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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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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는 송강호씨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배우는 최민식씨다.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보고 팬이 되었다. <파이란>이 개봉된 바로 다음 해 <취화선>이 개봉 되었다. 당시만 해도 멀티플렉스 극장이 거의 없었는데 나는 학교 강의도 빼먹고 아침 일찍 영화를 보러 갔다. 스크린 가득한 수묵화와 같은 화면에 혼이 빠졌다. 거장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의 빼어난 테크닉에 2시간을 넋을 놓았다. <취화선>을 보게 된 계기가 오원 장승업이라는 화가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 회화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배우 최민식이 너무 좋아 찾아 본 것이다. 조선 후기 오원 장승업이라는 술주정뱅이 화가의 삶을 다룬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었다. 유호정과의 정사신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기와집 천장에 올라 앉아 술을 들이키며 오열하는 오원의 모습이었다. 뭐가 그렇게 분노가 많고 쌓인 것이 많은 지 궁금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10이 훌쩍 지나서야 오원 장승업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 「명작순례」는 유홍준 교수가 썼다. 유홍준 교수는 이미 이름 자체로 브랜드가 된 사람이다. 그의 책은 믿고 본다는 얘기다.

 

 

“한 화가가 어떤 계기로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사회적·예술적 배경이 있었으며, 화가의 예술적 노력과 특징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액면 그대로 친절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p.4)

 

유홍준 교수는 머리말에서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감상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쉬이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다. 사람들은 유홍준 교수를 통해 오래전 유물과 그림과 글씨를 이해한다. 그런데 아주 객관적인 자세로 친절하게 제시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머리말이 남달랐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평론가들 중 기고만장한 이들이 있다. 미학을 전공했거나 영화를 전공해서 당연히 대중의 눈높이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거의 대부분 대중의 눈높이와는 다른 높이에서 영화를 평론한다. 마치 ‘집단심리로 우르르 몰려가는 너희 무식한 대중들아~ 그 영화는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라며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반드시 대중과는 다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싫다. 무척이나 싫다.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이 책의 서두를 통해 누구보다 고(古)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보다 고(古)문화를 현대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평론가로서의 겸손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이 좋다. 자신 없으면서도 아는 척하려고 어설프게 떠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 <취화선>에서는 이 두 그림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정확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왕실에서 인정하는 화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화원보다 기가 막힌 그림을 그리는 오원의 역사를 최민식의 연기를 통해 보면서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알려져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분의 콤플렉스를 술로 풀며 취한채로 멋들어지게 붓을 놀리던 장면도 기억난다.

 

 

“조선시대 회화사에는 3대 기인이 있다. 17세기 인조 때 연담 김명국, 18세기 영조 때 호생관 최북, 19세기 고종 때 오원 장승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화가로서 타고난 천분을 갖고 있으면서 환쟁이 또는 중인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기행을 일삼았고, 술로써 자신을 달랬던 주광이었다는 점이다.” (p.42)

 

책을 통해 조선시대 회화사의 3대 기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연담 김명국과 호생관 최북은 처음 들어본 이름들이다. 1세기씩 떨어져 조선시대를 풍미한 기인들이다. 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신분적 제약 말고도 그로 인해 벌인 기행과 주광도 있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유홍준 교수는 책에서 이들 기인들을 결코 시대의 천재화가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 <취화선>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영화에서는 오원 장승업의 기행과 주광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신분적 제약과 통념을 깨뜨리지 못한 시대의 천재로 그려내는 것에도 중점을 둔다. 그래서 나는 오원이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화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코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소재가 진부하고 상투적이라고 한다. 주어진 소재를 거침없이 잘 그려내어 명성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 정신을 발현한 화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큰 명성을 얻었지만 무절제한 성격 탓으로 무성의한 작품도 남발하였다고 한다.

 

 

 

호생관 최북, 오원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회화사의 3대 기인인 연담 김명국이 <달마도>를 그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달마도가 그려진 수많은 달력과 모조품을 보면서도 설마 <달마도>를 그린 이가 조선시대 화가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마도>의 달마대사의 생김새가 전혀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고승이나 신선쯤으로 생각을 해서 당연히 작가도 중국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연담 김명국의 그림이라고 한다.

 

 

“1643년에 통신사가 또 가게 되었을 때 일본 쇼군의 막부에서는 화원은 ‘연담 같은 사람이 오기를 바람’이라는 특별한 공식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p.44)

 

연담 김명국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1636년 조선통신사로 선발되어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필치의 그림은 온 나라를 물결일 듯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기량을 일본에서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그래서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7년 뒤 통신사가 재차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일본에서 미리 연담이 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재 일본에 전하는 연담의 유작이 10여 점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한 화가였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 연담 김명국은 유홍준 교수의 표현대로 ‘한류 화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조선에 돌아온 다음에는 다시는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여전히 술주정뱅이 환쟁이로 술독에 파묻혀 기인으로 살아가야 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데 그 운명이 그를 받아주지 않은 사회가 만든 것인지 애당초 포기하고 자멸해 버린 연담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에서 그의 그림을 알아보고 인정하여 사랑한 것만큼만 그를 살폈다면 더 대단한 작품들을 후세까지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보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책에 실린 많은 그림과 글씨 중 개인소장과 재벌가 미술관 소장품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오원 장승업의 작품 <수리>도 삼성 리움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역시 대단한 삼성이다. 재벌가 삼성의 비자금을 세탁하는 용도로 국보급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썰이 한때 풍문처럼 떠돌았으나 뭐 확인된 바가 없으니 모를 일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것’이었다. 유홍준 교수의 쉬운 설명에도 다소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옛 것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도 배운 적도 없고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도 흔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책에서 소개한 여정을 따라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시간과 정성만 들이면 시적으로 표현한 그 유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명작순례」에 실린 작품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루했다. 그림은 좀 낫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옛 글씨는 이 글씨가 저 글씨 같고, 저 글씨가 이 글씨 같았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취화선>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고 <달마도>의 작가가 조선 화가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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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아가리 - 홍세화, 김민웅 시사정치쾌담집 울도 담도 없는 세상 2
홍세화.김민웅 지음 / 일상이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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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받으며 오랜 기간 파업을 한 철도노조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양가적 입장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지상파TV는 물론 조중동 신문과 종편에서는 연봉 6천만 원을 받는 귀족 노조의 파업이라는 프레임으로 파업 기간 내내 떠들어 댔고 실제 파업의 주체인 철도노조와 SNS상의 여론에서는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에 대한 반대의 프레임으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 땅 안에서 사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귀족노조가 제 밥그릇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생떼를 쓰는 것으로 인식했고 어떤 사람들은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틈만 나면 시도하려던 공기업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를 응원했다. 어떻게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완전히 상극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언론환경의 편향성, 노동운동에 대한 불신 등 이야기 하려면 많은 원인을 댈 수 있겠지만 속 시원하게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석기 사태로 인해 가뜩이나 발붙일 곳 없던 진보진영이 매물 급으로 넘어가버렸고 현재 대학생들을 위시한 젊은 층의 많은 수는 극도로 보수화되고 파편화되면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안과 굵직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고 들을만한 시간과 여유조차 허락하고 있지 않는다. 이것이 실정이다.

이 책 「열려라 아가리」를 구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제목의 말초적 자극에 더해 홍세화라는 이름 때문이다. 한때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드물게 오랜 기간 프랑스의 정치·사상·문화적 추세를 익히고 돌아와 지금은 고유명사가 된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소개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완전히 풍비박산 해 일어설 기운도 없던 진보정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그때도 좀 의아했다. 진보정당의 당원인지도 몰랐고 그가 보여준 활동 자체가 미비(매스컴을 통해 알려진)해서 정당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진보정당의 당대표가 된 홍세화씨를 보면서 당시에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단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을 당대표에 앉힌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홍세화씨의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었다.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앞서 말한 철도노조를 대하는 비상식적인 한국인들의 양가적 태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어 감사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조가 말하고 있듯이 민주공화국인데,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의 공교육의 일차적 소명은 모든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형성하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해야 할 가치는 질서나 국가경쟁력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공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132)

 

이 책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이자 진보적 기독교학자로 유명한 김민웅씨와 가진 인터뷰를 엮었다.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얼마나 편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자체를 그대로 고등학교 교과서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가 용이했다. 가장 인상 깊고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주제는 <국가의 공공성>이었다. 헌법 1조에 명시된 대로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해방 후 미군정을 거치고 건국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국가이념과 국가수립과정을 학습을 학습하지 못했다. 일제식민지 내내 봉건적 사회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벼락같이 찾아 온 일제의 패망이후 수십, 수백 개의 이념 투쟁장이 되었던 나라는 몇몇 정치인과 외세에 의해 틀을 짰다. 그 과정에서 일반 백성 혹은 국민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 홍세화씨가 인터뷰 내내 가장 강조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육과 학습인데,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정치이념과 공화국이라는 국가구조에 대해 이미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이 탄생한 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공화국이 뭐지? 제대로 된 정의가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니 초·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에서조차 헌법 1조가 주창하는 내용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것 같다. 어설프게 타인과 타세력에 의해 국가가 만들어지고 오랜 기간 독재정권 하에서 왜곡된 정치를 경험하게 된 한국인들에게 민주공화국은 낯설다. 특히 홍세화씨가 이야기하는 민주공화국의 가장 핵심 이념인 민주주의와 공공성, 그중에서도 공공성은 아직도 제대로 공론화 되지도 못한 개념이다. 민주주의야 오랜 독재를 겪으며 투쟁하고 싸우며 쟁취했지만 공화국이 지녀야 할 핵심 가치인 공공성은 출발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노조가 그들의 논리대로 6천만 원이나 받는 귀족 노조인데 그 추운 겨울에 길거리로 나와 20일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파업을 했던 이유를 그저 철밥통 지키기 위한 생떼로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귀족 노조가 사측이 민영화를 하건 새로운 KTX를 만들건 상관하지 않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받으며 일하면 그만인데 왜 거리로 나왔냐는 것이다. 바로 공공성의 확보가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늘 질서유지와 국가를 위한 헌신과 충성뿐이었다.

‘우리나라는 좁은 영토와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수출에 주력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정부의 주도하게 움직여야 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것은 굳게 다짐하는 일만이 일등국민이 된다.’라고 배웠다.

그래서 어설픈 질문과 국가에 대한 혈기어린 비판은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확립된 민주주의 아래서 자유로운 표현이 허락되고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의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하며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국가다. 이것이 공공성이다.’라고 가르쳤다면 철도노조를 보고 귀족노조 타령하는 이야기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공공성의 담보와 보장은 <민주공화국>이라 간판을 내건 국가라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을 너무 늦었지만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민영화는 흔히들 민간이 경영하는 방식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여기에는 ‘자본에 의한 공공재산의 사유화’라는 본질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p.76)

“그야말로 공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사적인 이익을 우선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배반한 세력이 실제적인 지배 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p.83)

 

민주공화국에 속한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공공재를 다루는 공기업의 적자운영에 대해 국가와 보수언론, 보수정당은 비판한다. 적자운영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민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물, 전기, 도로, 철도, 가스 등의 공공재산을 운영하는 공기업이 왜 흑자가 나야 하나? 적자가 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과 보호를 위해 공적인 영역으로 놔두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아주 기본적인 셈법부터 혼란을 심으니 <KTX적자 몇 백억>, <한전 성과급 잔치>라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제목에 넘어가는 것이다. 방만한 경영과 경영과정에서의 비리와 불법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공공재산조차도 자본의 힘에 그대로 놓이게 되면 결국 이득을 취하는 것은 자본이다. 그리고 그 자본에 기생하는 정치인과 언론, 특정세력과 인간들이다. 어차피 돈 있는 사람들에게야 KTX요금이 몇 배 더 오르고 가스요금, 전기요금 더 오르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본질적 원인 중 하나는 역사청산의 문제이다. 한 번도 공공의 영역과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공론화 되지 못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은 이어져 왔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앞서도 말했듯이 홍세화씨는 교육과 학습을 수차례 강조한다.

 

지난 대선 전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부르짖었다.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세수의 부족과 글로벌 경제상황의 어려움이라는 하나마나한 변명 하나로 싸그리 집어 던졌다.

 

“복지는 사회적 부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의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금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면, 증세하게 되면 분명히 개인에게는 부담의 증가라고 여겨지지만 복지 문제를 생각하면 이익입니다.” (p.66)

 

복지에 대해서도 철도노조를 바라보는 시각만큼 양가적 태도를 갖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대선 전후로 수많은 책과 언론에서 복지에 대한 설명과 예가 쏟아졌는데 이 책에서만큼 확실하게 증세와 복지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100만 원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10만 원의 세금을 냈다가 20만 원의 세금을 내면 당연히 증세의 부담이 커집니다. 그런데 주택, 의료, 교육에 지출했던 비용이 각기 10만 원으로 총 30만 원이었는데, 이것이 만일 복지혜택에 따라 반으로 준다면 15만 원이 되고 세금까지 포함해서 35만 원이 되겠지요? 그러면 기존의 40만 원보다 5만 원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p.66)

 

 

‘세금을 더 내고 더 많은 사회적 혜택을 누리게 되면 중요한 삶의 변화가 오게 되고 이것이 바로 복지’라고 말한다. 당장 증세를 하게 되면 바로 다음 달 추가로 지출되는 세금이 많아지고 이것에 대한 일시적인 불편함과 불만은 당연하다. 그런데 책에서의 설명대로 생활을 영위하는 데 쓰던 비용이 늘어난 세금에 포함된다면 가계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일부 자치단체의 시범적 시행으로 달성할 수 없는 담론이다. 국가 전체가 공공의 영역을 담보하고 보장한다는 확실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당장 내 돈 몇 십만 원을 더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억울함과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아니라 다 같이 더불어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공론이 확보되어야 한다.

쉽지는 않은 일로 보인다. 암울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0년을 근속하며 죽어라 일해야 1년에 6천만 원을 연봉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귀족노노 운운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취업준비생 내지는 20대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 될지도 모를 노조를 향해 비난을 던지는 청춘들의 암울함과 사적욕망이 비록 국가의 책임이라 할지라도 ‘공공성의 보장과 공론화’는 그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보고 누구하나 방향을 권해주는 이 없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사적욕망으로 구조화된 체제를 분쇄시키고 떨치고 일어나야 할 청춘들이 자기계발에 함몰되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릴 힐링에 책잡혀 있다. 아무리 수구보수진영이 강하고 기울어진 언론환경이 심각하다 해도 제대로 된 진보진영이 자리 잡아 저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를 확대시키고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한다면 ‘아! 저런 길도 있구나~’ 숨 쉴 틈이라도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창조경제 등의 프로그램은 이름만 그럴싸하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진보 진영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p.27)

“전체 노동자의 약 5%에도 이르지 못하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전체 노동자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진보 정당이 민주노총 위에 서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p.31)

 

아무리 집권세력이 헛발질을 해도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흔들 수 있는 세력은 물론이고 대안도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겁도 없고 뻔뻔하게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통진당 이석기 사태를 통해 진보진영은 이석기처럼 종북세력이라는 프레임이 이전보다 더 확고해졌다. 진보 개혁적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민주노총과 진보 정당의 관계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가장 큰 개별노조라는 것 정도? 전체 노동자의 5%밖에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놀랍다. TV에서는 맨날 민주노총 이야기만 하니 일반인들은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그렇지 않습니다. 95%의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노동자가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진보 정당 혹은 진보 세력이 없으니 알 수 없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노동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 노동자면서 자신을 노동자라 취급하면 싫어한다. 얼마 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노동자는 OO이다 라는 물음에 ‘노동자는 거지이다, 노동자는 되기 싫다.’등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국가가 심어주고 그간 노동자들 특히 노동운동 세력이 보여준 모습이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조차 노동자가 환영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을 낳은 것이다. 진보 정치 세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봉합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저 선거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책에서는 강하게 비판한다.

 

 

“총선과 대선 당시 진보 정치 세력이 통합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의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했어야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간단히 말해, 세력을 통합하는 게 아니라 의제를 내걸고 연합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p.41)

“진보 진영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제가 현실적으로 부닥치고 경험한 모습은 진보는 모두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p.116)

 

홍세화씨는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연합을 주장한다. 매번 선거를 위해 후다닥 통합하고 이기면 국회 몇 자리 확보하고 지면 또 다시 사분오열 되는 현실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왜 통합이 막무가내 식으로 주장되었을까요? 하나는 조급증 때문이라고 봅니다. 진보의 미덕중의 하나로 저는 기다림을 꼽습니다. 물론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펼쳐나가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p.117)

 

그런데 홍세화씨의 주장을 읽으며 밀려오는 답답함은 감출 수 없다. 그의 시각에 나도 동의한다. 조급하고 무리하게 통합에 목을 맨 후 겪은 후폭풍은 늘 아팠다. 그런데 그가 진보의 미덕으로 꼽은 기다림이 서구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좋다. 맞는 말이다. 그냥 넋 놓고 기다리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라고. 갑자기 자기계발서적인 친절한 자기합리화를 권유하시면 어쩌자는 건가? 이명박 정권 후기 나는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이 싸 놓은 똥이 너무 많고 광범위해서 다음 정권은 분명 그 똥 치우기에 급급할 것이다. 야당이 차 차기 대선을 노려야 한다.’ 라고. 그런데 이거 웬걸!! 박근혜 정권은 폭격기에서 미사일을 쏟아 붓듯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똥을 투하하고 있다. 그런데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앞으로의 4년도 암울한데 도대체 언제 진보 정치 세력이 제대로 힘을 길러 수구보수 세력과 맞설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것인지 홍세화씨가 너무 낙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다. 막무가내 통합은 이제 집어치워야 한다는 것에는 백번 동의한다.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유연한 연합을 해야 한다는 것에도 천 번 동의한다. 그러데, 그런데 기다림이라는 진보의 미덕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하며 산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 이른바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정당 활동을 하고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공염불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저들의 허구성을 끊임없이 비판적인 눈으로 읽어내는 힘을 길러야 하겠죠. 그래야 그들의 허구성이 무력화되겠죠.” (p.84)

 

홍세화씨의 말대로 끊임없이 비판적인 눈을 가지고 현실을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일마저 우리의 책임이라면 너무 버겁다. 좋은 글, 멋진 책, 설득력 있는 말. 다 좋다. 제대로 자리 좀 잡아서 학습해주고 교육해주며 설득해 주면 더 좋겠다. 예전처럼 무지몽매한 대중을 일깨워 선도하겠다는 구린 방식도 다들 각자 잘 하라는 샌님 같은 방식도 일반 국민과 대중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대중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자세를 낮추고 공감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이 반드시 확보하고 보장해야 할 공공성의 개념조차 낯선 대다수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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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즉ㄷ 2014-11-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가 있다. ‘웨스트 윙’이라는 엄청난 미국드라마(미드)이다. 시즌7을 끝으로 종영한 이 드라마는 작가인 ‘아론 소킨’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면서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웨스트 윙’에 이어 대단한 인기를 얻은 ‘뉴스룸’이라는 드라마의 작가가 ‘아론 소킨’이다. ‘웨스트 윙’은 미국 백악관 건물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보좌진이 일하는 사무실의 위치를 말한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임기 초반과 재임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대사가 엄청나다. 일단 여타의 미드나 한국 드라마보다 대사의 양이 많고 철학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장이 많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아직 시즌4를 보고 있어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저런 대통령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의 대통령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이 드라마를 보며 일어나는 유일한 불편함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가고 미국의 것을 칭송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는 왜 미국을 따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중임제라면 4년의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임기를 채워야 하는데 단임제 5년 이다 보니 어떤 대통령들처럼 막가파식으로 밀어 붙여 버리면 아무리 거리에서 촛농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종북세력들이 판을 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비극이다.

이 책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말 그대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의 일을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이 편년체로 쓰였는데 그만큼 월과 일에 따라 세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도 각 대통령의 출생에서 시작해 퇴임으로 끝나는 시간 순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어 편년체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책의 전개 순대로 리뷰도 진행되는 데 각 대통령의 부분에서 인상 깊었거나 기억해야 할 만한 부분을 발췌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이승만 (0p∼127p)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하여 반민특위 요원들을 체포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하여 친일 세력 청산을 외치는 개혁 성향의 국회의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p.88)

 

역사에서 If는 없지만 만약 되돌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나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꼽는다. 식민시절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를 단죄하고 새롭게 민족정기와 역사를 재편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반민특위’였다. 이 법안을 만들고 위원회를 구성하기까지 무척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만들어 냈고, ‘반민특위’에 대한 당시 일반 국민들의 성원도 대단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황급히 한반도를 떠난 공백에 좌·우 이념 전쟁이 펼쳐져 무수히 많은 갈등과 보복과 죽음이 있었다. 구원자로 희망했던 미군정은 오히려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결국 와해시켰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해 ‘반민특위’를 좌파·공산주의자로 몰아 와해시켰다. 식민시절을 겪은 국가의 대통령이 식민국가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든 단체를 와해시킨 것은 이승만이 유일할 것이다. 그것도 없는 일을 가지고 사건을 조작해 용공사건으로 만들어 버리고 단순히 위원회를 와해시키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들을 구속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로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아니, 처벌하지 않았다. 처벌할 수가 없었다. 해방이후 친일파들은 단 한 번도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도 행정수반인 대통령만 다른 사람일 뿐 거의 모든 분야에서는 움켜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상한 교과서가 나오기 시작했고 말도 되지 않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하고 드골 정권이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단죄하고 아직도 그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2014년 대한민국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윤보선(장면) (128∼160p)

“당시 헌법에 따르면 국군통수권은 대통령 윤보선에게 있었다. 하지만 윤보선은 이 통수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 국군통수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엄청난 힘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윤보선이 통수권을 발휘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박정희의 쿠데타 직전까지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윤보선은 제대로 대통령이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박정희 (161p∼242p)

그는 살생부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기 위해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군 내부의 남로당 당원들을 색출하는 일에 앞장섰다.” (p.167)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은 정설이다. 그의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군에서도 남로당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인물이다.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다시 남한에서 남로당 활동을 한 그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불사조로 칭송되고 있는 피닉제, 이인제 의원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만약 피닉제께서 통합진보당에 입당 한다면 좀 달라지겠지만) 그런 그가 군 내부의 정화작업의 리스트 상단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 박정희는 살아남았다.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로당 군인들은 숙청당했다. 같은 만주군 출신인 백선엽의 도움도 있었지만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군 내부 남로당 당원들을 색출하는 일을 도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 사람이다.

 

“박정희의 반란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불개입 지시를 내린 것도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미국에 훨씬 더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p.173)

 

미국은 언제나 그런 나라다. 민주당 출신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한국의 많은 이상주의자들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과 기조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미국은 미국이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다. 멋있는 ‘웨스트 윙’의 바틀렛 대통령도 민주당 대통령이지만 미국 대통령이다. ‘웨스트 윙’에서도 제3세계와 이란, 북한에 대한 바틀렛의 판단은 조지부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토록 잡고 싶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처음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놀이를 하고 있다. 누구를 넘어뜨리고 누구를 세워 올릴지 전 세계에서 보고가 올라 올 것이다. 1960년 박정희의 쿠데타 또한 미국의 불개입과 미온적 태도 또는 암묵적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군부 독재세력을 상대하는 일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지미 카터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며 국민에 대한 인권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박정희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p.197)

 

오바마와 ‘웨스트 윙’의 제드 바틀렛 대통령과 동일한 스탠스를 가진 지미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것도 아닌 인권 문제란다. 박정희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일부 탈북자들과 보수단체, 교회단체에서만 북한 인권을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이명박 이후에는 정권자체가 그것을 걱정하는 것 같다. 북한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박정희에 대한 오마주인가? 모를 일이다.

 

 

최규하 (243p∼252p)

“1995년에 신군부의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증언을 요청 받았으나, 최규하는 끝까지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 (p.250)

 

최규하는 가장 무능하고 우유부단했던 대통령으로 보인다. 그는 10.26이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쿠데타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18년의 독재 기간 동안 쿠데타는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짧디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 적어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퇴임 이후 증언대에서 12.12쿠데타에 대한 진상을 밝혔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사망할 때까지 말이다.

 

 

전두환 (252p∼297p)

전두환 시대는 한마디로 ‘조폭 통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p.286)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군내 사조직의 수장이었으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전두환 시대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는 언론을 통폐합하고 모든 형태의 시위와 노동운동, 시민운동, 학생운동을 탄압했다. 국민들은 철권과 같았던 박정희 독재를 겨우 벗어났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집행했다. 8년 동안의 재임기간은 폭력이었다. 온갖 형태의 비리와 협잡, 유착이 일어났다. 국민들의 눈은 3S로 막아 버리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아름답게, 아름답게 덧칠해 버렸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바로 전두환 정권이다. ‘빨갱이’라는 명찰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면 빨갱이, 입 바른 소리를 하면 빨갱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빨갱이, 대학생들이 모여서 독서 모임과 토론을 하면 빨갱이,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면 빨갱이. 마음대로 잡아가 죽도록 고문하고 두드려 패면 그만이었다.

6월 항쟁 이후 그는 물러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두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는 항간의 무수한 비판과 비난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29만원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기도 하고 여전히 VIP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하다.

그것이 무섭다.

 

 

노태우 (298p∼334p)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하며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로 김대중과 김영삼의 틈새를 공략하였고, 결국 36.6퍼센트의 득표율로 어렵게 당선되어” (p.306)

 

김영삼의 3당 합당과 87년 대선 당시 양김의 분열이 없었다면 노태우는 당선될 수 없었다. 어떻게 신군부의 일부였던 노태우가 전두환 이후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린 시절 ‘보통 사람’,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노태우의 육성 연설이 기억난다. 그때는 정말 노태우가 보통 사람이고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 그의 친구 전두환과 비교해 아주 조금은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엄연한 역사적 죄인이다. 반드시 단죄되었어야 할 역사의 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임기를 마쳤다. 5공 청문회 이후 추징금을 거의 완납하는 성실함을 보이기는 했지만 역사적 죗값을 치르지는 않았다.

 

 

김영삼 (335p∼384p)

“1990년 벽두에 일어난 3당 합당 사태를 두고 지식인들은 ‘야합’이라며 김영삼을 맹렬하게 비난했지만, 김영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군부 세력을 척결하고 문민정부의 기틀을 확립하며 역사의 평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p.351)

 

김영삼의 3당 합당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으로 여겨진다. 3당 합당 이후 신군부 잔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욕망, 즉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그들과 한 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영삼의 정치적 욕심으로 벌어진 3당 합당은 지역적 정치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나마 야권 성향이 강하던 대구과 부산지역이 완전히 여당으로 넘어 갔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 그토록 치열하게 항거하고 싸우던 민주투사의 이미지도 한방에 희석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여당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김영삼의 보름달빵 사건도 지금처럼 희화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뿌리깊이 박혀 있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IMF를 불러 온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많이 일어났던 대형 참사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김영삼의 집권 초기 지지율은 90%에 이르고 서태지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되기도 했었다.

 

 

김대중 (385p∼434p)

“1998년 4월 2일에 보궐선거가 실시되자 한나라당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김대중 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홀대받고 있다는 말로 표를 호소했던 것이다.” (p.404)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된 것이 가장 아쉽다. 역사상 가장 준비가 되었고 자질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늦게 당선되었다. 주변에 신세진 것이 너무 많았고 나라는 IMF이후 거지꼴이었다. 그가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고 거지꼴이던 나라경제를 살려냈으며 처음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한 대통령이었지만 재임 기간 내내 ‘빨갱이’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박정희가 심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물을 주고 수구세력과 보수언론들이 키워 낸 이미지가 사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타계한 만델라 대통령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존경과 칭송을 받던 정치지도자였지만 자국인 한국에서는 그토록 많은 공격을 받았다. 각종 게이트와 아들들의 비리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조금 더 일찍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신세질 일도 덜했을 것이고 좀 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을 텐데…….

 

 

노무현 (435p∼480p)

“9명의 재판관 중에 8명이 위헌 결정에 동의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결정문의 핵심이었다. 국민의 60퍼센트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했다.” (p.452)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으나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p.477)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이 코미디다. 오래전부터 서울이 한국의 수도였다는 관습법을 들먹인다. 아니 헌법재판소에 모인 최고의 판사들이 코미디언도 아니고 ‘원래 서울이 수도였으니 새로운 행정수도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법리적인가? 아무튼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에 국민의 60퍼센트가 환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노무현 정권의 비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까지 받았다. 고졸출신 대통령이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아니꼬웠을까? 김대중에게도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는데 노무현에게는 융단폭격을 가했다. 4대 개혁 입법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모조리 폐기되었다. 같은 당에서조차 비난을 받았고 진보세력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한미FTA와 해외파병, 신자유주의 채택 등의 정책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세력과 사람들마저도 등지게 했다.

“대통령 할 때는 그렇게 욕하더니 지금은 좋대요.”

라고 봉하사저를 찾아와 자신을 부르던 사람들에게 하던 너스레는 농담이 아니었다.

 

 

 

이명박 (481p∼521p)

내용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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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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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몽골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음식이었다. 홈스테이 하는 현지인 집에서도 사막과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들의 게르에서도 반가운 손님에게 대접하는 수태차는 현지인들에게는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과 똑같은 것이다. 차와 우유(원래는 말 젖으로 만드는)로 끓여 내는 것인데, 나는 원래 흰 우유를 못 마신다. 우유가 주는 고소함보다 비릿함이 더 내 미각을 자극해 코를 막지 않고는 넘기지 못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흰 우유와는 또 맛이 다르지만 수태차는 정말 힘들었다. 처음 여행 가서도 줄곧 잘 마시지 못했는데 2년 후 다시 간 여행에서도 수태차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사양하거나 뱉어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반가운 손님으로 나를 대해주는데, 내 입에 맞지 않다고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평소 일할 때도 정장을 입지 않는 터라 가까운 지인들의 결혼이나 잔치가 있어도 캐주얼로 단정하게 입는 편인데, 어쩔 수 없이 양복을 입어야 하는 때에는 정말 불편하다. 목이 꽉 끼는 와이셔츠 맨 위 단추를 잠그고 목을 죄는 듯이 넥타이를 칭칭 감고 빳빳하게 클리닝된 양복을 입고 나서 반짝반짝 닦여진 구두를 신고 나면 정말 불편하다. 운전할 때도 그렇게 불편하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편한 것만 찾아서 할 수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 수 없다.

 

 

이 책 「지구의 정복자」는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분야의 내용이다. 생물학, 진화학, 유전학 등 정확하게 어떤 학문인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문외한이다. 최재천씨가 감수하고 해설을 단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주창한 ‘통섭’학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이 타히티에서 완성한 걸작의 캔버스에 극도로 단순화시킨 이 질문들은 사실 종교와 철학의 핵심 문제들이다.” (p.15)

“이 책에서 나는 과학의 발전, 특히 지난 20년 동안에 이루어진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을 일관성 있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p.19)

 

더군다나 나와 같은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무엇인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명확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늘 고민은 하고 있다. 모순되는 이 말은 내 신앙의 결정체다. 그 누구보다 내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했다.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과 방향성은 한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매일 부닥치는 내 일상과 삶의 선택 앞에서 나는 매번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신앙에 비추어 기준을 정한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유명하다고 하는 학자의 첫 질문에 대해 수긍하지 못한다.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나는 그와 다른 감상을 한다.

나는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종교의 비과학성을 두고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창조과학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에 반대한다. 종교는 종교대로 두고 과학은 과학대로 두어야 한다. 벌써 이 리뷰의 결론을 얘기해 버렸다. 나는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들도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고 다른 진화론에 관련된 책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책을 읽고 자신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구나 생각한다면 신앙을 버리는 게 당연하고 그런 책을 읽고 신앙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 그 신앙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어설프게 무시하거나 어설프게 따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종교는 종교의 영역에서, 과학은 과학의 영역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맞네, 니가 틀렸네 얘기한다고 해서 결론 나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나의 자세는 그렇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던 분야를 읽게 된다는 지적호기심 하나로 겨우 수태차를 들이키고 정장을 빼 입었다.

몇 가지 재미있고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

 

 

“엉성한 수준에서 추정하자면, 현재 살고 있는 개미의 수는 1경, 즉 10의 16승 마리에 이른다. 개미 한 마리의 평균 무게가 사람 평균 몸무게의 100만 분의 1이라면, 개미가 사람보다 100억 배 많으므로, 지구의 모든 개미를 더한 무게는 모든 사람을 더한 것과 비슷하다.” (p.145)

 

저자는 개미를 전공한 생물학자이다. 과학자가 엉성한 수준으로 추정한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구의 모든 개미를 더한 무게가 모든 지구인을 더한 것과 비슷하다는 추정이 놀라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으며 ‘어쩌면 이 개미들이 인류의 종말에도 살아남을 유일한 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개미는 놀랍고 대단한 존재라고 한다.

저자는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을 통시적으로 분석한다.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자세하게 열거한다. 걔중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부분도 있고 처음 들어본 부분도 있었다. 앞에서 소개한 개미는 인류와 더불어 초기 지구의 탄생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함께 해 온 존재이다. 개미는 진사회성 곤충에 속한다고 한다.

 

 

“진사회성 곤충은 약 2만 종이 알려져 있으며, 개미, 벌, 말벌, 흰개미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약 100만 종에 달하는 곤충 중 겨우 2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 소수의 종은 개체수, 몸무게, 환경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나머지 곤충들을 압도한다. 인류가 척추동물 중에서 우뚝 선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진사회성 곤충은 무척추동물 세계에서 훨씬 더 웅대한 존재이다. 미생물과 선형동물보다 몸집이 더 큰 동물 중에서 육상 세계의 진정한 지배자는 진사회성 군총이다.” (p.140)

 

육상의 모든 동물 중 척추동물이 살아남았고 그 중에서도 인간이 지구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언급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수많은 종이 탄생하고 사라졌다. 곤충은 인류와 더불어 살아남아 함께 지구를 정복하게 된 존재다. 그 중에서도 진사회성 곤충인 개미와 벌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벌이 없어지면 지구가 멸망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어떤 과학적 증거에 의해 그런 말이 떠돌다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도 전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꽤 신빙성이 있는 말이라고 한다. 그만큼 개미와 벌과 같은 진사회성 곤충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아마존 우림 지역에서 서식하는 개미들의 몸무게를 모두 합친 것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모든 척추동물들의 몸무게를 모두 합친 것보다 4배 더 많다.” (p.141)

 

아마존 정글 지역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과 스텝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바로 곤충이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개미와 모기 같은 곤충들에 의해 온 몸이 퉁퉁 부어오르는 경우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아마존 우림 지역에서 사는 모든 척추동물들의 몸무게를 합친 것보다 4배나 더 많은 개미가 산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존재다.

 

 

“곤충의 여왕은 로봇처럼 움직이는 자식들을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낳을 수 있었다. 반면에 선행 인류는 개체 사이의 동맹과 협력에 의존해야 했다.” (p.32)

 

그런 진사회성 곤충인 개미와 벌, 그리고 지금 지구의 정복자인 인류는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개미와 벌은 여왕이 있다. 여왕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직 여왕만을 위해 존재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로봇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진화해 왔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거쳤지만 선행 인류는 개체 사이의 분명한 동맹과 협력이 존재 했다. 선행 인류가 살던 그 시대에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였다. 외부 환경과 인간보다 몇 배가 크고 강한 종과 싸워야 했다. 당연히 개체들 끼리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한 무리와 촌락에서 군장 사회를 거쳐 국가에 이르는 문명의 발전은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문화적 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군거성 곤충 집단이 가족으로, 이어서 계급과 분화를 갖춘 진사회성 군체로 발전한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장엄한 방식으로 펼쳐진, 강한 추진력을 지닌 변화였다.” (p.127)

 

그런 선행 인류가 촌락을 이루고 군장 사회를 이루고 국가로 발전하면서 외부환경과 유전자의 변화를 넘어서서 문화적 진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개미와 벌이 진사회성 곤충으로 변화한 과정 또한 재미있고 신선하고 장엄하다. 하지만 인류의 그것 또한 대단한 것이 사실이다. 불을 다루고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문화 형질을 만들어 냈다. 새롭게 창안하거나 전파하고 배웠다. 이 전파와 사용은 곤충 집단이 진사회성 존재로 진화해 가는 추진력보다 더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이후 언어를 찾아내게 되었다. 저자는 책에서 언어를 인류 사회성 진화를 ‘성배’라고 표현하는데, 이 ‘성배’는 역동성의 에너지를 무한대로 끌어 올렸다고 판단한다.

아무튼 초기 지구의 탄생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와 진사회성 곤충이 겪어 온 변화와 진화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과 개미와 벌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쉽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과학과 종교 사이의 갈등사에서 아마겟돈(이렇게 강한 비유를 써도 된다고 한다면 쓰고 싶다)은 지난 20세기에 가장 격렬하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종교의 토대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결과이다.” (p.313)

 

과학자들은 종교의 비과학성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과학의 비종교성에 집착하는 이상한 종교인들도 있다. 나는 그 둘 다에 반대한다. 과학의 발달과 발전이 왜 종교 사이의 아마겟돈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많이 배우고 많이 연구하고 과학적 역량이 월등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종교를 비판하고 그 교리와 맹목적으로 보이는 신앙의 형태를 향해 합리적 비아냥거림을 날리고 그 전체 판을 뒤집어엎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90년대 중반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창조과학에 대해 유사과학으로 취급하며 비과학이라 치부했던 것과 같은 논리로 나는 저 과학자들을 바라본다. 존재론적 형태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하는 분들은 과학을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신앙을 하는 종교인들은 신앙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되고 그 과학으로 성경과 창조론을 깨부숴도,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불티나게 읽히고 팔린다 해도 이미 신앙을 정립한 사람들은 종교를 버리지 않는다. ‘아~ 과학적으로 맞지 않으니 나는 종교를 버릴 테야~’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 생물학, 유전학 책을 읽고 자신의 종교를 버리는 사람들은 그들 자유다. 또한 그런 책을 아무리 읽어도 종교를 버리지 않는 것 또한 자유다. 또한 아무리 신이 있다. 이 세계는 창조되었다. 성경을 믿어라. 아무리 이야기해도 신이 없다고 믿고 창조를 믿지 않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 또한 자유다. 서로의 자유와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 굳이 아마겟돈이 벌어지지 않아도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 가장 배타적이고 교리적이며 맹목적인 보수 기독교계와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행동부터 바꾸어야 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유신론자와 기독교인과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무조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 무시 받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객관적 진리 탐구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종교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과학은 의학이나 공학이나 신학 같은 그저 또 하나의 분야가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 관해 지닌 모든 지식의 원천이다. 과학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수학의 창고이다.” (p.360)

 

더불어 과학에 대한 맹목도 나는 또 다른 신앙의 형태로 이해된다.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이 과학으로 증명될 수 있나? 인간의 모든 삶의 형태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나?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과학자이니 당연히 과학에 대한 맹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과학은 필요하고 편리하며 유용하다. 하지만 내게 과학은 신앙이 아니다. 부정하지 않지만 저자처럼 맹신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영역을 그만 침범하고 공존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정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그냥 무시했으면 좋겠다. 굳이 찌르고 후벼 파 아마겟돈을 일으키는 것이 저명한 과학자들 모여서 컨퍼런스 하며 서로 멋있게 과업을 칭송하며 박수치는 것 외에 무엇에 도움이 되나.

 

 

“윌슨 교수는 그 강연에서 그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지지했던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 선택 이론을 버리고 학문적으로 거의 뇌사 상태에 이른 집단 선택의 품으로 귀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컨퍼런스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이 이를테면 ‘해밀턴교’의 광신도들인데 윌슨 교수가 그 소굴 한복판에서 나름의 개종 선언은 한 것이었다.” (p.372)

 

나는 최재천씨의 해설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이 저명한 학자이고, 그가 이 책을 통해 ‘혈연 선택 이론’을 버리고 ‘집단 선택 이론’으로 귀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설을 읽어야 겨우 책의 주제 정도를 알 수 있는 과학의 문외한이자 과학자들이 그토록 비난하고 비아냥대는 기독교인인 내게 이 책은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는 수태차와 어쩔 수 없는 격식을 맞추기 위해 불편하기 그지없는 양복을 차려 입는 것과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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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

 

 

 

 

 

 

 

 

 

 

 

 

아프리카는 줄곧 피해의 땅입니다. 이런 시각은 패배주의적인 것도 아니고 수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역사이고 팩트입니다. 세계지도도 전적으로 유럽 열강과 북미대륙의 시각에서 편집된 것이지요. 실제로 남미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이 훨씬 넓음에도 우리가 배우고 공부한 세계지도는 유럽과 북미대륙이 훨씬 넓은 것처럼 편집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늘 수난을 받아온 곳입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19세기말 부터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정치.경제적인 수탈에 놓인 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입니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시민의식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아프리카의 국민들과 시민들은 여전히 아프리카를 미개하고 미발전된 곳으로 여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편견은 어디에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입니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갈등 사이에서 형성된 현대 아프리카의 속살을 가감없이 살펴볼 수 있는 책입니다.

더군다나 지은이는 병사, 노동자, 이주민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휩쓸리거나 주체적으로 동참한 개인들의 삶에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근대화, 제국주의, 민족주의, 저항과 탈식민화 과정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아프리카의 핵심적인 과제와 전망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해 이 책만큼 근접해 관찰하고 분석한 책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일독을 권할만한 책입니다.

 

 

 

 

2. <전쟁정치>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현대사, 특히 한국전쟁에 얽힌 역사에 대한 전문가 입니다. 그의 전작 <근대의 그늘>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책은 여전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과 관련된 전쟁정치와 그에 의해 파생된 정치적 명암을 다룬 책입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휴전한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군복을 입고 가스통을 백주대낮에 짊어지고 난동을 부리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이미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이 번갈아 정권을 창출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분단의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종북타령을 하고 있고 그 프레임 하나로 모든 사회적인 비판과 불만의 표출을 때려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의 내부 권력다툼 과정에 대해서 몇주동안 생중계를 하는 방송도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북조선의 뉴스를 전하는 방송도 있는 곳이 이곳,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지속된 전쟁정치 프레임은 자신이 전쟁을 겪지 않았음에도 무조건적인 불안과 공포를 심었습니다. 통일이라는 거시적 담론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감하면서도 전쟁을 주무기로 사리사욕을 챙기는 정치놀음을 하고 있고 그것에 꼭두각시처럼 휘둘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민들입니다. 무조건적인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와 인권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김동춘 교수는 역설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전해 들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3. <누가 민주국가의 적인가>

 

 

 

 

 

 

 

 

 

 

 

 

서화숙 대기자의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지난 대선 이후 한쪽으로 기울어진 언론환경에 대항하고자 출범한 국민TV에 서화숙 기자는 3칼럼을 실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켰고 동감을 얻었습니다. 서화숙 기자는 특유의 냉철하고 차분한 말투와 자세로 토론에 나가기만 하면 대단한 인기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가 속한 한국일보가 중도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 1년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책으로 생각됩니다. 수많은 책이 쏟아졌고 힐링과 비판이 혼재된 혼란스러운 1년을 보내고 박근혜 정부 2년차를 맞는 시점입니다. 여전히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이 떨쳐질 줄 모르고 있고 사회 각 분야의 갈등이 표면화 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과 국민들은 당장 오늘과 내일 일에 몰두하며 빠듯하게 살아가지만 현실 정치와 관련된 각종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 침묵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쏘시개가 제대로 타오른다면 언제든지 배를 뒤흔들만큼 폭발적인 여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민주국가, 민주주의 이런 거시 이념들이 당장 내 삶과 일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착시를 심기 위해 애를 쓰지만 국민들은, 시민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4년의 박근혜 정권에 제대로 대항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며 제대로 된 민주국가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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