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권수업
정광욱 외 지음, 안경환 감수 / 미래의창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는 서울대를 나오면 출셋길이 열린다. 지방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이후 현수막을 건다. “서울대 몇 명 합격. 누구누구 서울대 무슨 과 합격.” 학원에서도 현수막을 자랑스레 걸어 놓는다. 작은 마을에서는 “누구누구 장녀, 차남 서울대 합격.” 이라고 현수막을 건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서울대는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존재다. 한국을 움직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 서울대 출신이 있다. 이미 서울대에 입학하는 순간 그(그녀)의 운명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죽을 동 살 동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쓴다. 그렇게 평소에 삼성을 욕하고 비판하면서도 내 자식이 삼성에 들어가면 동네잔치를 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는 것처럼 서울대가 한국의 비정상적인 교육현실을 만든 장본인이라며 서울대 철폐나 대학서열 철폐를 외치거나 그것에 동의하다가도 내 자식이 서울대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회가 한국이다. 서울대 철폐는 한국에서 공산당이 집권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서울대 출신들인데 그들이 서울대 철폐를 두고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미 운명의 반쯤이 결정지어진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조금 더 바르고 건강하게 교육하기를 바라는 편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 까 싶다. 그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 「서울대 인권수업」은 서울대 법학과 강의 중 벌어진 토론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대단하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교 강의실에서 온갖 토론과 강의가 존재할 텐데 말이다. 역시 서울대가 최고다. 서울대 법학과 정도 되어야 학부에서 벌어진 토론 내용을 가지고 책을 낼 수 있다. 이미 멍석을 깔아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책에는 <인권>, <신상털기>, <양심적 병역거부>, <장애인등급제>, <다문화>, <범죄자 인권>, <성소수자>, <동물의 권리>, <안락사>, <인권위원회> 등의 주제를 놓고 벌인 토론 내용이 실려 있다. <신상털기>를 제외하고는 크게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은 주제다.

평소 좋아하던 출판사인 ‘시대의 창’에서 제목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서울대 인권수업」을 출간한 것이 생선가시에 목에 걸린 듯 불편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 터진 기사를 보면서 서울대 전체 학생들에게 이런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아닐까 싶었다. 그 기사는 ‘막말판사’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은 사퇴한 ‘막말판사’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막말을 쏟아낸 것도 이미 여러 번 이었다.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고 비판이 봇물치자 단순한 말실수였다며 핑계를 댔지만 시간이 가도 그의 인성 자체는 변하지 않는 법니다. 그 판사가 서울대를 졸업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여성을 비하하고 노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공판장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지만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저 고시 공부를 위해 수년을 노력하고 판사가 된 사람에게 그 어떤 인성과 사회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막말판사’는 많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판장에서 그런 막말을 내뱉느냐 속으로만 생각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런 뉴스를 접하고 나니 이런 책, 이런 책의 내용이 서울대에서 많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더 중추적인 자리에 앉게 될 가능성이 많으니까.

적어도 인권이나 정의,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접근하느냐를 학부 때부터 공부하고 훈련한다는 것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굳이 서울대를 다니지 않아도 이것은 동일하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인성교육이나 인문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때부터 경쟁에 내몰린다. 그렇게 진학을 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이제 취업을 하기 위한 경쟁의 바다에 뛰어 든다. 인권, 정의, 평등 이런 개념에 대해서도 취업을 위한 공부나 면접을 준비하면서 보게 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인권 존중의 출발점은 ‘서로 다른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기’잖아요. 토론의 본질도 ‘다름’에서 시작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존중하는 것이고” (p.10)

“인권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사람답게 삶으로써 무언가를 더 이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p.29)

 

사회에 진출하기 전 인권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나누고 공부하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 각자에게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도 그렇다. 우리 사회는 토론문화가 없는 사회다. TV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수백 회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결론에 이르는 꼴을 보지 못했다.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나뉘어 싸움질만 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만 뇌까릴 뿐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토론이라는 것에는 입보다 귀가 더 필요하다. 이 책에 실린 학생들의 토론 내용이 얼마나 편집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것도 있고 거의 접점을 찾는 주제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내 의견이 존중되는 것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토론은 무의미하다. 특히, 인권이라는 주제는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의성이 있는 정치적 쟁점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만 넘쳐나고 있다. 양쪽의 의견이 너무 첨예하게 나뉘고 이해 당사자 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그런 토론은 늘 피가 튄다. 당장 시급한 것 같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한참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기는커녕 속만 더 뒤집어 진다. 그러나 인권 같은 주제는 시급해 보이지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더 중요하다. 있으면 당연히 있겠거니 살지만 없으면 크게 불편을 겪게 된다. 지금은 그쪽의 인권을 걱정해야 하는 인권위원회지만 당장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인간다운 처우를 받지 못해 억울해 하고 있을 때 전화 한통 하거나 게시판에 글 하나 올릴 수 있는 인권위원회조차 없는 사회라면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기피자이며 범죄자이고 국민의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습니다. 취업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차별을 겪고요. 실제로 2012년 어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교통안전공단에 합격했지만 ‘병역거부자를 평생 채용금지’하는 내부 규정으로 입사하지 못했습니다.” (p.93)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이다’라고 밝히는 것처럼 의학적인 결함에 따라 장애인인지를 결정합니다. 세계적으로 의학적인 면과 함께 사회적인 면까지 고려하는 추세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현행법상 장애의 개념은 상당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보입니다.” (p.107)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양심적 거부를 하면 이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막대한 패널티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방점을 찍는다. 장애인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비장애인보다 불편한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최대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그들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배려하는 것이 사회가 가진 의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장애인은 누려야 할 권리, 최소한의 인권조차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이것은 더욱 심각하다.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 자체부터 너무 낯설고 단지 특정 종교인들의 종교적 행동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특정 종교인이 아니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래서 사회가 무서운 것이다. 한번 편견을 가지면 좀처럼 벗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은 사회적 약자에게는 가장 필요한 권리다. 사회적 강자에게는 굳이 인권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자신들이 수업 시간에 나눈 토론이 책으로 출간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토론의 내용을 숙고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덧없는 기대가 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최소한 인권에 대해서 사회 정의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고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과 충분한 토론을 나눴다는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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