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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직전에 고(故)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내용인「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읽었다. 명확하게 죽음이 규명되지 않은 채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론 내려진 김훈 중위의 죽음은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분단 상황이고 군이라는 곳이 폐쇄적인 집단이라 하더라도 현역 장교의 죽음이 16년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눈이 갔는지도 모른다.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제목자체가 가슴에 와 닿았다. 군대가 없는 나라도 아니고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표현에는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애당초 군대라는 제도가 필요 없어서 군대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군대가 있었지만 이후에 군대를 버렸다는 의지가 부러웠다.
이 이야기는 코스타리카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우연히 알게 된 코스타리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에 코스타리카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고 <군대를 버린 나라>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코스타리카는 낯선 나라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어디쯤에 있는 나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회과부도를 거의 외울 정도로 지도를 들여다봤던 나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나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봐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949년 11월 7일 새로운 헌법이 반포, 시행되었다. 이것이 현재 코스타리카 헌법이다. 제12조에 ‘항구적 조직적으로 군대는 금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무장 헌법’은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p.60)
책에는 코스타리카가 헌법에 군대 금지 조항을 포함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는데 사실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재미가 없는 부분이었다. 식민 지배를 벗어난 후 대부분의 피식민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군부 독재 시절을 겪고 쿠데타를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 후 어쨌든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버렸다’. 군대를 없앤 것도 아니고 ‘버렸다’ 일본이 2차 대전 후 타의로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헌법을 제정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들 스스로 군대를 ‘버렸다’. 처음부터 너무 평화롭고 국민들이 온순하고 주변 정세가 아늑하기만 해서 군대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인접한 국가들은 군부 독재세력이 창궐하고 있고 턱 위에는 세계의 깡패 미국이 있다. 군대를 가져도 더 가져야 할 상황인 나라가 군대를 ‘버렸다’
“본래 내가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나라의 시스템도 정책도 아니고 군사적 장비도 아니었다. 코스타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사고방식, 곧 가치관과 문화에 흥미가 끌렸던 것이다.” (p.6)
“외무부 직원은 우리에게 ‘코스타리카가 왜 평화로운지, 그 비밀을 아세요? 그것은 빈곤과 고립이지요.’ 라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 (p.27)
단순히 군대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에 흥미를 가진 저자는 코스타리카에서 공부하고 살면서 그들의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를 발견한다. 여전히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빈곤을 겪고 있고 중남미와 미국의 견제를 당하고 있지만 코스타리카 국민들과 정부는 군대를 가지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인은 어디를 향해 가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그것이 ‘푸라 비다 (Pura vida/Pure life)'라는 말이다.”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과 인생을 좋다고 인식한다. 아등바등 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는 삶의 태도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군대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군대란 과대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p.201)
Pura vida. 푸라 비다. 코스타리카 전체에 흐르는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그대로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체현된 것이다. 단순히 군대가 없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자원을 개발해 무역을 하려 하지도 않고, 아등바등 교육에 투자해 엘리트들을 양성하려 하지도 않고, 현실에 닥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호단체에 손을 벌리지도 않는. 그런 순수한 삶. 소박한 삶. Pura vida. 사실 내가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외국인을 만나기 전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개인적인 차이가 아니라 한 국가의 국민 전체가 가진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처음 몽골을 여행할 때 나는 몽골 현지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나보다 7살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고 마침 여름 방학을 맞아 조카 두 명이 그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둘 다 여자아이였는데 큰 아이는 13살이고 작은 아이는 7살 이었다. 밤늦은 시간 도착해서 그날은 바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몽골 형이 차려 준 아침을 먹은 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조카 아이 둘이서 상을 다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형과 누나는 당연하게 시키고 아이들도 싫은 내색 없이 뒷정리를 했다. 사실 한국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방학을 맞아 삼촌에 집에 온 어린 조카에게 밥상 정리와 설거지를 시킬 삼촌과 숙모가 있을까? 한두 번 아이들 교육차원에서 시킬 수도 있겠지만 몽골 아이들은 달랐다. 그 집에 있는 내내 밥상 정리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대청소 때에도 주어진 역할이 분명했다. 오후 늦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둘을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서 놀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설거지하기 싫지 않냐고. 그랬더니 오히려 그런 것을 묻는 자체가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하는 거라고. 집에서도 그렇다고. 그랬다. 나는 반도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섬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고립되고 보수적이다. 그 아이들은 대륙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대륙적 기질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나니 한국과 몽골이 이렇게 다르구나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듯이 한국과 코스타리카가 다르고 일본과 코스타리카가 다른 것이다.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그들의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애면글면 파내지 않아도 지금의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누리고 즐기며 사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하고 바쁘게 뛰어 다니며 밥도 초스피드로 먹어야만 했던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란 코스타리카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함이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각 정당의 깃발이 내걸리고 자동차도 정당의 미니 깃발을 펄럭이며 거리를 달린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복장에도 정당의 색깔이 크게 늘어난다. 녹색, 백색, 적색, 청색, 황색의 원색 계통의 색을 이용한 것이 많고 눈에 잘 띤다. 정당의 깃발을 들고 있지 않아도 옷 색깔을 통해 어느 당의 지지자인지 알 수 있고 이렇게 각자 알아서 지지정당을 홍보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지지 정당을 직접 선전하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이런 것이 ‘정치 활동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여지고 중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88)
나는 한국에 살면서 이런 선거를 겪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도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부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선거다. 국가적인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상한 일들이 생기고 대통령을 뽑은 선거를 한지 11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선거에 대한 의혹이 많은 곳이 한국이다. 한국에서도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선거 분위기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고 그 정당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 차에 꽂은 채 운전을 하고 혹시 내와 다른 색깔의 옷과 깃발을 발견하더라도 우르르 몰려가 방해하거나 비난하고 비판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그런 선거 분위기. 절대로, 결코, 단언컨대 나는 죽을 때까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부모들은 선거철이 되면 여러 집회에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한다. 집회라는 것도 확성기를 앞에 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하고 그냥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코스타리카의 선거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하고 신선한 선거 분위기를 체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모였지만 다음의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 차츰 관심을 가지게 될 테고 그로 인해 새롭게 다가 올 다음 선거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중대사인 선거도 그들만의 방식대로 ‘즐거운 것’으로 재생산된다. 그렇다 보니 ‘평화’와 ‘인권’이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무척 친숙하도 한다. 비록 상대적 빈곤이 실재하고 여러 난관에 직면한 현실이지만 오랜 시간 그들 몸속으로 체현된 ‘평화’와 ‘Pura vida'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그들의 방식이자 문화가 되었다.
흔히 코스타리카와 몽골 하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몽골을 여행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 대다수는 ‘우와~ 거기 좋죠. 초원도 있고 하늘 정말 멋있겠다.’ 라는 반응을 한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흐르는 가치와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와 몽골은 한국과는 무척 다르다. 단순히 경제규모나 GDP, GNP 규모로만 그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저급하고 저질적인 판단 기준이다.
몽골의 어린 아이들이 삼촌 집에 가서도 당연하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처럼 코스타리카에 군대가 없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의, 일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낯설고 신기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일상이고 삶인 것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도 군대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군대보다 평화를 택했고 경쟁보다 함께 즐기는 것을 택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평화롭고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상한 마무리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도 군대를 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한다. 정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