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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안세홍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8월
평점 :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 친구에게 직·간접적으로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 「겹겹」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분명히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그 친구와 함께 아는 분 어머니의 장례식에 갔다. 밤늦은 시간까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가신 분의 친척으로 보이는 분들이 밤12시가 다 되어서 우르르 빈소로 들어왔다. 문상을 하기도 전에 엎어져 우는 분들도 계시고 자지러지는 분들도 계셨다. 조용하던 빈소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들 빈소에 3일 동안 있다 보면 별의별 일 다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도 찾아와 보지도 않던 가족들, 친척들이 제일 크게 운다.”
“죄송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뭐.”
“아니, 뭐 떨어질 콩고물 없나 싶어서 그런 거다.”
“.....”
“멀리 사는 사람들 아니다. 할머니 가까이 살면서도 생전 신경도 안 쓰다가 우리 같은 단체나 지자체, 정부 같은 데서 보조금 나오고 후원 나오고 그런 거 처리하려고 그러는 거다. 그런 경우 많다.”
시민단체에서 5년 넘게 일해오고 있는 친구의 말이니 그런 사정은 알 길이 없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들은 이제껏 우리가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 지어서 올 겨울에 눈보라를 안 맞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미안하다며 입으로만 도운다고 하지 말고 제발 우리 한 좀 풀어 달라.”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셔서 한 말이다. 국정감사 같은 쇼를 펼쳐 놓고 할머니들 참고인으로 불러 어차피 큰 대안이나 해결책 제시도 못할 국회의원들 앞에서 증언을 하게 한 것은 단순히 언론에 보이기 위한 면피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진보진영이든 똑같다. 적어도 직접 해당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들어본 바는 그렇다. 굳이 그렇게 직접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얘기를 듣지 않더라도 돌아가는 모양만 보면 알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 반짝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언론을 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할머니들 문제가 부각되거나 연예인이 할머니들 관련된 문제로 이슈를 일으킬 때만 반짝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몇 개월 전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비스트의 양요섭군의 팔찌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 팔찌는 친구가 일하는 시민단체에서 할머니들을 후원하기 위해 만든 팔찌였다. 나와 그 친구의 주변 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도 양요섭군은 위안부 할머니나 그 팔찌의 의미에 대한 언급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팬들이 그 팔찌가 잡힌 화면을 캡처해 어떤 팔찌인지 알아내고 급기야 팔찌를 판매하는 <희움>이라는 사이트를 다운시키기에 이르렀다. 한 개에 2000원 하는 팔찌가 금세 품절되고 주문량, 문의량이 폭주해서 연일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 단체에서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역사관 건립을 위한 재정 마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5년 동안 일했는데 제일 바쁘다며 앓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죽어라 캠페인 하고 시위 하고 해도 아무도 관심 없다가 요섭이가 한 번 팔찌 차고 나오니까 한 방이다~”
활동가들과 단체에 관계된 사람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지울 길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설득하고 홍보하고 알려도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나와 다른 친구들, 그 친구의 지인들 정도에게 알리고 팔찌를 홍보하고 팔았는데, 인기 있는 연예인 덕분에 물량이 동나고 몇날 며칠을 야근을 해야 하는 촌극을 겪었다.
나쁘다고 할 수도 좋다고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래 죽기 전에 한복 입고 사진 박히는 게 소원인데, 한 장 박아주소.” (p.51), 김순옥 할머니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쓴 안세홍씨 같은 분은 더 알려져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황과 현실을 가까이서 지켜본 후 그는 ‘내가 할머니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대단한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평소부터 관심 있고 잘 하는 분야인 사진을 가지고 할머니들을 돕고자 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찾아뵈면서 사진을 찍고 돌아온 후에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고 또 다시 몇 년 후 할머니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는 일을 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중국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을 찾아 다녔다. 그런 작업을 해나가면서 어떠한 정부나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더 슬프다. 발품을 팔고 지인 및 알지도 모를 사람들을 총동원 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 책이 출간되고 할머니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노력 때문이다.
“우한에 사는 할머니 대부분은 국적이 북조선이다. 북조선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할머니들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혜택도 주지 않고 있다. 내가 중국에 할머니를 찾아다닐 때만 해도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북조선이든 아무도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 또다시 할머니들은 버림받고 있었다.” (p.96)
아무래도 중국과 북한은 오래전부터 우방국이었기 때문에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라면, 북한의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하는 시기와 맞물리는 것 같은데 아마 내부적인 사정으로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이 끊긴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북한이든 아무도 할머니들을 보호하고 있지 않는 상태다. 보호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보호하고 있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또다시 할머니들은 버림받고 있다는 것.
“하루라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어.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지도를 봐. 마당에……. 대차나무가 하나 있었어.” (p.102), 박대임 할머니
“부모와 가족이 없는 조선에 남아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다시 중국으로 갔다. 톈진과 베이징에서는 군인을 상대로 춤을 같이 추면 돈을 받는 ‘춤방’에 다녔다.” (p.71), 배삼엽 할머니
이제는 조선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워낙 어린 시절 끌려왔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들리던 일본말과 중국말로 인해 조선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꿈속에서 만은 조선 땅이 그려지고 고향 동네가 그려진다고 하신다.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나마 한국에 친척이 있고 연락이 닿은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말을 잊어버렸으니 친척들과 말이 통하지 않고 평생을 중국 땅에서 살았으니 음식도 맞지 않고 차라리 살던 데가 편하다고 하셔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분들도 계신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랜 시간 할머니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 우리들은 할머니들을 방치시켰다. 정부 차원에서 뭔가 대단한 대책이나 정책이 있을 리 없다.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렇게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겠지. 할머니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친구가 일하는 사무실에 가끔 가보면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령이신 할머니들이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을까 싶다. 단순히 할머니들이 없으면 이런 소리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이미 역사다. 기록되어 있고 직접 피해를 당한 증언이 있고 증거가 있다. 힘을 가진 자들과 정부는 관심이 없지만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계속해서 그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래야 한다.
할머니들 얼굴에 겹겹이 패인 주름살만큼이나 그 고통의 참담함과 한의 시간을 우리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할머니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리는 것이다.
남자 연예인이 차고 있는 팔찌를 보고 팬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할머니 후원 팔찌를 구매한 어린 아이들도 그 팔찌를 사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오고 팔찌를 받아 차고 다니면서 한번은 할머니들을 생각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가 뭐지? 무슨 말이지? 왜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할머니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