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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2월 신간추천은 제가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신간입니다.

 

 

1. <맨 얼굴의 예수>

 

 

 

 

 

 

 

 

 

 

 

 

 

몇 년 간 한국교회로부터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김용민 교수일 겁니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교회의 적이 되었지요. 물론, 이전에 근무하던 기독교계 방송국에서 비합리한 처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기는 했지만 전 국민적인 막말 돼지가 되고 트위터 상에서 사탄이 된 것은 바로 조용기 목사에 대한 조롱과 비판, 그리고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일어났던 무자비한 꼴통 교회 목사와 그 추종자들의 공격에 대한 비아냥에서 비롯됩니다. 얼마 전 조용기 목사의 비리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또 한번 우르르 몰려 들어 김용민 교수를 잡아 먹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쫄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인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교회라는 집단이 교회밖보다 더 비상식적이고 부정의하다면 그런 교회는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교회와 목사들이 성장과 맘몬주의에 갇혀 제대로 된 예수를 전하지 않고 있는 때,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된 예수의 얼굴을 마주하고 기독교를 만나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더불어 동녘 출판사에서 이널 신간이 나온 것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2. <마을 기업 희망공동체>

 

 

 

 

 

 

 

 

 

 

 

 

 

가장 친한 친구 부부와 매주 만나 상의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쯤 시골로 들어갈 것이냐는 건데요. 5-6년 정도 후에 시골에 들어가 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에 관심이 갑니다. 이 책은 무너져가는 농촌 공동체를 살려낸 여러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요즘 또 하나 뜨거운 키워드가 협동조합인데요. 단순히 먹거리에 대한 생협 개념을 넘어서 뜻이 맞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 조합을 형성하기도 하더군요. 그런 협동조합 형태가 농촌에서도 어떻게 형성되고 정착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TV를 틀면 비슷비슷한 얼굴들로 넘쳐 납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의 몸은 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 날씬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TV를 끄고 당장 밖으로 나가보면 TV속 여성들은 거의 없습니다. 현실과 TV가 분명히 괴리된 것입니다. TV를 통해 학습된 기준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쁘고 날씬해야만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외모는 남여를 구분하지 않고 사회진출의 중요한 항목이 됩니다. 특히 여성에게는 혹독하리만큼 가중됩니다. 뚱뚱한 것이, 못 생긴 것이 죄가 아닌데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나온 100kg을 훌쩍 넘는 여성들을 보면 혀부터 끌끌 차며 한심스러워 합니다. 그녀들이 위 절제술을 받고 죽을만큼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디즘적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못 생긴 것이, 뚱뚱한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렇게 가치를 매기며 판단하는 사회의 기준과 사람들의 눈이 죄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사회적 기준과 대중의 눈에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픈 이야기지만 유머와 위트로 범벅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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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한 인권운동가가 13년 동안 추적한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숨겨진 진실
고상만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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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소초원 하나가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초장님~!! 큰 일 났습니다. 전방에 총기 난사 사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해가 뜨기도 전에 소초로 복귀한 후 잠시 쉬고 있던 중이었는데 평소 장난이 많은 녀석이 얼굴이 하얘진 채 내 방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다. 급히 소초원들의 내무실로 뛰어가 확인한 TV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방 GP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서 8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범인은 GP에서 함께 생활하던 김모 일병이라고 했다. 사고가 일어난 전방 GP와 내가 근무하고 있던 후방 해안소초의 거리를 수백Km에 달하고 근무하는 형태도, 위험을 마주한 정도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같은 군복을 입고 있고, 폐쇄된 곳에서 독립 부대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였는지 아무튼 TV 화면에서 모두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순서이듯이 일과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급 부대들로부터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그리고 이후 몇 개월 동안 수많은 상급 부대들로부터 무차별적인 검열 및 지도를 받았다.

3년 6개월의 군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 된다. 해안 소초로 들어가 밤을 새며 해안 절벽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만으로도 군 생활은 충분히 힘들었는데 GP사건 이후 근무 취침도 하지 못하고 소대원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상급부대에서 검열을 나온 사람들은 뭐 하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피곤은 쌓이고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초에 파견을 나온 타 중대 중화기 담당 병사가 소초장인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주간 근무를 하고 있으면 종종 소초 막사를 향해 자신의 중화기 방아쇠를 당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 하고 바로 상급부대로 보고 했다. 상급부대에서는 바로 그 병사를 인근 군 병원으로 호송했고 몇 달 뒤 그 병사가 의병 제대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몇몇 병사들은 신도 울고 갈 연기였다며 뒷담화를 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2-3일에 한 번꼴로 같은 병사와 면담을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상급부대에서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보통 3개월의 소초생활 주기보다 훨씬 긴 5개월 동안의 소초생활을 마친 그 날 밤 중대장, 중대행정관, 동료 소대장들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나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그대로 몸으로 부어댔다.

 

 

“도대체 김훈 중위가 죽은 그날, 1998년 2월 24일 241GP 3번 벙커 안에서 발견된 그 낡고 허름한 철모는 누구의 것인가? 나는 그 답을 듣지 않고서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이대로 묻을 수가 없다.” (p.212)

 

이 책은 이미 유명한 책이다. 고(故) 김훈 중위에 대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송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고상만씨는 고(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도 엄청난 노력을 한 사람이다.

 

 

“국방부는 끝내 자살로 결론지었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법원은 초동수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사건의 진실을 밝힐 권한이 없다 하여 재판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 뒤 설치된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진실규명 불능’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싸우느라 벌서 13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김훈 중위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p.7)

 

그런데 결론은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한다. 자살, 사고사, 타살로 명확하게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한다. 뭔가 앞과 뒤가 맞지 않다. 더군다나 민주정부 시절 대통령의 직속 기구로 꾸려진 곳에서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미약한 성과가 있다면 당연히 자살로 판단되었던 사건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김훈 중위의 유족과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저자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결론이다. 그래서 김훈 중위가 죽은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3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쳤던 군. 그 군에 배신을 다한 김척 장군은 결국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p.12)

 

더군다나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다. 별을 세 개나 달고 전역한 예비역은 전역 후에도 대단한 명예를 가진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한국군에서 별을 세 개나 어깨에 달았다는 것은 능력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군대 내에서도 예비역 중장은 엄청난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예비역 중장의 아들의 죽음이 아직도 명확하게 결론나지 않고 여전히 의혹투성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악몽과 같았던 소초장 생활을 마무리 하고 운 좋게 사단 본부에 전출을 가게 되었다. 2005년 초겨울이었다. 사단 본부에서 내가 속했던 부처는 작전분야였고 내 임무는 평시 상황 유지였다. 늘 전화 대기를 해야 했고 사단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유지하고 보고하고 브리핑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군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았다. 다른 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정리하기도 했는데 거의 매일 사고가 일어났다. 인사사고에서부터 불륜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했다. 어쩌다 TV에 보도되는 군 관련 사고는 실제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비해 몇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처럼 장교로 복무하다 보면 이런 저런 소식을 많이 듣게 된다. 내가 소초장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에서도 내가 전출오고 난 몇 개월 후 병사 하나가 근무 중 자살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만큼 군 생활, 특히 장교로 하는 군 생활은 죽음과 가까울 때가 많았다.

37년 동안 군 생활을 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그의 군 생활 동안 엄청나게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그 죽음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신의 아들에게 닥쳤을 때 그가 겪었을 고통과 아픔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뭔가 아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아 물어보고 알아봤지만 예비역 중장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기 전,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도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전체 군에 누가 되지 않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의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최선이었지만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김훈 중위는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 목숨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살아오지 않는 대신 더 많은 목숨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짓밟힌 한 사람의 인권을 규명해내는 것, 그 진실을 밝혀내는 건 그와 같은 형태의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7)

 

저자인 고상만 조사관의 말이 맞다. 진실을 밝혀낸다고 해서 죽은 김훈 중위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16년이 지난 일이고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진 일이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죽음 이후 군과 정부, 국가 권력에서 보여준 행태는 저급하기 그지없었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하려 하세요? 전쟁이 나면 장군도 팡팡 나가떨어져 죽는 마당에……. 거 쓸데없는 일 그만하세요.” (p.50)

 

특별조사단이 꾸려졌지만 맞지 않는 증거들을 조악하게 논리로 얽어 유족을 두 번, 세 번 아프게 할 뿐이었다. 중장이나 지낸 사람이 전체 군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고상만 조사관은 김훈 중위와 같은 비참한 죽음이 또 다시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일에 뛰어들고 죽기 살기로 부딪힌 사람이다. 여전히 군에서는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고 살고 있을 뿐이다. 단지 군부대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꽃다운 이십대의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죽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돈 봉투를 내미는 자본 권력이 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일정 정도 진보된 사회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이런 억울한 죽음은 여전할 것이다. 내 일이 아니고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일이 아니면 사실 찾아서 관심을 쏟기가 어렵다. 이런 일은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식의 일, 내 동생의 일이라면 평생을 두고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와 국가라면 이런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그래서 마음 졸이지 않고 내 자식과 내 동생을 군대에 보낼 수 있어야 하고 국내 최고 재벌의 공장에 취직한 자식과 동생과 친구를 마음껏 축하해 줄 수 있다.

 

 

“우리는 특조단의 주장과 다른 노 박사의 답변에 대해 특조단에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특조단과 노 박사 가운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우리의 해명 요구에 대해 특조단은 더 이상 어떤 말도,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p.166)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애초 군과 특조단이 발표한 수사 결과(자살)를 180도 뒤집을 수 있는 법의학 권위자를 초빙했지만 군과 특조단은 변하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증거와 결론이 쌍방으로 부딪혔지만 결국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군과 특조단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출간되던 3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언제 다시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 그런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군과 당시 특조단은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들의 증거와 논리가 진실이라는 것을 굽히지 않을 것도 뻔하다. 어쨌든 유가족과 진상규명을 위해 애쓴 저자와 많은 사람들은 또 다시 고통을 겪어야 한다. 혹시 제대로 된 진상을 규명한다 하더라도 고통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독립된 소초에서 소초장을 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감이었다. 소초에 투입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행동과 심리가 소초에서 두드러진 병사들이 있었다. 외로움과 고립감, 두려움이 겹쳐지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 징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실제로 겪어 보았다. 나는 정말 다행히 짧은 군 생활 동안 인사 사고가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 특히 군대에서 그런 것은 억울하고 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역을 한 후에도 해안소초나 전방 GP에서 인사 사고가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고통스럽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여전히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생떼 같은 청춘들이 군 입대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청춘들은 건강하게 전역을 하지만 오늘도 군 생활 중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는 청춘들도 많다. 당장이라도 분단이 해체되고 징병제가 폐지되어 입대하고 싶은 사람이 지원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국가와 군은 최대한 청춘들이 다치지 않도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국가와 군에 헌신하는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혹시 불행한 사고나 사건을 당했다면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를 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분단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강제로 군에 청춘들을 끌어 모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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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직전에 고(故)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내용인「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읽었다. 명확하게 죽음이 규명되지 않은 채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론 내려진 김훈 중위의 죽음은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분단 상황이고 군이라는 곳이 폐쇄적인 집단이라 하더라도 현역 장교의 죽음이 16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눈이 갔는지도 모른다.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제목자체가 가슴에 와 닿았다. 군대가 없는 나라도 아니고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표현에는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애당초 군대라는 제도가 필요 없어서 군대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군대가 있었지만 이후에 군대를 버렸다는 의지가 부러웠다.

이 이야기는 코스타리카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우연히 알게 된 코스타리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에 코스타리카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고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코스타리카는 낯선 나라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어디쯤에 있는 나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회과부도를 거의 외울 정도로 지도를 들여다봤던 나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나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봐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949년 11월 7일 새로운 헌법이 반포, 시행되었다. 이것이 현재 코스타리카 헌법이다. 제12조에 ‘항구적 조직적으로 군대는 금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무장 헌법’은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p.60)

 

책에는 코스타리카가 헌법에 군대 금지 조항을 포함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는데 사실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재미가 없는 부분이었다. 식민 지배를 벗어난 후 대부분의 피식민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군부 독재 시절을 겪고 쿠데타를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 후 어쨌든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버렸다’. 군대를 없앤 것도 아니고 ‘버렸다’ 일본이 2차 대전 후 타의로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헌법을 제정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들 스스로 군대를 ‘버렸다’. 처음부터 너무 평화롭고 국민들이 온순하고 주변 정세가 아늑하기만 해서 군대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인접한 국가들은 군부 독재세력이 창궐하고 있고 턱 위에는 세계의 깡패 미국이 있다. 군대를 가져도 더 가져야 할 상황인 나라가 군대를 ‘버렸다’

 

 

“본래 내가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나라의 시스템도 정책도 아니고 군사적 장비도 아니었다.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사고방식, 곧 가치관과 문화에 흥미가 끌렸던 것이다.” (p.6)

“외무부 직원은 우리에게 ‘코스타리카가 왜 평화로운지, 그 비밀을 아세요? 그것은 빈곤과 고립이지요.’ 라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 (p.27)

 

단순히 군대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에 흥미를 가진 저자는 코스타리카에서 공부하고 살면서 그들의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를 발견한다. 여전히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빈곤을 겪고 있고 중남미와 미국의 견제를 당하고 있지만 코스타리카 국민들과 정부는 군대를 가지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인은 어디를 향해 가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그것이 ‘푸라 비다 (Pura vida/Pure life)'라는 말이다.”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과 인생을 좋다고 인식한다. 아등바등 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는 삶의 태도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군대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군대란 과대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p.201)

 

Pura vida. 푸라 비다. 코스타리카 전체에 흐르는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그대로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체현된 것이다. 단순히 군대가 없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자원을 개발해 무역을 하려 하지도 않고, 아등바등 교육에 투자해 엘리트들을 양성하려 하지도 않고, 현실에 닥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호단체에 손을 벌리지도 않는. 그런 순수한 삶. 소박한 삶. Pura vida. 사실 내가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외국인을 만나기 전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개인적인 차이가 아니라 한 국가의 국민 전체가 가진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처음 몽골을 여행할 때 나는 몽골 현지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나보다 7살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고 마침 여름 방학을 맞아 조카 두 명이 그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둘 다 여자아이였는데 큰 아이는 13살이고 작은 아이는 7살 이었다. 밤늦은 시간 도착해서 그날은 바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몽골 형이 차려 준 아침을 먹은 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조카 아이 둘이서 상을 다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형과 누나는 당연하게 시키고 아이들도 싫은 내색 없이 뒷정리를 했다. 사실 한국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방학을 맞아 삼촌에 집에 온 어린 조카에게 밥상 정리와 설거지를 시킬 삼촌과 숙모가 있을까? 한두 번 아이들 교육차원에서 시킬 수도 있겠지만 몽골 아이들은 달랐다. 그 집에 있는 내내 밥상 정리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대청소 때에도 주어진 역할이 분명했다. 오후 늦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둘을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서 놀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설거지하기 싫지 않냐고. 그랬더니 오히려 그런 것을 묻는 자체가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하는 거라고. 집에서도 그렇다고. 그랬다. 나는 반도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섬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고립되고 보수적이다. 그 아이들은 대륙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대륙적 기질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나니 한국과 몽골이 이렇게 다르구나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듯이 한국과 코스타리카가 다르고 일본과 코스타리카가 다른 것이다.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그들의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애면글면 파내지 않아도 지금의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누리고 즐기며 사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하고 바쁘게 뛰어 다니며 밥도 초스피드로 먹어야만 했던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란 코스타리카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함이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각 정당의 깃발이 내걸리고 자동차도 정당의 미니 깃발을 펄럭이며 거리를 달린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복장에도 정당의 색깔이 크게 늘어난다. 녹색, 백색, 적색, 청색, 황색의 원색 계통의 색을 이용한 것이 많고 눈에 잘 띤다. 정당의 깃발을 들고 있지 않아도 옷 색깔을 통해 어느 당의 지지자인지 알 수 있고 이렇게 각자 알아서 지지정당을 홍보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지지 정당을 직접 선전하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이런 것이 ‘정치 활동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여지고 중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88)

 

나는 한국에 살면서 이런 선거를 겪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도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부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선거다. 국가적인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대통령을 뽑은 선거를 한지 11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선거에 대한 의혹이 많은 곳이 한국이다. 한국에서도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선거 분위기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고 그 정당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 차에 꽂은 채 운전을 하고 혹시 내와 다른 색깔의 옷과 깃발을 발견하더라도 우르르 몰려가 방해하거나 비난하고 비판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그런 선거 분위기. 절대로, 결코, 단언컨대 나는 죽을 때까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부모들은 선거철이 되면 여러 집회에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한다. 집회라는 것도 확성기를 앞에 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하고 그냥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코스타리카의 선거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하고 신선한 선거 분위기를 체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모였지만 다음의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 차츰 관심을 가지게 될 테고 그로 인해 새롭게 다가 올 다음 선거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중대사인 선거도 그들만의 방식대로 ‘즐거운 것’으로 재생산된다. 그렇다 보니 ‘평화’와 ‘인권’이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무척 친숙하도 한다. 비록 상대적 빈곤이 실재하고 여러 난관에 직면한 현실이지만 오랜 시간 그들 몸속으로 체현된 ‘평화’와 ‘Pura vida'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방식이자 문화가 되었다.

 

흔히 코스타리카와 몽골 하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몽골을 여행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 대다수는 ‘우와~ 거기 좋죠. 초원도 있고 하늘 정말 멋있겠다.’ 라는 반응을 한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흐르는 가치와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와 몽골은 한국과는 무척 다르다. 단순히 경제규모나 GDP, GNP 규모로만 그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저급하고 저질적인 판단 기준이다.

몽골의 어린 아이들이 삼촌 집에 가서도 당연하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처럼 코스타리카에 군대가 없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의, 일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낯설고 신기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일상이고 삶인 것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도 군대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군대보다 평화를 택했고 경쟁보다 함께 즐기는 것을 택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평화롭고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상한 마무리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도 군대를 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한다. 정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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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청춘, 문득 떠남 - 홍대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까지 한량 음악가 티어라이너의 무중력 방랑기
티어라이너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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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멀리,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 그런 곳으로. 2008년이 내겐 그랬다. 그해는 초반부터 어려웠다. 아버지의 암 발병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암에 대해 이제는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이었다. 3년째에 접어드는 직장생활은 더 혼란스러웠다. 주5일 근무를 해야 하는데 나는 늘 주7일 근무를 했다. 하는 업무도 만나는 사람도 내가 원하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매달 20일이 되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보면서 겨우겨우 버텨나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만큼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7년째 교제해오던 지금의 아내와의 관계도 뭔가 이상했다. 눈에 드러나게 갈등이 있거나 혹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조차 하지 않았지만 우리 둘 다 그 당연한 결혼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살이 쪘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늘 어머니가 걱정하셨는데 매일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옆구리에 아랫배에 지방이 끼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민하고 토해내는 것이 유이(二)한 낙이었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드럼도 칠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큼 내게는 유이(二)한 낙이었는데 칠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늘 플레이하던 리듬도 필인(fill in)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드럼이 제대로 공간을 채우지 못하니 합주는 불협화음을 낳았다. 돌이켜보면 총체적인 난국이었던 것 같다.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늘 그 수준에서 맴돌았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제껏 으레 해오던 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막대기를 꽂아 휘이 저으면 불쾌한 찌꺼기들이 부유할 것이 뻔해 깊이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울란바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포항까지 가는 국내선을 타본 것이 전부였던 내게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추락의 공포를 겪을 만한 터뷸런스는 아니지만 기체의 작은 요동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비행기 안에는 몽골인 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았다. 아마 여름 방학을 맞아 학교나 교회에서 단체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울란바타르 공항에서 빠져 나와 처음 맡는 몽골의 냄새는 묘했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나는 제대로 사직서도 쓰지 않고 제대로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몽골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해야 살 것만 같았다.

 

 

“나는 포르투의 골목이 너무 좋다. 골목길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빈곤이 턱하니 넋을 놓고 앉아 여기가 유럽의 후진국임을 실감케 한다.” (p.103)

 

이 책「느린 청춘, 문득 떠남」은 뮤지션인 저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를 여행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티어라이너의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가 작업한 드라마와 영화 음악은 이미 내가 무척 재밌게 봤던 작품들이어서 놀랐다. 그의 여행기는 담담하다. 수천km날아가 여행하기 위해 대단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여행서적과는 달리 단도직입적이다. 내밀한 자신만의 숨소리가 그대로 녹아 있어 공감이 갔다. 그가 스페인을 여행하고 나서 포르투갈의 포르투의 한 골목에서 받은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도 그랬다.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의 처제가 2년 동안 KOICA단원으로 몽골에서 일했었던 경험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당시 처제가 홈스테이를 했던 몽골 가족의 전화번호만 받아 들고 떠난 터였다. 갑작스레 떠나야 했기에 준비는 고사하고 울란바타르 국제공항 앞에서 현지 택시기사들에게 빙 둘러 싸인 후에도 한참을 ‘여기가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 멍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집에 전화해 아버지의 상태를 매일 물어보면서 몽골이 나를 받아줄지, 내가 몽골을 먼저 알아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 훌쩍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곳에 닿았다. 떠나기 전 몽골 가족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주소를 받았다. 작은 메모지를 펴 보이며 ‘누가 먼저 나를 태우는 행운을 잡을래?’라는 눈으로 나를 둘러싼 택시기사들을 노려봤다. 책이나 TV에서 보던 것처럼 몽골 사람들은 그렇게 생겼다. 여름이라 윗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배는 남산 만해 흡사 쌍둥이를 잉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30분을 넘게 시내로 들어가 몽골 가족을 만났다. 그들의 아파트에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맞았다. 전통 옷감을 내 어깨에 두르고 안았다. 축복의 말을 건네주고 코담배를 권했다. 눈짓 손짓으로 대충 따라하며 코담배를 들이 마시는 순간. 아찔해졌다. 10분 넘게 재채기를 하고 눈물을 흘렸다. 티어라이너가 포르투의 골목에 반해 정처 없이 골목을 거닐다 갑작스레 마주친 빈곤의 실재 앞에 나도 덩달아 아찔했다.

여행은 떠나야 알 수 있다.

 

 

“차를 타고 아무런 제지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건, 삼면이 바다고 한 면은 38선으로 막힌 우리에게는 낯선 경험이다.” (p.90)

 

이미 여러 번 나의 다른 리뷰나 포스팅에서 언급한대로 그때 인연을 맺었던 몽골 가족들과는 지금도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귀한 손님을 맞는 몽골의 전통 방식대로 코담배를 권해 주셨을 때 분명 뭔가 손짓을 하셨던 것 같다. ‘너무 많이 들이마시면 안 돼~’라는 말이었을까? 한참을 코담배로 뒹굴다가 디마 누나가 전해준 수태차를 받아 들었다. 우유보다는 좀 더 점성이 있고 율무차 보다는 좀 더 점성이 덜 한 그런 전통 차였다. 비위가 좋지 않은 내가 마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맛있었다. 한 번에 털어 넣고 한 그릇을 더 청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내게 가장 낯설고 충격적이었던 몽골의 경험은 사막이다. 사막으로 가는 미니버스는 비포장도로를 고스란히 내 엉덩이로 전해주는 엉터리 서스펜션을 장착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10시간 넘게 달리고 달려 새벽녘에 도착한 사막은 또 다른 몽골이었다. 한 여름이지만 추웠다. 별은 내 가슴 바로 위에 쏟아졌다.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수태차를 마시며 유목민이 게르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멀리서부터 밝아왔다. 지평선의 일출. 사막의 일출. 그 장엄하고 놀라운 일출이 티어라이너의 국경을 넘나든 낯선 경험과 비슷할까?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하늘과 맞닿은 땅에서부터 조그맣게 빛이 모였다. 조심스레 별과 어둠을 밀어내며 초원과 사막을 감싸왔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준비되지 않은 감동이었다. 감동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벅찬 전율이었다. 원래 유목민 출신이던 몽골 가족과 함께 모닥불에 앉아있던 다른 몽골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봐오던 동해의 일출을 또 한 번 보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내게는 유일한 것이었다(나중에 한국에서 몽골 가족과 함께 울산에서 일출을 봤다. 그들은 내가 사막 일출을 보며 감동을 받았던 것만큼 감동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은 낯선 것이다.

 

 

“외국인 특유의 암내도 굉장해서 기네스북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대신 신청해주고 싶은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는 곰대하듯 조용히 뒤에 앉아 그를 곰에 풍자한 글이나 썼다. 난 평화주의자니까.” (p.36)

 

3주 동안의 몽골 여행은 아쉬운 것이 더 많았다. 그래도 미련이 남고 걱정이 잔뜩 남아있었는지 돌아올 비행기를 취소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질문이 동일했지만 매번 같은 대답을 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스스로 대견해 했던 것 같다.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 하고 여전한 삶의 문제와 당면한 어려움은 똑같았지만 그것을 마주한 내 태도가 조금, 아주 조금은 바뀌었던 것 같다. 몽골 가족은 사막의 일출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지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조리 다른 대륙 기질의 그들과 함께 3주를 지낸 것은 여러모로 행운이었다. 두고두고 곱씹고 돌이키고 자랑스레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퍽 인상적이었던지 아직까지 가까이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저자처럼 언제 외국인의 암내를 바로 옆에서 깊이 들이마실 수 있나. 이태원에 가도 외국인 강사를 만나도 쉽게 경험할 수 없다. 향수도 없고 변변한 씻을 곳도 없는 곳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오랜 시간 함께 있어서 그들만의 암내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은 재미있다.

 

 

“여행은 결국 사람” (p.199)

 

결국 여행은 사람이다. 여행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좋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행은 사람이다. 만났던 사람과 현재까지 연을 이어올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다. 우연히 만난 여행객과의 대화는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 자체로 여행이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모로코에 내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고 싶다고 다 갈 수 있다면 그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나와 이 책의 저자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심신을 단련하면서 맞이하는 여행의 맛은 또 다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몽골여행은 첫 번째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다르게 가면 또 다른 여행을 만난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다. 어떤 형태와 어떤 방법으로든. 비행기 티켓을 먼저 예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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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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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마지막 승부>가 유행이던 시절 골목마다 운동장마다 농구공을 튕기며 레이업 슛을 연습하는 남학생들이 넘쳐났다. 이후 <슬램덩크>라는 불멸의 만화책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농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 인기는 고스란히 대학농구로 이어졌고 연세대와 고려대의 농구 경기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대표 축구경기의 긴장감과 광란 그 이상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줄곧 농구써클에 들어갔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만 해도 남녀공학은 전무했던 터라 남중과 남고를 놔왔음에도 학교 내에서 농구써클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것과 유사했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아침 자율학습 끝난 후나 점심시간에 선배들이 1학년 각 반을 돌면서 써클을 소개하고 몇 월 며칠 공개 테스트가 있으니 관심이 있는 신입생들은 참여하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테스트 날이 되면 운동장 한 귀퉁이에 있는 농구코트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간단한 슛에서부터 드리블, 실전 경기 등으로 테스트를 한 후 즉석에서 써클 선배들이 신입생을 간택(?)했다. 지역의 소도시라 신입생들이 입학하면 어느 중학교 출신 누가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농구를 잘 한다더라. 3 on 3 대회에 나가서 몇 위에 입상했다더라 소문이 이미 퍼져있었다. 그러면 그 친구를 스카웃하기 위해 각 써클의 선배들은 물밑으로 엄청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일단 써클에 들어가면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우레탄 농구 코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농구 써클에 들어가지 못한 풋내기들이 우레탄 농구 코트를 졸업하기 전까지 밟을 수 있는 시간은 체육시간에 불과했다. 3년 내내 학교 내 농구 써클간 시합 스케줄이 가득 잡혀 있었고 주말에는 타 학교 농구 써클과 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더 광란이었다. 왜냐하면 여학생들이 구경을 오기 때문이었다.

남중과 남고만 나온 빡빡머리 남학생들에게 여학생의 존재의 유무는 그날 경기력을 좌우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신입생이면 선배들에게 우선 패스를 해야 했고 선배에게 더 유리한 포지션을 양보하기 위해 스크린플레이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여학생이 구경을 한다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배고 뭐고 없다. 그녀들의 응원과 꺄악~~!! 하는 함성을 듣게 되면 갑자기 엔돌핀이 솟구치고 심장이 쿵쾅쿵쾅 안 하던 과감한 플레이와 더불어 선배를 몸싸움으로 나자빠지게 하는 객기를 선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그 경기에서 이기에 되면 그 객기는 용기로 단번에 바뀐다. 그러나 지게 되면……. 객쩍었던 플레이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오게 된다.

 

 

표창원 이라는 사람을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내가 CSI, SVU, 크리미널 마인드의 광팬이었다.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에 대한 것도 그런 미국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범죄수사물에 대한 한국내 마니아들의 인기에서 인지 한국 드라마나 교양프로그램에서도 프로파일링과 프로파일러가 심심찮게 언급되거나 그들의 코멘트가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람은 바로 표창원이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외모에 똑부러지는 언변이 더해지고 몇 년 전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프로파일러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그의 인터뷰나 코멘트를 접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뢰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몇 년 사이 끔찍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과 아동성범죄가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었었는데 그것이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기대가 더욱 증폭되게 했던 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날이 흉포화 되고 잔인해지며 일반화되는 범죄에 대해 표창원씨의 설명을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용기를 발휘했다. 누군가는 객기라고 했다.

지난 대선을 앞둔 12월 중순, 그는 당시 첨예한 문제였던(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국정원 여직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경찰대 출신의 경찰대 교수,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국내 경찰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찰인 그가 당시 정부와 유력 여당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그 쪽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왜 그가 그런 입장을 발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당연히 당시 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보수쪽 인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표창원씨의 갑작스런 입장 발표는 뜬금없었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 선거는 그 어떤 선거보다 감정과 감성이 앞서는 선거라고 했는데 당시 선거를 앞두고는 정말 이런 경향이 대단했다. 하루아침에 아군이 적이 되고, 적이 아군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표창원씨가 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을 때 나는 ‘대박!!! 선거는 볼 거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국 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표창원씨의 용기는 객기가 되어 버렸을까?

 

 

“일단은 저 같은 경우에는 내부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해왔지만,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나와서 국민들하고 그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하고 있는 거거든요.” (p.23)

“기법 자체가 기본적으로 라보(rapport) 형성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해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심리적 공감대를 쌓아나가는 거죠. 그러면 위험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p.150)

 

이 책 「공범들의 도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불편하다. 표창원씨는 사실 내부고발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근·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조직 내(특히 국가 기관 내지는 공적 기관)에서 내부고발을 해서 살아남은 이는 없다. 모조리 참수 당했다. 표창원씨는 그것을 몰랐을까? 그냥 대선 전에 그렇게 입장 발표를 하면 이슈가 되고 나중에 정치를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객기를 부린 것일까?

그는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다. 아무리 내부에서 이야기해도 공염불이었다고. 그가 이야기하는 ‘한계’라는 것에 대해 나는 일정 정도 공감한다. 군대를 장교로 복무한 나는 인정받는 초급장교였다. 비록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었지만 통솔력과, 특히 작전 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선배 장교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장기복무를 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대대급 부대에서 복무하다가 사단본부에서 복무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장기복무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무리 외쳐봐야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매뉴얼대로 레고 병정처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 비대한 조직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미련 없이 군 생활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표창원씨는 자신의 답답함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밖에서 하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밖’이다. ‘안’이 아니다. ‘안’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 소리는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 답답함이 한꺼번에 터져 누군가는 객기라며 깎아내리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그는 프로파일링 작업을 할 때에도 최대한 상대방과 감정적 교감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죽이고 거듭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앞에서 평정심을 가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그와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직업적 타성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은 유신 시대의 잔재라고 봅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된다. 당신의 피해는 안타깝지만, 당신 한 사람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시끄러우면 되겠냐는 거죠. 그거는 민주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전체주의적인, 독재적인 발상이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이 중요한 거죠.” (p.200)

 

결국 그는 내부적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배신자가 되었다. 만약 작년 12월 중순. 그런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존경받고 인정받는 경찰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하고 인기 있는 프로파일러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고 바보 같은 자들도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잘만 살아가는데 표창원씨는 능력도 있고 똑똑하고 호감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중립을 지킬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한국 사회를 좀먹는 전체주의 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애초부터 ‘나 하나로 뭔가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이전까지 구가하던 명성과 신망과 돈과 안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만큼이나 그의 영혼이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수구세력과 일베를 위시한 파시즘적인 세력까지 표창원을 두고 십자포화를 날리고 능지처참을 수백 번도 넘게 했지만 그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큰 욕심이 없었던 것 때문인 듯 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바뀌고 사람들이 이렇게 바뀌겠지!!’ 욕심이 과했다면 정반대의 결과를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뭐냐 하면 정치권력들이 범죄 수사 과정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빨리 버려야 한다.” (p.238)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이 사법과 경찰을 틀어쥐고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p.252)

 

표창원씨는 여전히 객기를 부린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을 항해 날을 세운다. 그전보다 더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그리고 평생을 헌신한 경찰을 향해서도 쓰디 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안’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조금도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았던 그런 소리들을 내지른다. 여전히 객기일지 모른다. 아니, 표창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원천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과 세력에게는 죽을 때까지 객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드러내 놓지 못한 채 그를 지지하는 사람과 묵묵하게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다. 그런 용기가 없다. 차라리 예전부터 진보입네 하며 툭툭 뇌까리던 진보·개혁 진영의 논객과 야당의 입만 살아있는 정치인들보다 표창원씨의 한 마디가 더 무겁고 국민들의 가슴을 흔든다. 그냥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을 하기 위해 그의 대부분을 내어 던졌다. 대통령 선거에 패배해도, 재보궐 선거에 패배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임기 동안 의원님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평생토록 연금을 타 드시며 의원님 소리를 쳐 들을 수 있는 분들의 그 알량한 애국심과 정치의식 보다 수천 배 낫다.

한국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권력 기관과 경제 기관과 사기업의 중추에 검찰 출신이 포진해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들에게 전관예우는 그 어떤 의식과 종교와 가치와 신념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될 것도 안 되고 되지 않을 것도 되는 것이다. 검찰 개혁. 이것은 말로는 당연히 되지 않는 것이다. 권력이 정치적으로 검찰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다. 그리고 검찰은 권력에 늘 고개를 숙여 왔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말단 경찰관들은 여전히 오늘도 고생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순찰을 돌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주취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정치 경찰이 문제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듯이 정치에 빌붙는 수뇌부가 문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 계속 해봐야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표창원씨가 객기든 용기든 그렇게 조직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지만 그전과 비교해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제길!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라는 생각은 더더욱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회가 조금 더 좋은 사회, 상식적인 사회,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 강자가 마음대로 그 힘을 휘두를 수 없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몸을 으깨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역사라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이다.

 

 

“분명히 달라집니다. 제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정의는 때로는 천천히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거잖아요. 과거를 보면 알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그래요. 3.15 부정선거도 그랬어요.” (p.423)

 

표창원씨는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3.15 부정선거도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는 제대로 본질이 밝혀지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의는 더디지만 드러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힘으로. 그래서 그의 말대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객기가 모여서 용기가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농구 써클에서 여학생들의 함성 소리를 듣기 위해 기꺼이 선배를 밀치던 객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나이를 먹고 사회에 순응하게 되고 수많은 정의의 패배를 목도하면서 객기는 사라졌다. 표창원씨와 같은 객기를 봐도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세상은 변한다. 정의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더디게 오기도 하지만 표창원씨의 말대로 반드시 온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기대마저 없다면 한국 사회의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불쌍하고 안쓰럽다.

너와 나의 객기가 모여서 용기가 된다. 제발, 너무 오래 무기력해지 말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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