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한 인권운동가가 13년 동안 추적한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숨겨진 진실
고상만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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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소초원 하나가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초장님~!! 큰 일 났습니다. 전방에 총기 난사 사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해가 뜨기도 전에 소초로 복귀한 후 잠시 쉬고 있던 중이었는데 평소 장난이 많은 녀석이 얼굴이 하얘진 채 내 방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다. 급히 소초원들의 내무실로 뛰어가 확인한 TV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방 GP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서 8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범인은 GP에서 함께 생활하던 김모 일병이라고 했다. 사고가 일어난 전방 GP와 내가 근무하고 있던 후방 해안소초의 거리를 수백Km에 달하고 근무하는 형태도, 위험을 마주한 정도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같은 군복을 입고 있고, 폐쇄된 곳에서 독립 부대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였는지 아무튼 TV 화면에서 모두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순서이듯이 일과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급 부대들로부터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그리고 이후 몇 개월 동안 수많은 상급 부대들로부터 무차별적인 검열 및 지도를 받았다.

3년 6개월의 군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 된다. 해안 소초로 들어가 밤을 새며 해안 절벽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만으로도 군 생활은 충분히 힘들었는데 GP사건 이후 근무 취침도 하지 못하고 소대원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상급부대에서 검열을 나온 사람들은 뭐 하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피곤은 쌓이고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초에 파견을 나온 타 중대 중화기 담당 병사가 소초장인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주간 근무를 하고 있으면 종종 소초 막사를 향해 자신의 중화기 방아쇠를 당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 하고 바로 상급부대로 보고 했다. 상급부대에서는 바로 그 병사를 인근 군 병원으로 호송했고 몇 달 뒤 그 병사가 의병 제대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몇몇 병사들은 신도 울고 갈 연기였다며 뒷담화를 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2-3일에 한 번꼴로 같은 병사와 면담을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상급부대에서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보통 3개월의 소초생활 주기보다 훨씬 긴 5개월 동안의 소초생활을 마친 그 날 밤 중대장, 중대행정관, 동료 소대장들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나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그대로 몸으로 부어댔다.

 

 

“도대체 김훈 중위가 죽은 그날, 1998년 2월 24일 241GP 3번 벙커 안에서 발견된 그 낡고 허름한 철모는 누구의 것인가? 나는 그 답을 듣지 않고서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이대로 묻을 수가 없다.” (p.212)

 

이 책은 이미 유명한 책이다. 고(故) 김훈 중위에 대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송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고상만씨는 고(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도 엄청난 노력을 한 사람이다.

 

 

“국방부는 끝내 자살로 결론지었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법원은 초동수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사건의 진실을 밝힐 권한이 없다 하여 재판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 뒤 설치된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진실규명 불능’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싸우느라 벌서 13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김훈 중위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p.7)

 

그런데 결론은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한다. 자살, 사고사, 타살로 명확하게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한다. 뭔가 앞과 뒤가 맞지 않다. 더군다나 민주정부 시절 대통령의 직속 기구로 꾸려진 곳에서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미약한 성과가 있다면 당연히 자살로 판단되었던 사건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정도의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김훈 중위의 유족과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저자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결론이다. 그래서 김훈 중위가 죽은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3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쳤던 군. 그 군에 배신을 다한 김척 장군은 결국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p.12)

 

더군다나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다. 별을 세 개나 달고 전역한 예비역은 전역 후에도 대단한 명예를 가진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한국군에서 별을 세 개나 어깨에 달았다는 것은 능력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군대 내에서도 예비역 중장은 엄청난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예비역 중장의 아들의 죽음이 아직도 명확하게 결론나지 않고 여전히 의혹투성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악몽과 같았던 소초장 생활을 마무리 하고 운 좋게 사단 본부에 전출을 가게 되었다. 2005년 초겨울이었다. 사단 본부에서 내가 속했던 부처는 작전분야였고 내 임무는 평시 상황 유지였다. 늘 전화 대기를 해야 했고 사단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유지하고 보고하고 브리핑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군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았다. 다른 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정리하기도 했는데 거의 매일 사고가 일어났다. 인사사고에서부터 불륜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했다. 어쩌다 TV에 보도되는 군 관련 사고는 실제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비해 몇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처럼 장교로 복무하다 보면 이런 저런 소식을 많이 듣게 된다. 내가 소초장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에서도 내가 전출오고 난 몇 개월 후 병사 하나가 근무 중 자살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만큼 군 생활, 특히 장교로 하는 군 생활은 죽음과 가까울 때가 많았다.

37년 동안 군 생활을 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그의 군 생활 동안 엄청나게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그 죽음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신의 아들에게 닥쳤을 때 그가 겪었을 고통과 아픔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뭔가 아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아 물어보고 알아봤지만 예비역 중장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기 전,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도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전체 군에 누가 되지 않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의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최선이었지만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김훈 중위는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 목숨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의 목숨이 살아오지 않는 대신 더 많은 목숨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짓밟힌 한 사람의 인권을 규명해내는 것, 그 진실을 밝혀내는 건 그와 같은 형태의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7)

 

저자인 고상만 조사관의 말이 맞다. 진실을 밝혀낸다고 해서 죽은 김훈 중위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16년이 지난 일이고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진 일이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죽음 이후 군과 정부, 국가 권력에서 보여준 행태는 저급하기 그지없었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하려 하세요? 전쟁이 나면 장군도 팡팡 나가떨어져 죽는 마당에……. 거 쓸데없는 일 그만하세요.” (p.50)

 

특별조사단이 꾸려졌지만 맞지 않는 증거들을 조악하게 논리로 얽어 유족을 두 번, 세 번 아프게 할 뿐이었다. 중장이나 지낸 사람이 전체 군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고상만 조사관은 김훈 중위와 같은 비참한 죽음이 또 다시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일에 뛰어들고 죽기 살기로 부딪힌 사람이다. 여전히 군에서는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고 살고 있을 뿐이다. 단지 군부대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꽃다운 이십대의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죽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돈 봉투를 내미는 자본 권력이 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일정 정도 진보된 사회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이런 억울한 죽음은 여전할 것이다. 내 일이 아니고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일이 아니면 사실 찾아서 관심을 쏟기가 어렵다. 이런 일은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식의 일, 내 동생의 일이라면 평생을 두고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와 국가라면 이런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그래서 마음 졸이지 않고 내 자식과 내 동생을 군대에 보낼 수 있어야 하고 국내 최고 재벌의 공장에 취직한 자식과 동생과 친구를 마음껏 축하해 줄 수 있다.

 

 

“우리는 특조단의 주장과 다른 노 박사의 답변에 대해 특조단에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특조단과 노 박사 가운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우리의 해명 요구에 대해 특조단은 더 이상 어떤 말도,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p.166)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애초 군과 특조단이 발표한 수사 결과(자살)를 180도 뒤집을 수 있는 법의학 권위자를 초빙했지만 군과 특조단은 변하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증거와 결론이 쌍방으로 부딪혔지만 결국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군과 특조단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출간되던 3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언제 다시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 그런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군과 당시 특조단은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신들의 증거와 논리가 진실이라는 것을 굽히지 않을 것도 뻔하다. 어쨌든 유가족과 진상규명을 위해 애쓴 저자와 많은 사람들은 또 다시 고통을 겪어야 한다. 혹시 제대로 된 진상을 규명한다 하더라도 고통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독립된 소초에서 소초장을 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감이었다. 소초에 투입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행동과 심리가 소초에서 두드러진 병사들이 있었다. 외로움과 고립감, 두려움이 겹쳐지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 징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실제로 겪어 보았다. 나는 정말 다행히 짧은 군 생활 동안 인사 사고가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 특히 군대에서 그런 것은 억울하고 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역을 한 후에도 해안소초나 전방 GP에서 인사 사고가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고통스럽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여전히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생떼 같은 청춘들이 군 입대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청춘들은 건강하게 전역을 하지만 오늘도 군 생활 중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는 청춘들도 많다. 당장이라도 분단이 해체되고 징병제가 폐지되어 입대하고 싶은 사람이 지원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국가와 군은 최대한 청춘들이 다치지 않도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국가와 군에 헌신하는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혹시 불행한 사고나 사건을 당했다면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를 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분단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강제로 군에 청춘들을 끌어 모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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