할 수 없지만 여성의 시각에서 보는 문제점에는 확실하게 동의한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비밀스러운 문서나 증언이 확보가 되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되리라 짐작 된다.

 

그나저나 명절 때 당연히 시집부터 가는 것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관습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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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사꾼들 - 출신과 스펙은 필요없다, 바닥에서 富를 이룬 그들만의 성공비법
신동일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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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알고 지내는 형님이 시내 중심가에서 장사를 하신다. 이미 십여 년 동안 장사를 해 왔다. 10여 년 전에 ‘지오다노’라는 브랜드가 한창 유행할 때 그 형님이 하시던 매장이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매출이 높았다고 한다. 업종은 2-3년에 한 번씩 바꾸는 것 같다. 그 형님이 하는 장사는 거의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다. 업종이 의류, 화장품, 신발 등으로 다양했을 뿐 창업을 하지는 않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예전보다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고 만날 때마다 앓는 소리를 하시는 걸 보면 ‘어렵긴 어려운 가 보다.’싶은데 장사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온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 「한국의 장사꾼들」은 신동일씨가 직접 장사꾼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먼저 저자인 신동일씨의 집념과 인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기 돈, 시간 들이며 장사꾼들을 찾아다니는 열정이 대단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사꾼들 중에는 획기적인 TV광고를 통해 전 국민들에게 알려진 천호식품의 김영식회장에서부터 유명한 떡집 사장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국의 슈퍼리치>라는 책을 쓰면서 맨손으로 100억 부자로 자수성가한 분들을 만난 인터뷰해보니 그들은 한결 같이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기업의 소유주이거나 수백억 부를 이루었지만, 그들의 출발점을 면밀히 파헤쳐보니 작은 구멍가게에서 장사꾼으로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p.17)

 

저자 신동일씨는 은행 PB센터에서 VVIP고객의 재무설계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비슷한 직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내가 보기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다. 일단 신동일씨가 하는 일은 엄청나게 바쁜 일이다. 매일매일 경제 지표에서부터 경제관련 뉴스, 고객의 전반적인 상황과 계획, 고객관리에 이르기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직업이다. 더군다나 VVIP고객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휴일도 없이 그들을 응대하고 상담해야 한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 짧게는 몇 주 동안 길게는 몇 개월 동안 공을 들여 연락하고 기다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저자의 끈기로 만들어진 책이다.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그가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이런 책을 썼을지 궁금했는데 답은 책의 앞부분에 분명하게 나와 있었다.

 

 

“하루 이틀밖에 가지 않는 단순한 힐링멘토가 아닌 동시에 먼 나라 사람 같은 수백억대 부자도 아닌, 좀 더 가깝고 실제적인 롤모델을 찾고자 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러면서도 잘나가는 멋진 장사꾼들을 찾아 그들의 성공비법을 듣는 작업은 40대 가장인 나에게 너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p.362)

 

지금은 잘나가는 직장인이지만 40대 가장인 자신에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직장에서 만난 자산가들이나 이전 책을 쓰기 위해 만난 슈퍼리치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직장에서 퇴직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매순간 경험하는 공포와 두려움이기도 하다. 몇몇 재벌의 2세와 3세, 4세를 제외하고는 모든 직장인들이 겪는 일이다.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마음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롤모델을 찾고자 했다. 그가 말했듯이 이전 책에서 만난 슈퍼리치들은 좀 먼 나라 이야기이고 ‘동네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러면서도 잘나가는 멋진 장사꾼’들을 만나려고 했다.

성공한 장사꾼, 성공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바쁠지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절박함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각 장사꾼들이 자신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무턱대고 찾아가서 “장사로 성공하게 된 비법을 알려 주세요.”라고 한다면 내가 장사꾼이라도 그런 사람과는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장사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저자 신동일씨만의 비법이 나름대로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귀중한 시간을 뺏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하다.

아마 절박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절박함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 같아요. 절박한 심정이 들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잖아요. 의지도 강해지고요.” (p.35), 엄마손반찬, 주범수&강금례 사장

“성공의 필수 요소는 절박함과 간절함입니다. 절박하지도 않고 간절함도 없는 사람은 자본금이 많고 좋은 아이템을 가졌다 해도 성공하기 힘들어요.” (p.143) 오케이아웃도어닷컴, 장성덕 대표

 

책에 등장하는 성공한 장사꾼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절박함이다.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고 난 후 받은 퇴직금과 모아 온 돈에 융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한 사람 중에 절박함 없이 시작한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6개월 이내에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열이면 아홉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장사와 사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절박함의 정도라고 한다. 아마 성공한 장사꾼들의 말이니 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가 처음부터 재벌의 백그라운드나 엄청난 자산가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공통점인데, 이것은 절박함을 낳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 실패한 사람도 많다. 책에 등장하는 청년사업가들은 주위의 친구들이나 다른 청년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때 그 길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90년대 말 200년대 초 IT버블이 꺼지면서 청년창업, 청년사업에 대한 환상이 공포로 각인되었다.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이 칼로 새긴 것처럼 한국의 청년들에게 DNA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청년 시절 창업을 하거나 장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다른 세대보다 더 큰 위험과 불확실성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청년사업가들에게도 그들만의 절박함이 있었다.

결국 그 절박함의 정도가 성공한 장사꾼이 되느냐, 6개월 안에 가게 문을 닫는 실패한 장사꾼이 되느냐를 결정짓는다.

 

 

“고 사장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갓 퇴직해서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마인드 자체도 문제라고 했다. 한마디로 준비 부족. 철저하게 준비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알량한 퇴직금을 모두 쏟아 붓고 프랜차이즈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다면 100이면 100 다 실패한다는 것이 고 사랑의 지론이다.” (p.99) 플라워카페, 고인규 사장

 

연예인들이 하는 사업장도 흑백이 가려지게 마련이다. 어느 중견 코미디언이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사업 실패담과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말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자신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가게에 한 달에 2,3번 갔었다. 그래서 망했다. 지금은 매일 가게에 출근한다. 손님들께 밝게 인사하고 신발 정리도 하고 계산도 한다. 그래서 성공했다.

장사꾼으로서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으흠~ 대기업 부장 출신인데 말이야~ 으흠’ 하고 뒷짐 지고 있으면 장사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친절하게 서비스 받으면 더 기분 좋고 음식도 더 맛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하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비롯돼요. 가난한 사람이 신세타령이나 하고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사이 성공하는 사람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p.65) 청년떡볶이, 이성연 대표

“하루 15시간 일할 수 있는 끈기를 갖고, 1만 개의 버거를 만들 수 있는 집중력을 키우고, 하루 4번 물청소를 할 정도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리고 항상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거지요. 그게 장사의 전부예요.” (p.253) 영철버거, 이영철 대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개선점을 찾으려 하고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장사를 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씨는 다른 TV프로그램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대학교 주변에서 싸게 햄버거를 팔면서도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써서 다른 프랜차이즈 햄버거 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장사꾼이다. 더군다나 학생들과 끈끈한 인간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어서 졸업 후에도 햄버거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가 고려대학교에서 강의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자신의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두 대학생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 대기가 빠듯해 힘들다는 대화였다. 그는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해 재정적 여유가 많지 않았지만 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2,000만원이라는 큰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매년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사업의 위기 순간에도 2,000만원 장학금 기부만큼은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는 그의 신념을 사람들이 알아준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백 명의 손님과 학생들이 격려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성공한 장사꾼 이영철씨 나름의 비법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좀 더 손님을 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장사가 아니라 더불어 잘 살고, 자신의 가게에 온 손님이 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개선점을 찾으려 하거나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뒤로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오백집왕족발의 강훈 사장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제 꿈은 여기서 20년 넘게 족발을 썰어온 이모님들에게 실버타운을 만들어드리고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드리는 것이에요.” (p.356)

“천일상사에 입사해 동대문에서 일을 시작할 때 그는 남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바로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다. 당시는 퇴직금은 고사하고 직원에게 제대로 밥만 먹여줘도 고마워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부터 정우현 회장은 직원을 그저 일을 시키는 아랫사람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한 것이다.” (p.329)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

 

또 하나 성공한 장사꾼들의 공통점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한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술자리에서 매번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상사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돈 벌기 위해 만난 사람이지만 그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대접 받고자 하는 것만큼 상대방을 대접하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장사꾼 혹은 성공한 직장 상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도 벌써 누군가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오백집왕족발의 강훈 사장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는 놀랐다. 너무나 직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 인터뷰용 발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인터뷰용 거짓 발언을 할 사장이 운영하는 가게라면 진작 망했을 것이다. 20년 넘게 족발을 썰어 온 이모님들께 실버타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사장의 꿈이다. 더군다나 그에 더해 행복한 노후를 보장하겠단다. 당장 달려가 족발을 썰고 싶다. 나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강훈 사장의 저 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단순히 생각해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족발을 써는 이모님들께 월급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도 챙겨줄 것이 뻔한데 열심히 일해주신 것이 고맙고 좀 더 마음 편하게 일하실 수 있도록 노후를 보장해 준다니... 차라리 인터뷰용 발언이라면 믿기 더 쉬울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직원들에게 잘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잘하는 사장과 상사 밑에는 사람들이 많다. 책에 등장하는 장사꾼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 중 하나는 직원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해도 그저 부려먹기만 하는 사장 밑에서는 오래 일하기 싫다. 일할 수 없다. 10년, 20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가족도 아니고 친인척도 아닌데 가족과 친인척보다 더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장사꾼들에게서는 공통점이 여러 가지 발견된다. 그 공통점들 모두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장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흔히 알고 있는 성공의 요소다.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그들에게 특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남다른 마음자세와 실천의지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만의 특별한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내 가게, 내 사업, 내 장사로 성공하고 싶다.’라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한 번쯤은 반드시 가져봤을 환상이다. 하지만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이들은 극소수다. 단순히 장사나 사업뿐만 아니라 꿈을 이루는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직장인들에게도 청년들에게도 청소년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있다. 이들의 장사 수완과 삶에 대한 자세가 100%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과 의지와 행동으로 이루어낸 각자의 성공은 또 누군가에게 삶의 의지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노하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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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지 기행 - 어머니의 품, 신들의 고향에 가다
조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한겨레 종교담당 기자로 알게 된 조현의 책을 처음 읽었다. 이 책「인도오지기행」은 여행 책이라기보다 철학책에 가깝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난 늘 히말라야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했다. 망망한 바다 위 무인도에서 맹수처럼 포효하는 파도 속에서 우는 나를 향해, 히말라야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책의 도입부 ‘작가의 말’에서부터 그의 철학적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시중에 나와 있는 흔하디흔한 여행서적이나 여행가이드서적, 유명인의 외국 체류기를 담은 서적들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대번 알 수 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 글쟁이도 아니고 어디 저기 작은 출판사에서라도 ‘책 출간 한 번 해보시겠어요?’라는 제안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아마추어 글쟁이지만 나는 매번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화염 같은 질투를 쉬이 걷어낼 수 없다. 그런 글을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그냥 감탄한다. 입을 벌린 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수록 빠져 든다. 그리고 시샘을 한다. 그리고 그 글과 나의 글을 비교하기에 이르면 절망하고 만다. 이런 패턴은 아주 익숙하고 분명하지만 매번 숙맥처럼 당하고는 구석에 틀어박혀 땅바닥에 알 수 없는 고백을 휘갈긴다.

더군다나 조현은 명상과 사색의 깊이가 남다른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담당을 하는 기자이지만 그의 언론사 초기는 정치부, 사회부를 두루 거친 베테랑이다. 아무리 명상과 사색을 오랫동안 했다 하더라도 뭔가 냄새를 맡으면 사냥개같이 파고드는 집요함과 뉴스가 될지 안 될지를 판단하는 동물적 감각쯤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 드러나는 그의 철학적 깊이와 사색의 범위는 내가 쉽게 어림 할 수 없는 정도로 보인다. 허투루 겸손한 척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일합(一合)만으로 나보다 월등한 상대임을 알아챈 후 지레 포기해버리는 장수와 같다고 할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했지만, 난 이렇게 겪고 나서야 믿는 타입니다. 가뿐해진 몸, 더불어 가벼워진 마음으로 타라난다의 눈빛을 응시했다.” (p.50)

“가려움의 원인은 누가 제공했는가, 내 두려움은 어디서 왔는가, 내 분노는 누가 만들었는가. 내 괴로움은 무엇 때문에 개미처럼 내게 모여들었는가.” (p.79)

 

그의 글과 여행은 이런 식이다. 어디를 갔는데 무엇을 봤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여행 정보가 있으니 이렇게 하시오. 라는 홍보용 여행이 아니다. 가정도 있고 인정받는 직장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로 생활하는 한 명의 사회인이었다. 한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도로 날아갔다. 인생이 수많은 선택의 하나하나로 채워지듯이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없는 것도 인생이다. 그래서 공평하고 스릴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여행에서 만나는 대상은(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명상과 사색의 관계로 이어진다. 단순히 인도의 오지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종교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돌아 선 후 얻게 되는 상실의 반작용을 충분하게 되짚고 곱씹는 여행이다. 애써서 찾아내고 온갖 정보를 뒤져낸 후 보석 같은 자신만의 정보와 노하우로 치장된 여행이 아니다. 억지로 빨리 가고 편하게 가고 가장 최적화된 상황을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며칠씩 걸리는 기차 여행의 좌석도 주로 외국인이나 부자들이 타는 칸이 아니라 진짜 인도인들이 타는 칸을 찾아 다녔다. 숙소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가장 싼 숙소를 일부러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그의 표현대로 여행객이 가장 없는 숙소를 찾아다니는 방식으로 여행 했다.

 

 

“‘인도에선 인도식으로’ 그것은 여행 출발 때부터 내 다짐이었다. 인도인들처럼 타고, 인도인들처럼 먹고, 인도인들처럼 잘 생각이었다.” (p.15)

 

사실 여행을 하는 현지인들처럼 타고 먹고 자려면 단기간의 여행으로는 어림도 없다. 유명한 여행가이드서적의 저자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려면 1-2개월은 걸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을 돌이켜보면, 1-2주 정도의 여행으로는 여행가이드 책에 나와 있는 루트를 훑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숙소에서 만나는 여행객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전부일 수도 있다.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꿈이다. 앞서 말한 여행가이드 작가도 인도를 주로 여행한 사람인데 장기간 여행을 하는 인도의 한국여행객 중 대다수는 학교 교사와 대학생들이라고 했다. 방학 중에 몇 개월을 여행할 수 있는 직업이 교사 말고 뭐가 있나. 그리고 인도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 혹은 전역 후 복학하기 전 뭔가 꿈이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로 날아 온 복학생 등이 많다고 했다. 여행은 또한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교사가 아닌 이상 수개월을 통째로 여행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의 작가인 조현씨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처자식과 가족들이 눈에 밟혀 그저 여행 계획만 세우다 말 것이다.

나의 다른 리뷰나 포스트에서 이미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는 다행히 현지인을 소개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연스럽게 현지인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현지인을 사귀고 그들의 삶을 깊숙이 체험해 보는 것은 불가능 하다.

반대로 아무리 오래 현지 여행을 한다고 해도 애초부터 저렇게 마음먹지 않는 이상 편안한 여행을 찾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유 있게 돈을 가져갔다면 굳이 조현씨처럼 어렵게 힘들게 여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숙소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이동수단을 타고 다닌다면 굳이 현지인을 사귀지 않아도, 굳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일이다.

여행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난 이 점에서 너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과 마시는 차 한 잔의 맛. 그것은 맛을 넘어서는 멋이다.” (p.136)

“때때로 외롭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늘 그렇듯 쑥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원과 신상에서 나는 신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새벽마다 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크 소리를 듣고 있었다.” (p.231)

 

작가의 말대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것도 여행에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많지 않은 여행에서 만난 현지의 좋은 사람들과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여행가이드 서적이나 여행 관련 블로그나 카페를 들여다보면 어느 국가, 어느 도시의 어느 식당에는 팁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불친절하며 어느 도시 어느 골목은 여행객에게 사기를 치거나 범죄의 대상으로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등의 경고를 하는 내용이 많다. 신혼여행으로 간 프라하를 대상으로 한 여행가이드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식당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팁을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그런데 내가 갔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식당 직원들은 너무 친절하고 계산서 위에 올려진 팁을 보고 땡큐로만 답했다. 다른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 책의 저자가 가보지도 않고 그런 정보를 썼을 리는 없을 테고 그 사람이 왔을 때만 불친절하고 무례했는지, 아니면 내가 갔을 때만 친절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편견이나 선입관을 심어서는 안 된다. 뭐, 워낙 여행가이드 책자도 많이 나오고 과거에 비해 해외여행 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커진 상태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디테일하거나 더 싸거나 더 재미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여행가이드 책을 구입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책을 보는 독자들이 중요하다. 인도 여행을 앞두고 인도 여행가이드 서적을 읽는다고 치자. 그 책에 실린 정보와 그 책을 쓴 저자의 이런저런 코멘트를 두고 전적으로 믿는 것도 아니지만 아예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여행은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니까.

이 책에서는 그런 독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월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가치판단에 맡긴다. 그래서 더욱 객관성이 담보된다.

 

 

“자이나교들은 철저한 불살생 계율 때문에 군인이나 도살업, 농부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상업에 종사했는데 정직과 신용으로 큰 부를 이뤘다. 인도 내에서는 거의 망했지만 세계 종교가 된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는 세계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인도에 400만 명의 신도가 남아 있는데, 이들은 엄청난 부를 쥐고 있어 인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다.” (p.180)

 

자이나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도라 하면 당연히 힌두국가이고 힌두교가 국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힌두인이 절대다수로 많고 극우힌두정당이 보수 정치세력과 군벌, 정계와 유착해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자이나교 신도들도 인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이나교는 불살생 규율을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다. 인도 여행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종종 나오는 나체의 수도사들이 자이나교 성직자들이다. 벌레도 밟지 않기 위해서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빗자루로 땅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철저한 계율 때문에 대부분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인도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이나교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각 종교의 사원이나 신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거나 교리를 소개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거나 그 종교의 수도사 혹은 성직자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인도 독립을 위한 협력자이자 최대 맞수이기도 했다. 간디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불평등을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민족 독립을 향한 단결을 위해 불가촉천민의 힌두교 개종을 비난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노예 해방, 인간 해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과감히 개종을 선택했던 것이다.” (p.189)

 

간디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자 암베드카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도 내에서는 간디만큼이나 국가적 영웅으로 추대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간디와는 인도 독립을 위해 함께 노력한 동지이자 최대 라이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도의 발전과 성숙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카스트제도를 혁파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 바로 암베드카르라고 한다. 간디도 물론 그것을 위해 노력했지만 암베드카르에 비해 수동적인 것에 불과했다.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상층에 있는 힌두 기득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운동 했지만 도저히 깰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차라리 아예 힌두 교리에 기반을 둔 카스트를 부정할 수 있는 개종을 권면했다. 물론, 그가 먼저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면서 실례를 보였다. 그를 따라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를 버리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인도의 기득권을 가진 카스트 상층의 힌두인 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카스트가 인도의 역사적 전통의 잔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힌두교 교리에 기반을 두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카스트를 지켜 영원히 군림하고자 하는 기득권 힌두교인들과 힌두교를 버림으로써 아예 카스트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영과 육을 속박해 온 족쇄를 탈출하려는 가장 하층의 불가촉천민들이 공존하는 것이 인도의 진짜 모습이다.

 

이 책은 종교 안내서이기도 하고 여행서이기도 하다. 인도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였다. 암베드카르와 자이나교처럼 전혀 알고 있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조현이라는 글쟁이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그의 다른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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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안세홍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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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 친구에게 직·간접적으로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 「겹겹」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분명히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그 친구와 함께 아는 분 어머니의 장례식에 갔다. 밤늦은 시간까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가신 분의 친척으로 보이는 분들이 밤12시가 다 되어서 우르르 빈소로 들어왔다. 문상을 하기도 전에 엎어져 우는 분들도 계시고 자지러지는 분들도 계셨다. 조용하던 빈소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들 빈소에 3일 동안 있다 보면 별의별 일 다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도 찾아와 보지도 않던 가족들, 친척들이 제일 크게 운다.”

“죄송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뭐.”

“아니, 뭐 떨어질 콩고물 없나 싶어서 그런 거다.”

“.....”

“멀리 사는 사람들 아니다. 할머니 가까이 살면서도 생전 신경도 안 쓰다가 우리 같은 단체나 지자체, 정부 같은 데서 보조금 나오고 후원 나오고 그런 거 처리하려고 그러는 거다. 그런 경우 많다.”

 

시민단체에서 5년 넘게 일해오고 있는 친구의 말이니 그런 사정은 알 길이 없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들은 이제껏 우리가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 지어서 올 겨울에 눈보라를 안 맞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미안하다며 입으로만 도운다고 하지 말고 제발 우리 한 좀 풀어 달라.”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셔서 한 말이다. 국정감사 같은 쇼를 펼쳐 놓고 할머니들 참고인으로 불러 어차피 큰 대안이나 해결책 제시도 못할 국회의원들 앞에서 증언을 하게 한 것은 단순히 언론에 보이기 위한 면피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진보진영이든 똑같다. 적어도 직접 해당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들어본 바는 그렇다. 굳이 그렇게 직접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듣지 않더라도 돌아가는 모양만 보면 알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 반짝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언론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할머니들 문제가 부각되거나 연예인이 할머니들 관련된 문제로 이슈를 일으킬 때만 반짝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몇 개월 전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비스트의 양요섭군의 팔찌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 팔찌는 친구가 일하는 시민단체에서 할머니들을 후원하기 위해 만든 팔찌였다. 나와 그 친구의 주변 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도 양요섭군은 위안부 할머니나 그 팔찌의 의미에 대한 언급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팬들이 그 팔찌가 잡힌 화면을 캡처해 어떤 팔찌인지 알아내고 급기야 팔찌를 판매하는 <희움>이라는 사이트를 다운시키기에 이르렀다. 한 개에 2000원 하는 팔찌가 금세 품절되고 주문량, 문의량이 폭주해서 연일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 단체에서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역사관 건립을 위한 재정 마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5년 동안 일했는데 제일 바쁘다며 앓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죽어라 캠페인 하고 시위 하고 해도 아무도 관심 없다가 요섭이가 한 번 팔찌 차고 나오니까 한 방이다~”

 

활동가들과 단체에 관계된 사람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지울 길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설득하고 홍보하고 알려도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나와 다른 친구들, 그 친구의 지인들 정도에게 알리고 팔찌를 홍보하고 팔았는데, 인기 있는 연예인 덕분에 물량이 동나고 몇날 며칠을 야근을 해야 하는 촌극을 겪었다.

나쁘다고 할 수도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래 죽기 전에 한복 입고 사진 박히는 게 소원인데, 한 장 박아주소.” (p.51), 김순옥 할머니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쓴 안세홍씨 같은 분은 더 알려져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황과 현실을 가까이서 지켜본 후 그는 ‘내가 할머니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대단한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평소부터 관심 있고 잘 하는 분야인 사진을 가지고 할머니들을 돕고자 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찾아뵈면서 사진을 찍고 돌아온 후에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고 또 다시 몇 년 후 할머니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는 일을 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중국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을 찾아 다녔다. 그런 작업을 해나가면서 어떠한 정부나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더 슬프다. 발품을 팔고 지인 및 알지도 모를 사람들을 총동원 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 책이 출간되고 할머니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노력 때문이다.

 

 

“우한에 사는 할머니 대부분은 국적이 북조선이다. 북조선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할머니들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혜택도 주지 않고 있다. 내가 중국에 할머니를 찾아다닐 때만 해도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북조선이든 아무도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 또다시 할머니들은 버림받고 있었다.” (p.96)

 

아무래도 중국과 북한은 오래전부터 우방국이었기 때문에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라면, 북한의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하는 시기와 맞물리는 것 같은데 아마 내부적인 사정으로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이 끊긴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북한이든 아무도 할머니들을 보호하고 있지 않는 상태다. 보호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보호하고 있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또다시 할머니들은 버림받고 있다는 것.

 

 

“하루라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어.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지도를 봐. 마당에……. 대차나무가 하나 있었어.” (p.102), 박대임 할머니

“부모와 가족이 없는 조선에 남아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다시 중국으로 갔다. 톈진과 베이징에서는 군인을 상대로 춤을 같이 추면 돈을 받는 ‘춤방’에 다녔다.” (p.71), 배삼엽 할머니

 

이제는 조선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워낙 어린 시절 끌려왔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들리던 일본말과 중국말로 인해 조선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꿈속에서 만은 조선 땅이 그려지고 고향 동네가 그려진다고 하신다.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나마 한국에 친척이 있고 연락이 닿은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말을 잊어버렸으니 친척들과 말이 통하지 않고 평생을 중국 땅에서 살았으니 음식도 맞지 않고 차라리 살던 데가 편하다고 하셔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분들도 계신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랜 시간 할머니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 우리들은 할머니들을 방치시켰다. 정부 차원에서 뭔가 대단한 대책이나 정책이 있을 리 없다.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렇게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겠지. 할머니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친구가 일하는 사무실에 가끔 가보면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령이신 할머니들이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을까 싶다. 단순히 할머니들이 없으면 이런 소리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이미 역사다. 기록되어 있고 직접 피해를 당한 증언이 있고 증거가 있다. 힘을 가진 자들과 정부는 관심이 없지만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계속해서 그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래야 한다.

할머니들 얼굴에 겹겹이 패인 주름살만큼이나 그 고통의 참담함과 한의 시간을 우리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할머니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리는 것이다.

 

남자 연예인이 차고 있는 팔찌를 보고 팬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할머니 후원 팔찌를 구매한 어린 아이들도 그 팔찌를 사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오고 팔찌를 받아 차고 다니면서 한번은 할머니들을 생각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가 뭐지? 무슨 말이지? 왜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할머니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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