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오지 기행 - 어머니의 품, 신들의 고향에 가다
조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한겨레 종교담당 기자로 알게 된 조현의 책을 처음 읽었다. 이 책「인도오지기행」은 여행 책이라기보다 철학책에 가깝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난 늘 히말라야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했다. 망망한 바다 위 무인도에서 맹수처럼 포효하는 파도 속에서 우는 나를 향해, 히말라야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책의 도입부 ‘작가의 말’에서부터 그의 철학적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시중에 나와 있는 흔하디흔한 여행서적이나 여행가이드서적, 유명인의 외국 체류기를 담은 서적들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대번 알 수 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 글쟁이도 아니고 어디 저기 작은 출판사에서라도 ‘책 출간 한 번 해보시겠어요?’라는 제안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아마추어 글쟁이지만 나는 매번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화염 같은 질투를 쉬이 걷어낼 수 없다. 그런 글을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그냥 감탄한다. 입을 벌린 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수록 빠져 든다. 그리고 시샘을 한다. 그리고 그 글과 나의 글을 비교하기에 이르면 절망하고 만다. 이런 패턴은 아주 익숙하고 분명하지만 매번 숙맥처럼 당하고는 구석에 틀어박혀 땅바닥에 알 수 없는 고백을 휘갈긴다.

더군다나 조현은 명상과 사색의 깊이가 남다른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담당을 하는 기자이지만 그의 언론사 초기는 정치부, 사회부를 두루 거친 베테랑이다. 아무리 명상과 사색을 오랫동안 했다 하더라도 뭔가 냄새를 맡으면 사냥개같이 파고드는 집요함과 뉴스가 될지 안 될지를 판단하는 동물적 감각쯤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 드러나는 그의 철학적 깊이와 사색의 범위는 내가 쉽게 어림 할 수 없는 정도로 보인다. 허투루 겸손한 척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일합(一合)만으로 나보다 월등한 상대임을 알아챈 후 지레 포기해버리는 장수와 같다고 할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했지만, 난 이렇게 겪고 나서야 믿는 타입니다. 가뿐해진 몸, 더불어 가벼워진 마음으로 타라난다의 눈빛을 응시했다.” (p.50)

“가려움의 원인은 누가 제공했는가, 내 두려움은 어디서 왔는가, 내 분노는 누가 만들었는가. 내 괴로움은 무엇 때문에 개미처럼 내게 모여들었는가.” (p.79)

 

그의 글과 여행은 이런 식이다. 어디를 갔는데 무엇을 봤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여행 정보가 있으니 이렇게 하시오. 라는 홍보용 여행이 아니다. 가정도 있고 인정받는 직장에서 알아주는 전문가로 생활하는 한 명의 사회인이었다. 한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도로 날아갔다. 인생이 수많은 선택의 하나하나로 채워지듯이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없는 것도 인생이다. 그래서 공평하고 스릴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여행에서 만나는 대상은(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명상과 사색의 관계로 이어진다. 단순히 인도의 오지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종교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돌아 선 후 얻게 되는 상실의 반작용을 충분하게 되짚고 곱씹는 여행이다. 애써서 찾아내고 온갖 정보를 뒤져낸 후 보석 같은 자신만의 정보와 노하우로 치장된 여행이 아니다. 억지로 빨리 가고 편하게 가고 가장 최적화된 상황을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며칠씩 걸리는 기차 여행의 좌석도 주로 외국인이나 부자들이 타는 칸이 아니라 진짜 인도인들이 타는 칸을 찾아 다녔다. 숙소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가장 싼 숙소를 일부러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그의 표현대로 여행객이 가장 없는 숙소를 찾아다니는 방식으로 여행 했다.

 

 

“‘인도에선 인도식으로’ 그것은 여행 출발 때부터 내 다짐이었다. 인도인들처럼 타고, 인도인들처럼 먹고, 인도인들처럼 잘 생각이었다.” (p.15)

 

사실 여행을 하는 현지인들처럼 타고 먹고 자려면 단기간의 여행으로는 어림도 없다. 유명한 여행가이드서적의 저자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려면 1-2개월은 걸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을 돌이켜보면, 1-2주 정도의 여행으로는 여행가이드 책에 나와 있는 루트를 훑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숙소에서 만나는 여행객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전부일 수도 있다.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꿈이다. 앞서 말한 여행가이드 작가도 인도를 주로 여행한 사람인데 장기간 여행을 하는 인도의 한국여행객 중 대다수는 학교 교사와 대학생들이라고 했다. 방학 중에 몇 개월을 여행할 수 있는 직업이 교사 말고 뭐가 있나. 그리고 인도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 혹은 전역 후 복학하기 전 뭔가 꿈이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로 날아 온 복학생 등이 많다고 했다. 여행은 또한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교사가 아닌 이상 수개월을 통째로 여행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의 작가인 조현씨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비행기에 몸을 실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처자식과 가족들이 눈에 밟혀 그저 여행 계획만 세우다 말 것이다.

나의 다른 리뷰나 포스트에서 이미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는 다행히 현지인을 소개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연스럽게 현지인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현지인을 사귀고 그들의 삶을 깊숙이 체험해 보는 것은 불가능 하다.

반대로 아무리 오래 현지 여행을 한다고 해도 애초부터 저렇게 마음먹지 않는 이상 편안한 여행을 찾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유 있게 돈을 가져갔다면 굳이 조현씨처럼 어렵게 힘들게 여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숙소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이동수단을 타고 다닌다면 굳이 현지인을 사귀지 않아도, 굳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일이다.

여행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난 이 점에서 너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과 마시는 차 한 잔의 맛. 그것은 맛을 넘어서는 멋이다.” (p.136)

“때때로 외롭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늘 그렇듯 쑥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원과 신상에서 나는 신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새벽마다 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크 소리를 듣고 있었다.” (p.231)

 

작가의 말대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것도 여행에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많지 않은 여행에서 만난 현지의 좋은 사람들과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여행가이드 서적이나 여행 관련 블로그나 카페를 들여다보면 어느 국가, 어느 도시의 어느 식당에는 팁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불친절하며 어느 도시 어느 골목은 여행객에게 사기를 치거나 범죄의 대상으로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등의 경고를 하는 내용이 많다. 신혼여행으로 간 프라하를 대상으로 한 여행가이드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식당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팁을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그런데 내가 갔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식당 직원들은 너무 친절하고 계산서 위에 올려진 팁을 보고 땡큐로만 답했다. 다른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 책의 저자가 가보지도 않고 그런 정보를 썼을 리는 없을 테고 그 사람이 왔을 때만 불친절하고 무례했는지, 아니면 내가 갔을 때만 친절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편견이나 선입관을 심어서는 안 된다. 뭐, 워낙 여행가이드 책자도 많이 나오고 과거에 비해 해외여행 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커진 상태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디테일하거나 더 싸거나 더 재미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여행가이드 책을 구입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책을 보는 독자들이 중요하다. 인도 여행을 앞두고 인도 여행가이드 서적을 읽는다고 치자. 그 책에 실린 정보와 그 책을 쓴 저자의 이런저런 코멘트를 두고 전적으로 믿는 것도 아니지만 아예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여행은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니까.

이 책에서는 그런 독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월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가치판단에 맡긴다. 그래서 더욱 객관성이 담보된다.

 

 

“자이나교들은 철저한 불살생 계율 때문에 군인이나 도살업, 농부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상업에 종사했는데 정직과 신용으로 큰 부를 이뤘다. 인도 내에서는 거의 망했지만 세계 종교가 된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는 세계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인도에 400만 명의 신도가 남아 있는데, 이들은 엄청난 부를 쥐고 있어 인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다.” (p.180)

 

자이나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도라 하면 당연히 힌두국가이고 힌두교가 국교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힌두인이 절대다수로 많고 극우힌두정당이 보수 정치세력과 군벌, 정계와 유착해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자이나교 신도들도 인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이나교는 불살생 규율을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다. 인도 여행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 종종 나오는 나체의 수도사들이 자이나교 성직자들이다. 벌레도 밟지 않기 위해서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빗자루로 땅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철저한 계율 때문에 대부분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인도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이나교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각 종교의 사원이나 신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거나 교리를 소개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거나 그 종교의 수도사 혹은 성직자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인도 독립을 위한 협력자이자 최대 맞수이기도 했다. 간디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불평등을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민족 독립을 향한 단결을 위해 불가촉천민의 힌두교 개종을 비난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노예 해방, 인간 해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과감히 개종을 선택했던 것이다.” (p.189)

 

간디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자 암베드카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도 내에서는 간디만큼이나 국가적 영웅으로 추대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간디와는 인도 독립을 위해 함께 노력한 동지이자 최대 라이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도의 발전과 성숙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카스트제도를 혁파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 바로 암베드카르라고 한다. 간디도 물론 그것을 위해 노력했지만 암베드카르에 비해 수동적인 것에 불과했다.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상층에 있는 힌두 기득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운동 했지만 도저히 깰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차라리 아예 힌두 교리에 기반을 둔 카스트를 부정할 수 있는 개종을 권면했다. 물론, 그가 먼저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면서 실례를 보였다. 그를 따라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를 버리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인도의 기득권을 가진 카스트 상층의 힌두인 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카스트가 인도의 역사적 전통의 잔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힌두교 교리에 기반을 두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카스트를 지켜 영원히 군림하고자 하는 기득권 힌두교인들과 힌두교를 버림으로써 아예 카스트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영과 육을 속박해 온 족쇄를 탈출하려는 가장 하층의 불가촉천민들이 공존하는 것이 인도의 진짜 모습이다.

 

이 책은 종교 안내서이기도 하고 여행서이기도 하다. 인도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였다. 암베드카르와 자이나교처럼 전혀 알고 있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조현이라는 글쟁이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그의 다른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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