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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가 있다. ‘웨스트 윙’이라는 엄청난 미국드라마(미드)이다. 시즌7을 끝으로 종영한 이 드라마는 작가인 ‘아론 소킨’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면서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웨스트 윙’에 이어 대단한 인기를 얻은 ‘뉴스룸’이라는 드라마의 작가가 ‘아론 소킨’이다. ‘웨스트 윙’은 미국 백악관 건물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보좌진이 일하는 사무실의 위치를 말한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임기 초반과 재임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대사가 엄청나다. 일단 여타의 미드나 한국 드라마보다 대사의 양이 많고 철학적이고 지극히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장이 많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아직 시즌4를 보고 있어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저런 대통령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의 대통령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이 드라마를 보며 일어나는 유일한 불편함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가고 미국의 것을 칭송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는 왜 미국을 따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중임제라면 4년의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임기를 채워야 하는데 단임제 5년 이다 보니 어떤 대통령들처럼 막가파식으로 밀어 붙여 버리면 아무리 거리에서 촛농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종북세력들이 판을 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비극이다.
이 책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말 그대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의 일을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이 편년체로 쓰였는데 그만큼 월과 일에 따라 세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도 각 대통령의 출생에서 시작해 퇴임으로 끝나는 시간 순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어 편년체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책의 전개 순대로 리뷰도 진행되는 데 각 대통령의 부분에서 인상 깊었거나 기억해야 할 만한 부분을 발췌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이승만 (0p∼127p)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하여 반민특위 요원들을 체포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하여 친일 세력 청산을 외치는 개혁 성향의 국회의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p.88)
역사에서 If는 없지만 만약 되돌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나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꼽는다. 식민시절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를 단죄하고 새롭게 민족정기와 역사를 재편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반민특위’였다. 이 법안을 만들고 위원회를 구성하기까지 무척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만들어 냈고, ‘반민특위’에 대한 당시 일반 국민들의 성원도 대단했다. 일제가 패망하고 황급히 한반도를 떠난 공백에 좌·우 이념 전쟁이 펼쳐져 무수히 많은 갈등과 보복과 죽음이 있었다. 구원자로 희망했던 미군정은 오히려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결국 와해시켰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해 ‘반민특위’를 좌파·공산주의자로 몰아 와해시켰다. 식민시절을 겪은 국가의 대통령이 식민국가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든 단체를 와해시킨 것은 이승만이 유일할 것이다. 그것도 없는 일을 가지고 사건을 조작해 용공사건으로 만들어 버리고 단순히 위원회를 와해시키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들을 구속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로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아니, 처벌하지 않았다. 처벌할 수가 없었다. 해방이후 친일파들은 단 한 번도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도 행정수반인 대통령만 다른 사람일 뿐 거의 모든 분야에서는 움켜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상한 교과서가 나오기 시작했고 말도 되지 않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하고 드골 정권이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단죄하고 아직도 그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2014년 대한민국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윤보선(장면) (128∼160p)
“당시 헌법에 따르면 국군통수권은 대통령 윤보선에게 있었다. 하지만 윤보선은 이 통수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 국군통수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엄청난 힘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윤보선이 통수권을 발휘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승만 이후 박정희의 쿠데타 직전까지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윤보선은 제대로 대통령이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박정희 (161p∼242p)
“그는 살생부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기 위해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군 내부의 남로당 당원들을 색출하는 일에 앞장섰다.” (p.167)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은 정설이다. 그의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군에서도 남로당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인물이다.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다시 남한에서 남로당 활동을 한 그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불사조로 칭송되고 있는 피닉제, 이인제 의원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만약 피닉제께서 통합진보당에 입당 한다면 좀 달라지겠지만) 그런 그가 군 내부의 정화작업의 리스트 상단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 박정희는 살아남았다.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로당 군인들은 숙청당했다. 같은 만주군 출신인 백선엽의 도움도 있었지만 박정희는 적극적으로 군 내부 남로당 당원들을 색출하는 일을 도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 사람이다.
“박정희의 반란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불개입 지시를 내린 것도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미국에 훨씬 더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p.173)
미국은 언제나 그런 나라다. 민주당 출신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한국의 많은 이상주의자들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과 기조가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미국은 미국이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다. 멋있는 ‘웨스트 윙’의 바틀렛 대통령도 민주당 대통령이지만 미국 대통령이다. ‘웨스트 윙’에서도 제3세계와 이란, 북한에 대한 바틀렛의 판단은 조지부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토록 잡고 싶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처음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놀이를 하고 있다. 누구를 넘어뜨리고 누구를 세워 올릴지 전 세계에서 보고가 올라 올 것이다. 1960년 박정희의 쿠데타 또한 미국의 불개입과 미온적 태도 또는 암묵적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군부 독재세력을 상대하는 일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지미 카터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며 국민에 대한 인권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박정희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p.197)
오바마와 ‘웨스트 윙’의 제드 바틀렛 대통령과 동일한 스탠스를 가진 지미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것도 아닌 인권 문제란다. 박정희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일부 탈북자들과 보수단체, 교회단체에서만 북한 인권을 걱정하는 줄 알았는데 이명박 이후에는 정권자체가 그것을 걱정하는 것 같다. 북한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박정희에 대한 오마주인가? 모를 일이다.
최규하 (243p∼252p)
“1995년에 신군부의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증언을 요청 받았으나, 최규하는 끝까지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 (p.250)
최규하는 가장 무능하고 우유부단했던 대통령으로 보인다. 그는 10.26이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쿠데타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18년의 독재 기간 동안 쿠데타는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짧디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 적어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퇴임 이후 증언대에서 12.12쿠데타에 대한 진상을 밝혔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사망할 때까지 말이다.
전두환 (252p∼297p)
“전두환 시대는 한마디로 ‘조폭 통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p.286)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군내 사조직의 수장이었으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전두환 시대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는 언론을 통폐합하고 모든 형태의 시위와 노동운동, 시민운동, 학생운동을 탄압했다. 국민들은 철권과 같았던 박정희 독재를 겨우 벗어났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집행했다. 8년 동안의 재임기간은 폭력이었다. 온갖 형태의 비리와 협잡, 유착이 일어났다. 국민들의 눈은 3S로 막아 버리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아름답게, 아름답게 덧칠해 버렸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바로 전두환 정권이다. ‘빨갱이’라는 명찰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면 빨갱이, 입 바른 소리를 하면 빨갱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빨갱이, 대학생들이 모여서 독서 모임과 토론을 하면 빨갱이,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면 빨갱이. 마음대로 잡아가 죽도록 고문하고 두드려 패면 그만이었다.
6월 항쟁 이후 그는 물러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두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는 항간의 무수한 비판과 비난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29만원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기도 하고 여전히 VIP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하다.
그것이 무섭다.
노태우 (298p∼334p)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하며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로 김대중과 김영삼의 틈새를 공략하였고, 결국 36.6퍼센트의 득표율로 어렵게 당선되어” (p.306)
김영삼의 3당 합당과 87년 대선 당시 양김의 분열이 없었다면 노태우는 당선될 수 없었다. 어떻게 신군부의 일부였던 노태우가 전두환 이후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린 시절 ‘보통 사람’,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노태우의 육성 연설이 기억난다. 그때는 정말 노태우가 보통 사람이고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 그의 친구 전두환과 비교해 아주 조금은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엄연한 역사적 죄인이다. 반드시 단죄되었어야 할 역사의 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임기를 마쳤다. 5공 청문회 이후 추징금을 거의 완납하는 성실함을 보이기는 했지만 역사적 죗값을 치르지는 않았다.
김영삼 (335p∼384p)
“1990년 벽두에 일어난 3당 합당 사태를 두고 지식인들은 ‘야합’이라며 김영삼을 맹렬하게 비난했지만, 김영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군부 세력을 척결하고 문민정부의 기틀을 확립하며 역사의 평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p.351)
김영삼의 3당 합당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으로 여겨진다. 3당 합당 이후 신군부 잔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욕망, 즉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그들과 한 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영삼의 정치적 욕심으로 벌어진 3당 합당은 지역적 정치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나마 야권 성향이 강하던 대구과 부산지역이 완전히 여당으로 넘어 갔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 그토록 치열하게 항거하고 싸우던 민주투사의 이미지도 한방에 희석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여당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김영삼의 보름달빵 사건도 지금처럼 희화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뿌리깊이 박혀 있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IMF를 불러 온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많이 일어났던 대형 참사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김영삼의 집권 초기 지지율은 90%에 이르고 서태지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되기도 했었다.
김대중 (385p∼434p)
“1998년 4월 2일에 보궐선거가 실시되자 한나라당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김대중 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홀대받고 있다는 말로 표를 호소했던 것이다.” (p.404)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된 것이 가장 아쉽다. 역사상 가장 준비가 되었고 자질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늦게 당선되었다. 주변에 신세진 것이 너무 많았고 나라는 IMF이후 거지꼴이었다. 그가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고 거지꼴이던 나라경제를 살려냈으며 처음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한 대통령이었지만 재임 기간 내내 ‘빨갱이’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박정희가 심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물을 주고 수구세력과 보수언론들이 키워 낸 이미지가 사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타계한 만델라 대통령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존경과 칭송을 받던 정치지도자였지만 자국인 한국에서는 그토록 많은 공격을 받았다. 각종 게이트와 아들들의 비리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조금 더 일찍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신세질 일도 덜했을 것이고 좀 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을 텐데…….
노무현 (435p∼480p)
“9명의 재판관 중에 8명이 위헌 결정에 동의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결정문의 핵심이었다. 국민의 60퍼센트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했다.” (p.452)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으나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p.477)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이 코미디다. 오래전부터 서울이 한국의 수도였다는 관습법을 들먹인다. 아니 헌법재판소에 모인 최고의 판사들이 코미디언도 아니고 ‘원래 서울이 수도였으니 새로운 행정수도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법리적인가? 아무튼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에 국민의 60퍼센트가 환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노무현 정권의 비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까지 받았다. 고졸출신 대통령이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아니꼬웠을까? 김대중에게도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는데 노무현에게는 융단폭격을 가했다. 4대 개혁 입법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모조리 폐기되었다. 같은 당에서조차 비난을 받았고 진보세력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한미FTA와 해외파병, 신자유주의 채택 등의 정책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세력과 사람들마저도 등지게 했다.
“대통령 할 때는 그렇게 욕하더니 지금은 좋대요.”
라고 봉하사저를 찾아와 자신을 부르던 사람들에게 하던 너스레는 농담이 아니었다.
이명박 (481p∼521p)
내용 무.