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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등대 -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이미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른 자크 아탈리는 잘난 척을 해도 충분한 사람이다. 그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문 분야에서는 일류 사상가로 평가 받고 있다. 잘난 척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직장 동료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의 상당수는 내자랑인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 허풍이 첨가되기도 하고 과장이 추가되기도 한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군대를 다녀 온 남자들의 내자랑질은 피라미를 잡아도 월척 참붕어를 잡았다고 하는 낚시꾼들의 내자랑질 만큼이나 대단들 하다. 프랑스 사람인 자크 아탈리의 책이 번역되어 이역만리 한국에서 내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랑질과 잘난 척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책 「자크 아탈리, 등대」는 그가 인생 항해의 등대로 삼은 23인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등대는 쉽게 쓸 수 없는 표현이다. 군 생활을 해안소초에서 했다. 나는 소초장이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진 순찰로를 걸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등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산길이라 캄캄한 곳이 더 많았다. 순찰로를 따라 병사들이 해안경계를 하는 초소가 있고 혹시나 나타날지도 모를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감시하기 위해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는 초소가 있었다. 매일 밤 근무마다 탐조등을 일정 시간 동안 켜게 되는데 전원을 켜고 시동을 걸면 잠시 후 암흑천지의 바다를 향해 밝은 빛이 순식간에 발사된다. 조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옆에서 그 탐조등을 운용하면서도 눈이 부실 정도다. 암흑천지인 밤바다에 한줄기 빛이 비춰지면 그 탐조등 빛 아래로 환하게 새 세상이 펼쳐진다. 암흑 속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들 말이다. 등대도 동일하다. 평상시나 비상시에 항구를 찾아 접안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등대다. 평상시도 그렇지만 비상시에 저 멀리 육지 근처에서 보이는 등대 불빛은 반가움 이상이다. 비록 한 번도 배를 타고 등대불빛을 따라 항구에 접안해 본 적은 없지만 군 시절 경험을 돌이켜 보며 비슷한 감흥을 담아 본다.
일단 저자 자신이 책에 소개된 23명을 등대, 빛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에 동의하고 그 사상을 따르고 있다. 자기 것으로 챙겨 버린다 해도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크 아탈리는 겸손한 사람이다.
“대단한 지식을 가진 농민들, 힘들게 노력하는 노동자들, 청렴한 공무원들, 천재적인 장인들, 열정적인 초등학교 교사들, 우리의 자유와 안녕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잊힌 영웅들” (p.7)
더 나아가서 그는 대단한 사람들을 찾는 여정이 아님을 전제한다. 물론, 책에 실린 23명 중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위인전에서도 역사서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TV에서 종종 기적과 같은 선행이나 공공의 행복을 위해 사적인 욕망을 누르고 헌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존경과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자크 아탈리는 그런 일상에서 일탈된 이상의 인물들에게만 현혹되지 않을 것을 주문한다. 바로 우리네 삶 지근거리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웃과 노동자들, 공무원들, 교사들, 그리고 이름도 없이 유명세도 전혀 없이 헌신하며 살아가는 많은 영웅들을 기억할 것을 이야기 한다. 그가 비록 이 책에서 소개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신의 책보다 바로 주위의 영웅들을 지켜내고 발견할 것을 강조 한다.
이 책은 <공자>에서부터 아프리카의 현자 <함파테 바>에 이르는 23명의 등대들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독일의 <발터 라테나우>였다.
“그 인물이 끼친 마력이 그가 죽고 난 뒤에도 며칠 지속되었으며, 그 며칠 동안 내가 결코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 만연했는데, 그것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분위기였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강요나 위협을 받지 않은 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 후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거리거리를 돌아다녔다. 끝도 없는 행렬들이 침울하게 묵묵히 뭔가 요구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p.574)
<발터 라테나우> 는 전후 독일의 재건·외무장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경제학자, 기업가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정비한 인물이다. 당시 강대했던 연합국들 속에서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더불어 전후 독일의 체제를 일신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한 데 모으는데 성공했다.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의 실제 정치에 뛰어 들어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나치가 스멀스멀 힘을 집중하고 있던 때라 국수주의자들과 우익의 위협이 대단했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보다 조국 독일의 근대화와 독일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집무실로 향하던 중 우익 광신자에게 암살되고 마는데, 그가 힘든 민족적, 정치적 경계에서도 조국과 독일 국민을 위해 노력해 준 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았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사람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허망하게 죽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 그가 생전에 행한 일들에 대한 칭송과 존경을 담은 행동을 보여 준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오버랩 되었다. 노대통령이 서거한 후 500백만 명의 사람들이 조문했고 그를 추모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 노제를 지냈다. 어떤 형태로든 노란색을 상징하는 것을 가지고 그를 떠나보냈다. 비록 실제 현장에는 가지 못했고 TV를 통해서 노제를 지켜봤는데, <발터 라테나우>를 떠나보내던 독일 국민들의 그 모습과 유사했었다고 생각된다.
이후 독일은 나치가 집권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이 된 것이다.
노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씨와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의 시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독일과 같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는 않았으면 싶다.
또 흥미로웠던 인물은 <이븐 루슈드>이다.
“신이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하면서 겪는 즐거움이, 우리의 지성이 신의 고유한 본질을 파악하는 순간에, 즉 지성이 자신의 힘을 포기하는 순간에, 우리 자신이 발견케 되는 즐거움과 같다면, 우리를 위해서는 짧은 순간 존재하는 것이 신을 위해서는 영원히 존재한다.” (p.189)
<이븐 루슈드>는 13세기 이슬람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다. 이슬람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철학자로 평가 되는 사람이다. 의학과 철학, 신학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슬람교인이고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가 그의 신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놀라웠다. 알 듯 모를 듯한 저 문장에서 괜한 위안을 얻는다. 정확하게 어떤 느낌인지, 어떤 위안인지 설명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반복해 읽을수록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깨달음임은 분명한 것 같다. 나도 종교인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기독교인 중에서는 큰 고민 없이 그저 교단에서 주입하는 도그마에 빠져 애면글면 복과 은혜만 구걸하고 강요하는 신자가 많다. 나도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면 그런 신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어른이 되어 제대로 된 기독교 신자가 되었던 터라 늘 고민을 안고 산다. ‘내가 믿는 신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이 세상은 왜 이런 것일까? 천국은 있는 것일까? 구원은 무엇인가?’ 등등. 수도 없는 고민과 마주한다. 때로는 불일 듯 끓어오르는 깨달음에 환희를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비관과 절망에 지쳐 잠도 들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이제 조금, 아주 조금 내 신앙에 대한 나름의 정립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멀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븐 루슈드>의 깨달음은 신을 마주한 단독자로서의 ‘나’가 무엇인지, 신을 믿는 나를 마주한 절대자로서의 ‘신’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깨달을 수 있는 혹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700년 전 사람의 글에서 위안을 얻은 것인지 모른다.
다음은 아프리카의 현자 <함파테 바> 이다.
“함파테는 독립을 위해 시작되는 전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평생토록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면서 아프리카의 정체성의 보물을 보호하려 애를 쓴다.” (p.724)
그는 아프리카를 사랑한 사람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과 그 흑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 바람과 흙, 물과 공기 모두를 사랑한 사람이다.
아프리카의 근대는 상처와 아픔의 역사다. 평화롭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총과 칼 아래 나뉘어 졌다. 종족과 종교는 화합이 아닌 갈등의 씨가 되었다. 자로 그은 듯 일직선으로 국경이 갈라져 제국주의 국가의 밥이 되었다. 수백, 수천 년을 아름답고 긴 두 다리와 두 팔로 자유롭게 뛰어 다닌 아프리카 흑인들은 갑자기 노예가 되었다. 얼굴이 하얀 사람들이 주인이 되었다.
<함파테 바>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의 흑인, 그 흑인들과 함께 사는 모든 생명체를 노래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그의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아프리카 흑인의 특성 상 구술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기록하고 남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찾아다니고 쫓아다니며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알렸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문화와 역사다. 당연한 듯 소홀히 하면 있는 줄도 모르게 된다. 하지만 막상 없어져 버리면 쉽게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망가져 버린 역사와 문화를 손쉽게 재생할 수 있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함파테 바>는 종족간의 분쟁과 종교 간의 전쟁도 강대국들의 수탈도 그의 신념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노인이 죽으면, 그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린 것이다.” (p.709)
그래서 이런 명언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한 노인이 도서관 하나의 지혜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볍게 여기면 한 없이 가벼운 한 존재의 소멸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생살을 잘라내는 고통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사투리 생각이 난다. 나는 경북 포항이 고향인데 대구 사투리와 포항 사투리와 다르다는 것을 대학에 와서 처음 알았다. 더 놀라웠던 것은 대학에서 만난 안동, 문경, 영주, 울진 사람들 사투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었다. 같은 경상북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억양이 달랐다. 점점 사투리가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후손에 후손이 이어지면 언젠가 사투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워낙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지역 간 세대 간 소통이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할 것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전통 사투리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포항만 해도 정말 해안가 포항 토박이들이 하는 사투리가 많이 사라졌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유입이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다 보니 진짜 포항 사투리를 듣기가 어렵다.
<함파테 바>가 아프리카 노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언젠가 정통 사투리를 구사하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녹음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다음은 유명한 <토머스 에디슨> 이다.
“에디슨은 1931년 10월 18일 자신의 작업장에서 여든 세 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그는 그때 고무 제조를 목적으로 1만 7,000여종의 식물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흘 후인 10월 21일, 미국에서 놀라운 창의성을 구현한 에디슨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미국 전체가 1분 동안 완전한 암흑이 된다.” (p.610)
에디슨은 위인전으로나 다른 많은 기회를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단지 자크 아탈리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그의 위인전을 읽고 과학자, 발명가의 꿈을 꾼 사람들이 엄청날 것이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그의 일생은 상업 광고의 카피문구로 사용되기도 할 만큼 우리는 에디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참 놓치기 쉬운 부분이 이런 사람들의 죽음과 그 이후다. 에디슨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이것이 비싼 위인전 세트를 사는 가장 큰 이유다. ‘OO야 너도 에디슨처럼 말이야~’라고 말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발명하기 위해 어떤 실패를 했고 결국 엄청난 것들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서만 주목하기 마련이다. 막상 에디슨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 위인전에서 다루는 비중도 적고 엄마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나도 이 책을 읽고 에디슨의 죽음과 뒤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알게 되었다. 그는 세계적인 위인인 만큼 죽기 직전에도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단하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도 드물고 그 일을 돈을 벌면서 하는 사람들은 더 드문 세상에 에디슨의 말년은 정말 이상적이다. 물론, 그가 겪은 수많은 실패와 주변의 비웃음까지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생의 마지막이 멋지다. 그리고 에디슨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미국 전체가 1분 동안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에디슨은 그런 극적인 이벤트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이벤트에 참석한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는 분명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고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의미로 완전히 암흑을 만든 경험 말이다.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 자랑하고 또 자랑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모두가 에디슨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 당장 내일, 다음 달 생활에 대한 공포로 하루를 살고 있는 세상이다. 에디슨의 100분의 1은 고사하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암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각종 사고와 재난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남겨지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을 이뤄내 애쓰지 않아도 이름이 알려지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그래도 욕심은 부리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자크 아탈리의 등대가 된 23명의 인물들처럼 우리도 어떤 단 한 사람의 등대가 될 수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내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자크 아탈리의 23개의 등대들 보다 더 값지고 빛난 인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 한다. 말처럼 쉽지 않고, 아니 엄청나게 힘든 일임이 분명하지만 욕심을 부리고 노력해야 한다. 나도 내년 봄에 태어날 아이의 든든한 등대가 될 수 있도록 매일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에는 내가 소개한 인물들 말고도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아소카>, <바이티우스>, <힐데가르트 폰 빙엔>, <마이모니데스>, <토마스 아퀴나스>, <조르다노 브루노>, <카라바조>, <토머스 홉스>, <스탈 부인>, <시몬 볼리바르>, <찰스 다윈>, <압델카데르>, <월트 휘트먼>, <슈리마드 라즈찬드라>, <마리타 츠베타예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호치민>과 같은 시대의 등대가 되고 자크 아탈리 개인에게도 등대가 된 사람들이 소개 된다. 읽는 이에 따라 기억에 남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등대는 다를 것이다. 누가 더하고 덜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나도.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 누군가에게 등대가 되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